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된 언약 백성을 도우시는 하나님”

(창 14:8-20a)

<2024년 4월 7일 부활절 제2주 무궁화주일 설교 / 흰색>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그리고 나그네

미국의 잭 케루악(Jean-Louis Kerouac, 1922-1969)이라는 작가가 1957년에 출간한 『길 위에서』(On the Road)<이만식 옮김, 민음사>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샐과 딘’이라는 젊은 두 주인공이 미국 동부 뉴욕에서 출발해서 서부로, 그리고 다시 서부에서 출발해서 동부로 돌아오는 방랑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로 인해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전설이 되었고, 많은 젊은이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 당시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은 이 책의 주인공처럼 배낭 하나 둘러메고 무작정 방랑의 길을 떠나곤 했습니다. 고리타분한 ‘기지 바지’ 대신에 ‘리바이스 청바지’가 날개 돋친 듯 팔린 것도 사실 이 소설 때문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소설이 말하는 인생이란 ‘무작정 떠나는 방랑’을 의미합니다. 인생은 ‘나그네로 사는 것’이며, 그때그때 상황이 주어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도 인생은 나그네와 같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는 말하기를 “여러분은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사람들”(벧전 2:11)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나그네로서의 인생은 앞서 소개한 소설이 말하는 ‘방황하는 인생, 방랑하는 인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잠시 방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지, 늘 그렇게 사는 것을 참된 인생이라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빌 3:20)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땅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과 목적을 두고 사는 나그네, 그런 의미의 나그네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나그네 중의 나그네’, ‘나그네의 원조’로 살았던 인물을 하나 꼽는다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창세기 12장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나그네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너는 복이 될지니라”(창 12:1-2)는 위대한 언약의 말씀을 받고, 그는 하나님 백성이 되었고, 곧바로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떠난 나그네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떠난 ‘언약의 나그네’라 말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그네 된 언약 백성을 도우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비록 우리가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살더라도,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가슴 깊이 만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에 따라 훈련받는 나그네 아브라함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았던 나그네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완벽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나그네로서 그의 행보는 좌충우돌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곧바로 하나님이 지시한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을 쌓아 예배할 만큼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창 12:7-8) 시작은 좋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12장 9절을 보면, 그런 삶도 잠시, 아브라함은 그 땅이 기근으로 인해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점점 남방(Negev)으로 옮겨”(12:9)갑니다. 남방으로 내려간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기근을 피해 살길을 찾아 풍요와 안정의 땅을 찾아 떠났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어디가 나옵니까? 당대 풍요의 땅으로 유명한 이집트입니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이집트는 일찌감치 나일강 주변으로 최고의 문명국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풍요와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미국으로 건너간 것처럼, 주변 다른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은 기를 쓰고 이집트에 가서 살고자 했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건들이 종종 나옵니다. 창세기 42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요셉의 형들은 애굽으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창 42:3) 그곳에서 이집트 총리가 된 동생 요셉을 만난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도 헤롯 대왕의 유아 학살을 피해서 천사의 지시에 따라 잠시 이집트로 내려가 산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집트는 ‘풍요와 기회의 땅’, ‘안전한 땅’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실수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집트에 내려간 아브라함은 나약하고 야비한 인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라 속이고 아내를 바로에게 넘깁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창 12:12-13) 이 얼마나 형편없고 치졸한 남편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아브라함이 단지 남편으로서 무책임했다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야곱의 형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먹은 것은, 에서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장자의 복을 팥죽만도 못하게 여긴 한심한 인간’인 것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아내 사래를 바로에게 넘겨주는 일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 12:2)는 하나님의 언약을 내팽개치는 행위가 됩니다. 언약을 저버리는 순간, 아브라함은 더는 언약 백성이 아닙니다. 언약이 없다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나와 다시 가나안 땅을 향해 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헤어지게 되는데, 지난주 살펴본 것처럼 성경은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13:11-13)라고 말하면서, 롯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택한 것을 고발합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라고 말함으로써, 아브라함은 다시 언약 백성의 길로 돌아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을 택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사해 다섯 나라 연합군 vs 메소포타미아 네 나라 연합군

오늘 본문은 이러한 배경 이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본문을 읽을 때 느끼셨겠지만, 아주 낯선 지명들과 인명들이 많아서 다소 헷갈리기도 합니다만, 의외로 내용은 간단합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힘이 약한 다섯 개 나라 연합군’이 ‘힘이 센 네 개 나라 연합군’과 전쟁을 벌인 사건입니다. 즉 오늘 본문은 ‘성경 최초의 연합 전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창세기 14장 4절을 보면, “이들(다섯 개 나라)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 년에 배반한지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섯 개의 나라들은 12년 동안 엘람 지역의 그돌라오멜 왕에게 조공을 바치다가, 13년째가 되던 해에 ‘더는 조공을 바치지 않겠다!’ 하면서 조공을 거부한 것입니다.

본문 8절과 9절을 보면 한쪽 연합군은 “소돔 왕, 고모라 왕, 아드마 왕, 스보임 왕, 벨라(소알) 왕”으로 다섯 나라가 연합군을 이루고, 다른 편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 고임 왕 디달, 시날 왕 아므라벨, 엘라살 왕 아리옥” 이렇게 네 나라가 연합군으로 동맹을 맺습니다. 총 아홉 개 나라인데, 몇몇을 제외하고는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먼저 다섯 나라의 이름을 보면,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벨라(소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 그리고 ‘소알’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이 나라들은 ‘사해 지역’에 있는 작은 나라들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다른 네 개 나라 “엘람, 고임, 시날, 엘라살”은 이름이 더 어렵습니다.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해서 그걸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이고, 다만 지역 이름 중에 ‘시날’(Shinar)이란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창세기 11장 2절을 보면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 중에 문제의 함의 후예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지역에 거류하여 하늘까지 닿으려고 쌓은 탑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벨탑’이었습니다. 바벨은 어디에 있습니까? 북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소개하고 있는 네 개의 나라 ‘엘람, 고임, 시날, 엘라살’은 분명 북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한 무시무시한 나라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그들 중 우두머리가 엘람 지역의 왕인 ‘그돌라오멜’ 이라는 왕이었던 것입니다.

●전쟁의 결과

그러므로 이 싸움은 힘이 약한 ‘사해 지역 다섯 개의 연합군’과 힘이 센 ‘메소포타미아 지역 네 개의 연합군’ 간의 싸움입니다. 하지만 비록 5:4로 싸우지만, 대충 보아도 이 전쟁은 싸움이 되질 않습니다. 북쪽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이미 강력한 군사 대국을 이루었지만, 당시 사해 지역은 그다지 크게 강성한 나라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섯 개가 모였든 여섯 개가 모였든, 열 개가 모였든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사해 지역에 위치한 힘이 약한 다섯 개 나라 연합군이 먼저 어느 지역에 진을 쳤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라”(14:8)라고 말합니다. 평지가 아니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평지에서 전면전을 벌이는 건 양쪽이 대등한 군사력일 때나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골짜기에 진을 쳤다는 것은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매복하고 기다리다가 골짜기에 적들이 나타나는 순간 불시에 급습하겠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본문이 말하듯이 싯딤 골짜기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이길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북쪽의 무시무시한 그돌라오멜 왕을 비롯해 네 개 나라가 쳐들어오자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가나안 연합군은 혼비백산합니다. 자기들에게 익숙한 지형지물을 이용하려고 일부러 싯딤 골짜기에 진을 치고 기다렸지만, 10절이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쳤다”고 말하는 것처럼, 오히려 역청 구덩이에 빠진 것은 북쪽 연합군이 아니라 사해 지역 연합군이었습니다. 완벽한 패배였던 것입니다.

이에 북쪽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았는데, 문제는 12절이 말하는 것처럼 그 땅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혔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던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 318명을 거느리다

이런 전쟁이 발발하여 진행되고 있을 때, 아브라함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습니까?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때에 아브람이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창 14:13)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본문이 아브라함을 일컬어 “히브리 사람 아브람”이라 말하는 것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있던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거주하면서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제단을 쌓아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인근 지역의 ‘에스골’과 ‘아넬’ 사람들과도 평화롭게 잘 지내며 동맹을 맺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과 잘 지내는 아브라함의 모습,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본’을 나그네로 살았던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 아브라함은 북쪽으로부터 막강한 군사력이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무엇보다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창 14:14-16)

아브라함은 조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318 trained men born in his household, Atybe ydeyliy> wyk'ynIx])을 거느리고 가나안 북쪽에 위치한 단까지 쫓아가서, ‘밤에 쳐부수고’ ‘호바’까지 쫓아가서 조카 롯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과 재물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실로 믿기 어려운 놀라운 전쟁입니다. 318명의 정예 요원이긴 하지만, 그 숫자로 저 무시무시한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을 무찔렀다는 건 믿기조차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히브리 사람 아브람의 의미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앞서 살펴보았지만, 성경은 이 중요한 대목에서 아브라함을 “히브리 사람 아브람”(‘레-아브람 하-이브리’, yrIb.[ih' ~r'b.a;l.)이라고 부른 점이고, 둘째는 아브라함이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을 거느리고 싸웠다는 점입니다.

첫째로, 성경은 아브라함을 “히브리 사람 아브람”(14:13)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 ‘히브리 사람’이라는 표현이 처음 나오고 있습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학자들 간에 여러 논쟁이 있어서 그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만,<케네스 매튜스 지음, 권대영 옮김, 『창세기Ⅱ』 부흥과개혁사> 분명한 것은, 이때 당시 ‘히브리’라는 말은 민족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가 민족 개념으로 사용된 것은 출애굽 사건 이후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4장에는 온통 민족이요, 온통 나라며, 온통 왕의 이름들이 즐비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14장에 유독 나라가 없고 민족을 이루지 못한 존재가 하나 나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오직 그만은 왕이기는커녕, 나라가 있기는커녕, 민족은커녕, 자기 땅도 없어서 아모리 족속 마므레 땅에 빌붙어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나라들은 ‘작은 나라냐 큰 나라냐, 힘이 세냐 작냐’의 차이는 있어도, 이미 저마다 민족의 길, 나라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 12:2)는 하나님의 언약 하나만은 꼭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것 하나만 믿고 아모리 족속에 빌붙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직 무엇 하나 이룬 것 없는 불확실한 아브라함의 상황을 본문은 “히브리 사람 아브람”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하나 남은 조카까지 빼앗기게 생겼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만 거느리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오직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만 거느리고 전쟁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단’과 ‘호바’까지 쫓아가서 조카 롯은 물론이고 빼앗겼던 모든 것을 “다 찾아왔더라”(14:16)고 본문은 말합니다.

사사기에 보면 이와 유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과 전쟁을 벌여 승리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때 전쟁을 위해 수만 명의 용사가 기드온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모두가 기드온을 따라나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오직 300명의 용사만을 선별하여 데리고 가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사사기 7장 2절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라고 말합니다.

또한,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어떻게 이겼습니까?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었습니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갈 때, 사울 왕은 소년 다윗에게 자기 군복을 입히고, 투구와 갑옷을 입혀 줍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 왕이 입혀 준 것들을 모두 벗어놓고 오직 “막대기와 물매와 돌”만 가지고 골리앗에게로 나아갔습니다.(삼상 17:39-40) 이윽고 소년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서서 이렇게 외칩니다. 조금 길지만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6-47)

그렇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을 이긴 게 아닙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게 아닙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이기신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318명만을 거느리고서 무시무시한 그돌라오멜 왕을 쫓아가 승리한 것은, 이 전쟁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의 전쟁’이 아니요, 그렇다고 318명의 전쟁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전쟁’인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은 나그네 된 자신의 언약 백성 아브라함,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을 도우심으로 친히 승리로 이끄신 것입니다. 이에 오늘 본문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향하며 말하기를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 14:19-20a)하며 축복했던 것입니다.

●나그네 된 언약 백성을 도우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나그네 된 언약 백성을 도우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은 아직 민족을 이루지 못했고, 나라도 없는 신세였지만, 그리하여 아모리 족속 땅에 빌붙어 살던 ‘히브리 사람 나그네 아브람’에 불과했지만, 그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언약 하나만을 꼭 붙들고 살았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던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아브람이 그랬던 것처럼, 민족을 이루지 못하고, 나라도 없는 신세인 양,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내일을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히브리 나그네 아브람처럼 사는 분이 계십니까? 만일 그러하다면, 먼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요, 나는 그의 언약 백성’인 것을 ‘선명하게, 떳떳하게, 당당하게’ 기억하고 믿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그 언약을 가슴에 품고 사는 당신의 언약 백성을 반드시 도와주실 것을 믿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 1940-)라는 저명한 신학자는 이렇게 말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안과 혼란, 무기력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하나님은 이야기를 들려주신다.”<스탠리 하우어워스,윌리엄 윌리몬 지음, 김기철 옮김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복있는사람> 하나님은 성경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삶에 엄습하는 불안과 혼란, 우울하고 무기력한 신앙에서 벗어나 생생히 살아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이 말하는 ‘나그네 된 언약 백성을 반드시 도우시는 하나님 이야기’, 그리하여 ‘끝끝내 반드시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 이야기’를 여러분의 이야기로 삼아서, 이 복된 부활 절기를 사는 동안 부활하신 주님의 승리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