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배 안의 풍경은 어떠한가?”

(마 14:22-33)

<2023년 8월 13일 남북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 북한선교주일, 광복기념주일 설교 / 녹색>

●이 나라와 이 민족이 나아갈 길

매년 8월 둘째 주를 맞아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과 [북한선교주일] 그리고 [광복기념주일]로 예배하게 되면, 우리 민족의 어두운 근대사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지난 6.25 기념 예배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그래서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올해로 77번째 맞이하는 광복절의 기쁨을 노래하면서도, 아직도 우리는 시편 23편이 말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처럼 갈릴리 바다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우왕좌왕하는 배 안의 제자들이 바로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증언하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길가와 돌밭과 그리고 가시덤불만이 무성한 불모지였던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주셨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씨뿌리는 자의 열심’은 기적처럼 이 땅에 복음의 꽃을 피웠고 토실토실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이 나라 백성들이 상처로 신음했지만,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컸기에, 광야에 있던 이 나라 백성들은 주님의 살과 피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를 시편 23편은 “사망한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긴 문장을 완성해 나갈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5)라고 말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비록 이 나라와 이 민족의 모습이 거센 역풍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배 안의 제자와 같을지라도, 바다 위를 걸어오시며, “나는 나다”라고 선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승선하여, 끝내 주님과 함께 목적지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찬양대>가 노래한 것처럼, 비록 그곳이 멀리 보이는 “저 먼 나라”일지라도, 언덕과 거인과 풍랑이 가로막더라도 “내 친구여 함께 길 떠나자” 말씀하시는 주님과 함께 끝까지 항해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과 [북한선교주일] 그리고 [광복기념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는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120년 전에 서강 공동체라는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주신 그 놀라운 사명을 마음에 새롭게 새기는 이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제자들에게 강제 명령을 내리시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 나누었던 <오병이어 기적 사건>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황량한 빈들에 나온 무리는 여자와 어린이를 빼고도 오천 명이 넘는 숫자였지만, 주님이 베푸시는 식탁으로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15절)라고 말하면서, 풍성한 주님의 식탁에 찬물을 끼얹을 뻔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받은 열두 제자’라는 가장 명예로운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제자로서 본이 되기는커녕, 하나님 나라의 분위기를 망칠 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22절에서 예수께서는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즉시”라는 말은 ‘신속히 빠르게’라는 뜻이고, “재촉하다”(avnagka,zw)는 말을 성경 원어로 보면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강요나 강제의 의미”를 나타냅니다.<R.T.프랜스 지음, 권대영·황의무 옮김, 『마태복음』 부흥과개혁사>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은 제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강제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님은 무리로부터 제자들을 ‘신속하게’ ‘강제로’라도 떼 놓으시려는 것 같습니다. 즉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는 강제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세히 보면 두 가지 명령입니다. 첫째는 “배를 타라”는 것이고, 둘째는 “건너편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는 과연 제자들이 예수께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22b) 하신 그 명령을 제대로 준행할 것인지 아닌지를 지켜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보여주실지도 주목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처럼 “그 배 안의 풍경은 어떠한지”를 살펴서 과연 이들이 ‘제자’라는 이름에 어울리는지, 그렇지 않으면 ‘제자’라는 이름표를 떼 내야 할 판인지 예의주시하면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파도에 맞서 싸우는 제자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주의 명령에 따라 항해를 하던 중 풍랑을 만나 고전하고 있습니다. 24절은 말하기를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고 합니다. 지난 새벽기도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자들은 지금 ‘진퇴양난’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가자니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어서 한치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뒤로 밀리는 형국입니다. 그렇다고 되돌아가자니 이미 육지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왔고, 게다가 주님이 “건너편으로 가라!”(22b) 말씀하신 그 명령이 생각나서 제자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 24절을 읽겠습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본문은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데, “물결로 말미암아”(u`po. tw/n kuma,twn), 곧 “파도 때문”이라고 합니다. 『로빈슨 크루소』<대니얼 디포 지음, 진형준 옮김, 살림>라는 소설 아시지요? 소설에 보면 주인공 로빈슨은 아버지 집을 몰라 빠져나와서 무작정 런던행 배를 탑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얼마 못 가서 지독한 뱃멀미와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그 원인에 대해 소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배가 험버 강을 벗어나자마자 바람이 일기 시작하더니 무서운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배 안에 있는 제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결국 “파도”였습니다. 파도는 바람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실 배가 안전하게 순항하려면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목적지 방향의 정 반대편에서 바람이 불면, 배는 바람을 뚫고, 파도를 갈라야 하기에, 파도는 마치 성난 거인처럼 일어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만약 목적지를 향해 나가기를 포기하고 뱃머리를 돌리기만 하면, 거인 같았던 파도는 난쟁이처럼 작아질 것입니다. 뱃사람으로 잔뼈가 굵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훌륭했습니다. 그들은 바람과 풍랑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으면서도 뱃머리를 돌리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것은 실로 위대한 제자들의 믿음입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지금 이러한 제자들의 고난을 겪고 있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냥 포기하면 쉬운데, 그냥 다른 길을 선택하면 수월한데, 주님이 주신 길이라 믿으면서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풍랑과 싸우고 있는 분들 말입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러한 믿음의 항해를 멈추지 말고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파도를 밟고 오시는 분

그러면, 캄캄한 밤에 사나운 파도와 싸우고 있는 제자들을 누가 구원해줄 수 있겠습니까? 저 높이 일렁이는 파도를 누가 잠재울 수 있습니까? 저들에게는 누군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타나서 파도를 밟아 잠재워 주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저들로 하여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해줘야 합니다. 구약성경 하박국 3장 15절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선지자 하박국은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 바벨론의 위협과 공포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구출해내실 하나님을 “바다의 큰 파도를 밟아버리는 하나님”이라 노래한 것입니다.

이윽고 제자들이 파도로 인해 혼란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오늘 본문 25절에서 누군가 나타납니다. 칠흑 같은 그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고 말입니다. 밤 사경은 새벽 3-6시 사이를 의미합니다. 서양 속담에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The darkest hour of the night comes just before the dawn) 말하는 것처럼, 가장 어두운 그 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다 위로”(evpi. th.n qa,lassan)) 걸으시며, 사나운 거인처럼 일어나는 파도를 지근지근 밟으며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곧 하박국서가 말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195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프랑스의 작가인 프랑수아 모리아크(François Mauriac, 1885-1970)라는 작가는 오늘 본문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예수는 찰랑거리는 물 위를 재빠르게 걸었다.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쓰는 제자들이 저 멀리서 보였다. 바다는 예수의 발 아래에서 잠잠해졌다.”<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정수민 옮김, 『예수』 가톨릭출판사> 이것이야말로 하박국이 말한 구원자에 대한 노래한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이 말하는 구원자 예수를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나다

그러나 이와 같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동시에 안타까운 일이 벌어집니다. 26절이 말하는 제자들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지만, 분명 실망스럽습니다. 곧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이라 합니다. 본문이 말하듯이 저들은 바다 위로 걸어오는 분이 예수님이었던 것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그리스도”(Jesus, the Christ)를 “예수-유령”(Jesus, a ghost)으로 인식합니다. 이로 인해 “무서워하여 소리 질렀다”(26b)는 것입니다. 파도를 밟고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에 27절에서 예수께서는 ‘즉시’ 제자들에 위대한 권면의 말씀을 주십니다. 곧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안심하라 나니(‘나는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Qarsei/te( evgw, eivmi\ mh. fobei/sqe))고 당부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안팎으로 살피십니다. “안심하라”는 것은 제자들의 내면을 향한 말씀입니다. ‘낙심(落心)하지 말고, 안심(安心)하여, 계속해서 파도와 맞서 싸우기로 결심(作心)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심하라’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시면서 눈앞에 보이는 거인 같은 파도, 즉 불안한 환경에 주눅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바다 위를 걸어오셔서 이런 당부를 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나는 나다”(evgw, eivmi\, It is I)라고 자신을 소개하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스웨덴의 어느 성서학자는 오늘 본문을 성경 원어로 읽다가 오늘 본문인 22-33절에 나오는 단어를 하나씩 세어보았는데, 참 신기하면서도 흥미롭게도 “나는 나다”는 주님 말씀이 “본문의 정중앙에 위치”(in the exact centre of the double story)해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이 학자는 말하기를, 그 정도로 이 말씀은 본문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인 선언”(the central pronouncement)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Birger Gerhardsson, The Mighty Acts of Jesus according to Matthew, Lund : LiberLäromedel/Gleerup // archive.org>

어떤 점에서 그렇겠습니까?

성경에서 ‘나는 나다’는 표현은 출애굽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하신 표현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자기 앞에 나타난 거룩한 신적 존재 앞에서 두려워 떨며 ‘당신은 누구시냐’ 물었을 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나는 나다”, I am that I am)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다 위를 걸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유령’이라 생각한 나머지 두려워 소리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안심하라! 나는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세 가지 오류

그 말을 듣자 28절에서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이러한 베드로의 말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가 도마를 마치 의심의 대명사처럼 말하곤 하지만, 베드로야말로 의심의 원조였습니다. 주님이 “나는 나다”(“It is I”)라고 선언하셨더니, 베드로는 그 말에 “만일 당신이라면”(“If it is you”)이라 받아치면서 주님이 주신 은혜의 선언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심지어 주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마귀처럼 말입니다.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는 베드로의 말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마 4:6)는 마귀의 시험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장소만 다를 뿐, 주님을 시험하는 못된 심보는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셋째로, 베드로가 주님께 무엇을 요청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요청합니다. 여러분, 이 뜬금없는 요청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야 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그가 물 위를 걸어야 할 이유는 사실상 없습니다. 쓸모도 없고, 필요도 없을뿐더러 상황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중에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내가 물 위를 좀 걸어봐야 아는데…’ 하면서 무슨 무용담이라도 늘어놓으려 했던 것일까요?

그러한 베드로의 속마음을 주님이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허망한 요청을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오히려 그에게 “오라”(29)하며 말씀하십니다. 그의 요청이 정당해서 그러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시험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안타깝게도 주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무엇에서 실패했을까요? 29-3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29(예수께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본문은 베드로가 행한 치명적인 실수와 처절한 실패에 대해서 지적해줍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는 보통 베드로가 물을 걷다가 믿음이 없어서 물에 빠진 것을 실패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보인 근본적인 실수이자 실패는 “배에서 내린 것”입니다. 예수께서 처음에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에게 뭐라고 명령하셨습니까?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22)였습니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말씀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강제 명령’이었습니다. 내리면 안 됩니다. 이 명령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건너편에 도착할 때까지 무조건 배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죽어도 배 안에 있어야 합니다. 저들은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베드로는 엉뚱한 요청으로 자기도 모르게 배에서 내릴 구실을 만들어버립니다. 그것도 주님을 의심하고, 시험하면서 만든 구실이었습니다. 배에서 내린 베드로는 보란 듯이 물 위를 걸어 의기양양하여 예수께로 발을 옮겼지만, 아니나 다를까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물에 빠져 갔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올리고-피스토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베드로를 향하여 주님은 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성경 원어로 “ovligo,pistoj”(올리고피스토스)라고 해서, 마태복음에만 다섯 번 사용된 단어입니다.<Horst Balz&Gerhard Schneider, EDNT vol-2, William B. Eerdmans> 부엌에서 요리하실 때 설탕 대신 종종 사용하는 ‘올리고-당’의 그 ‘올리고’가 바로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예수께서 “믿음이 작은 자여”라고 말씀하신 것은 저들의 믿음이 수치가 낮다거나 모자란다거나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믿는 자라고 하지만, 믿는 자답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제자라고는 하지만, 제자답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치자면 ‘그리스도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답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성도라고는 하지만, 직분 받은 자답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허울만 그럴싸할 뿐이지 정작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뼈 아픈 지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ovligo,pistoj”, 즉 “믿음이 적은 자여!”라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처음에 거센 역풍을 만나 높은 파도와 더불어 싸운 것은 너무나도 훌륭한 제자로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첫째 “배를 타고”, 둘째 “건너편으로 가라”하신 주님의 명령을 기억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배를 붙들고 악전고투하며 싸우는 모습은, 비록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칭찬받을 만한 믿음이 분명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풍랑과 싸우던 베드로의 그 멋진 믿음은 ‘물 위를 걷고 싶은 허망한 믿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배에서 내렸습니다. 배에서 내린 베드로가 보여준 허망한 믿음은 베드로가 “물 위를 (몇 발자국) 걸었다” 하는 것처럼, 잠시 잠깐 빛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베드로가 “바람 때문에” 무서워서 물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디 바람만 무섭겠습니까? 파도는 어떻습니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하고 소란한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배에서 내린 순간, 그를 물에 빠뜨릴 이유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단순한 예가 되겠지만, 교회 한 번 빠지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번 빠지고 나면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쌔고 쌨습니다. ‘이것 때문에 안 간다’ ‘저것 때문에 가기 싫다’ 이유가 없으면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물 위를 걷겠다는 허망한 믿음’, 이것은 애초에 참된 믿음이 아니었기에, 상황에 따라, 조건에 따라 언제라도 뒤바뀌고, 쉽사리 의심으로 변질되고, 불평하고 불만을 품는 들쭉날쭉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이 작은 자”, 곧 ‘믿는 자 같지만 믿는 자답지 않은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 배 안의 풍경은 어떠한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야기를 마치면서 마태복음은 마지막 절인 32-33절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들려줍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32(예수께서)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셨다”라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그를 되돌려 주신 것만이 아니라, 주님도 ‘함께’ 그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제서야 바람이 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제 배 안의 풍경이 바뀝니다. 주님이 배 안에 임재하심으로, 이제 저들은 “예수-유령”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가까이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노를 저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변화된 배 안의 풍경에 대해서 33절은 우리에게 전해주기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했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제자들이 예수께 ‘절한 것’은 마태복음 28장에서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절한 것’(마 28:16-17a) 외에는 이곳이 유일합니다. 그들이 예수께 엎드려 절하는 순간, 저들의 입에서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복된 믿음의 고백이 터져나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는 믿음의 향해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자”는 주님의 명령을 똑똑히 기억하는 사명자로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알아보고, 고백하며 경배하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예수-유령으로 호들갑 떨었던 제자들처럼, 영적인 분별력도 떨어지고, 지각력도 떨어지고, 그런 나머지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걷고자 배에서 내리려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꾸려나가는 가정이라는 배의 풍경은 어떻습니까? 그 배 안에 주님이 타고 계십니까? 타고 계시면 어디에 계시며, 주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가정을 이끄실 선장이 맞습니까? 여러분 가정의 주인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혹여 주님을 ‘투명인간’ 취급한다거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히 예배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만 나타나 주길 바라는 말 잘 듣는 ‘예수-유령’을 원할 때는 없으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프랑스의 철학자는 인생을 통찰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파도와 위험이 도사려도, 거센 바람과 폭풍우가 있어도 생애 단 한 번은 평생 가 본 적 없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모든 삶은 흐른다』 FIKA> 여러분 인생의 항해 길에서, 거센 바람과 거인 같은 파도가 여러분의 삶을 가로막더라도 믿음의 항해를 멈추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배 안에 주님이 함께 올라타심으로, 선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신비롭고 위대한 믿음의 항해를 정진해 나가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가정과,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와, 이 나라와 이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회복되는 날이 속이 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