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식탁, 용서의 기름”

(마 26:14-36)

<2023년 4월 2일 사순절 제6주, 종려주일, 고난주일, 무광화주일 설교 / 보라색>

●세일즈맨, 배신당하다.<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미국의 극작가인 아서 밀러(Arthur Miller, 1915-2005)가 1949년에 쓴 『세일즈맨의 죽음』<강유나 옮김, 민음사>이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작가 아서 밀러는 이 작품으로 저 유명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는데,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영화나 연극으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작가 아서 밀러는 이 작품보다 다른 것으로 더 유명한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의 남편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때는 성공한 세일즈맨으로 승승장구하던 ‘윌리’(Willy)라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그에 따라 사회 구조도 바뀌게 되면서 발품을 팔아 물건을 판매하는 ‘세일즈맨’이라는 직업이 점차 필요 없게 돼 버립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단란했던 가족마저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게다가 주인공 윌리는 정신적인 질병까지 얻게 되어서 그의 삶이 사면초가에 놓인 것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 주인공 윌리가 하워드(Howard)라는 새파랗게 젊은 사장에게 계속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워드는 냉정하게 난색을 지으면서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윌리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 회사에서 삼십사 년을 봉직했는데, 지금은 보험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오렌지 속만 까먹고 껍데기는 내다 버리실 참입니까?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윌리는 사장에게 몇 마디 더 하려 했지만, 사장은 그의 말을 끊고는 매정하게 자리를 피합니다.

이런 절망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주인공 윌리는 끝내 자동차 사고를 일으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가족들에게 보험금이라도 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자살을 하면 보험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윌리의 장례식은, “왜 아무도 안 오지?”라고 말하는 그의 아내의 말마따나, 가족 몇 사람만 참석한 채로 쓸쓸하게 치러지면서 작품이 끝납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윌리는 ‘회사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다음으로는 ‘자식에게도 배신’을 당합니다. 물론 작품 속에는 그가 ‘아내를 배신’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완벽한 배신자들의 세상에서 산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그가 보험금이라도 타겠다는 생각으로 자살을 계획하고 감행했지만, 결국 그것조차 잘못된 생각으로 드러났던 것처럼,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배신’을 당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배신자 압살롬과 배신자 유다

성경에는 ‘배신’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배신이라면, 사무엘하 15장 이하에 나오는 ‘압살롬의 반역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배신한 사건입니다. 결과적으로 배신자 압살롬은 창에 찔리고, 건장한 청년 열 명에게 맞아 죽게 됨으로 배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지만(삼하 18:14-15), 아버지 다윗은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삼하 18:33)하며 통곡하게 됩니다.

이처럼 배신은 치명적입니다. ‘배신한 자’에게도, 또한 ‘배신을 당한 자’에게도, 결과가 어떻든 치명적인 영혼의 손상을 입히기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6장에 나오는 이야기는 압살롬의 반역 이야기를 능가할 정도로, 성경에 나오는 배신 이야기 중에 단연 압권입니다. 한편으로는 성경에 나오는 슬픈 이야기 중에 가장 슬픈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감정을 말랑말랑하게 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여느 멜로드라마처럼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감정을 무겁게 눌러서 경직되게 만들고, 눈물을 얼어붙게 할 만큼 섬뜩하고도 차가운 슬픔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차라리 압살롬이 되어서 아버지를 배신할지언정,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조차 듭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다른 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디 배신할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을 배신한단 말입니까? 차라리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주님을 대놓고 거부하거나 멸시하면 했지, 어찌 인간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단 말입니까? 어찌 한없는 사랑만 주셨던 주님께 앞으로는 국화를 내밀면서 뒤로는 칼을 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두 제자들이 능수능란하게 해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가룟 유다’가 그 배신의 앞자리를 먼저 꿰차고 있어서 그렇지, 가룟 유다만 아니었으면, 나머지 열한 제자 중 누구라도 배신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배신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자신에게도 묻게 됩니다. ‘나는 얼마나 많이 주님을 배신해왔는가?’라고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러한 물음에 주님 앞에 정직하게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주님 앞에 참된 마음으로 겸손히 회개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배신의 음모가 진행되다

오늘 본문이 속해 있는 마태복음 26장의 전반부를 보시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했다”고 합니다. 다만 유월절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자칫 소동이 일어날까 싶어서, 저들은 은밀한 중에 예수를 포박하고자 궁리하고 있던 것입니다.(26:3-4) 그러므로 저들은 예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알아서 그를 비밀리에 넘겨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에 적임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사-복음서가 “예수를 판 자”(마 10:4;막 3:19;눅 6:16;요 13:2)라 공히 말하는 가룟 지방 출신 유다(Judas Iscariot)였던 것입니다.

한편 가룟 유다 또한 자신의 스승 예수에게 실망한 지 오래입니다. 자기가 꿈꾸던 이상을 대신 실현해 줄 사람이라 생각하고 따라다녔지만, 예수가 성에 안 찹니다. 사사건건 예수는 가룟 유다의 생각에 어긋났고, 유다의 생각을 꺾어 놓기만 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마리아가 예수님 머리에 향유를 부을 때,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게 낫지 않냐!”(요 12:4-5)고 역정을 부렸다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께 된통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 가룟 유다는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차에,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죽이려 한다는 첩보를 접한 것입니다.

이에 가룟 유다는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4절 이하에서 그들을 찾아가 말하기를 ‘내가 예수를 넘겨주면 얼마를 받을 수 있겠느냐?’하고 흥정합니다. ‘예수를 죽이려는 자’와 ‘예수를 팔려는 자’가 ‘필요-충분-조건’으로 만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래하기를 “은 삼십을 달아 주었다”(15절, oi` de. e;sthsan auvtw/| tria,konta avrgu,ria))고 성경은 말합니다. 대제사장들과 가룟 유다는 은 삼십으로 예수의 ‘몸값’을 매긴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결국 저들은 생각만으로도 불경스럽지만, 정육점에서 하는 방식으로, 예수님의 몸을 저울에 올려 단 것 아니겠습니까?

당시 은 삼십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한 달 품삯이며, 노예를 매매하는 가격이었으니, 저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치욕스러운 가격에 저울에 매달아 올린 것입니다.

●“나는 아니지요?”

이러한 음흉한 거래를 뒤로하고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17절에 보면 그때가 “무교절 첫날”이어서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을 구하고자 합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모두 출애굽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요. 곧 출애굽기 12장 1-27절이 말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지켜야 할 절기”(출 12:14)가 바로 “유월절”(Pascha, Passover)이고, 유월절 당일 이후로 7일 동안을 “무교절”(The feasts of Unloavened Bread)이라 부르며 지켰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유월절이 ‘추석’이라면, 무교절은 ‘추석 연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시대에는 굳이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사용하곤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에는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출애굽기는 말하기를, 첫째는 “흠 없는 어린 양”이요, 둘째는 “무교병”이며, 셋째는 “쓴 나물”(출 12:5, 8)을 먹으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명령에 따라 유월절 음식 규례를 중요하게 지켜왔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어찌했든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음식을 준비했을 것인데, 모르긴 몰라도 그들은 출애굽기의 명령에 따라 세 가지 음식을 구해왔어야 합니다. 만약 다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유월절 ‘양고기’만큼은 필수입니다. 설날 때 다른 음식은 못 먹어도 떡국 한 그릇은 비워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이어지는 본문 20절이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았다.” 하는 것처럼, 날이 저물어 가면서 명절 분위기는 점점 고조됩니다. 제자들은 다들 명절 분위기에 들떠서 시시덕거리며 박장대소하며 앉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갑자기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21절)고 말입니다. 예수께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의 반응을 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입니다.

말인즉슨 그곳에 앉아 있던 제자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주님,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25절을 보면 유다도 같은 말을 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합니다. 뭐가 다른가요?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불렀지만, 오직 유다만 “랍비”라고 부른 것입니다. 몇 시간 뒤에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로 넘길 때도 유다는 예수께 입을 맞추며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하고 부릅니다(49절). 생각해 보니 가룟 유다는 예수께 ‘주님’이라 부른 적이 없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다니긴 하되, 주님이라 부르며 따를 ‘의사’는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예수를 등에 업고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불순한 ‘의도’만 있었던 것입니다.

●배신의 식탁

그런 배신자를 내쫓지 않으시고, 여전히 자리에 앉히신 채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줍니다. 오늘 본문 26-28절까지의 내용은 우리가 성만찬을 거행할 때마다 늘 기억하며 되새기는 본문입니다. 곧 예수께서는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기를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26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께서는 “잔을 가지시고 감사기도를 하셨으며,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기를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7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들이 친구(‘하베림’)로 인정하는 사람들과만 밥을 먹었습니다. 에세네파도 마찬가지였습니다.<로이스 티어베르그, 앤 스팽글러 지음, 손현선 옮김, 『랍비 예수, 제자도를 말하다』, 국제제자훈련원> 그들의 식탁은 ‘배타적’이었던 것입니다. 따지고-가리고-구분해서 ‘구별된 식탁’을 마련하는 것이 저들의 전통이자 자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마련하신 이 식탁에는 지금 누가 앉아 있습니까? 성경이 “예수를 판자”라 했던 배신자 가룟 유다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팔아넘길 유다를 위해서조차 예수께서는 “이 떡은 너를 위해 내어주는 내 몸이니라. 이 잔은 너를 위해 흘리는 나의 피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식탁은 ‘포용적 식탁’이었던 것입니다.

나머지 열 한 제자는 어떠한가요? 오늘 본문 31절 이하가 또렷하게 암시하는 것처럼, 베드로를 위시한 나머지 제자들도 배신자의 반열에 성큼 올라탑니다. 열 명의 제자들은 예수의 수난 앞에 소리소문없이 바퀴벌레 흩어지듯이 도망칠 것이며, 미련이 남은 베드로마저 “나는 예수를 모른다”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먼저고 나중이었는지 차이만 있을 뿐, 열두 제자들은 본질상 같은 부류의 사람들, 곧 ‘배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배설하신 이 유월절 식탁은, 슬프게도, ‘배신의 식탁’이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 예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 저는 유월절에 먹어야 하는 세 가지 음식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중에 가장 필수적인 음식은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준비한 ‘양고기’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께서 마련하신 식탁에 양고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예수께 묻기를, ‘예수님, 떡과 포도주는 있는데 유월절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한다면, 예수께서는 무엇이라 대답하셨을까요?

그런데 지금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때로부터 2천 년 전, 같은 장소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물었습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Moriah Mountain)으로 올라갑니다. 모리아 산은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그때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에 아브라함은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7-8)

예수께서도 어린 양을 준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떡을 떼어 먹이시고, 포도주를 마시게 하시며, 마치 누군가 ‘예수님, 유월절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기라도 했던 것처럼, 주님은 친절하게 대답하시기를,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주는 내 몸이다. 이는 너희를 위해 흘린 내 피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곧 예수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어리석게도, 배신자들에게 내어주신 ‘유월절 어린 양’이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주님의 마지막 식탁에 대해서 독일의 신학자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1900-1979)는 “예수께서는 빵을 쪼개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참혹한 죽음을, 포도즙의 붉은 빛깔을 통해서 자신이 흘릴 피를 암시했다.”<요아킴 예레미아스 지음, 정충하 역음, 『신약신학』, CH북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저 배신자들을 유월절 어린 양의 살과 피로 배불리 먹이심으로, 슬프게도, 그들로 하여 배신할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을 찾아가 밀고할 힘을, 사력을 다해 도망칠 힘을, 그리고 “나는 예수를 모른다” 거세게 저항하며 부인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식탁은 분명 ‘배신의 식탁’이었던 것입니다.

●용서의 기름으로 기도하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을 보시면, 이러한 배신의 식탁을 뒤로하고 예수께서는 감람산에 위치한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신 예수께서는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마 26:36) 말씀하셨습니다.

“겟세마네”(Gethsemane)는 아람어로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을 의미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유일한 수출품이 올리브 기름이었고, 실제로 이곳에서 고대의 올리브 기름 틀이 발굴된 것을 미루어 생각해 본다면,<요아킴 예레미아스 지음, 한국신학연구소번역실 옮김,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 예수께서 겟세마네에 도착했을 때, 사방으로 올리브 향이 흐드러졌을 것입니다. 올리브 향이 가득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이렇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기를,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가히, 겟세마네, 곧 연자맷돌을 굴려 올리브 기름을 짜내듯이, 주님은 사력을 다해 사랑과 용서를 위해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배신자를 위해서 식탁을 차려 주셨고, 또한 사랑과 용서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 사력을 다해 기도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 설교 후에 우리도 성만찬에 참여하겠지만, 여러분은 이 식탁으로부터 어떤 힘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이 식탁으로부터 사랑과 용서의 힘을 얻고자 하십니까? 아니면 저 열두 제자들처럼, 오히려 배신의 힘을 얻고자 하십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성만찬에 참여하며 얻게 된 힘이 혹여, 사랑이 아니라 미움을, 용서가 아니라 보복을, 주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뜻을 앞세우는 그런 힘과 위세를 부리며 살아왔던 삶은 아닙니까? 이러한 물음 앞에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성만찬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이러한 물음 앞에 정직한 영혼으로 응답하며 회개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님이 차려 주신 성만찬에 참여함으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보여주신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겟세마네의 기도로 땀을 핏방울처럼 흘리셨으며, 십자가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주님의 제자로 새롭게 거듭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