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삶: 사랑과 신비의 갈릴리”

(마 28:1-10)

<2023년 4월 9일 부활주일 설교 / 흰색>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는 푸르기만 합니다.”

일본 나가사키의 해변에 있는 ‘소토메’라는 마을에 가면 어느 유명한 일본 작가의 묘비가 서 있습니다. 그 묘비는 ‘침묵의 비’라고 불리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는 푸르기만 합니다.”(人間がこんなに哀しいのに，主よ，海があまりに碧いのです。) 일본을 대표할만한 작가의 묘비라서 그런지, 짧은 문구지만 문학적으로 훌륭할 뿐 아니라, 삶에 대한 통찰 담은 기도문처럼 보입니다.

이 묘비는 『침묵』 그리고 『깊은강』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라는 일본의 저명한 기독교 작가의 묘비입니다. 그리고 그 묘비에 적힌 말은 그의 대표작 『침묵』<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홍성사>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엔도 슈사쿠는 성경의 깊은 진리를 감동적으로 전한 작가입니다. 그가 바라본 인간 세상은, 그의 묘비에 적힌 문구처럼 ‘슬픈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세계는 ‘푸르고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창조주 하나님의 세상은 아름답지만, 그런 세상에서 외골수로 자기 멋대로 사는 인간 세상은 죄악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는 한 고뇌에 찬 작가의 외침으로 들립니다.

●“수수께끼의 영역”으로서의 부활

엔도 슈사쿠는 예수 그리스도를 무척이나 사랑한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를 자신의 언어로 나타내고 싶어서 여러 작품을 쓰기도 했는데, 그가 독자로 생각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기독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거나, 혹은 기독교를 너무 가볍게만 생각하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진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문학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그를 ‘문학-선교사’라 부르곤 했습니다.

저는 오늘 부활절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의 작품 중에 『그리스도의 탄생』<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가톨릭출판사>이라는 책에서, 그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 말하는 구절들을 다시 찾아 읽었습니다.

“나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짧은 역사를 바라보며,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예수의 불가사의함과 불가사의한 예수의 존재와 직면한다. 왜 이런 무력했던 남자가 모든 사람에게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던 걸까? 개처럼 죽임을 당한 이 남자가 어떻게 신앙의 대상이 되어 사람들로 하여 삶의 방식을 변하게 했던 걸까? 예수의 불가사의는 아무리 합리적으로 해석하려고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신비다.”

곧 작가 엔도 슈사쿠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비’였습니다. 예수 부활의 신비는 한낱 “인간의 언어로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까닭에, 그는 다른 책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예수의 생애』, 가톨릭출판사>라 했고, 또 다른 책에서는 “가장 위대한 수수께끼”<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나의 예수』, ROMAN>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논리적으로 다가온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무엇’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곧 신비였습니다.

이로써 작가 엔도 슈사쿠는 홀연 예수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후로 사랑과 신비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삶을 살게 되었지만, 평생 글을 쓰는 작가로 살아왔음에도 글과 언어로는 예수의 부활을 도무지 설명할 수는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의 몸: ‘싸륵스’(sa,rx)? ‘쏘마’(sw/ma)?

이처럼 오늘 우리가 축하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논리나 합리성 따위가 아니라 ‘신비’의 영역입니다.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실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은 잘 모르는 것을 무턱대고 신비라는 이름으로 둘러대거나 포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른다’ 하고, 아는 것만 ‘안다’고 합니다(요 9:25). 심지어 예수님도 자신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3:32, 요 3:8, 고후 12:2).

사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앞다투어 이를 증언하고 있지만, 가만히 성경을 읽다 보면, 복음서 기자들도 부활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려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끙끙대는모습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분명 예수께서는 몸으로 다시 사셨지만, 주님은 마치 몸이 없는 것처럼 홀연히 나타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영혼으로 부활하신 것인가?’하고 물으면, 그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전 모습 그대로 밥을 드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영혼으로만 부활했다면, 밥을 먹었다는 기록은 부적절합니다. 당시 고대사회는 ‘유령은 신진대사를 할 수 없다’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몸에 난 찢긴 상처를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주셨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이 믿는 부활하신 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가 믿는 것은 사도 바울이 한 문장으로 정리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12)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전 15:15)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체가, 특별히 그 몸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우리 중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몸을 나타내는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싸륵스’(sa,rx)고, 다른 하나는 ‘쏘마’(sw/ma)입니다. 성경은 때때로 이 둘을 혼용해서 크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기도 하지만, 구분해야 할 때는 정확히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싸륵스’는 신체구조로서 육체적인 몸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말이고, ‘쏘마’는 ‘인격적인 몸’ ‘영적인 몸’을 의미합니다. ‘싸륵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림으로나 해부학 도면으로 정확히 그려낼 수 있지만, ‘쏘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인격을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말씀이 육신(몸)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o` lo,goj sa.rx evge,neto, 요 1:14)고 합니다. 여기서 ‘육신’이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육체적인 몸’, 즉 ‘싸륵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우리가 성만찬을 했지만,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행하실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tou/to, evstin to. sw/ma, mou), 마 26: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몸’은 방금 말씀드린 ‘싸륵스’가 아니라 ‘쏘마’입니다. 즉 예수께서 “내 몸을 받아먹으라” 하신 것은, 예수님의 육체를 뜯어 먹으라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과 영혼을 닮으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너희도 나와 같이 쏘마의 몸을 입으라’ ‘부활의 몸을 입으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주장과 알버트 슈바이처의 ‘신비’

과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께서는 ‘몸’으로 부활하신 게 아니라, 예수의 정신이 제자들에게 계승된 것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 앞에서 무서워 도망 다녔던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게 되어서 회심을 했고, 이에 예수께서는 몸이 아니라 정신으로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임했다는 그럴싸한 설명입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고 합리적입니다. 귀가 솔깃합니다. 배신자들이 다시 충성 서약을 통해 그들의 스승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번 양보해서 그게 사실이라면, 기독교는 그 시대에, 1세기에 끝났어야 합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에게나 ‘정신으로 부활한 예수’가 의미 있는 것이지, 생면부지인 사람들에게 갈릴리의 영웅담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전하는 말만 듣고,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고 말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전하는 말만 믿고, 그처럼 많은 순교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그리스도 예수께 바칠 이유가 있겠냐는 말입니까?

만나 본 적도 없는 이의 영웅담으로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하냔 말입니까? 그런 종교가 2천 년을 이어올 수 있냐는 말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나름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랍시고 성경을 그렇게 설명하지만, 이보다 더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주장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비판받는 주된 이유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성경을 분석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논리적이란 점에서 비판을 받습니다. 자기 논리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지 자가당착이란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입장에 반대하면서, 우리에게 ‘아프리카의 성자’로 널리 알려진 알버트 슈바이처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를 직접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는 정신의학을 연구한 의사요, 프랑스 파리의 [바흐 협회]를 설립하고 거기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한 음악가며, 임마누엘 칸트를 연구한 철학자요, 신약성경을 연구한 신학자였습니다. 단기간에 네 개의 분야에서 박사학위로 4관왕을 달성한 희대의 천재였습니다.

그는 1913년에 『예수의 생애 연구사』라는 책을 저술함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는 단순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설교가, 도덕적인 교사가 아닌 것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실로 감동적입니다. 그는 연구를 마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은 미지의 존재로(as One unknown)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분은 갈릴리 호수를 거니셨을 때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이 ‘나를 따라오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주십니다.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지혜롭거나 그렇지 않거나, 당신과의 교제 속에서 수고하고 갈등하며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분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서(as an ineffable mystery), 그들은 그분이 누군지(Who He is) 자신만의 경험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Schweitzer, Albert,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The Macmillan Company>

알버트 슈바이처는 이 연구를 마치자마자 자신이 누리고 있던 화려한 직책들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그의 나이 38세였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의료봉사를 위해 곧바로 아프리카 가봉의 람바레네(Lambarene, Gabon)라는 시골 마을로 떠났고, 거기서 90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결정에 대한 거창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는 분명 “형용할 수 없는 신비 속에서 나를 따라오라” 부르신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앞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이런 눈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죽으셨고, 본문 1절이 말하는 것처럼 이제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지진이 나고, 주님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는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굴리고 그 위에 앉은 것”(2절)입니다. 마태복음은 그 천사의 모습을 자세히 그림을 그리듯 알려주는데 곧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었다”(3절)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구약성경 다니엘서가 말하는 천사의 모습과 흡사합니다(단 10:6). 이러한 기괴하고 놀라운 갑작스러운 상황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성경은 말하기를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4절)고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했는데, 오히려 무덤을 지키는 사람들은 무서워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된 것 아닙니까. 우리말에 ‘혼이 날아갈 것 같다’는 뜻의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단어일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거기 있던 두 여인에게 하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곧 천사는 말하기를,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Mh. fobei/sqe u`mei/j, 5절)는 것입니다. 저놈들은 무서워 혼이 달아나 기절했지만, “너희만큼은”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에서 천사가 제일 먼저 등장했을 때는 언제입니까? 예수의 부친인 요셉에게 나타났을 때입니다. 천사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기를,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mh. fobhqh/|j, 마 1:20)고 했습니다. 두 본문에 나오는 천사의 말과 표현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천사가 제일 먼저 전한 말과, 제일 마지막 전한 말이 “무서워하지 말라” 였습니다.

●사랑과 신비의 갈릴리-1

요셉에게나 지금 두 여인에게나, 하늘의 신비가 땅에 펼쳐지는 일이란 얼마나 두렵고도 무서운 일이겠습니까? 이에 천사들은 여인들을 안심시키기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으니,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6절)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여인들은 천사들이 지시하는 대로 무덤에 들어가 보았더니, 무덤 안에 예수의 시신이 정말 없습니다.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정말 예수께서 살아나셨는가? 살아나셨다면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가?’하고 가쁜 호흡을 달래고 있을 때, 천사들은 다시 한번 여인들에게 지시합니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7절)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여인들은 다소 안심이 됩니다. 지금 자기들 앞에 있는 천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천사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예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는 말에 저들은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에 여인들의 심경이 변했고, 그들이 그 놀라운 소식을 전하러 가는 바로 그 길가에서 주님은 그들을 찾아오십니다. 8-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에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이, 우리의 삶이, 여러분의 삶이 이처럼 길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엎드린 여인들과 같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달려가는 여인들이 품었던 감정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무서움”이요, 둘째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천사를 만난 경험과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그 신비로운 광경을 목도하면서 여인들은 비록 천사가 “너희는 무서워 말라”고 했지만 이를 달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그들의 마음에 커다란 기쁨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 1869-1937)는 이러한 여인들의 경험을 “누미노제 종교 경험”(das Numinose)라 불렀습니다. 이는 ‘거룩한 존재 앞에서 피조물이 느끼는 감정’을 뜻합니다. 그들은 공포스러웠지만 신비로웠습니다. 공포스러웠지만 기뻤던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했던 그들은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참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루돌프 오토 지음, 길희성 옮김, 『성스러움의 의미』, 분도출판사> 이에 길가에서 예수를 만난 그들은 복받친 감정을 가눌 길 없어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던 것입니다.

●사랑과 신비의 갈릴리-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10절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친 제자들을 ‘원수’라 부르지 않으시고, “형제들”이라 따뜻하게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만나자” 하십니다. 갈릴리는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처음으로 만나 부른 곳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선뜻 따라나선 곳이 갈릴리였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도 신비였지만, 그 부르심에 따라나선 것도 신비라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를 따라나서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다만 부르신 이를 따라나선 길이기 때문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형용할 수 없는 신비”라 말했던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갈릴리의 신비로운 사건 말입니다.

앞서 엔도 슈사쿠도 말했지만, 예수님 당시 갈릴리는 서럽고도 슬픈 곳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외롭고 쓸쓸한 영혼들이 갈 길 몰라 방황하던 곳이 갈릴리였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는 푸르기만 했기에, 예수께서는 그 푸른 바다를 바라보시며, 제자들과 함께 용서와 사랑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신비와 사랑을 나누었던 곳이 갈릴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이 갈릴리로 가시며, 거기서 다시 만나자 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무너진 신앙의 담장을 세우고, 배신의 기억을 넘어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자고 부활하신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의 갈릴리로 가라’고 말입니다. ‘거기서 만나자’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랑과 신비로 부활의 삶을 일구어야 할, 우리 자신의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주님 앞에 불순종했던 우리의 ‘영혼’이 갈릴리입니다. 신앙의 뿌리가 연약하여 믿음이 계승되지 못하는 우리 ‘가정’이 갈릴리입니다. 갈등과 다툼으로 일그러진 ‘타인과의 관계’가 갈릴리이며, 주어진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우리 ‘교회’가 갈릴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의 삶에서, 신비와 사랑으로 너를 만나리라!’ ‘너의 집에서, 신비와 사랑으로 너를 만나리라!’ ‘너의 교회에서, 신비와 사랑으로 너를 만나리라!’ 이러한 말씀에 우리도 형용할 수 없는 신비 속에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부활의 삶을 정성스럽게 가꾸어 나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