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는 상처 만지셨네”

(요 9:1-11, 26-41)

<2023년 3월 19일 사순절 네째 주 설교 / 보라색>

●니고데모와 수가성 여인, 그리고 “날 때부터 눈먼 자”

이번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삶에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한 몇몇 인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물은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밤에 떠난 ‘니고데모’였고, 두 번째 인물은 지난주 요한복음 4장에서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던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라!’ 곧 ‘위로부터 태어나라’(3:3) 축복하셨고, 수가성 여인에게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축복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에 이 두 사람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와 도전이 됩니다.

사순절 넷째 주를 맞는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a man blind from birth)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떠서 앞을 볼 수 있게 되지만 그 뒤로 여러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곧 바리새인과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니고데모와 수가성 여인보다 더 생생하고도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육신의 눈도 떴지만, 영혼의 눈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아보고 그를 경배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도 영혼의 눈이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우리 내면의 상처까지도 어루만져 주시는 주의 은혜를 맛보는 이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인과응보 신앙 : ‘Biblical Karma’(by Mike Mason)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blind)을 보신지라(saw)”(9:1) 말하며 시작합니다. 본문 1절은 예수님을 ‘보는 사람’(The Seer)으로, 예수님이 만난 사람은 ‘볼 수 없는 사람’(A Man Who Can Not See)이라 말하면서, 시작부터 강렬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1절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볼 수 없는 사람입니까?’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 영혼의 어둠을 밝혀 주시고, 보이지 않는 상처를 만져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둔감한 채로 살고 있다면, 우리도 여전히 영적으로 눈이 캄캄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물음을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곧 제자들이 예수께 묻기를,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9:2)라고 합니다. 날 때부터 눈이 멀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 안타까운 사람을 앞에 두고서, 제자들은 뒷짐을 진 채로 무슨 물건 평가하듯 말합니다. 그 사람을 향한 제자들의 호기심이 참으로 불경스럽게 느껴집니다.

구약성경에도 고통에 처한 사람을 두고서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고 함부로 조언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입니다(욥 2:11). 그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고통당하는 친구 욥을 바라보면서 기막히게 평가하고 훈수를 둡니다. 그들은 욥에게 말하기를 ‘너의 고통은 너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유대적 해석’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과응보의 하나님’으로 가둔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런 해석은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그런 걸 가르치지 않고, 가르쳐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그런 가르침은 불교의 가르침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마이크 메이슨(Mike Mason, 1952-)이라는 미국의 저술가는 욥의 세 친구가 보여준 보습을 “성경적 업보(Biblical Karma)를 믿는 것”이라 꼬집어 말했던 것입니다<Mike Mason, The Gospel According to Job, Crossway Books>. 하나님을 불교식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과응보라는 시선으로, 그 안타까운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제자들의 입을 틀어막으시면서,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9:3)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두고, 누구 탓이라거나, 누구의 죄 때문이라 섣불리 말하지 말라고 못 박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비록 그가 눈이 멀었다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낼 하나님의 귀한 백성이라고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두고 읽어야겠습니까? 우리의 관심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눈먼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일을 나타낼 것인가, 아닌가?’에만 있을 뿐입니다. 더불어 우리 자신에게도 물어야 합니다. ‘내 삶은 과연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삶인가? 아닌가?’고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향해 ‘당신의 모습을 보니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군요!’ ‘당신의 모습을 보니 하나님은 정말 사랑이시군요!’라고 말하던가요?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당신이나 믿지 않는 나나,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라고 하던가요?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읽어가면서 이런 물음 앞에 회개하며 정직하게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세 가지 보냄을 받은 존재: 예수, 눈먼 자, 실로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면,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의 주인공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고쳐주십니다. 우리가 예전에 즐겨 부르던 ‘실로암’이라는 복음성가의 배경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 6-7절이 말하듯이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으시고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며 그를 ‘보내십니다’. 그러자 그는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위는 마치 창조주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는 장면을 자연스레 연상시켜 줍니다.

그런데 본문 7절을 보면, 연못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7절)이라고 살짝 귀띔해 줍니다. 굳이 우리에게 이 뜻을 알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라고 자주 말씀하십니다(5:24;36;37, 6:29;39;44;57, 7:16;28;33, 8:16;18;26). 곧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예수’께서 앞을 볼 수 없는 눈먼 사람을 ‘보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보냄을 받았습니까? ‘보냄을 받았다’ 하는 ‘실로암’으로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본문에는 세 가지 ‘보냄을 받은 존재’가 나옵니다. 첫째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둘째는 눈먼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보냄을 받다’는 뜻의 실로암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눈먼 사람의 눈을 고쳐주신 것은 단순한 ‘의료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보냄을 받으신 분이 보냄받을 자를 택하여 보내신 사건’, 그것은 주님의 ‘선교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눈을 뜸과 동시에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앞서 주님이 3절에서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9:3)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우리는 그가 눈을 뜬 뒤로 예수님에 대해 무엇이라 증언하고 있으며, 이로써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지를 주목해 봐야 합니다.

●눈뜬 사람의 세 가지 증언

그의 첫 번째 증언은 11절에 나옵니다. 날 때부터 앞 못 보던 사람이 두 눈을 뜨게 되자, 전부터 그를 알던 사람들의 눈이 더 크게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된 거요?”(10절)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라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에 대한 그의 첫 번째 증언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입니다. 아직 그는 예수님이 누군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저 신통방통하고 영험한 주술사처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로 치자면, 초신자가 된 것입니다. 아직 주님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무조건적인 주님의 은혜에 이끌려 교회에 나오게 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나섭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해준 일이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며 트집을 잡습니다. 그러면서 17절에서 바리새인들은 그에게 묻기를 “그 사람이 너의 눈을 뜨게 했으니, 너는 그를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느냐?”라고 합니다. 그러자 눈뜬 이는 대답합니다. “선지자니이다” 첫 번째 증언이었던 “예수라 하는 사람”이 이제 “선지자”라는 두 번째 증언으로 바뀝니다. 그의 고백과 증언이 많이 진보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이러한 증언을 묵살하면서, 그의 부모를 소환합니다. 그리고 그의 부모를 마치 죄인 심문하듯이 “네 아들이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된 것이냐?”(19절)고 다그칩니다. 저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정답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는 안식일을 범한 죄인이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대답을 누구에게라도 들을 때까지 저들은 눈뜬 사람과 관련된 그 누구라도 소환해서 닦달하고, 심문하고, 몰아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에게서도 끝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 눈뜬 사람을 다시 소환해서는 그를 회유하려 듭니다. 곧 24절에서 그들은 말하기를,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말인즉슨, ‘우리는 네가 눈 뜬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는 네가 눈 뜬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든지 말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가 죄를 지었다는 것만 불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만 하면 너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들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윽박지르면서, 이처럼 야비한 회유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눈뜬 사람은 그들의 야비한 회유 앞에 미동조차 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건드리면서 추궁하는 저들의 위협 앞에 주눅이 들 만도 한데, 그는 33절에서 절연히 대답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라고 말입니다. 이런 그의 대답을 듣고 있자니, 그의 육신의 눈만 뜨인 게 아니었나 봅니다. 그의 영혼의 눈이 점점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예수라 하는 사람”이라 했다가, 두 번째는 “선지자”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며 놀라운 증언을 담대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목자와 같은 자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세 번째 증언을 듣자 유대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속내를 내비치며 분노합니다. ‘이런 시건방진 놈 같으니! 한낱 맹인이었던 주제에 감히 누굴 가르치려 드느냐!’ 하고 윽박지르며 그를 내쫓아버렸다고 성경은 말합니다(34절).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은, 빈말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그 눈뜬 사람을 축하해 준 적이 없습니다. ‘이제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겠거니!’ 하며 꿈에 부풀었던 그를 축하 해주지는 못할망정, 저들은 그를 불렀다가 보냈다가, 다시 불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끝내 그를 모욕하며 내쫓아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인간은 이처럼 악합니다. 저들의 인간성이 차갑다 못해, 차마 섬뜩합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최소한의 ‘측은지심’이라든가, ‘인지상정’도 없이, 저들은 경사스러운 하나님 은혜의 시간에 찬물을 끼얹으며, 기필코 훼방 놓을 구실을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저들 눈앞에 나타난 하나님 은혜의 사건이, 설사 이해가 안 되고, 낯설고 불편하고, 자기들 눈에 차지 않는다해도, 이렇게까지 훼방 놓을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들은 28절에서 눈뜬 사람에게 욕설을 하지 않나, 급기야 “어디 감히 너 따위가 우리를 가르치려 드느냐!”면서 그를 공동체에서 쫓아낸 것입니다. 성경 원어로 보면 여기서 ‘쫓아내다’(evxe,balon auvto.n e;xw))는 말은 ‘문밖으로 내던지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황당한 일입니까?

그들은 흡사 에스겔이 경고하는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다스렸던 거짓 목자”와 같았던 것입니다(겔 34:4).

●볼 수 없는 영혼의 상처

이런 일을 당한 그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평생 앞 못 보고 살다가 기적처럼 눈을 뜬 기쁨도 잠시, ‘눈을 떴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추궁을 당했습니다. 부모까지도 불려가야 했습니다. 저들이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대 공동체 울타리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눈이 멀었을 때는 ‘죄 때문에 눈이 멀었다.’며 손가락질하더니, 이제 눈을 뜨자 ‘죄인을 비호한다.’는 이유로 쫓겨난 것입니다. 그는 눈을 떴지만, 삶의 근거를 잃어버렸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유대 공동체에서 쫓겨난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없으며, 버림받은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쯤 되면 그의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고, 갈기갈기 찢겼을 것입니다. 그의 머리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날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예수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차라리 눈을 고치지 말았어야 했어!’ ‘눈을 떴어도 안 뜬 척 조용히 살 걸 그랬어.’ ‘예수는 안식일을 범한 죄인이라고 냉큼 대답할 걸 그랬어!’

이처럼 눈은 떴지만, 그가 보는 세상은 지옥입니다. 앞 못 보던 육신의 질병은 예수께로부터 기적적으로 치유받았지만, 이제 영혼 깊숙한 곳, 보이지 않는 상처는 더욱 곪아갑니다. 그리하여 그는 쫓겨난 저 울타리 밖 어딘가에서, 마치 길 잃은 한 마리 양처럼 서럽게 울고만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누가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인자”이신 예수

바로 그때, 오늘 본문 35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가 마을로부터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으십니다. 그러자 이내 득달같이 그를 찾아가십니다. 우리말 성경은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35절)라고 건조하게 번역하지만, 원문대로라면 “그를 찾아내 이르시되”(when he found him, he said, eu`rw.n auvto.n ei=pen)라고 해야 옳습니다. 예수께서는 거짓 목자에게 쫓겨난 그 양을 찾아 헤매는 선한 목자셨던 것입니다. 마을 밖 어딘가에서 홀로 울고 있을 그를 무작정 찾아 나선 것입니다. 선한 목자가 어린 양을 찾아 나선 동력은 오직 하나, “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요 10:11). 주님은 그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드디어 그를 찾으셨습니다. 저 그늘진 구석에 앉아서 죽어가는 풀꽃처럼 시름시름 앓고 있던 잃어버린 양을 찾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에게 의문스러운 물음을 던지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36절, Do you believe in the Son of Man?)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그는, 그리하여 회당의 문턱을 넘어본 적 없던 그가 ‘인자’에 대해서 들었을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를 찾아와 묻는 예수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36절)라고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나는 인자가 누군지, 그런 어려운 것은 모릅니다. 다만 당신은 내 눈을 뜨게 해주셨고,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오신 당신이 내게 말씀하시는 거라면, 내가 무엇인들 믿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은 에스겔서 34장에 나오는 ‘거짓 목자’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를 보면, 그러한 거짓 목자에게 경고하고, 그들을 심판하는 존재가 나옵니다. 그가 바로 “인자”입니다(겔 34:1-5). 에스겔서가 말하는 “인자”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지만 “인자”는 심판하시는 주님이십니다.<“Judgment was essentially the business of the Son of Man.” Ashton, John, The Gospel of John and Christian Origins, Fortrerss Press>

그리하여 에스겔서 12장 2절은 말하기를,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에서 인자이신 주님은 바로 이 심판의 말씀을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던지신 것입니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9:39)라고 말입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눈을 뜨게 해주셨고, 그를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은 눈뜬 사람을 희롱하고 핍박하면서 급기야 그를 울타리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이러한 방해 속에서도 예수님을 향한 그의 증언은 점점 밝아지고 타올랐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울타리 밖으로 쫓겨난 자리, 그 외롭고 쓸쓸한 곳에서, 그는 자신을 찾아오셔서, 보이는 상처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상처도 어루만져 주시는 ‘인자’를 만난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전에 말한 증언을 넘어서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38절은 그것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Lord, I believe,” and he worshiped him. Pisteu,w( ku,rie\ kai. proseku,nhsen auvtw/|)) 아멘.

여기서 ‘절을 했다’는 말은 ‘개가 주인의 손을 핥는 행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예배하다’는 뜻으로 줄곧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 눈뜬 자의 증언과 고백은 이처럼 겸손한 ‘예배의 행위’로 완성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주인공이 보여준 신앙을 여러분의 신앙으로 삼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지치고 외로워서, 마치 시들어가는 들꽃처럼 주저앉아 울고 있을지라도, 주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내시는 주님인 것을 언제라도 잊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며, 겸손히 주를 예배하는 가운데, 우리의 볼 수 없는 상처를 만지시고 치유하시는 놀라운 주의 은혜가 여러분과 언제나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