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주시나이까? 무엇으로 알리이까?”

(창 15:1-21)

<2024년 4월 21일 부활절 제4주 장애인주일 설교 / 흰색>

●꺼지지 않는 불

지난 2020년 1월에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에서 ‘꺼지지 않는 불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가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나라는 1991년에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인구 천만 명 정도의 작은 나라인데, 이 나라에 가면 ‘불타는 산’이라는 뜻의 ‘야나르 다그’(Yanar Dag)라는 산이 있다고 합니다. 땅속에서 나오는 천연가스가 산소를 만나서 자연스럽게 불꽃이 솟는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지난 4천 년 동안 불꽃이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꽃은 ‘평온한 기분’을 가져다주는 존재였습니다. 캠핑가서 ‘탁~탁~’하고 타들어 가는 장작불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어도 왠지 정서적으로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래서 요즘에는 ‘불을 보며 멍때린다’는 뜻으로 ‘불멍’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헤라클레이토스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자유롭게 변하며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만물의 근원은 불’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불꽃’은 단순히 편안함을 주는 것을 넘어서 신비롭고 경이로운 존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불꽃이 어떤 존재입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불꽃으로 현현하십니다. 대표적으로는 출애굽기 3장의 “떨기나무 불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떨기나무 불꽃은 단순히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성스럽고도 신비로운 현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5장에서도 하나님은 “타는 횃불”(Blazing Torch)로 나타나십니다. 성서 학자들은 오늘 본문 창세기 15장을 “아브라함 언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는 본문”이라고 하는데,<마이클 호튼 지음, 백금산 옮김, 『언약신학』 부흥과개혁사> 만일 누군가 저에게 창세기 15장의 중요성에 대해서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15장 이전과 이후로 갈립니다.” 그만큼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이 창세기 15장에 나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두 가지를 묻고 있는데, 첫 번째는 2절이 말하는 것처럼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라는 물음이었고, 두 번째는 8절에 나오는 “무엇으로 알리이까?”라는 물음입니다. 저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물음에서 “무엇을 주시나이까? 무엇으로 알리이까?”라는 설교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 이러한 아브라함의 물음을 여러분 삶의 물음으로 삼아서, 신실한 언약 백성이 되고자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14장 요약

두 주 전, 우리는 창세기 14장 말씀으로 사해(염해) 지역 다섯 개 연합군과 메소포타미아 지역 네 개 연합군 사이에 일어난 전쟁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전쟁 이야기였는데, 소돔과 고모라를 중심으로 한 사해 지역 연합군은 싯딤 골짜기에서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에게 패했고,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겼고, 왕들은 혼비백산으로 달아났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조카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 “히브리 사람 아브람”은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318명”을 거느리고서, 그돌라오멜 왕을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을 지체없이 추격합니다. 그 결과에 대해 성경은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창 14:15-16)고 말합니다. ‘쳐부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카’(hk'n")라고 해서, ‘도륙하다, 뿌리째 뽑다, 때려 죽이다’(make slaughter, slay, smite)는 무지막지한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적은 숫자였지만, 칠흑 같은 야음을 틈타서 적들을 완벽하게 소탕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아브라함의 마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라함은 어떤 심정으로 돌아오고 있었을까요? 그는 승리감에 도취해서 의기양양했을까요? 창세기 14장 후반부에 보면,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자, 전쟁에서 패배하고 멀리 도망쳤던 소돔 왕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데 빼꼼히 얼굴을 내밀면서 그를 영접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람에게 한다는 소리가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14:21)고 합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아브라함 덕분에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게 된 소돔 왕이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오히려 아브라함 눈치를 봐도 모자랄 판에, 그는 알량한 왕으로서의 허세를 부리며 마치 호의를 베풀 듯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당찮은 소돔 왕의 말이 불편했는지 아브람도 날을 세우며 대답합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I made Abram rich)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14:23) 무슨 뜻입니까? 소돔 왕 당신이 주는 것을 받았다가는 어디 가서 ‘아브라함은 내 덕에 부자가 되었다!’ 하는 허튼소리를 하고 다닐 게 뻔하니, 당신이 주는 상급을 일절 받지 않겠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나그네 아브라함

인류 역사 이래로 오늘날까지 전쟁은 끝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지구촌 곳곳은 온통 전쟁 소식입니다. 2022년 전면전으로 번진 뒤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있습니다. 작년 10월에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은 지난주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는 저마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빼앗으려 하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전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전쟁은 여느 일반적인 전쟁과는 달랐습니다. 영토를 차지할 목적은커녕 재물을 탐하는 전쟁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피치 못할 전쟁을 치러야 했던 것입니다.

하란 땅을 떠난 아브라함의 인생은 무엇입니까? 그는 무엇을 목적으로 살았습니까? 아브라함은 땅도 없고 민족을 이루지 못했지만, 오직 하나님이 주신 ‘언약’(The Covenant) 하나만을 가슴에 품었던 ‘나그네’(Wanderer)였습니다. 이제나저제나 언약이 성취될 날만을 기다리던 삶이었기에, 전쟁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설사 전쟁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두고 조카를 구출해 기뻤다 해도, 아브라함이 그 일로 인해 승리감에 도취할 리 없습니다. 오히려 피붙이라고 하나 남은 조카 녀석은 여전히 제 앞가림조차 못하는 꼴을 보니 가슴이 저밉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자신의 손에 사람 피를 흥건히 묻혔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고자 이를 악물고 나그네의 설움을 참고 살아온 그의 손에 사람의 피를 묻혔으니 왠지 모를 불안과 초조함에 휩싸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소돔 왕은 마치 상전이라도 된 것처럼 ‘상급을 주네-마네’ 하며 허튼소리나 늘어놓고 있으니 아브라함의 심경은 복잡하다 못해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 위로의 말씀

오늘 본문 창세기 15장을 보면,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겸손히 듣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2절에서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그리고 8절에서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묻습니다. 그 물음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데,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몇 가지 중요한 주제를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본문 1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임하는 장면을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였다”고 묘사합니다. 이런 표현은 창세기에서 처음 나오는 표현인데, 훗날 하나님이 예언자에게 나타나실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 예언은 가장 위대한 예언, 곧 ‘예언 중의 예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훗날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요엘을 비롯한 모든 예언자가 받은 예언의 말씀은 사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예언의 말씀을 상기시키는 예언이며, 해석하는 예언에 불과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불안한 아브라함을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 “알-티라 아브람!”(~r'b.a; ar'yTi-la;)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브람’ 대신 우리 각자의 이름을 넣어서 한번 고백하겠습니다. ‘알-티라 임태일!’

아브라함에게 주신 ‘두려워 말라’는 위로는 구약성경 전반에 흐르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21장에서, 하나님은 하갈에게 나타나셔서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창 21:17)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브엘세바에 올라갔을 때 그에게도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창 2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로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모세와(민 21:34) 여호수아에게(수 1:1-7), 그리고 이사야를 향한 저 유명한 말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는 말씀을 비롯해서 예레미야에게(렘 1:2-9)도 같은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모든 말씀의 원조는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위로하신 하나님은 이어서 “내가 너의 방패요 내가 너의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의 ‘방패요 상급이 되신다’ 말씀하실까요? ‘방패’(‘마겐’, !gEm')는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전쟁에 나간 병사가 적의 칼과 창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상급’(‘사카르’, rk'f')이란 말은 “군사적 성과에 따른 보상”을 뜻합니다.<마이클 호튼 지음, 『언약신학』>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아브라함과 318명이 그돌라오멜 왕을 위시로 한 메소포타미아 연합군과 전쟁을 치를 때, 이 말도 안 되는 전쟁 속에서 적들의 칼과 창으로부터 아브라함을 막아주고 지켜주신 분은 누구십니까? ‘방패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소돔 왕이 주는 상급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너의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분명해집니다. 아브라함이 318명과 싸워 이긴 전쟁은 아브라함의 전쟁이 아니요, ‘하나님의 전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의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전쟁에 아브라함이 사용된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시시고, 하나님만이 상급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네 몸에서 상속자가 날 것이라

셋째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상속자가 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언약의 약속을 받았지만, 오늘 본문 2절을 보니 어느샌가 그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란 사람을 자신의 상속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집에서 길린 사람”(3절)입니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그는 아브라함과 함께 전쟁에 나간 318명 중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을 법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용맹하게 싸운 엘리에셀을 생각하니, 아브라함은 ‘이 사람이면 되겠다!’ 하면서 자기 경험에 비추어 스스로 결정해 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창세기 24장을 보면 엘리에셀은 훗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신부를 구하러 메소포타미아의 나홀 성까지 다녀왔던 충직한 종이기도 했습니다.(창 24:10) 용맹할 뿐 아니라 의리도 있고 성품도 온화한 그는 모든 면에서 상속자가 되기에 충분하다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언약을 주시는 분(The Giver)은 하나님이시며, 아브라함은 언약의 수혜자(A beneficiary)일 뿐인 것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아브라함-맘대로-상속’, ‘아브라함-맘대로-언약’을 ‘하나님-맘대로-상속’, ‘하나님-맘대로-언약’으로 되돌려 놓으십니다. 이어지는 5절을 보면 하나님의 역동적인 모습을 살짝 엿보게 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끌어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며, 아브라함은 ‘이끌려 나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끌어 밖으로 데려가신 하나님’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창세기 6장의 노아에 이어서 성경에서 두 번째로 ‘의롭다’ 여김을 받습니다.(6절) 하지만 아브라함은 더욱 궁금합니다. 그는 ‘의심할 수 없는 언약’(Doubtless Covenant)을 받았지만, ‘결정적인 확증’(Conclusive Evidence)이 필요합니다. 한 마디로 ‘약속은 믿겠는데, 언제 들어줄 것인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브라함은 뜻하지 않은 전쟁에 참가하여 그의 손에 생전 처음으로 사람의 피를 묻혔으니, 께름칙하기 그지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두 번째로 묻습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말입니다.

●횃불 언약을 맺어주시다.

오늘 본문에서 살펴볼 마지막 넷째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횃불 언약’을 맺어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묻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즉시 대답하십니다. 말씀하시기를,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 그리고 삼 년 된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라 하십니다.(9절) 이제 아브라함은 다시 손에 피를 묻혀야 합니다. 이제는 사람의 피가 아니라 제물을 위한 피를 묻히게 됩니다. 10절은 말하기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았다(새는 쪼개지 아니하였다)”(10절)고 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이런 모양이 됩니다. 여러 짐승을 잡아서 쪼개고는 그것을 서로 마주 대하게 합니다. 다소 낯설고 이상한 모습처럼 보이시겠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또는 부족과 부족 사이에 조약을 맺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조약을 맺는 당사자들은 동물을 도살해서 양쪽으로 놓은 뒤에, 피가 흐르는 사잇길을 따라 걷습니다. 조약을 맺는 당사자들이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조약이 성사되는데, 만약 조약을 어길 경우, 그들도 역시 도살당한 짐승처럼 쪼개질 것이라는 뜻입니다.<빅터 해밀턴 지음, 임요한 옮김, 『창세기Ⅰ』 부흥과개혁사>

이렇게 짐승을 쪼개어 마주 보게 한 뒤에 시간이 지나 밤이 됩니다. 13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약속해주십니다. 내용을 간단히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네 자손은 이방에서 객이 될 것이다.

둘째, 이방인들이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다.

셋째, 그러나 내가 징벌할 것이다.

넷째, 너 아브람은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다섯째,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18절 이하를 보면 마지막 여섯째로, 하나님은 여러 강이 흐르고 여러 족속이 사는 땅, 곧 가나안 땅을 네 자손에게 줄 것이라고 언약하십니다.

실로 놀라운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아브람 이후로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을 지나 출애굽 사건까지 언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뒤에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이러한 언약을 위해 본문 17절은 뭐라고 말하는지 함께 읽겠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창 15:17) 앞서 말씀드린 조약 행위를 하나님이 몸소 행하십니다. 화로에서 피어나는 연기 중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면서, 하나님을 상징하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슈슈슉~ 부부북~’ 하고 지납니다. 이런 이유로 이 언약을 “횃불 언약”(The Covenant of the Torch)라고 부르고, 짐승을 쪼개서 피를 내고, 그 사이로 흐르는 피를 밝고 걷는 언약이라는 의미로 “피의 언약”(The Blood Covenant)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잇길을 사람이 걸을 때 아마도 이런 그림처럼 될 것입니다. 조약을 맺기 위해 쪼갠 짐승 사이를 걷는 사람은 피로 발과 옷이 흥건해집니다. 걸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내가 조약을 어기면, 나도 이 짐승들처럼 되리라!”(May I become like these animals if I do not fulfill this oath!)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계약을 맺을 때는 조약을 맺는 쌍방이 지나가야 조약이 성사됩니다. 기본적으로 조약은 “쌍방계약”(Two-way Contract)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이 준엄한 언약 체결에 있어 오직 하나님만 지나십니다. 아브람은 지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쌍방계약’이 아니라 “일방언약”(One-way Covenant)입니다. 이 길을 지날 때 뭐라고 말했던가요? “만약 내가 조약을 어기면, 나도 이 짐승들처럼 되리라.” 횃불로 지나시는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겁니다. 아브람에게는 지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지났다가는 영원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주시나이까?무엇으로 알리이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 언약(The Abrahamic Covenant)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본문인 창세기 15장을 나누었습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를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은 언약을 받았으나, 언약을 기다리며 점점 지쳐가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라!”는 위로의 말씀을 주시며 흔들리는 아브라함을 붙잡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따라 ‘다메섹 출신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 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맘대로-계약’을 ‘하나님-맘대로-언약’으로 수정하셨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고자 하면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의 무게로 인해 우리는 지치고 힘겨워합니다. 순간순간 ‘내-맘대로-계약’을 고집하려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그런 아브라함을 ‘이끌어 밖으로 나가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을 잊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의 첫 번째 물음 “무엇을 주시나이까?” 하고 묻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늘의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놀라운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아브라함이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두 번째로 물었을 때, 하나님은 쪼갠 고기 사이를 횃불로 지나시는 ‘횃불 언약’을 보여주셨습니다. 횃불언약은 ‘쌍방 간의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었고 동시에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말씀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인간을 위해 스스로 쪼갠 고기가 되어 피를 흘리셨고, 핏물 흐르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오히려 세상을 환하게 밝힐 횃불로 부활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시편 105이 “하나님은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시 105:8-9)이라 말하는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맺어주신 ‘피의 언약’, ‘횃불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성취되었음을 굳게 믿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아는 이해인 시인은 ‘주님이 자기 영혼에 불을 놓아 꽃으로 피어나게 하셨다’고 노래한 바 있습니다.<이해인 지음, 『내 혼에 불을 놓아』 분도출판사> 횃불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러분 마음의 제단에 불을 붙여주셔서, 그 불이 꽃이 되어 ‘불꽃’ 같은 삶으로 세상을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