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보다 크신 이가 네게 물으신다”

(마 21:23-32)

<2023년 10월 01일 세계성찬주일 / 군선교주일 / 농촌선교주일 설교 / 녹색>

●“은혜의 권세”로만 다스리시는 주님

지난 9월 13일 수요일 예배 때, 저는 여러분과 함께 창세기 22장의 말씀으로 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저는 믿음이란 “주님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전적으로 신뢰하는 일”이라고 정의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과 신앙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의 주님이신 것은 잘 알고, 고백도 곧잘 하지만, 주님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32절에서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주님이 엄히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서도 어쩌면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의 굳어버린 모습이 여전한 것은 아닌지를 묻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일이 이처럼 어려운 일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주님이 자신의 권세를 폭군처럼 행사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은혜로만 행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을 향한 주님의 권세를 “은혜의 권세”라 부르곤 합니다. 만약 주님이 인과응보에 따라 우리를 판단하시고,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바로바로 엄히 심판하신다면, 우리 중 주님의 주권 앞에 100% 엎드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낱낱이 아시면서도 끝까지 기다려 주는 분이시기에, 그래서 주님은 자신의 권세를 행사하시되 오직 “은혜의 권세”로만 행사하시기에, 그걸 잘 아는 우리는 “주님을 너무 만만하게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성전보다 크신 이가 네게 물으신다”라고 정했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은혜로만 통치하시는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성전보다 크신 주님’이 우리에게 무언가 물으실 때, 그 물음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정직하게 응답하기를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지극히 낮으신』

오늘날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시인 중에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 1951-2022)이라는 유명한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 역사 인물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성 프란치스코를 사랑한 인물로도 유명한데, 그는 『지극히 낮으신』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동일 선상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잔잔하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작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다음과 같이 통찰합니다. “‘지극히 낮으신 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지극히 높으신 분’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지극히 낮으신』 1984Books>라고 말입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이 예수님을 진리로 믿는 이유는 그분이 ‘낮아지신 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토록 낮아지심으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권세를 낱낱이 드러내셨기에, 예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실 분명한 구세주라는 아름다운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약자들을 고압적으로 누르고, 약자들을 이용하고, 소모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세를 드높이려 하지만, 예수께서는 낮은 자로서 세상에 오셨고, 낮은 자들과 함께 살고, 우셨고, 낮은 자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방법으로 하늘의 권세를 세상에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낮아짐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것이 앞서 제가 말씀드린 “은혜의 권세”입니다. 세상 권력자들은 탱크나 불도저 같은 권세를 떨치려 했다면, 어느 독일의 신학자가 말한 것처럼, 주님의 권세는 “아스팔트의 틈을 뚫고 솟아오르는 풀과 같은 생명력”으로 세상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권세였던 것입니다.<도로테 죌레 지음, 정미현 옮김, 『신비와 저항』 이화여자대학교출판> “은혜의 권세”가 보여줄 수 있는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신 예수

그러다 보니 유대 권력자들은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내내 그분의 권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끊임없이 도전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유대 권력자들은 ‘질투와 시기’의 감정으로 주님을 방해하더니, 어느 순간 그 정도가 지나쳐서 “어떻게 예수를 죽일까?”(마 12:14)하며 ‘질투와 시기’는 주체할 수 없는 ‘증오와 적개심’으로 변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과정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오늘 본문이 속해 있는 마태복음 21장 전반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마태복음 21장은 예수님 사역에 있어서 분수령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사건을 언급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애는 21장에 나오는 이 사건을 위해 준비한 단계라 말해도 무방합니다.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드디어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아시다시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 번에 걸쳐 이제 곧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고난당하고 죽임당하며, 다시 살아날 것”을 예고하신 바 있습니다. 그 말씀이 마태복음 21장 전반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뒤뚱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고, 사람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 21:9)하고 소리치며 기뻐했습니다. 저들은 ‘가장 높은 곳을 향한 탄성’으로 그를 맞이하고 있지만,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은 가장 높은 곳의 영광은커녕, 가장 낮은 곳의 모욕과 고난을 줄 것이며, 끝내 십자가의 죽음을 안겨줄 장소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예수께서는 제일 먼저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은 성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면서 이제껏 보여준 주님의 성품과는 달리, 전에 없는 분노를 발하십니다(마 21:12-13). 주님의 눈으로 확인한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교는 이미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수명을 다했고, 기도하는 집이기는커녕, “강도의 소굴”이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기는커녕 능멸하는 장소였고, 하나님 백성들의 삶을 회복하기는커녕, 그들의 삶을 핍절하게 만드는 원흉이었던 것입니다. 즉 예루살렘 성전은 마치 잎사귀만 무성했지 열매 하나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마 21:19) 흉물스런 건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이 그 장면을 목격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러한 예루살렘 성전에 미련이 남으셨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강도의 소굴이 돼 버린 성전을 통탄하시면서도, 동시에 성전으로부터 맹인과 저는 자들이 나오자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마 21:14) 이사야가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라”(사 35:5-6)고 예언한 것처럼, 예수께서는 성전은 하나님 백성들이 회복되는 장소인 것을, 바로 그 자리, 강도의 소굴에서 똑똑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실로 권위 있는 자의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말 잘하기(oratio): 권위의 상징

이런 배경속에서 오늘 본문은 처음부터 긴박하게 흐릅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이러한 예수님의 권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전과는 긴장감이 사뭇 다릅니다. 첫째는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그 장소 곧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예수님이 맞이하는 상대가 유대 사회에서 ‘지식, 경험, 화술’이라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유대 최고 권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마추어를 상대한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프로 중 프로를 상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지식 있고 권위 있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 중 하나가 “말 잘하기”(oratio)였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의 최고 정치인이자 연설가로서, 오늘날 ‘변호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쿠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106BC-43BC)와 같은 사람은 “지식인이라면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게 말을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키케로 지음, 전영우 옮김, 『연설가에 대하여』 민지사> 말 잘하는 사람이 최고의 권위를 지닌 시대였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법에 따라 판결할 ‘판사’는 있었지만, ‘변호사제도’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만약 어떤 이가 법정에 불려가면 누가 대신 변호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변호해야 했던 것입니다.<빌턴 L. 맥 지음, 유태엽 옮김, 『수사학과 신약성서』 나단> 예수님이 법정에 불려가서 당하신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지식이 많고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지 못하면 판사와 배심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설득할 방법을 찾아내는 일”(수사학)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입니다.<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수사학/시학』 숲> 그것이 권위 있는 자가 갖출 최고의 덕목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을 생각해본다면, 오늘 본문에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도발하며 던진 질문은 즉흥적으로 던진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궁지로 몰고 덫에 걸리게 할 질문을 자기들끼리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심사숙고해서 “그래, 이 질문이면 됐어! 이 질문이면 꼼짝 못하겠지!”하고 미리 준비해 온 것입니다. 그들이 준비해 온 물음은 무엇입니까?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23절)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참 좋은 질문입니다. 역시 ‘지식과 경험과 화술’을 겸비한 예루살렘 최고의 권위자들이 준비한 질문답습니다.

●내가 율법의 기준이다!

하지만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저들의 질문을 받자마자 “요한의 세례는 하늘로부터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알려주겠다.”라고 대답하심으로 저들의 입을 단번에 틀어막으셨기 때문입니다.(24-25절) 이 말을 들은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은 당황합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뭐라-뭐라 쑥덕대다가, 결국 27절에서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27절)하며 권위 없는 자처럼 꼬리를 내립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깎아내리고자 벼르고 왔건만, 정작 입을 다물고 권위 없는 자로 추락한 것은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대화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아 온 것입니다. 이로써 예루살렘 성전 최고 권력자들은 주님 말씀의 권위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다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그만,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마 12:1) 그 모습을 지켜본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말하기를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마 12:2)면서 힐난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다만 바리새인들을 향해 엄히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다”(마 12: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저 유명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마 12:8)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리새인들은 마치 자기들이 시내산의 모세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들이 율법의 기준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님 율법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함부로 적용했지만, 사람들을 정죄하며 다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성전도, 안식일도, 율법도 너희가 기준이 아니라 “내가 기준이다”라고 못 박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스위스의 신학자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는 예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절대적인 기준으로서 사람들 앞에 서 계십니다. 그분의 말씀 자체가 그것을 거부하는 이에게 심판이 됩니다.”<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신정훈 옮김, 『발타사르, 예수를 읽다』 가톨릭출판사>

참으로 탁월한 지적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 권력자들은 지금 자기들 눈앞에 “절대적인 기준”으로 서 계신 “성전보다 크신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구원이지만, 그 말씀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에 성전보다 크신 분이 28절에서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라고 물으십니다. 첫째와 둘째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더니,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 가지 않은 첫째와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가 “뉘우치고” 간 둘째 중,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31a)하시며 성전보다 크시며, 삶과 신앙의 절대적 기준이 되시는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저들은 마치 장기판 외통수에 걸린 것처럼 마지못해 대답합니다. “둘째 아들이니이다”(31) 사무엘하 12장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나단 선지자의 물음에 다윗 왕이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고백한 것처럼, 아버지의 뜻을 거역했고, 게다가 뉘우치지도 않는 자신들의 형편없는 모습을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입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이에 성전보다 크신 예수께서 저들을 향해 엄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31-3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우리에게 “은혜의 권세”로만 당신의 권위를 보여주시는 주께 감사하며 더욱 신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낮아지는 방법으로, 끝까지 참으시며 인내하시는 방법으로,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는 방법으로만 자신의 권세를 우리에게 베푸시기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성전보다 크신 이가 성전에 계신 것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때로 우리도 이미 우리 삶에 와 계신 주님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은혜로만 행하시는 주님의 권세를 가볍게 여긴 나머지, “가겠나이다, 하겠나이다, 변하겠나이다”하는 헛된 다짐에 익숙하기만 할 뿐, 결국 포도원에 들어가지 않은 첫째 아들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에서,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하신 주님의 두려운 말씀이 우리를 향한 말씀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다만 “주님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전적으로 신뢰하는” 참믿음으로 성전보다 크신 분을 여러분 삶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권세를 충만히 누리느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