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오신 보혜사”

(요 14:15-21)

<2023년 5월 14일 어버이주일 설교 / 흰색>

●효도관광 보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5월은 <가정의달>이어서 지난주에는 <어린이주일>로 모여 예배했고, 오늘은 <어버이주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총여선교회’가 주관해서 우리 교회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잠시 효도 관광을 다녀왔습니다. 파주에 있는 ‘벽초지 수목원’에 가서 꽃 구경도 하고, ‘마장호수’에 있는 ‘출렁다리’를 건너기도 했습니다. 맛있는 점심 식사도 나누면서 어르신들과 함께 마음껏 웃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이번 효도 관광에 참여하신 분들은 우리 교회에서 연세가 가장 많은 어르신들이셨지만, 막상 꽃 앞에 앉아서 ‘하르르’ 혹은 ‘까르르’ 웃으시면서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뵈니, 천진난만했던 동심으로 돌아간, 영락없이 어린이처럼 보였습니다.

제 아내가 박승덕 장로님을 부추겨서 윤희식 권사님 어깨에 팔을 두르시라고 성화를 부렸더니, 박승덕 장로님은 못 이기는 척하셨지만, 마치 구렁이 담 넘듯이, 기다리셨다는 듯이, 윤희식 권사님의 어깨를 팔로 감싸 안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자 윤희식 권사님은 못 이기는 척 박승덕 장로님 어깨에 새색시처럼 살포시 기대시더니 얼굴에 꽃이 만발하셨습니다. 그걸 바라보면서 가만 계실 우리 교회 장로님들, 권사님들이 아니십니다. 여러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은 저마다 농담 한마디씩 건네시면서, 두 분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 앞에 저절로 녹아들기만 했습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출발하기 전에 잠시 예배를 드리면서 동요 몇 곡을 함께 부르기도 했는데요, 동요를 부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마치 둥지에서 어미를 기다리는 작은 새처럼 앙증맞게 입을 방긋방긋 벌려가며 노래하셨습니다. 이런 표현이 외람되어 죄송하지만, 너무나도 귀여운 하나님의 어린이들처럼 보이기만 했습니다. 제 눈에도 그랬으니, 하나님 아버지 눈에는 어떠하셨을까, 말은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이 시간 국민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 1절만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아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어버이주일>이라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축하와 감사 인사를 받으시겠지만, 이 시간 만큼은 지난주에 이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영원한 주의 어린이로 예배하면서, 참된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새롭게 깨닫고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의 밥상”

오늘 <어버이주일>을 준비하면서 저는 황지우 시인의 “이 세상의 밥상”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조금 길지만,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병원에서 한 고비를 넘기고 나오셨지만, 어머님이 예전 같지 않게 정신이 가물거리신다. // 아궁이에 불 지핀다고 안방에서 자꾸 성냥불을 켜시곤 할 때, 내 이 슬픔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 새벽 교회 찬 마루에 엎드려 통곡하던 그 하나님을 이제 어머님은 더 이상 부르실 줄 모른다. // 할렐루야 기도원에 모시고 갔는데도 당신은 내내 멍한 얼굴로 사람을 북받치게 한다. // 전주예수병원에 다녀온 날, 당신 좋아하시는 생선 반찬으로 상을 올려도 잘 드시질 않는다. // 병든 노모와 앉은 겸상은 제사상 같다. 내가 고기를 뜯어 당신 밥에 올려드리지만, // 당신은, ‘입맛 있을 때 너나 많이 들어라’ 하신다. // 목에 가시도 아닌 것이 걸려 거실로 나왔는데, // TV에 베로나 월드컵 공이 살아서 펄펄 날뛰고 있다.”<황지우 지음,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이 시는 황지우 시인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전체적으로 어머니를 향한 시인의 애달픈 마음이 배어있지만, 무엇보다 젊은 시절 그토록 의지하고 사랑했던 하나님조차 제대로 부를 수 없게 된 어머니의 병약한 모습에 시인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여러분 중에도 시인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사람의 수명은 길어졌지만, 건강이 온전하지 못해서 고생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 裕和, 1962-)라는 일본 작가가 쓴 『걸어도 걸어도』<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박명진 옮김, 민음사>라는 소설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결국 아버지와 축구를 보러 가지 못했고, 어머니를 한 번도 차에 태워드리지 못했다. ‘아, 그때 이랬더라면......’ 이라고 깨닫는 것은 언제나 그 기회를 완전히 놓치고 나서, 다시 되돌릴 수 없을 때였다. 인생은 언제나, 한발씩 늦다. 그것이 아버지와 그리고 어머니를 잃고 난 뒤에 얻은 솔직한 깨달음이다.”

앞서 소개한 황지우 시인이 느낀 후회의 감정이 이런 것일 겁니다. 진작 잘해드리고, 진작 밥상 한번 차려드렸어야 했는데, 기회를 완전히 놓쳐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그래서 “한발 늦게” 어머니를 위해 밥상을 차려드린들, 그 밥상은 “제사상 같았을 뿐”이라 고백하는 시인의 마음은 참지 못할 후회로만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어버이주일>에 부모를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한발씩 늦게 부모를 사랑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성령의 뜻:파라클레토스

이처럼 부모님에 대한 회한과 후회의 마음을 품고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만 주목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16절에서 주님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하신 약속입니다. 예수께서 약속해 주시기를, 자신은 이제 곧 떠날 것이지만, 자신을 대신할 성령을 보내주실 것인데, 그 성령의 이름은 “보혜사”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아주 놀라운 언약의 말씀을 주시는데, 지난주 나누었던 요한복음 14장 11절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성부와 성자의 친밀한 관계’를 소개하셨지만, 오늘 본문인 20절을 보시면, 성부와 성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까지도 말씀해 주십니다. 곧 예수께서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그.리.고)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말씀하시면서, 모든 믿는 자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신앙의 목표를 제시해 주십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 입니다.

먼저 “보혜사”에 대해서 살펴보면, “보혜사”라는 말은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고,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성경 원어로 “para,klhtoj”라고 하는데, 단어 자체가 의미하는 것은 “옆에서 돕는 자”를 뜻합니다. 헬라어 사전은 이 단어를 “법적 자문자, 변호자, 상담자”(legal adviser, advocate, counselor)<Horst Balz and Gerhard Schneider, EDNT, Eerdmans>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톨릭교회는 이 말을 “협조자”(協助者)라고 번역하고, 개신교회가 사용하는 [개역개정판]이나 [새번역성경] 그리고 가장 최근에 번역된 [새한글성경]은 모두 “보혜사”(保惠師)라고 번역해 사용합니다. 한자로 “보혜사”는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는 분(스승)”이란 뜻인데, 누가 이렇게 번역했는지 모르지만, 원어의 의미를 매우 정성스럽게 잘 살린 번역인 듯합니다.

결국 보혜사 성령은 어느 신학자가 잘 정리하듯이 “예수님을 대신하고, 예수님에 관해 가르치며, 그에 대해 증언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이) 미래에 직면할 도전을 극복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외르크 프라이 지음, 이형일 옮김, 『요한복음의 신학과 역사』, 새물결플러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삶을 지지하고 도와주시며, ‘내 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영, 그것이 바로 보혜사 성령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 안에 편안할 때까지” by 어거스틴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가야 할 게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내 편이 되어주시는 것은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훌륭하기는커녕, 악하고 아둔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를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weakness)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through wordless groans)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26절)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최고의 영적 스승인 성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의 고백은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를 줍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주님, 내 영혼의 집은 주님이 들어오시기에 너무나도 비좁으니 넓혀주소서. 폐허가 된 집이니 수리하여주소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 너무 많이 있음을 알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누가 내 영혼의 집을 깨끗이 청소해주겠습니까? 주님 외에 누가!”<선한용 엮어옮김, 『성 어거스틴의 기도』, 대한기독교서회> 어거스틴은 고백하기를, 그의 영혼이 주님이 들어오시기에 턱없이 비좁다고 합니다. 이것은 공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은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능히 들어가십니다. 다만 어거스틴은 자신의 영혼이 독선적이고도 이기적인 아집으로 가득 차 있어서, 주님을 밀어내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음을 사실 적시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영혼이 마치 “폐허가 된 집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곧 쓸모없는 애물단지와 같은 영혼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여 다음과 같이 널리 알려진 저 유명한 고백을 남깁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내 마음이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어거스틴의 위의 책> 그는 영적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주님 앞에 불순하고 오만방자한 것을 깨달았지만, 바로 그 순간, 오히려 인간이란 존재는 “주님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된 것”을 재확인하면서 그의 마음이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따르면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깨달음: 하나님은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보혜사 성령의 사역은 <가정의달>이자 <어버이주일>을 맞은 우리에게 두 가지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첫째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보혜사 성령의 사역을 똑똑히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 부모일지라도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된다고 저절로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된다고 저절로 영적으로 온전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되는 것이 연약한 인간을 저절로 변화시켜주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참된 행복과 평안을 위해서 가족 구성원 모두는, 특별히 부모된 자들은 더더욱 겸손히 위로부터 내리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가르침 중에 첫째로, 부모님의 사랑은 보혜사 성령의 사역을 나타내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의하듯이, 부모님은 누가 뭐래도 언제나 자식을 지지해주고, 도와주고, 격려해주며, ‘내 편’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입니다. 보혜사 성령의 역할과 과도하리만치 닮아있습니다. 오늘 2부 예배 <할렐루야 찬양대>가 바로 그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보이시려, 세상의 어버이 우리에게 보내셨네. 하나님 아버지 사랑은 끝없어라. 자녀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네.”<문구영 곡,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노랫말이 말하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세상에 알려 주시고자 “어버이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늠케 해주는 참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은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흉히 여기신다”(시 103:13)고 합니다. 또한 미국의 어느 작가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God could not be everywhere and therefore He made mothers”(루댜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 “하나님은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 옳습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헌신은 우리를 지켜주시고 돌봐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일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무척 닮은 것이 사실입니다.

●둘째 깨달음: 인간의 사랑은 유한한 사랑이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둘째로,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식으로서도 그렇지만 부모로서도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제한적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이 온전한 사랑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참된 행복과 평안을 위해서 부모된 자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반드시 위로부터 오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네 아이의 아빠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아들로서도 저는 그다지 좋은 아들은 아닌 것 같은데, 남편으로서도, 그리고 아빠로서도 저는 좋은 아빠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는 그야말로 어리둥절했습니다. 28살, 아빠가 된다는 게 뭔지도 모른 채로 초보 아빠가 되어서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늘 실수만 반복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무관심했던 적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첫째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 뿐입니다.

그러다가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빠로서의 경험이 한 번 있으니, 두 번째는 좀 나을 법도 한데, 저는 여전히 초보 아빠였습니다. 오히려 둘째 아이에게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부모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곧 첫째 아이와 비교하면서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도 제법 많이 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납니다. 그 아이가 어제 토요일 아침에 대학을 졸업했다면서, “아버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전화를 걸어왔는데, 부끄러워 목이 메어 혼났습니다. 아들에게 그런 인사를 받을 만큼 해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아이가 태어나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줄 알았습니다. 태어나기만 하면 완벽한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고,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딸입니다. 첫째와 둘째와는 성별이 달라서 딸 아이를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물론 소위 말하는 ‘딸바보’가 되는 것엔 성공했습니다만, 지나고 보니 셋째 아이에게도 미안한 마음만 앞섭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아이 도훈이가 태어났습니다. 사십 대 중반에 본 늦둥이 막내라서 위로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것과는 사뭇 기분이 달랐습니다. 들으면 웃으시겠지만, 일찍 할아버지가 되어서 마치 손주를 키우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러긴 마찬가지입니다. 할아버지도 아닌 사람이 할아버지의 감성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이렇게 키우다가 이 녀석이 어떻게 자랄지 심히 걱정이 되기만 합니다.

●우리집에 오신 보혜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담임목사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저만 보더라도 부모님의 자식으로서, 그리고 제 자식들의 부모로서, 저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을 빚을 때”<“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서정주 지음, 『미당 서정주 전집』, 문예학술저작권협회> 비로소 가족이 된다고 했지만, 저는 그저 빚어지고 쪄진 송편을 집어 먹기만 했습니다.

좋은 친구가 되어 줬어야 했는데, 아이들을 방치한 적이 많습니다. 말을 많이 들어줬어야 했는데, 말을 끊고 제 생각을 주입하려 했던 적도 많습니다. 아이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한 치어리더가 되어주었어야 했는데, 무지막지한 코치를 자처해왔습니다.

가족으로서 같은 시계를 보긴 했지만, 아이들이 세 시를 보고 있을 때, 저는 여섯 시를 봤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따라서 여섯 시를 보면, 저는 어느새 아홉 시를 보고 있습니다. 때마침 같은 아홉 시를 바라볼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오전’ 아홉 시, 저는 ‘오후’ 아홉 시로 아이들과 공감해주지 못했던 시간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튼실한 신앙과 복음으로 담대히 사는 아이로 가르쳤어야 했는데, 눈앞에 보이는 유익을 좇아가고자 할 때 그저 내버려 둔 적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정말 무책임한 아빠였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자식된 우리도 그렇지만, 부모된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하기만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안 될 것만 같습니다. 누가 이런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정에 보혜사 성령을 모시기를 축원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환하게 뜨이기를 축원합니다. 앞서 소개해드렸지만, “오 주님, 내 영혼의 집은 주님이 들어오시기에 너무나도 비좁으니 넓혀주소서. 폐허가 된 집이니 수리하여주소서. 누가 내 영혼의 집을 깨끗이 청소해주겠습니까? 주님 외에 누가!”라고 기도한 성 어거스틴의 기도를 여러분의 기도로 삼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아름답고 복된 <가정의달>에 보혜사 성령으로 인해,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고, 굳세지며, 주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을 누리며 사는 믿음의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자녀와 부모가 같은 시간을 바라보며, 함께 깨고 함께 잠드는, 함께 꿈꾸고 함께 밖으로 나가 춤추는 믿음의 가정을 일구어 나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