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사도가 되어 가라”

(마 9:35-10:8)

<2023년 6월 18일 성령강림 제3주 설교 / 녹색>

●전영창 선생님과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10계명>

지난주 저는 경상남도 거창에 있는 샛별중학교에 다녀왔습니다. 한 200여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앙강좌를 하고 왔는데요, 여러분들 기도로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마 ‘샛별중학교’ 하면 모르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거창고등학교’는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거창고등학교와 샛별중학교, 그리고 샛별초등학교는 같은 기독교 재단의 명문 사립학교인데, 재단의 명성에 걸맞게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사실상 상위권 대학에 많이 진학하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 학교는 단지 엘리트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하나님 지으신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바른 인격과 무엇보다 바른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해 주어서, 훗날 학생들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회인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기보다 못한 이웃을 돌봐주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독교인을 양성하는 학교였습니다.

특별히 거창고등학교는 학교 강당 뒤에 붙어 있는 <직업선택 10계명>이란 것으로도 유명한데, 잠시 소개하면 이런 것입니다.

첫째,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째,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째,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째,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째,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째,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 없으니 의심하지 말고 가라.

열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어떻습니까? 첫 번째 계명부터 마지막 열 번째 계명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 없고, 현실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 계명을 ‘뒤집어야’, 오늘날 보통 사람들이 원하는 일반적인 직업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직업선택 10계명>은 이 학교에 세 번째 교장으로 부임하셨던 전영창 선생님의 교육철학에서 비롯된 것인데, 전영창 선생님(全永昌, 1917~1976)은 일본강점기 때 가난한 빈농에서 태어나셔서, 그 어려운 시절에 일본 유학과 미국 유학까지 장학생으로 다녀온 수재 중의 수재였습니다. 그러던 중 1956년, 거창고등학교가 폐교될 상황에 놓였다는 소식을 들은 선생님은 다른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당시만 해도 ‘깡촌’이이기만 했던 거창에 내려가서 학교를 재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 노력이 열매를 맺어서 오늘날 이처럼 훌륭한 사학재단이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직업 선택 10계명>은 이러한 전영창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그의 아들이 만든 것입니다. 아들이었던 전성은 선생님도 훗날 교육부장관 후보로 물망에 오를 정도로 훌륭한 분이셨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역시 거창에서 헌신한 분이십니다.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들 전성은 선생님은 이러한 10계명을 만든 취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 욕심대로 복 받고 천국 가는 게 아니라,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고 헌신하고 섬기고, 십자가를 지는 게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라는 아버지 전영창의 가르침대로 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입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번에 내려가서 아들 전성은 선생님의 따님을 만나 뵈었는데, 그분 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서 다른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거창에 내려와 이 학교에서 3대째 교사로 섬기며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말에 있는 게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삶으로 나눌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을 전영창 선생님과 그 아들과 그리고 그 아들의 딸이 몸으로 헌신하며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 삶이 <직업 선택 10계명>에 요약된 것입니다.

●완편된 열두 제자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가히 역사적인 날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신할 열두 제자를 비로소 온전히 갖추시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예수의 제자로 부름받은 저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거기에는 두 개의 단계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철저히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제자도’(Discipleship)라고 부릅니다. 둘째로, 제자도를 훈련한 그들은 이제 예수님의 사역을 도맡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내는 곳으로 가서 저마다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일컬어 ‘사도’(Apostle)라 부릅니다. 제자의 도리를 배우고, 사도가 되어 나가는 것,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제자들이 배워서 행해야 할 예수님의 사역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9장 35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이 말씀은 그동안 제가 여러 번 강조했던 예수님의 세 가지 핵심 사역입니다. 즉 “가르침, 선포, 치유”(Teaching, Proclamation, Healing)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여기 처음 나오는 게 아니라 이미 마태복음 4장에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베드로를 위시한 네 명의 어부를 처음으로 제자로 부르셨을 때, 마태복음 4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핵심 사역, 즉 “가르침, 선포, 치유”(Teaching, Proclamation, Healing)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습니다. 다만 마태복음 4장에서는 “갈릴리를 두루 다니셨지”(4:23)만, 오늘 본문 마태복음 9장에서는 갈릴리만이 아니라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녔다”(9:35)는 말로 확장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역이 넓어지면서 그만큼 다닐 곳도 많아졌고 할 일도 많아졌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네 명의 제자들과 갈릴리를 다니셨지만, 이제는 열두 명의 제자들과 함께 모든 도시와 마을을 다니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열두 제자’, ‘열두 사도’가 되다

그렇습니다. 이제 때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는 열두 지파를 대신할 열두 제자를 완전히 갖추셨고, 이제 그들을 내보내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장 1절은 “예수께서 그의(자기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의 열두 제자”라는 말은 “자기의 열두 제자”(tou.j dw,deka maqhta.j auvtou/)를 뜻합니다. 즉 제자들은 예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예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나를 따라오라” 말씀하신 것은 다른 말로 “너는 내것이라!”는 선포와 다름 아니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말하기를, 예수께서는 자신의 소유인 열두 제자에게 “권능”을 주신다고 합니다. 주님의 권능은 손 놓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멀리서 주님의 사역을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주어지지 않습니다. 구경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저 ‘오래된 구경꾼’일 뿐, 저절로 제자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주님이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실 때”, “병으로 신음하고 죽어가는 연약한 자를 살려주실 때”, 그 자리에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즉 자신의 삶을 선교 현장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권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할 때 “주님의 권능을 받아 사역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긍휼을 베푸실 때 그 곁에 함께 있으므로, 쿵쾅대는 주님의 심장 박동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함께 울어본 사람만이 제자가 될 수 있고, 그들에게 주님은 권능을 베풀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2절로 넘어가면 이제 열두 제자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곧 10장 2절은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로 시작합니다. 1절에서는 “열두 제자”(The Twelve Disciples)라 소개되는 사람들이 이제 2절에서는 “열두 사도”(The Twelves Apostles)라 소개되고 있습니다. 제자는 무엇이고 사도는 무엇입니까? 제자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Calling)입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Sending)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 10장 1절과 2절은 교회의 본질을 짧고도 굵게 요약합니다. 곧 “교회는 ①죄인을 불러 주님의 소유로 삼고, ②그들을 제자로 양육하여, ③평화의 사도로 내보내는 곳”입니다. 교회는 이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사람을 전도해 부르고, 그들을 양육해서 내보내는 선교 공동체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절의 제자가 2절에서 사도로 변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또한, 이 본문은 출애굽기 19장에서 모세가 받았던 저 위대한 시내산 언약을 성취하는 본문입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①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③제사장 나라가 되며, ②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하셨습니다. 첫째로 “내 소유가 되리라” 하신 것처럼, 예수께서는 죄인을 불러 주님의 소유로 삼아주십니다. 둘째로,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신 것처럼, 주님은 자신의 소유된 자들을 열두 제자로 양육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마지막 셋째로,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다리를 놓는 사람인 것처럼, 예수께서는 이제 열두 사도를 세상으로 보내시며,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우고, 무너진 담을 세우고, 부서진 다리를 세우며, 평화와 구원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

이제 열두 사도의 이름을 한번 보겠습니다. 2절부터 4절까지입니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이제 예수께서는 세상에 보낼 열두 사도들의 이름을 나열하십니다. 사도들이 가야 할 곳은 마치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사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편안하거나 안락한 것과는 상관없는 고난과 시련의 삶입니다. 오늘 설교 처음에 소개해드린 거창고등학교의 전영창 선생님의 삶과 그분의 교육철학이 담긴 <직업선택 10계명>이 말하는 삶이 바로 이와 같은 사도적 삶입니다. 스스로 광야를 택해 나아간 삶이었던 것입니다.

어제 토요일 TBC 강의 때 저는 구약성경 민수기를 소개하면서, “민수기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광야로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곧 광야로 나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이르기를,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도적 떼들과 이방 민족과의 싸움에 대처하고자, “인구조사”를 행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민수기를 영어로는 “숫자를 세다”는 의미로 “Numbers”라고 부릅니다.

민수기 1장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 너희와 함께 설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민 1:3,5) 이 말씀에 이어지는 6절부터 46절까지, 무려 40절에 걸쳐서, 민수기는 고난의 광야 길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진군하게 될 자랑스러운 용사들의 “이름이 이러하다”며 적어 놓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마태복음은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할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며 밝혀준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나아가 영적인 전투를 벌이며,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작은 밀알이 되어야 할 사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들의 이름을 보니 어떻습니까? 다시 한번 그들의 이름을 보겠습니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여러분, 민수기에 나오는 명단은 각 지파를 대표하는 장정들의 이름이었습니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 열두 사도의 이름은 하나같이 일관성이 없고, 오합지졸입니다. 서로 간에 공통점을 찾아내기는커녕, 이제 곧 분열해 흩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공동체처럼 보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가난한 어부였지만,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선박을 소유할 만큼 부유한 어부였습니다. 저들 중 어떤 이는 히브리 사람의 이름을 쓰지만, 빌립과 안드레는 이미 그리스 사람의 이름으로 개명했습니다. 민족성을 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세리였던 마태는 친-로마적인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었지만, 가나나인 시몬이라 소개되는 인물은 열심당원으로서 반-로마적인 정치 성향입니다. 이 두 사람 마태와 시몬을 붙여놨다가는 치고받으며 싸울 것이 뻔합니다. 게다가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본문은 “가룟 유다”의 이름을 빼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판자라”(10:4b)는 달갑지 않은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이런 이합집산의 공동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무엇이 이런 제자 공동체, 그리고 사도 공동체를 움직여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이 사도 공동체가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무엇을 품고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긍휼의 사도가 되어 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그 해답을 오늘 본문 9장 36절에서 찾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고 말입니다. 이 구절의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갈릴리를 비롯하여 모든 도시와 마을을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유하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한, 37-38절이 말하는 것처럼 “추수할 일꾼”을 보내야 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불쌍히 여기다, 민망히 여기다”(splagcni,zomai)라고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동정심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 원어 의미대로라면, 주님이 느끼는 이러한 고통은 예수님의 ‘내장이 꼬이고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의미하지만, 굳이 그 고통의 정도를 표현해야 한다면,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무리를 보시고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긍휼”(Compassion)이라고 부릅니다. 긍휼에는 이유나 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무엇무엇 때문에’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긍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신학자는 이 구절을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애굽에서 구원을 받고도, 광야에서 그토록 많은 기적과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도, 어느 나라도 받지 못한 하나님의 율법과 존귀한 사명을 받고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얻고도, 그 열방들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짓밟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열국에 팔려가 이제는 마른 뼈처럼 죽어 버린 이스라엘(겔 37). 그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는 원동력, 그 원인은 오직 그 자신의 양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들 목자의 긍휼뿐이었다.”<채영삼 지음, 『긍휼의 목자 예수』 이레서원>

그렇습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40년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해법은 긍휼이었습니다. 바짝 말라버린 뼈다귀처럼 삭아버린 이스라엘에게 생기를 불어넣을 원동력도 긍휼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무리를 향해 품으신 마음 또한 긍휼이었기에, 예수께서는 긍휼의 제자, 그리고 긍휼의 사도를 세상에 내보내려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날 쇠락해가는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마음은 무엇이겠습니까? 긍휼의 마음입니다. 쇠락해가는 교회가 다시 살아날 원동력은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긍휼의 마음입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카일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은혜가 우리의 가장 분명한 속성이 되어야 하므로, 교회 안에서 은혜를 나누지 않는 사람을 본다면 놀라고 슬퍼해야 한다.”<카일 아이들먼 지음, 유정희 옮김, 『은혜가 더 크다』 규장> 작가는 “놀라고 슬퍼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저는 그 말을 고쳐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에 은혜를 나누지 않는 사람을 본다면 섬뜩함과 공포를 느껴야 한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이 시간 예배하는 우리를 향해 긍휼의 마음을 잃지 않는 주님이십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교회에서 양육을 받고, 사도로서 세상에 나아가고자 할 때, 그 어떤 가치보다 가장 높은 곳에, 그리고, 그 어떤 가치보다 가장 깊은 곳에 두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주님이 품으신 긍휼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긍휼의 제자가 되어서 주님의 긍휼을 겸손히 닮고자 애쓰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가 되어서 세상으로 나아가되, 다른 무엇이 아닌 오직 주님의 긍휼함을 가지고 긍휼의 사도가 되어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