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살아내는 교회”

(창세기 1:1, 25-31)

<2024년 01월 07일 신년주일 설교 / 흰색>

●새해를 위한 기도

2024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스코틀랜드의 필립 뉴엘(Philip Newell, 1953-)이라는 시인이자 영성가가 쓴 “새해를 위한 기도”(Prayer for New Year)를 소개하면서, 오늘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축복하고자 합니다.

모든 빛 속에 계신 참 빛이시여! 모든 영 안에 계신 참 영이시여!

새벽을 뚫고 새날이 오고 있으므로, 우리는 기다리며 깨어 있나이다.

당신의 빛은 아침 햇살 안에 계시고, 당신의 영은 인간 영혼 속에 계시며

당신 현존이 저 생명의 중심으로부터 우리에게 손짓하나이다.

새날이 동터오는 지금, 우리 영혼을 비추는 맑은 빛줄기로 살게 하시고,

새로이 시작하는 만물이 저마다의 빛깔을 뿜어내듯,

우리 마음에 태초의 빛들로 가득함을 알게 하소서.

아침의 큰-별이시여, 만물의 불-꽃이시여,

여명이 밝아오는 이때, 우리로 하여 저마다의 고유한 빛깔로 살게 하소서.

<2024년 1월1일, Philip Newell의 Facebook의 ‘A Prayer for the New Year’의 우리말 번역>

Light within all light, Soul behind all souls,

at the breaking of dawn, at the coming of day, we wait and watch.

Your Light within the morning light, Your soul within the human soul,

Your Presence beckoning to us from the heart of life.

In the dawning of this day, let us know fresh shinings in our soul.

In the growing colours of new beginning all around us,

let us know the first lights of our heart.

Great Star of the morning, Inner flame of the universe,

let us be a colour in this new dawning.

영성가 필립 뉴엘이 축복하는 것처럼, 신년주일을 맞아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어우러지는 여러분만의 고유한 빛깔을 지니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위기의 지구

새해를 맞아 이러한 시와 기도로 여러분을 축복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의 현실은 너무나도 암담합니다. 우리는 매우 심각한 ‘기후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거의 1주일에 한 번꼴로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기후 재난을 보도하고 있는데, 지구의 기후 문제를 연구하는 어느 단체(IPCC)의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 온도는 1.0-3.5도 상승할 것”이라고 예견니다.<오충현 외 지음, 『코로나 펜데믹과 기후 위기 시대, 생물다양성에 주목하다』 대장간>

온도가 1-3도 정도 오르는 게 뭐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냐 물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얘깁니다. 지구의 온도가 오르게 되면 “말라리아와 같은 끔찍한 전염병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확산되고, 동물의 면역체계가 교란되며, 병충해가 창궐하고 말 것”(위의 책 오충현교수)이라 경고합니다. 동물의 면역체계가 교란된다는 것은 인간의 면역체계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또한 기온이 높아지게 되면 “해수면이 1m 이상 상승”하게 되면서 상당수의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길 것이고, 무엇보다 “산호초의 99%가 멸종될 것”이라 분석하기도 합니다. 산호초는 바다 생태계를 유지하고 대기에 산소를 공급하는데 매우 중요한 생물종이기 때문에 산호초가 멸종한다는 것은 지구 생태계 전체에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위의 책 이성호교수)

이런 비관적인 기후 전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 환경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경고하며 지적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지난 3년간 코로나 펜데믹을 경험한 우리는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직접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었고, 국제 사회를 일순간 마비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인간이 이루어 놓은 과학 기술 문명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직접 경험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2023년 2월 기준으로,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대략 “7억 4천만 명”이라 하고, 미국의 경우 누적 사망자 수는 “110만 6,000명”이었습니다.<김영신 기자,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7억 2,900만 명’ 메디컬뉴스, medicalworldnews.co.kr>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 보셨겠지만, 당시 미국 병원들은 의료 체계가 붕괴해서, 치료는 고사하고 사망한 시신을 안치할 곳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코로나로 사망한 시신들을 인근 무인도에 임시로 매장해야 했던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벌써 우리는 다 잊고 살지만, 불과 2년 전 일입니다. 말하자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는 그 끔찍한 재난의 ‘생존자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살아내는 교회”

이러한 기후 환경 위기, 그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생존자’로서, 올해 우리 교회는 “생명의 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살아내는 교회”라는 표어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지난주 새벽기도 시간에 이 표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잠시 소개해 드렸지만, 이 표어는 창세기를 묵상하면서 만든 표어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선포로 시작됩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이어지는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은 혼돈의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고, 공허한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흑암만이 가득한 세상에 빛을 주시는 분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바로 이 구절에서 올해 우리 교회 표어인 “생명의 영”이 나왔습니다. 태초로부터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셨던 것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도 우리 가운데 계신 생명의 영으로 살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창세기 12장 이후로는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 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삭에서 야곱으로, 그리고 요셉으로 이어지는 가족 이야기가 창세기 12장부터 마지막 장인 50장까지 나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에게 ‘언약’을 맺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올해 표어인 “하나님의 언약을 살아내는 교회”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과연 그 후손들이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창세기뿐만 아니라 성경 66권을 읽는 우리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이것입니다. 로마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라”(롬 4:16b, 23-24)라고 말한 것처럼,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창세기로부터 오늘 우리에게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명의 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살아내는 교회”가 되려는 것은 신앙의 근본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바른 고백과 뼛속부터 일어나는 깊은 인식’에서 비롯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 “선교와 창조”

오늘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선언’과 24절 이하에 나오는 ‘인간 창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선교’요, 둘째는 ‘창조’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일이지만 선교는 하나님이 직접 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만’ 하십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도 할 수 없는 일이 선교입니다. 하나님이 선교의 전초기지로 세운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선교하는 교회를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십니다. 그렇지 않은 교회로 인해 근심하시고, 골칫거리로 여기십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국내외 다양한 선교 현장에서 사역하는 분들을 후원하고 기도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창조입니다. 창조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 일에 감히 끼어들 수 없습니다. 창조는 오직 하나님만의 고유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신앙 고백은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신앙’에 바탕을 둡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창조신앙은 다른 모든 신앙 고백에 우선하고, 심지어 기독교 교리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활 신앙’ 조차도 ‘창조신앙’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역사 속에 이루어진 구원 사건이지만,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태초에”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신앙 고백도 창조신앙에 기반하지 않으면 반쪽짜리에 불과하거나, 빈약하고 병약한 신앙이 될 공산이 큽니다.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그렇다면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신앙을 우리는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심심찮게 사용하는 ‘창조 경영’이니, ‘창조 경제’니 하는 말들은 원천적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듭 강조하지만 창조는 오직 하나님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캐나다의 마르바 던(Marva Dawn, 1935-2019)이라는 영성가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 인간은 어설픈 모방 행위,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은 통찰, 인간의 하찮은 재주 등에 걸핏하면 ‘창조’ 혹은 ‘창조성’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서 그 말을 그렇게 남용하는 걸까?”<마르바 던 지음, 오현미 옮김, 『언어의 영성』 좋은씨앗> 그렇습니다. 성경은 창조는 하나님만의 행위인 것을 분명히 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제가 히브리어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본문의 ‘창조하셨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바라”(arB)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성경에는 ‘창조하다, 만들다, 빚어내다’는 뜻의 단어가 적어도 세 가지 이상 나오는데, 첫째는 방금 본 “바라”(arB)이고, 둘째는 “아사”(hf[, ‘만들다’)라는 단어고, 셋째는 “야차르”(rcy, ‘빚어내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사야 45장 7절을 보면, “나는 빛도 짓고(‘야차르’) 어둠도 창조하며(‘바라’) 나는 평안도 짓고(‘아사’) 환난도 창조하나니(‘바라’)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위해 이 세 단어가 모두 사용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아사’나 ‘야차르’는 사람이 하는 일에 쓰고 있지만, ‘바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은 ‘바라’로서의 행위를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합니다.<빅터 해밀턴 지음, 임요한 옮김, 『창세기Ⅰ』 부흥과개혁사> 즉 구약성경은 우리에게 ‘태초에 일어난 창조는 오직 하나님의 영역인 것을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할 수 있다면, 둘째로 인간은 한낱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자신이 피조물인 것을 참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멋들어지게 고백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로서 겸손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면, 이러한 고백에서 철저히 실패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본문 24절 이하로 보면, 여섯째 날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십니다. 이 본문은 그동안 많은 오해를 일으켰던 본문입니다.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27절) 창조하십니다. 이어지는 28절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이유로 불행하게도 그동안 인간은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제멋대로 행동해왔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지구를 인간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헐값에 내어주시기라도 했다는 것 마냥, 사람은 지구의 주인 행세를 했고, 지구를 함부로 대하며 파괴했던 주범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각양 생태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지구상 유일한 지구 파괴범은 그 어떤 다른 생물이 아니라 오직 ‘인간’이란 뜻입니다.

이에 관해서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은 매우 중요한 지적을 합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이 되려는 민족과 인종과 국가는 결코 하나님의 형상을 이룰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괴물’이 될 뿐이다.”<위르겐 몰트만 지음, 김균진 옮김,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 한국신학연구소> 몰트만은 이어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을 위한 하인의 행위, 즉 하나님을 위한 땅의 관리자”를 뜻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 있습니다. 본문 25절 이하에 나오는 여섯째 날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은 여섯째 날 사람만 창조하신 게 아닙니다. 각양 동물들과 식물들도 함께, 그날, 여섯째 날, ‘사람과 함께’ 창조하십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사람은 이러한 다양한 생물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존재여야 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섯째 날의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러 생물에 대해 청지기로서의 ‘주인 의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가꾸고 지키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단코 ‘주인 행세’ 하거나 ‘주인 노릇’ 하라고 주신 게 아닌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 창조 앞에 겸허히 경탄하라!

이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인정한다면,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앞에 겸허하게 경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원도 화천에 가면 우리나라의 저명한 천문학자셨던 고 조경철 선생님의 이름을 딴 ‘조경철 천문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은하수’가 가장 잘 보인다는 곳입니다. 사진만 봐도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실제로 보면 너무나도 황홀할 것만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은하수는 최소 2천억 개에서 4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6년 미국의 잡지 <The New York Times>에 매우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는데, 기자는 말하기를 “이미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던 우주의 규모가 더 거대해졌다. 천문학자들이 이전에 생각하던 것보다 거의 10배나 많은 은하계가 존재한다.”라고 보도합니다. 최근 들어 천문학자들은 과거에 비해 10배가 넘는 은하계를 발견했다는 것인데, 그러면 인간이 관측 가능한 은하계가 지금은 몇 개나 될까요? 이 기사의 제목은 “Two Trillion Galaxies, at the Very Least”(‘어림잡아 최소한 2조 개의 은하수들’)입니다. 즉 우주에 은하계는 최소한 “2 조개”(Two Trillion Galaxies) 이상 된다는 것입니다. 은하계 하나는 2천억에서 4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졌는데, 그렇게 이루어진 은하계가 최소한 2조 개 이상 존재한다는 것입니다.<“Two Trillion Galaxies, at the Very Least” by Henry Fountain, Oct. 17. 2016, The New York Times>

이처럼 광활한 우주 앞에 우리는 저절로 시편 8편처럼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9절)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셨던 왕대일 교수님은 신앙인들이 창세기 1장을 읽는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구약성서의 첫 장은 오로지 ‘들음’(傾聽)의 대상이다. 하나님이 선언하시는 창조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인생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왕대일 지음, 『구약신학』 대한기독교서회>

그렇습니다. 창세기 1장을 대할 때, 우리는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연주를 감상하듯이, 구절마다 담긴 하나님 말씀의 리듬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 창조 이야기는 “무한한 경이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우리로 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 앞에 겸손히 나아가 경배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더글라스 무, 조너선 무 지음, 송동민 옮김, 『창조 세계 돌봄』 죠이북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주님의 법을 따라 모든 것들에 질서를 부여하실 수 있으신 분이신 까닭에, 주님은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습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박문재 옮김, 『고백록』 CH북스> 어거스틴은 창조주 하나님은 세상에 아름다움과 질서(Beauty and Order)를 부여하신 분이라고 경탄하며 노래한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홀로 완전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향해서만 홀로 존재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분 곁에 우리를 존재하게 하셨다. 창조는 은혜다. 우리는 이 명제 앞에서 경외하고 경악하고 감사하면서 가장 큰 사랑과 함께 멈춰서야 한다. -- 내가 존재할 수 있다니!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니!”<칼 바르트 지음, 신준호 옮김, 『교의학 개요』 복있는사람>

●창백한 푸른 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창세기 1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잠시 나누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 “생명의 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살아내는 교회”의 의미도 잠시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는 첫째, 하나님이 창조주시요,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이며, 이로써 셋째,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앞에 겸허히 경탄하는 존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이러한 ‘창조신앙’이 올바로 세워지고, 그 위에 ‘언약 신앙’을 덧붙여 살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지구 환경 문제로 인해 더욱 절실하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온전히 찬양하고,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단지 ‘신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나님의 창조가 인간의 손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버릴 ‘위기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미지를 하나 보여드리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 사진은 미국 우주항공국 NASA의 우주 탐사선인 보이저(Voyager) 1호가 1990년 2월 14일 태양계 저 멀리 해왕성에 접근할 때 카메라 방향을 돌려서 찍은 지구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찍도록 제안한 사람은 미국의 저명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입니다.

이 사진을 찍고 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빛나는 점을 보십시오. 이 점이 우리 집이고 우리 자신입니다. 지구는 광대한 우주의 무대 속에서 하나의 극히 작은 무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구는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인 이 ‘창백한 푸른 점’(지구)을 보존하고 소중히 가꿀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칼 세이건 지음, 현정준 옮김, 『창백한 푸른 점』 민음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천문학자의 말이었지만, 하나님의 창조에 비추어 볼 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도 큽니다. 하나님은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이 광활한 우주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는 오직 인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교만을 뜻하지 않으며, 창백한 푸른 점에 살아가는 자로서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창조주를 경배할 것을 뜻할 것입니다. 아울러 창조주께서 주신 지구 환경을 사랑하고 지키고 살아야 할 책임을 뜻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올 한해 우리 교회가 세운 표어처럼, 태초로부터 운행하셨던 생명의 영을 넘치도록 받아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