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서의 동상이몽同床異夢”

<마가복음 9장30-37절>

1. 삼보일배, 오체투지, 그리고 기독교 순례의 길

여러분, ‘삼보일배’(三步一拜)라고 들어보셨지요? 삼보일배는 불교에서 ‘세 걸음을 걷고, 한번 큰절을 하는’ 일종의 수행법인데요, ‘1보에 자기 안에 있는 이기적인 탐욕을 멸하고, 2보에는 속세에 더럽혀진 타락한 마음을 멸하고, 3보에는 생명에 대한 무지를 멸한다.’ 하는 불교인들의 수행법입니다. 그리고 불교에는 ‘오체투지’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이마, 양쪽 팔꿈치, 그리고 양쪽 무릎’의 다섯 부분을 땅에 던지듯이 절을 한다 해서 ‘오체투지’(五體投地)라고 하는데요, 아마 여러분들 중에는 TV에서 이 모습을 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중세 유럽에서는요, 멀리 있는 성지를 찾아 여행하던 기독교 순례자들이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자신의 몸으로 재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순례자들은 다리를 쭉 뻗어서 땅에 엎드린 뒤에, 머리 끝을 기준으로 다시 거기서부터 또 엎드리면서, 마치 자신의 몸을 길이를 재는 ‘자’처럼 사용하면서 천천히 순례지를 향해 나아갔다고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했던 것은요, ‘순례길은 그 자체로 거룩하다’ 여겼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서 순례길을 걸으면, 그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안셀름 그륀 [길 위에서](분도출판사)>

사실 성경에서 ‘길을 떠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이주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도 한곳에 계속 머물지 않으셨고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여행을 다니시면서, 언제나 길 위에 있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서, 바울도 한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다시 떠나고, 또 복음을 전하고 다시 떠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인생이었습니다. 사실 무엇보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곳도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길이었으니, 과연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 것이 분명한 듯합니다.

2. 세 번의 수난 예고, 그 공통점-1 “길 위에서”

여러분,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는 자신이 수난당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미리 알려주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수난 예고’라 부릅니다. 첫 번째 수난 예고는 지난주일 성경 본문이었던 마가복음 8장 27절 이하에 나오고요, 오늘 본문인 9장에 두 번째 수난 예고가 나옵니다. 그리고 다음 장인 마가복음 10장 32절 이하에 세 번째 수난 예고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8장, 9장, 10장, 이렇게 세 개의 장에 연달아서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받으실 것과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예고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개의 수난 예고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봐서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이 세 개의 수난 예고들을 ‘길 위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路上豫告노상예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은 언제나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여행하는 분이셨는데요, 그런데 보통은 어느 지역에 ‘도착하신 뒤에’ 말씀을 가르치신다든지, 기적을 행하신다든지 합니다. 하지만 이 세 번의 수난 예고는 도시로 들어가는 ‘길 위에서’ 말씀하셨던 겁니다.

어떤 도시들이었을까요? 지도상으로 보면, 이스라엘의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이어지는 여정이었습니다. 첫 번째 수난 예고는 이스라엘 북쪽 끝에 위치한 ‘빌립보 가이사랴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0절에 보시면 ‘갈릴리’를 관통하던 ‘길 위에서’ 두 번째 수난 예고를 들려주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중간까지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수난 예고는 10장32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도시, 곧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길 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처럼 세 번의 수난 예고 직후에 곧바로 이어진 사건이 저 위대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었기 때문에, 베르너 켈버Werner Kelber라는 저명한 성서학 교수는 예수님이 수난을 예고하신 이 세 도시, 곧 ‘빌립보 가이사랴, 갈릴리, 예루살렘’을 일컬어서 ‘십자가로 향하는 정거장들’(Stations of the cross), 이렇게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Mark’s story of Jesus](Fortress Press)>

이것이 수난 예고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첫 번째 특징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께서는 ‘길 위에서’ 수난을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3. 세 번의 수난 예고, 그 공통점-2 “무지, 동상이몽”

수난 예고의 두 번째 공통점은 제자들이 이 수난 예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분 이것은 ‘수난’ 예고 아닙니까? 예수님이 이제 곧 죽임을 당할 것이라 장엄하게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들은 뒤에 세 번 다 예외 없이, 자기들의 영광과 안위와, 그리고 신분 상승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설교 제목처럼 예수님과 제자들은 같은 길을 걷고 있긴 했지만, 동상이몽同床異夢, 곧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말이 서로 다른 꿈이지, 완전히 상반되고, 상극이라 할 수 있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과 ‘동행’(同行)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동행하면서도 얼마든지 딴짓할 수 있고요, 얼마든지 예수님을 배신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야말로 두말할 필요없이 언제나 예수님과 동행했던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동행은 물론이고 늘 ‘동고동락’(同苦同樂)했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 번의 수난 예고를 해주시는 동안 제자들은 완벽한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던가요? 첫 번째 수난 예고 직후에, 제자들은 변화산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거기서 초막 셋을 짓고, 이 영광의 산에 눌러앉아 있자고 떼를 쓰는 모습, 기억하시지요? 그리고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세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셨을 때,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한테 오더니, 다짜고짜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들어달라” 하면서 나중에 주님이 영광스런 자리에 오르게 되면, 자기들을 좌편과 우편의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다른 제자들 몰래 은밀히 예수님께 청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두 번째 수난 예고를 들은 제자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바로 저 유명한, 저 악명높은 ‘누가 크냐 논쟁’을 벌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제 곧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바로 그 길에서, 같은 길에서 “니가 잘 났느니, 내가 잘 났느니” 하면서 서로 ‘첫째가 되려고’ 서열 싸움을 벌였다는 얘깁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깔아뭉개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있는 부모 앞에서, 자기 몫을 챙겨가려고 서로 멱살을 잡아가며 유산 다툼을 벌이는 비정한 자식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못난 제자들이어도 그렇지, 다른 때도 아니고, 이제 곧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시는 바로 그 때에, 바로 그 길에서, 어떻게 “누가 크냐” 이런 주제로 다툴 수 있단 말입니까. 제자들은 영적으로 심각한 병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4.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그래서 이 일을 예수님도 무겁게 받아들이셨던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셨겠지요. 아마 제자들의 못난 모습들을 다 받아 적으면 그야말로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하지 못할” 지경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 만큼은 아니다 싶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33절에 보시면,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의 어느 집에 들어가셔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길가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면서 침 튀기고 다툰 것이 그제서야 부끄러웠던 걸까요. 제자들은 입을 열지 못하고 침묵합니다.

그러자 35절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셨다.”고 합니다. 이 표현이 범상치가 않습니다. 뭔가 정말 중요한 가르침을 주시려는 것처럼, 동작이 매우 무거운 표현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이 구절에 있는 ‘불러서’(fwne,w)라는 말은, 성경 원어로 보면 다른 본문에서 ‘큰 소리로 부르짖다’는 뜻으로 종종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에 예수께서 화를 내셨다는 표현은 없지만, 예수님의 목소리는 분명 떨렸을 것이고요, 그 톤이 높아졌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군기를 바짝 잡는 모습입니다.

그런 목소리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두 불러 모으십니다. 잠깐 화장실에 간 베드로도 빨리 오라 하셨을 것이고요, 윗층에서 낮잠을 자거나 했던 다른 제자들 중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열.두.제.자’ 모두를 큰 소리로 다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입을 떼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주님은 이 말씀을 열두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 예배하는 우리 각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 말씀을 잘 새겨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첫째가 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첫째가 되려할 때 ‘그 방법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 그 길에서 ‘누가 크냐’ 논쟁을 벌였던 것은 저 세상이 부추기는 경쟁심과 이기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과 줄곧 동행해왔으면서도 그들의 시선과 마음은 주님에게 속해있지 않았고요, 저 세상 한가운데 여전히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쩌면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이 원하시는 으뜸이 되는 제자로 사는데 실패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라다니지만, 그 ‘따르는 방법’이 세상적이니 말입니다.

5. 끝이 되라! 섬기는 자가 되라!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입니다. ‘섬기는 자’는 성경원어로 ‘디아코노스’(dia,konoj)라고 하는데요, 우리 교회 ‘디아코 여선교회’ 이름이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섬기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냥 ‘섬기는 자’라고 하면 좀 막연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요 ‘섬기는 자’라고 하면 열이면 열 ‘식탁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종이나 노예’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주인이나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한 뒤에, 그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는 누가 누구를 ‘섬긴다’는 것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었고요, 미덕이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계급이나 신분이 낮기 때문에 상급자를 섬겨야 하는 일이었으니, 오히려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첫째가 되려거든, 바로 그런 ‘시종들이 하듯이 섬기라.’ 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나의 방법이다 하시는 겁니다. 이것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가복음 10장45절에서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심으로, 자기를 버리심으로’ 그리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저 위대한 영광과 승리를 온 인류에게 가져다 주신 것, 그것이 주님의 섬김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10절도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우리 자신을 높이려 하는 순간, 그래서 나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 남보다 나를 ‘높게’ 여기려 하는 순간, 우리는 결단코 예수님이 원하시는 ‘으뜸 제자’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6. 어린 아이를 영접함이 곧 나를 영접함이다

여러분,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예수께서는 문득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아주시며’, 제자들에게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께서는 ‘첫째가 되려거든 끝이 되고, 섬기는 자가 되라’는 비장한 말씀을 하신 뒤에, 왜 뜬금없이 주일학교 선생님이라도 되신 것처럼, 어린 아이를 데려다가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끝이 되는 것’, 그리고 ‘섬기는 것’과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요?

오늘날에는 ‘어린이는 미래의 주역’이라고 해서, 어린이에 대한 인식에 아주 높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저출산 국가에서 어린이는 너무나도 귀한 존재지요. 하지만 역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어린이의 신분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어린이들을 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유럽의 경우만 하더라도 겨우 2-3백 년 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어린이들의 신분은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고대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예수님 당시에 ‘어린이’는 그저 ‘힘과 권력이 없는 아주 미미한 존재’로 여겨졌다고 합니다.<데이비드 갈런드, [마가신학](부흥과개혁사)> 특별히 당시에는 갓난 아기들이 사람들이 다니는 길거리에 버려지는 일들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고아로 자라는 아이들도 상당히 많았던 것입니다.<피터 스턴스,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삼천리)>

여러분, 이런 눈으로 오늘 예수님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예수님은 무얼하고 계신 걸까요? 예수님이 보여주신 행동이 어떤 것이었습니까? ①“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②“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③“안으셨다.”는 것, 이것은 마치 어떤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신가요?

조엘 마커스Joel Markers라는 저명한 신학자는 이런 예수님의 행동, 곧 ①“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②“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③“안으셨다”는 것은 고대사회에서 오갈 데 없는 어린 아이를 ‘입양하는 의식’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마가복음Ⅱ](CLC)> 듣고 보니 저로서도 충분히 동의하게 됩니다. 아니 설사 이것이 입양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분명, 이처럼 세상의 미미한 존재들을 기꺼이 불러 모아서, 그들을 구석진 곳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로 오라 하시고, 안아주는 것이야말로 섬기는 자의 본이 될 것이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7. 길 위에서 길이 되신 분을 따라!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벌어진 동.상.이.몽.을 보았습니다. 그 길은 평범한 길이 아닌, 십자가의 고난을 예고하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로 향한 길 위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길을 고집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런 동상이몽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첫째가 되려거든 끝이 되어 섬기는 자가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힘없고 미미한 존재들을 우리 가운데로 초대해, 기꺼이 끌어안아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섬기는 자의 길이라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뒤로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 주님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십자가의 길을 홀로 걸으셨습니다. 어느 시인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창비)> 이렇게 노래한 것처럼, 우리 주님은, 사랑이 끝나버렸고, 저주와 멸시만 남은 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으신 분입니다. 사랑이 사라지자, 스스로 사랑이 되셨고, 섬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섬김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오라고 다시금 우리를 재촉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그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기에 우리는 다만 기도합니다.

“주님,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주님의 섬김을 배우게 하소서.”

“주님, 그 길 위에서, 우리로 낮아지게 하소서.”

“주님,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이전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이러한 기도를 가슴에 품고, 주님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바라보며, 또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결단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