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다”

(마 2:19-21)

<2023년 12월 25일 성탄절 설교 / 흰색>

●다윗 언약의 성취

어제 주일 예배 때 저는 사무엘-하 7장의 본문으로 “그가 다윗 언약으로 오신 깊은 내력”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언약의 계보가 완성된 일’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고, 그 언약은 시내산에서 모세와의 언약으로 갱신되고 확장되었으며,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과 언약을 맺어주심으로, 다윗의 계보를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울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언약은 이천 년 전 유대 땅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어제도 나누었지만, 천사 가브리엘은 손에 ‘다윗 언약’을 들고 은밀하게 소녀 마리아를 찾아갔고, 그에게 전하며 이르기를 “은혜를 받은 자여!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28, 31-33)” 선포합니다. 이처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한 다윗 언약은 그 이름 ‘예수’로 인하여, ‘은혜의 사건’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비밀의 방, 새어 나온 불빛 예수

그러나 이 일은 부산스럽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태어난 사건은, 마치 조용한 도서관의 책장 넘기는 소리처럼, 하나님은 인류를 위한 구원의 역사를 은밀한 중에 행하셨던 것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기독교 사상가인 G. K. 체스터턴(G. K. Chesterton, 1874-1936)은 이러한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베들레헴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집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비밀의 방을 찾아낸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본 것과 비슷하다.”<G.K. 체스터턴 지음, 송동민, 서해동 옮김, 『영원한 사람』 아바서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은밀해야 했습니다. 가축 울음소리에 가려져야 했습니다. 저 하늘로부터 비밀에 부쳐 ‘마구간 구유라는 비밀의 방’에서 태어나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했던 만큼, 예수님의 탄생은 더욱 ‘치밀’했습니다. 실수 없이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언약 사건’으로서, 천년을 기다려온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구유에 누였습니다. 언약의 불이요, 말씀의 불이며, 구원의 불이신 아기 예수는 환하게 빛났습니다. 그 좁다란 공간만을 비추기에 그 불빛은 너무나도 찬란한 불빛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불빛은 마구간으로부터 ‘새어 나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비추게 된 것입니다.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고, 숨겨진 일이 알려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귓속말처럼 조근조근 전해진 이야기였지만, 그 일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선포된’(마 10:26-27) 하나님 언약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요셉을 향한 천사의 두 가지 고지

그러나 한편, 이러한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곧 예수의 부친 요셉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요셉이 없었다면?’ 만약 우리가 이렇게 가정한다면, 이 거룩한 아기 예수의 탄생은 불행하고 가여운 사생아의 출산 이야기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속에 그의 부친 요셉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예수님의 탄생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크게 보아 그는 세 가지 중요한 일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첫째로, 요셉은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받아들인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와 정혼한 여인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과 약혼한 여인이 그와 동거하기도 전에 아기를 잉태한 것을 알게 되었으니, 요셉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말하기를 요셉은 “의로운 사람”(1:19, He was faithful to the law)이어서, 그 일로 마리아를 추궁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마리아를 욕보이거나, 아니면 공회로 끌고 가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거나 하지 않고, 마리아와 조용히 파혼하려 한 것이 ‘의로운 요셉’이 보여준 모습이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천사가 나타났고, 천사는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1:20)고 합니다. 이로써 요셉은 자신의 ‘의로움’조차도 포기합니다. ‘의로움’을 내려놓습니다. 하늘의 소리에 복종하여 마리아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마리아는 아기를 낳았고 요셉은 천사가 알려준 대로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습니다.(마 1:25) 그런데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헤롯은 동방에서 온 점성가들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마 2:2) 말하는 것을 듣고는 그 아기를 찾아 해치려 했던 것입니다. 이때 천사는 다시 한번 요셉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일어나 아기 예수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라”(마 2:13)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요셉이 행한 중요한 두 번째 일이었습니다. 즉 요셉은 다시 한번 천사의 말에 복종하여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부터 머나먼 애굽까지, 갓 태어난 예수, 갓 태어난 핏덩이를 안고 아내와 함께 그 캄캄한 광야를 뚫고 애굽을 향한 험한 여행을 떠날 용기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을 향한 천사의 세 번째 고지

요셉 가족이 애굽에 피신한 뒤로 시간이 얼마간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헤롯’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천사는 다시 한번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을 전하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가 나눈 성경 본문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헤롯 왕이 죽자, 주의 천사는 애굽 땅에 피신해 있던 요셉에게 세 번째로 찾아갑니다. 천사는 그에게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20절, Get up, take the child and his mother and go to the land of Israel)고 말합니다. 그러자 21절에서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다”(21절, He got up, took the child and his mother and went to the land of Israel”)고 말합니다. 우리말로 읽어도 그렇지만, 영어성경으로 읽거나 성경 원어로 읽어도, 요셉은 천사의 말을 토씨 하나 어기지 않고 그대로 지킵니다. 그대로 복종합니다. 천사가 ‘가라’(go) 했으므로 요셉은 ‘왔다’(come) 하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 과정 속에서 요셉이 행한 세 번째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 과정에 있어서 요셉이 행한 세 가지 중요한 일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세 번 모두 천사가 나타났고, 요셉은 세 번 모두 천사의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천사가 처음으로 요셉에게 나타날 때 성경은 말하기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마 1:19-20)라고 합니다. 천사는 눈앞의 현실로 요셉에게 나타난게 아니라 그의 꿈속에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천사가 두 번째로 요셉에게 나타날 때도 성경은 말하기를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마 2:13)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사가 세 번째 나타나는 오늘 본문도 말하기를,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마 2:1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난 것은, 세 번 모두 현실이 아니라 요셉의 ‘꿈속’(in a dream)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 과정에서 요셉은 ‘꿈꾸는 자’(dreamer)였던 것입니다. 창세기에만 꿈꾸는 요셉이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에도 꿈꾸는 자 요셉이 있었고, 요셉의 꿈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렘브란트의 [성 요셉의 꿈](Dream of Saint Joseph)

그림 하나를 보겠습니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가 그린 “요셉의 꿈”(Dream of Saint Joseph)이라는 그림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천사와 요셉, 그리고 마리아가 허름한 마구간에 앉아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빛의 화가’라는 별명답게, 빛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그림을 보면 어디가 가장 환합니까? 천사의 어깨가 유독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마치 빛이 천사의 어깨로부터 요셉의 어깨로, 그리고 마리아의 어깨로 아래로 전이되는 듯 보입니다.

뒤쪽을 자세히 보시면, 당나귀처럼 보이는 짐승들이 흐릿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앞쪽에 있는 천사는 잠들어 있는 요셉의 어깨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깨우는 듯합니다. 마치 천상의 존재와 땅의 존재가 저 손가락을 통해서 신비롭게 교감하는 듯 보입니다.

이 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요셉은 분명 눈을 감고 피곤에 지쳐 깊은 잠에 들었지만, 그는 두 손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냥 널브러져 자는 게 아니라, 무언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천사를 만나는 꿈을 꾸고 있는데, 천사는 마치 현실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렘브란트는 ‘그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야!’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영어로 ‘Dream comes true’라는 표현처럼,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 합니다.

조금 더 아래쪽을 확대해서 보면, 요셉은 잠들어 있는 마리아의 어깨를 자신의 무릎과 다리에 기대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왼쪽 다리를 보면 다리에 쥐가 났는지, 다리를 살짝 바깥쪽으로 빼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만, 요셉은 잠도 자고, 꿈도 꾸면서, 마리아에게 무릎과 다리를 빌려주는 많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다른 일이 아니라, 현실과 천상이 꿈을 통해 교감 되고 접속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점에서 요셉은 ‘몽상가로서 꿈꾸는자’(dreamer)가 아니라 ‘땅에서 하늘을 내다보는 의미에서의 꿈꾸는 자’(dreamer)였습니다.

●꿈꾸는 자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2023년 성탄절을 맞아 우리는 이 복된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에는 ‘꿈꾸는 자 요셉’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 요셉이 꿈꾸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는 천사의 고지를 받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참함 속에서 아기 예수를 낳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 요셉이 꿈에서 “애굽으로 가라!”는 천사의 고지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말을 요셉이 듣지 않았더라면, 요셉 일가족은 헤롯의 작당과 흉계에 희생당했을지도 모릅니다.

-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요셉이 꿈꾸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요셉이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는 천사의 고지를 듣지 못했거나, 혹은 그 말에 복종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나사렛이 아니라, 애굽 땅 어딘가에서 난민으로 배회하며 자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어느 영성가는 이러한 꿈꾸는 요셉의 모습을 두고서 “요셉이 어떻게 처신해야 옳을지를 깊이 생각할 때, 하나님이 개입하신다.”<안셀름 그륀 지음, 서명옥 옮김, 『50가지 성탄 축제 이야기』 분도출판사>라고 말합니다. 결국, 요셉의 꿈은 하나님이 오셔서 개입하시도록 열어놓은 우리 ‘마음의 문’이며, ‘영혼의 창’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러한 문을 열고 창을 열어, ‘하나님의 개입’을 받고 이에 매 순간 복종함으로, 우리 주님 예수의 부친으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살았던 위대한 신앙인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꿈꾸는 자를 통해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로써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꿈꾸는 자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우리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꿈꾸는 요셉’은 ‘의로운 요셉’보다 더 위대했습니다. 요셉의 꿈은 ‘보이는 현실’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영혼의 창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꿈꾸는 요셉’처럼 하나님의 미래를 내다보는 마음의 문과 영혼의 창을 활짝 열어놓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여러분 삶에 개입하시는 성탄의 기쁨으로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