예배
SEOKANG CHURCH
주일설교
삭개오에게 종교개혁을 묻다
본문말씀 : 누가복음 19:1~10
설교자 : 임태일 담임목사
날 짜 : 2022.10.30
- 관리자
- 22.10.30
- 382
“삭개오에게 종교개혁을 묻다”
(505주년 종교개혁주일 설교)
<누가복음 19장 1-10절>
1. 종교개혁기념주일 그리고 삭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지난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마르틴 루터 수사가 가톨릭 교회에 저항하는 [95개조 반박문]을 공포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역사는 그 사건에 대해 지칭하기를, 절체절명의 기독교를 구해낸 위대한 사건이라 하여 <The Reformation, reformatio, die Reformation>, 곧 [종교개혁]이라 부릅니다.
종교개혁기념 주일을 맞이한 오늘, 서울에서 8,378km 떨어진 독일의 한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을, 그것도 505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오래되어 빛바랜 사진들을 꺼내서 막연히 낭만적인 감흥에 젖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그랬는데, 오늘은 왜 이런가!’ 하는 무기력감을 호소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영국의 복음주의자 앨리스터 맥그러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오늘 종교개혁을 기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으로 일그러진 현재 기독교에 대한 자성으로 인해, 기독교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서 풍성한 자산을 되찾고, 이로써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대안들을 숙고하려는 것”입니다.<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박규태 옮김, 『종교개혁 시대의 영성』(좋은씨앗)>
곧 과거 그날의 감격과 의미를 오늘에 되살려서 이후 기독교의 미래를 조망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종교개혁주일 예배를 드리는 주된 이유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중차대한 개혁의 의미를 마음에 품고 예배하는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위대한 구원이야기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 본문을 읽으면서, 마치 수줍은 소년이 짝사랑하던 소녀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설렜습니다. 본문의 구절들이 제게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제가 묻는 말에 답해주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한 장면처럼, 소녀와 함께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듯 오늘 본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말씀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제게 성큼 걸어와서 제 손을 잡고 2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여리고 마을에 운집해 있던 무리 중 한 사람으로 저를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삭개오에게 물었습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쳐있고, 이제 뿌연 연기로 희미한 2023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 서강의 성도들에게 과연 종교개혁은 무엇입니까?’라고 말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저는 삭개오가 제게 들려준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그것은 평생을 손가락질받으며 살아온 한 죄인의 이야기입니다. 자기만의 삶을 위해 이기적인 인생을 살았던 강팍한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진리는 무엇이고, 구원은 무엇인지’ 목말라 갈급하던 한 불쌍한 영혼의 이야기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만나 삶이 변화되었고, 예수로부터 ‘너 같은 사람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며 축복받은 한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 삭개오가 여러분에게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이제 너희 중 누가 또 다른 삭개오가 될 것이냐?’고 물으실지도 모릅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아무개야 내려오라!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 초대하실 때, 주저하지 말고 속히 내려와 주님과 함께 즐거워하며 주님을 새롭게 영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돌무화과나무 위의 삭개오
‘삭개오’(Zacchaeus, ‘깨끗한, 순수한’)는 오늘 본문의 주인공입니다. 아니 삭개오는 오늘 본문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전체의 주인공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극적인 변화를 일으킨 사람이었고, 그의 심장과 영혼이 온통 ‘예수’의 이름으로 마치 가을 단풍처럼 붉게 물든 인물로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삭개오는 예수께서 누가복음에서 가르치셨던 핵심적인 복음이 그저 막연하거나 이상적인 어떤 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며,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생생하고도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매우 인상적인 모습으로 삭개오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이 나무를 ‘뽕나무’라고 잘못 번역해서 부르곤 했지만, 이 나무는 영어로 ‘sycamore-fig tree’라 해서 ‘돌무화과나무’라 번역되는 것이 맞습니다. 이 나무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드릴 시간은 없지만, 돌무화과나무는 특별한 관리를 해줘야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관리를 해줬어야 할까요? 이 나무에는 벌레들이 많이 꼬이기로 유명했는데요, 그래서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벌레들이 열매 안에다가 알을 낳는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서 손톱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서 열매에 구멍을 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구멍을 통해서 벌레가 빠져나가도록 했다는 것입니다.<An Ancient Technique for Ripeing Sycomore Fruit in East-Mediterranean Countires by J Galil. https://www.ag.purdue.edu에서 인용> 오늘날에 비추어 보면 다소 원시적인 방법처럼 들리긴하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이런 방법이 비록 열매에 상처가 남는다 하더라도 좋을 열매를 맺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앉은 것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약의 예언자 아모스의 원래 직업이 ‘돌무화과나무 농사꾼’ 아니었습니까(암 7:14). 나무에 올라가서 열매에 상처 내는 일을 했던 아모스가 예언자로 부름받은 뒤로는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한 상처’를 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좋은 열매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던 예언자가 바로 아모스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삭개오의 인생도 이와 같은 거룩한 상처를 입을 날이 온 것입니다. 지금껏 세리장으로 살면서 그의 영혼은 마치 벌레 먹은 인생과도 같이 탐욕과 죄로 말미암아 상처 입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벌레 먹은 상처가 아니라, 영혼의 농사꾼이신 예수님으로부터 거룩한 상처를 입을 날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처 입은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은 그의 영혼에 이제 무엇이 필요하며, 그의 운명이 어떠할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은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도 말씀으로 인한 거룩한 상처를 주시고자 합니다. 영혼의 농사꾼이신 주님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쳐다보시고,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말씀하실 때, 오늘 본문의 삭개오처럼 주저함 없이 주께로 내려가 주님을 새롭게 영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변화된 삭개오
두 번째로 우리가 살펴볼 것은 삭개오의 변화입니다. 자기 집으로 예수님을 모신 삭개오는 밤이 새도록 주님과 함께 빵과 포도주로 식탁교제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삭개오의 집으로 들어간 것을 수군거리며 비난했습니다. 그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옆에 앉은 제자들을 일일이 그에게 소개해주시며 삭개오와 환담을 나누십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자기 집 식구들을 예수께 하나씩 데려와 인사를 시키던 그 밤 그 집안엔, 따뜻한 온기와 웃음소리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그에게 말씀하시면서, 이제껏 살아왔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그 식탁에서 삭개오는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리가 지난주에 만났던 세리처럼, 곧 성전에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가슴 치며 통곡했던 세리처럼(눅 18:13), 주님 앞에 눈물로 고개를 떨구었을 것입니다. 자기 옆에 앉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기 집에 들어온 예수의 임재 앞에, 삭개오는 ‘두려움과 떨림’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모습은 아직 참된 변화에 이르지 못합니다. 사람이 감정에 복받치면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요, 순간적으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며 참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만을 두고 참된 회개라 말하지 않습니다. 삭개오에게 일어난 궁극적인 변화는 8절에 나와 있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그렇습니다. 참된 회개는 눈물에 있지 않습니다. 그럴싸한 말에 있지도 않습니다. 참된 회개는 삶의 변화에 있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의 고백도, 우리의 눈물도, 자칫 시간이나 축내고 있는 모습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분명 고백합니다. 모세의 율법이 규정하는 것 이상으로(레 5:16, 출 22:1) 삭개오는 소유의 절반을 나눌 것이며, 누구의 것을 알게 모르게 속여 빼앗았던 일에 대해서는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50편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23절) 노래하는 것처럼, 어느 신학자가 말한 것처럼, 삭개오는 예수를 만난 기쁨으로 인하여 ‘감사의 제사’(Offering the sacrifice of thanksgiving)를 드렸던 것입니다.<E. Earle Ellis, The Gospel of Luke,(Wipf and Stock) >
4. 구원,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 삭개오
셋째로, 이런 삶의 변화를 일구어낸 삭개오를 향해 본문 9절에서 예수께서는 죄인을 향한 가장 위대한 복을 선포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주님의 축복이 선포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이 짧은 선포에는 죄인들을 부르시는 복음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똑똑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곧 예수의 복음은 죄인들에게 첫째는 ‘구원’을 주며, 둘째는 그들로 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불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 첫 번째 인물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온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줄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고지를 듣고 노래하기를, “능하신 이가 내게 큰 일을 행하셨으니, 그 일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미칠 영원한 긍휼하심이라!” 하며 기뻐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조상 대대로 말해왔던 것처럼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세우신 ‘구원의 뿔’(눅 1:69)로서 이 땅에 오셨다고 누가복음은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안식일 회당에서 만난 열여덟 해 동안 몸이 굽어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그녀를 고쳐주시면서 “이 여인은 이후로 아브라함의 딸이다!”(눅 13:16)라고 선포해주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시며, 이 두 사람 중 누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하셨습니까? 세상의 향락에 사로잡힌 부자가 아니라, 그 집 앞에 앉아 자비와 은혜에 목말라했던 나사로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눅 16:22).
이와 같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아브라함 자손의 계보’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삭개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서처럼,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눅 19:10) 선언하시면서, ‘삭개오는 내 사람, 나는 그의 주다’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를 일컬어 허랑방탕하여 집 떠난 죄인이라 비난하지만, ‘삭개오는 잃었다 되찾은 나의 양이며, 그리고 나는 그의 목자다’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립무원의 외롭고 쓸쓸한 인생을 살았던 삭개오에게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아 주시듯 축복하신 말씀이,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였던 것입니다.
5. 삭개오에게 삶의 변화를 묻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오늘 종교개혁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삭개오에게 묻습니다. ‘삭개오여, 그렇다면, 당신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삭개오는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예수를 믿고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되묻는 삭개오에게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예수를 믿지만, 그것도 오래 믿고 있어서, 직분도 받고, 봉사도 하고, 신앙생활에는 제법 노련한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예수를 믿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우리 안의 죄악된 본성은 어떻게 된 거란 말입니까?
그래도 전에는, 그런 본성으로부터 해방되고자 기도하며 눈물도 흘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애를 써보았지만, 이제는 변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하여서, 이 모습 이대로 그럭저럭, 아주 잘 지내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저술가였던 스캇 펙 박사는 말하기를, 변화를 거스르는 인간의 본능이 있으니, 이는 ‘게으름, 두려움, 자기도취’라 말한 바 있습니다.<스캇 펙 지음, 황혜조 옮김, 『그리고 저 너머에』(율리시즈)> 어쩌면 우리는 이 셋 중 하나에, 혹 두 개에, 혹 세 가지 모두에 조종당하고 있으면서도, 조종당하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왔다면, 이제 삭개오와 함께 돌무화과나무에 오르고자 용기를 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곳에 올라 이제 세상에서 받은 벌레 먹은 상처가 아니라, 시리고 아프더라도 영혼의 농사꾼이신 예수께서 주시는 거룩한 상처를 입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베푸시는 영혼의 식탁에 앉아 주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우리 삶이 참으로 변화되며, 또한, 우리 교회가 변화되고, 한국 교회가 변화됨으로, 오래도록 곪아 터질 것만 같았던 교회의 상처들이, 끝내 별이 되어 반짝이는 참된 종교개혁의 시대를 열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