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네 존재가 무엇이냐?-2(타락)”

(창 3:1-15, 21)

<2024년 1월 21일 주현후 제3주 주일 설교 / 녹색>

●꽃의 예전 in 에덴 정원

지난주 우리는 “사람아, 너의 존재가 무엇이냐?”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에덴 정원과 아담 창조 이야기는 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볼 때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곧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이 임재하실 ‘성소’로서 에덴 정원을 친히 만드시고 가꾸셨으며, 이에 그 성소를 도맡아 ‘가꾸고 지킬 존재’로 인간을 지으신 것이었습니다. 곧 최초의 인간은 ‘에덴의 정원사이자 제사장’으로서 창조된 것이며, 하나님은 그를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호흡을 불어 넣어 주심으로 ‘왕의 위엄’을 부여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에덴 정원에서 벌어진 최초의 하나님 나라의 잔치,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거룩한 제사의 향연은 다름 아니라 ‘꽃의 예전’이었습니다. 사람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꽃과 나무는 하나님을 향해 노래하였고, 저마다의 향기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선생님은 들판에 자라는 ‘들국화’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강가에 바람이 불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별이지며 나는 자란답니다.” 들에 피는 꽃 한 송이도 저 홀로 자라는 게 아니라, 바람이 불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별이 지면서, 온 온 우주의 축복으로 자란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이라는 시인도 과실수가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과수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열매를 일컬어 “天體천체의 산물”이라고 했습니다.<“나는 하나님의 과수원을 방문하여 천체의 산물을 바라봅니다” 월트 위트먼 지음, 허현숙 옮김, 『풀잎』 열린책들> 탐스러운 과일 하나가 나무에 맺힌 것은 정원사이자 농부이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사역이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이야기는 오늘 본문 창세기 3장으로 넘어가면서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죄로의 타락”(Fall into Sin)이 창세기 3장의 주제가 됩니다. 그래서 지난주 설교 제목이 “사람아, 너의 존재가 무엇이냐?-1(창조)”라면, 오늘 설교 제목은 “사람아, 너의 존재가 무엇이냐?-2(타락)”이 됩니다. 그토록 아름답게 창조된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게 된 것인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짧은 설교를 통해서 창세기 3장 전체를 여러분과 나눌 수는 없기 때문에, 저는 세 가지 주목할 구절들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먼저 ‘나 자신’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내 옆에 앉은 사람을 비롯한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서, 주께서 우리에게 “사람아, 너의 존재가 무엇이냐?”고 물으실 때, 가식과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창조주이자 아바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 시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거스틴의 원죄론

동양 사상에 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선설’(性善說)이고 다른 하나는 ‘성악설’(性惡說)입니다. 성선설은 인간은 본디 선하게 태어나지만, 상황과 조건이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는 이론이고, 반대로 성악설은 인간은 본디 악하게 태어나지만, 교육과 그에 따른 노력에 따라서 선한 존재로 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이론입니다.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이 둘 중에 성악설과 비슷한 교리를 가르쳐왔습니다. “원죄론”입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천 육백 년 전에 살았던 성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이 그의 책 『고백록』에서 ‘갓 태어난 아기도 죄인’이라고 주장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어거스틴은 자신의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반역하며 살았던 죄를 통렬히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실로 놀라운 고백이어서 이후 기독교 사상에 있어서 불멸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를 구체적으로 사실 적시하며 회개할 수 있었지만, ‘유아 시절’에 지은 죄는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억나지 않는 죄를 고백할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주변에 갓 태어난 아기들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씁니다.

“그 아기는 자기와 함께 같은 젖을 먹는 다른 아이가, 자기가 먹던 젖을 먹는 것을 보자,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그 아기를 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어떤 아기가 자기가 먹는 젖을 배불리 먹고도 여전히 차고 넘치는데도, 젖을 먹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다른 아기가 자신의 남는 젖을 먹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런 아기를 순진무구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서는 죄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아무도 없고, 심지어 이 땅에서 단 하루를 산 유아조차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박문재 옮김, 『고백록』 CH북스>

여기서 ‘원죄론’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가 관찰한 젖 먹는 아기들은 그저 순진무구한 존재가 아니었고, 오히려 그 나이에 따른 죄를 짓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어거스틴은 인간의 ‘성’이나 ‘부부 관계’조차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이라 주장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죄를 후세에 전달하는 또 다른 죄를 짓는 일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어거스틴이 죄에 대해서 지나치리만큼 민감하게 여겼던 것은, 아마도 자신이 과거에 지었던 수치스러운 죄로 인해서, 먼지 한 톨의 죄에 대해서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뱀의 두 가지 특징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하고 흡족하셔서 ‘좋다, 심히 좋다!’라고 감탄하신 인간이었는데, 저들은 무엇 때문에 타락했고,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이를 위해 저는 여러분과 세 가지 구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본문 창세기 3장 1절 전반부에 주목합니다. 본문은 ‘뱀’에 대해서 말하기를, “뱀(‘나하쉬’)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아룸’)하니라”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뱀에 대해 두 가지 정보를 얻습니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이었다는 것과 ‘가장 간교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뱀(vx'n", ‘나하쉬’ serpent, snake)은 우리가 아는 뱀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입니다(민 21:7-9, 신 8:15, 구약에 31회).<빅터 해밀턴 지음, 임요한 옮김, 『창세기Ⅰ』 부흥과개혁사>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은, 창세기는 뱀을 우리가 아는 ‘악마’와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하늘로부터 떨어진 타락한 천사인 ‘사탄’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뱀은 다른 곳으로부터 와서 에덴 정원에 들어온 존재가 아니라, 본문은 분명히 말하기를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이었고, 이미 피조 세계 안에 살던 존재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이에 대해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악한 세력은 어디선가 갑자기 창조 세계로 침투하는 게 아니라, 창조 세계 안에 잠복하고 있다가 인간을 통해 창조 세계에 나타난 것이다.”<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김순현 옮김, 『창조와 타락』 복있는사람> 창세기는 고발하기를, 인간의 타락은 외부로부터 온 게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가장 싫어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광야에 있을 때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나,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것으로 이스라엘은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제가 몇 번 강조해서 말씀드렸지만, 저들이 숭배했던 우상은 표면적으로는 ‘황금 송아지’나 ‘아세라 목상’ 같은 눈에 보이는 형상이었지만, 본질적인 우상은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상의 실체는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끝없는 욕망에 이끌렸던 인간의 ‘교만’이었던 것입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속회든지, 선교회든지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을 경우, 공동체를 살아나게 하는 요인과 어렵게 만드는 요인도 결코 밖에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안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공동체는 살아나고, 누군가의 아집으로 공동체는 어려워지기 마련입니다. 일본 속담처럼, ‘적은 내부에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 최초의 타락도 에덴 정원 밖으로 온 게 아니라, 그 내부에 있었습니다. 에덴 정원 내부에 존재하던 들짐승 중 하나였던 뱀에게 부화뇌동하여 결국, 인간이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뱀에 대한 두 번째 설명은 뱀이 “가장 간교하다”(‘아룸’, ~Wr[')는 것입니다. ‘간교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룸’이라고 하는데, 본문에서는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되지만, 구약 성경 다른 곳에서 이 단어는 좋은 의미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잠언서 12장 16절이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단어는 ‘슬기롭다, 신중하다’는 뜻으로 구약 성경에서 더 자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뱀의 두 번째 특징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영적 교훈을 줍니까?

뱀은 ‘슬기로울 수도’ 있었고, ‘간교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선택은 뱀이 하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뱀이 되어 인간을 이롭게 하고, 하나님 피조물로서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뱀은 ‘슬기로움’ 대신에 ‘간교함’을 택합니다. 뱀의 잘못된 선택으로부터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뱀이 슬기로움이 아닌 간교함을 택한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 특징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교만’이 원인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하와의 선택

그런데 본문을 보면 뱀에 이어서 그의 말을 들은 하와도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둘째로, 우리는 6절에 주목하게 됩니다. 6절은 말하기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고 말합니다. 이 나무를 소위 ‘선악과’라 하고, 하와의 눈에 들어온 선악과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마치 에덴 정원에 있는 나무 중에 선악과‘만’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2장 9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고 말하는 것처럼, 선악과만이 아니라 에덴 정원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뱀의 말을 들은 하와는 귀가 얇아졌습니다. 하와의 생각이 교란됩니다. 뱀의 말을 듣고 하와는 지금까지 먹었던 열매가 시시하게 느껴지면서, 여태껏 안 먹어도 그만이었던 선악과가 유독 예뻐 보이고 먹고 싶어진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와 타락이란 본디 그런 것인가 봅니다. 죄와 타락은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앞서 원죄론을 주장했던 어거스틴은 인간의 악이 세 가지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첫째는 “호기심”(curiositas)이고, 둘째는 “교만”(superbia)이요, 셋째는 “욕정”(libido)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지음, 성염 옮김, 『참된 종교』 분도출판사> 하와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뱀의 말을 듣다가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그러더니 ‘교만’이라는 함정에 빠졌습니다. 교만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교만한 사람은 교만이 무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뱀이 속이며 말한 것처럼, 하와는 자기도 모르게 선악과를 먹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고 싶은”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교만을 넘어 ‘욕정’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의 굴레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뱀의 경우가 그랬지만, 하와의 경우도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거부할 수 있었으나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아담을 찾아가 그에게 묻고 함께 해결했어야 했지만, 독단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한 결과, 하와는 잘못된 선택으로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타락의 길을 걷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과 상대적 명령, 그리고 뱀의 절대적 명령

마지막 셋째로 다시 창세기 3장 1절 후반부에 주목합니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은 정말 간교했습니다. 첫째로 뱀은 유혹하기 쉬운 상대를 찾습니다. 아담보다 하와가 쉬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자라서? 아닙니다. 하나님이 에덴 정원을 짓고 인간에게 주실 때, 그 명령을 직접 들은 사람은 아담 뿐이었습니다. 그때는 하와가 만들어지기 이전이었습니다. 짐작하건대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아담에게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직접 들은 아담보다 하와가 빈틈이 더 많아 보였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뱀은 아담이 아닌 하와를 골라, 그녀가 혼자 있을 때, 그의 심리를 이용하면서 입을 열게 만드는 교묘한 화술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유혹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틈타서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뱀은 하와를 어떻게 속였습니까? 그의 말을 들여다보면, 그의 화술은 대범합니다. 신앙이 있는 척합니다. 뱀은 하나님이 하지도 않은 말을 성큼 지어내면서 하와의 기억을 교란하고 헷갈리게 만듭니다. 뱀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하와를 다그쳐 묻습니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뱀은 기정 사실인 것처럼 인용하며 다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속이는 자의 수법이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commanded, ‘와예차우’, wc;y>w:)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먹고 싶은 대로 먹되’, 새번역)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2장 16-17절)는 것이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어도 좋지만,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엄중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였습니다.

그런데 뱀은 ‘하나님이 다 먹지 말라더냐?’ 하면서, 하나님이 하지도 않은 말을, 마치 최면을 걸 듯이 지어내서 하와를 속이려 한 것입니다. 이에 하와는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명령하시기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You will CERTAINLY die!) 하시면서, 인간에게 “절대적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절대적 명령은 해석의 여지가 없습니다. 절대적 명령은 토를 달아서는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이 절대적 명령입니다.

그러나 하와는 3절에서 뱀에게 대답하기를,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는 말로 희석시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절대적 명령은 해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와는 그 명령을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안 죽으려면 먹지 말라’고 했다는 겁니다. 뒤집어보면, 하나님이 ‘죽고 싶으면 먹어도 된다’고 했다는 거 아닙니까? 둘 중 하나 선택해도 된다는 뜻도 됩니다. 이처럼 하와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상대적 명령”(조건적 명령)으로 전락시켜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에 기세등등한 뱀은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You will NOT certainly die!) 이 말을 하는 뱀의 표정에 사악한 미소가 번뜩이는 것이 상상이 됩니다. 이처럼 뱀은 하와를 속임으로써,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을 하와를 빌어서 무기력하게 만들고, 하와가 말한 ‘조건적 명령’조차도 비웃으며 짓밟고는,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허무맹랑한 선언으로 자신의 명령을 절대적 명령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타락한 자아 vs 창조된 자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뱀에게 속은 인간, 그리하여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을 상실하고, 뱀의 절대적 명령 앞에 굴복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일의 시작은 하와의 호기심이었습니다. 그것이 교만으로 둔갑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말하기를, 인간을 속인 뱀이란 존재는 에덴 정원 밖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온 외계인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 하나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인간을 속여 타락시키며,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존재는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에덴 정원으로부터 내부에 있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인간 타락 이야기는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와 상관없는 동화나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 아침 눈 뜨고, 호흡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우리 일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기도 하지만 미워하고 증오하기도 하며, 손을 잡아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잡은 손을 뿌리치는 냉정한 우리 일상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간 타락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인류의 이야기이며 이 시간 예배하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됩니다. 오호라, 이런 곤고한 인간을 누가,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 창세기 2장과 오늘 창세기 3장의 말씀을 읽고 보니, 사람은 ‘선하기만 한 존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하기만 한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사람 안에는 언제나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우리가 매 순간 무엇을 신중하게 선택할 것인지에 따라서,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시는 삶과, 속이는 자가 질척대며 부추기는 삶이 우리의 행동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 오늘날 가장 위대한 저술가요 설교자로 손꼽히는 영국 성공회의 존 스토트(John R.W. Stott, 1921-2011) 신부님은 1984년 미국의 [Christianity Today]라는 잡지에 “Am I Supposed to Love Myself or Hate Myself?”(“내가 나를 사랑하는 게 맞는가? 미워하는 게 맞는가?”)라는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현재 상태는 부분적으로는 창조의 결과물(하나님의 형상)이며, 부분적으로는 타락의 결과물(손상된 형상)입니다.”<“Am I Supposed to Love Myself or Hate Myself?”(The Cross Points a Way between Self-Love and Self-Denial) by John R.W. Stott, April 20, 1984, Magagine [Christianity Today]> 지난주와 오늘 본문에 비추어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인간은, 부분적으로는 창세기 2장이 말하는 하나님 형상을 지닌 최고의 피조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3장이 말하는 타락한 피조물의 몰골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입니다.

이러한 한계 상황에 놓여 있는 인간의 해법은 무엇인지, 존 스토트 신부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부정하고 부인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은 타락한 자아(fallen self)입니다. 즉 우리 안의 모습 중 예수 그리스도와 공존할 수 없는 모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긍정하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창조된 자아(created self)입니다. 즉 우리 안의 모습 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어우러지는 모든 것입니다.”<John Stott>

●하나님의 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인간의 삶이란, 신앙이란 ‘창조된 자아’와 ‘타락한 자아’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며 사는 삶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21)

저들이 자기 손으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만든 옷으로는 타락한 인간의 수치를 가릴 수 없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도 가릴 수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 불쌍한 몰골을 하고 수치스러워하고 있는 인간을 보고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결행하십니다. 지금껏 창세기가 알려주는 하나님은 줄곧 ‘생명을 만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에게 너무나도 낯선 행위를 하십니다. 단 한번도 하지 않은 일을 행하십니다. 곧 ‘짐승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위해 처음으로 짐승의 생명을 죽이고, 피를 흘려 그 가죽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입혀 주십니다.

어떤 구약학자는 그 가죽은 분명 ‘뱀 가죽일 것이다.’라고 하면서, 백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를 말하기도 하는데, 그 가죽이 뱀 가죽인지, 양가죽인지, 소가죽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타락한 인간을 위해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그 가죽으로 옷을 입혀 주신 하나님의 행위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타락은 내부에서 비롯되었지만, 인간의 구원은 밖으로부터 와야했던 것입니다. 위로부터 내려와야 했던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만이 이처럼 가련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된 자아와 타락한 자아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선택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능히 행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우리가 마땅히 바라고 기대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고 말하는 것처럼, 비록 우리는 타락했으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값없이 그 너른 가슴에 안아 주시고,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그 피의 공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강한 손으로 여전히 우리를 붙잡아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 독생자의 십자가 희생으로 의롭지 않은 우리를 ‘의롭다’ 불러주시고, 거룩하지 않은 우리에게 거룩한 옷을 입혀 주시는 ‘아바, 아버지의 은혜’, 그 은혜 안에 거하는, 은혜의 사람으로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