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된 일과 길에서 된 일, 그리고”

(눅 24:13-35)

<2023년 4월 23일 설교 / 흰색>

●제목 “거기서 된 일과 길에서 된일, 그리고”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거기서 된 일과 길에서 된 일, 그리고”라고 정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미리 정독하셨거나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 제목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구절인 것을 알아차리셨을 텐데요, 본문 18절에서 제자 중 하나가 예수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하고 채근하는 말과, 마지막 구절인 35절에서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는 구절에서 하나씩 따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목에서 “그리고”라는 마지막 부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제자와 함께 집에 들어가셔서 떡을 떼심으로 만찬을 행하신 일을 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이처럼 크게 세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 곧 “거기서 된 일”입니다. 이것은 끔찍하고도 절망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경험한 두 제자는 “거기서 된 일”로부터 도망친 것입니다. 그리하여 엠마오를 향해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향하는 그들을 길에서 만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32절을 보시면 주님이 길에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이 그 길에 있을 때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건이 일어납니다. 본문 29절을 보면, 이처럼 자기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준 이에게 감사하고자 제자들은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고 권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응하셨고, 집에 들어가셔서 함께 음식을 나누셨는데, 바로 그때, 31절이 말하듯이,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세 가지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서 오늘 본문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삶에도 과거 회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거기서 된 일”이 있었다면, “길에서 주님을 만난 일”로 회복되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주님을 여러분 마음에 초대해 모시고,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심으로, 여러분 영혼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주님을 새롭게 알아보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격한 절망의 현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 두 사람은 엠마오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본문은 말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엠마오는 두 사람의 고향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이 처참하게 처형당한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무너지고 부서졌습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허망하게도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온 유대인들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칭송받던 예수께서는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무덤에 묻혔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인은 “절망의 빛깔은 아름답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아름답다. 이 목마름은 아름답다”<이태수 지음, 『먼불빛』 문학세계사>라고 애써 절망에 대해 노래했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사람은 시인의 말에 동의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절망은 이제 무엇을 더 어찌해볼 도리 없는 ‘죽음으로 가로막힌 절망’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두 제자는 이러한 절망의 현실을 감당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고향인 엠마오로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고 재건하려면, 심기일전하려면, 작은 불씨라도 남아있어야 했지만, 저들의 스승 예수는 그 마지막 호흡과 함께 십자가에서 완전히 소멸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때 활동했던 작가 중에 김정한(1908-1996)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는 당시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절망스러운 현실을 자신의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충격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문득 지난봄의 허 서방이 생각났다. 살길이 막혀서 동네 뒤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어, 시퍼런 혀를 한 자나 빼물고 늘어져 죽은 허 서방이 별안간 눈에 선하였다.”<김정한 지음, 『사하촌/모래톱 이야기/추신당과 곁사람들/수라도』, 창비> 작가 김정한 선생님은 소나무에 목매고 죽은 사람, 그리하여 시퍼런 혀를 길게 빼물고 늘어져 죽은 허 서방의 처참한 모습은 다름 아닌 조선의 현실이었음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은 두 제자의 심경을 반영합니다. 양손에 못 박힌 채로 온몸은 늘어지고, 뼈는 으스러졌으며, 살점은 찢겼습니다. 양팔을 벌린 채로 아래로 처진 주님의 몸은 폐를 압박해 숨 가쁘게 하더니, 결국 그러한 고통 속에서 예수님은 죽음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나무에 목을 맨 허 서방의 시신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끔찍한 기억으로 두 사람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떠난 ‘죄책감’도 밀려왔습니다. 죄책감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저들의 가슴을 찌르며 쑤셨습니다. 그러자 슬픔은 ‘무기력감’으로 변합니다. 이처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번져 나오는 혼탁하고도 어두운 감정을 우리는 ‘절망’이라는 말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습니다.

●서로의 비난으로 번진 “이 모든 된 일”

이런 절망에 사로잡혀서 두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서로 말하며 걸었습니다. 본문 14절이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그 일의 ‘시작’과 ‘과정’과 ‘끝’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제자는 기억을 되살리며 패배와 절망의 쓴잔을 다시금 나눠마시며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화는 점차 격해져만 갑니다. 이어지는 15절을 보면,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했다”(o`milei/n auvtou.j kai. suzhtei/n, They talked and discussed these things with each other)고 하는데, 여기서 ‘문의했다’는 말은 성경원어로 ‘변론하다, 논쟁하다’(suzhte,w)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사도들을) 죽이려고 힘썼다”(행 9:29)라고 말합니다. 말싸움하다가 죽이고 싶었다는 것 아닙니까? 아니 죽이고 싶을 만큼 말싸움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때 사용된 “변론했다”는 말이 오늘 본문의 “문의했다”는 단어와 같습니다. 처럼 두 제자는 신경을 곤두세워서 서로 공격적이고도 날카로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흥분한 상태로 엠마오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임마누엘로 오시다

바로 그 순간... 스승의 죽음으로 인한 공포와 절망이 서로를 향한 비난과 거친 논쟁으로 번지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셨다”(15)고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셔서 ‘함께 걸으셨다는 것’(sumporeu,omai)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 일’, 우리는 이것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두 글자로 “임재”(臨在), 네 글자로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은 거룩한 성탄에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을 때,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신 일”(요 20:19)도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가까이 이르러 동행하신 일”도 임마누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본문 16절이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두 제자는 부활의 임마누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동행하셔도 우리는 감사는커녕 알아채지도 못하고 불평과 탄식으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애매한 ‘슬픈 기색’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대화 속에 끼어드십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다”(They stood still, their faces downcast.)고 성경은 말합니다. 두 제자가 얼마나 슬펐는지 우리가 알지는 못하지만, 조금 전 살펴본 것처럼, 이들이 분출하고 있는 감정은 슬픔이라기보다는 분노였습니다. 분노가 짜증과 섞여 “거기서 된 일”로 인해 서로 갑론을박하면서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서 “너희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무엇 때문에 논쟁하고 있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슬픈 빛을 띠다”(skuqrwpo,j)는 말은 성경에 딱 두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마태복음 6장을 보면, 예수께서는 외식으로 금식하는 자들에게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Do not look somber).”(마 6:16)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슬픈 기색’이 오늘 본문의 ‘슬픈 빛을 띠는 일’이었습니다. 저들의 슬픔이 자연스레 얼굴에 드러난 것인지, 아니면 남에게 보이려고 과장해서 더 슬픈 표정을 지은 것인지, 그래서 분노를 슬픈 표정으로 포장하려 한 것인지,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뭔가 깔끔하지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8절 말씀을 보면 그들 중 하나가 말하기를,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습니까? 단순한 슬픔을 넘어선 분노와 짜증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길가는 낯선 이에게 자기들의 복잡한 감정으로 분풀이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과의 “길에서 된 일”

이후로 두 번째 사건, 곧 “길에서 된 일”이 전개됩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예수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19) 하고 물으시자, 제자들은 자기들이 겪은 “거기서 된 일”을 들려줍니다. 19절 이하를 보면, 그들은 “나사렛 예수의 일”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말하기를 그분은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였기에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로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어떤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목격한 것도 알고 있었고, 자기들도 그 얘기를 듣고 “놀랐다”고 말합니다. 제자 중 두어 사람이 그 사실을 확인했음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확인한 사실을 나열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Fact Check’라 부릅니다. 그들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마치 바둑기사가 첫 돌을 놓을 때부터 끝까지 정확히 복기하듯이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일로 인해 저들은 단지 얼굴에 슬픈 빛을 띠고, 무기력하며, 분노하면서 서로 남 탓하고 짜증만 내고 있던 것입니다. 예수께 일어난 일, 곧 “거기서 된 일”도 절망이었지만, 그 절망을 대하는 저들의 모습도 절망스럽기가 그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과거에 일어난 불행한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있거나, 과거의 일을 계속 들춰내며 상처를 악화시키는 일을 우리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뇌과학을 가르치는 한나 모니어(Hannah Monyer, 1957~)라는 교수는 말하기를, “우리가 길을 찾을 때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가는 방법을 기억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B 지점에 도착했을 때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들을 모아 기억하는 게 아니라 해석하는 능력이다.”라고 했습니다.<한나 모니어, 마르틴 게스만 지음,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문예출판사>

오늘 본문에 비추어볼 때 매우 정확한 지적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거기서 된 일”의 A부터 B까지 정확히 기억합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지 않고, 절망스럽고 불행한 기억에서 벗어날 새로운 해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누가 그 일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제자들의 말을 듣고 있던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25절에서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하시며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되었지만, 성경 원어를 보면 여기엔 감탄사 “오!”(+W)가 앞에 붙습니다. 즉 “오! 미련하고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 주님은 한탄하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나사렛 예수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만, 그들의 기억은 그저 과거에 찌들어 있음을 보신 것입니다.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은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모습도 절망이기만 합니다.

●“때가 저물고 날이 이미 기울었으니”

이에 대한 예수님의 처방은 무엇이었습니까? 27절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합니다. 곧 예수께서는 다시금 “성경”을 풀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과거 “거기서 된 일”은 같았지만, 이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을 주님이 들려주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32절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던”(32) 것입니다. 그들은 절망의 끝, 저 멀리서 빛이 비치고 있음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28절 이하를 보면, 예수께서는 말씀을 다 마치시고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오늘 본문에서 가장 감동적인 말로 예수님을 붙잡습니다. 곧 29절은 말합니다.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여기서 제자들이 “강권했다”(They urged him strongly)는 말은 성경원어로 “폭력을 사용하다, 강요하다”(arabia,zomai)는 뜻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우악스럽게 잡아끌 듯이 집 안으로 모시고 들어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때가 저물었고 날이 기울어져서, 이제 어디서 머물러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나그네를 집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그네를 집으로 초대하는 행위를 우리는 ‘환대’(Hospitality)라 부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은 “날이 저물었다”는 상황 판단을 이미 한번 내린 적이 있습니다. 언제였습니까?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였습니다. 누가복음 9장 12절은 “날이 저물어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날이 저물어가는 상황에서 예수께 가까이 다가가서는 “무리를 보내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말과 행위를 ‘적대’(Hostility)라고 말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환대의 반대말로 ‘박대’(Inhospitality)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음식으로는 저들을 다 책임질 수 없으니 어물쩍하지 말고 그들을 당장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다시 성경을 배우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날이 저물어가는 상황에서 나그네를 그냥 보내지 못합니다. 가만 내버려 두면 저절로 떠날 나그네를 환대하면서 집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성경을 배워 마음이 뜨거워진 그들의 변화가 환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손님이 되어 제자들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는 저물고 날이 이미 기울었을 때, 제자들은 주인이었고 예수님은 손님으로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손님을 초대한 주인은 발 씻을 물과 먹을 음식을 준비해서 나눠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0절을 보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다.”고 말입니다. 분명 집에 들어갈 때는 제자들이 주인이었고 예수님이 손님이었지만, 식탁에 앉자 주님이 주인 되시고, 제자들은 손님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잡히시던 날 밤, 때는 저물고 날이 어두울 때, 친히 자신의 살과 피로 제자들을 먹이시더니, 이제 엠마오 길에서, 때는 저물고 날이 어두울 때, 부활의 몸으로 다시금 제자들을 먹이시며 환대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제자들이 주님의 몸을 받아먹는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졌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30-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절망스러운 엠마오 길을 걸었던 예수님의 두 제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향 친구처럼 보이는 두 제자가 함께 걸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둘이 걷는 것이 절망을 배가시키는 것처럼, 저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변론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이처럼 때로는 우리의 삶도 외면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엠마오 길의 현실과 맞닥뜨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혼돈과 슬픔으로,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마음으로 가까이 지내는 그 누구도 위로가 되지 못하는 때는 저물고 날이 이미 어두운 영혼의 밤을 지나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때는 저물고 날이 이미 어두워서 세상의 그 누구도 위로가 되지 못할 때, 우리의 참된 친구가 되시며 참된 소망으로 위로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잡히시던 날 밤에도, 부활하신 뒤에도, 때는 저물고 날이 어두울 때마다 변함없이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먹이시는 사랑의 주님이요,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