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한 뿌리 붙잡은 인생”

(마 18:21-35)

<2023년 9월 17일 기독교교육진흥주일 설교 / 녹색>

●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양파 한 뿌리”-1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보면 유명한 이야기 하나가 있는데 소개할까 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참 못되고도 정말 못된 아줌마(할머니) 한 사람”이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죽고 나서 보니 이 아줌마는 살아있는 동안 착한 일을 하나도 한 게 없어서 천국에 가지 못하고 악마들이 이 아줌마를 붙잡아다가 시뻘건 불이 타오르는 지옥에 던져 넣었다고 합니다. 그가 지옥에서 고통받게 되자, 생전에 그녀를 선한 길로 인도하려고 부단히 애썼던 수호천사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저 아줌마한테는 하나님께 말씀드릴 만한 착한 일이 정말 하나도 없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번쩍하고 기억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아줌마가 자신이 가꾸던 텃밭에서 양파 한 뿌리를 뽑아다가 구걸하는 여인에게 준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이거야!’ 하고 생각한 수호천사는 득달같이 하나님께 찾아가서 그 미담 사례를 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는 바로 그 양파를 들고 가서 불바다 속의 그녀에게 내밀되 그녀가 알아서 붙잡고 기어 나오도록 해라. 만약 그녀가 저기 불바다에서 나올 수 있다면, 낙원으로 가도 좋지만, 만약 양파가 끊어진다면, 그녀는 지금 있는 그곳에 남게 되리라.”<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2』 민음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결말짓고 있을까요? 이 여인은 무사히 양파를 붙잡고 불바다에서 나왔을까요? 아니면 다시 떨어져 버리고 말았을까요? 이 여인이 무사히 양파를 붙잡고 나왔다면, 어떻게 했길래 그게 가능했을 것이고, 반대로 만약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양파 한 뿌리 붙잡은 인생”이라 정했는데,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이 우화에 나오는 여인처럼 양파 한 뿌리 붙잡은 인생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결과가 어떨지는 설교 마지막에 가서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용서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것

지난주 저는 “천국 열쇠 사용법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지난주 본문 마태복음 18장 15-20절에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땅에서 매고 푸는 일은 그저 땅의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늘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곧 우리가 매 순간 표출하는 마음과 생각, 그리고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천국 문을 열고-닫는 것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오늘 본문 21절은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시작합니다. 본문이 “그 때에”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입니까? 제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께서 ‘천국 열쇠 사용법을 가르치신 때’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주님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하오리까?”라고 물으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 열쇠 사용법’을 ‘용서’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용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까? 그런데 용서가 쉽던가요?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어느 나라든 다 용서해도, 용서가 안 되는 나라가 있습니다. ‘일본’입니다. 다른 나라한테는 져도, 일본한테 만큼은 지면 안 된다는 일종의 ‘집단 강박’이라든가 혹은 ‘집단 무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스갯소리 하나가 있습니다. 어느 날 비행기가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추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장이 말하기를 비행기에서 세 사람만 내리면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자 비행기 안에 있던 사람 중에 ‘미국, 프랑스, 한국, 그리고 일본 사람’이 나섰습니다. 제일 먼저 미국 사람이 나서더니, “위대한 미국, 성조기여 영원하라!” 소리를 치면서 비행기에서 낙하산도 없이 뛰어내립니다. 사람들은 박수치면서 그의 용기에 눈물을 흘립니다. 이어서 프랑스 사람이 나섭니다. “프랑스 혁명이여 영원하라!” 하고 역시 그도 용감하게 뛰어내립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역시나 그 고귀한 희생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 중 누가 나섰을까요? 쫀쫀하고 배짱도 없는 일본 사람은 ‘괜히 나섰다’ 싶어 무서워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한국 사람이 성큼 세 번째로 나서서 비행기 문 앞에 섭니다. 그리고 그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나서, 일본 사람을 떠밀었다고 합니다. 누가 만들어낸 우스운 얘기겠지만, 그냥 웃고 넘길 얘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용서라는 것은 너무나도 복잡한 문제라서, 결코 풀기가 쉽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세 번 vs 일곱 번 vs 일곱 번씩 일흔 번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죄를 지은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라고 예수께 묻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하면서 자신이 정한 마지노선을 언급합니다. 베드로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마태복음 6장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12절) 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기도 했고, 가는 곳곳마다 주님이 죄의 용서를 선포하신 것을 똑똑히 듣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천국 열쇠 사용법을 통해서 ‘매는 것’에 사용하지 말고 ‘푸는 것’에 사용하라는 주님의 놀라운 설교에 베드로는 큰 감화를 받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일곱 번 용서하면 충분하겠지요?”라고 큰맘 먹고 말한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 자신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신의 통 큰 배포에 스스로 깜짝 놀라, ‘이야! 내가 말하고도 너무 멋진걸!’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 사회의 랍비들은 용서에 대해 “세 번까지”라는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스다(Hisda)라는 유대 랍비는 누군가 죄를 지었다면 “세 번까지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적어도 세 번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했고, 요세이(Rabbi Yosei bar Hanina)라는 랍비는 이에 동조하면서도 “세 번 이상 용서해 줄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Yoma 87a” / sefaria.org>

그러므로 유대교적 관점에서 용서는 아무리 관대해도 “삼진아웃”이 적합하다고 가르쳐왔던 것입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자신의 호탕한 성격처럼 통 큰 결정을 한 것입니다. “주님, 저들은 세 번이지만, 저는 일곱 번 용서하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22절에 나오는 주님의 대답은 충격적입니다. 예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유대 사회는 ‘세 번’, 베드로는 ‘일곱 번’을 말했지만, 예수님은 ‘7 곱하기 70’으로 ‘490번의 용서’를 말씀하신 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490번까지만’ 용서하라 하신 말씀일 리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비유 말씀을 들어보면 그것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만 달란트의 정체

이 비유 말씀은 워낙 유명해서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먼저 23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그 종들(dou,lwn)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avnqrw,pw| basilei/)과 같다”고 하십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왕과 신하 관계’가 아니라, ‘왕과 종(노예) 관계’를 설정하시면서 왕이 종에게 결산을 추궁하는 일로 베드로에게 설명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결산할 때 종이 만 달란트 빚을 졌다”(24절)고 합니다. 하지만 종은 “갚을 것이 없다”(25절)고 합니다. 그러자 왕은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25b)고 명령하지만, 종은 납작 엎드려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26절)라고 왕에게 싹싹 빌면서 말합니다. 이에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27절)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만 달란트는 과연 얼마인가?’ 하는 점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예수님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통치하던 헤롯 안티파스가 로마 황제에게 바쳤던 일 년 세금이 “200달란트”였습니다.<요세푸스 지음, 김지찬 옮김, 『요세푸스Ⅱ』 생명의말씀사> 그래서 일반적으로 성경 주석가들은 “만 달란트는 당시 일반 노동자가 20만 년 일해서 받을 품삯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숫자가 어마어마 합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계산해 봤습니다. 지난 2022년 우리나라 1인당 GDP가 대략 3,500만 원이었는데, 여기에 비추어서 계산해 보니, 만 달란트는 요즘 돈으로 “8조 3천억 원”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이 사람이 기적적으로 20만 년을 살아서 일하면, 그 돈을 갚을 수 있을까요? 절대 못 갚습니다. 이야기 속 빚진 사람의 신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일반인, 평민’이 아닙니다. 본문은 말하기를 그는 은 30냥에 매매되는 ‘종’(노예)에 불과했습니다. 주인이 먹여주는 밥이나 먹고, 재워주는 곳에서 잠이나 자면 그만인 종이 일 년에 벌면 얼마나 벌겠습니까? 그러므로 종이 만 달란트를 갚는 것은 20만 년이 아니라 백만 년이 걸려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 달란트는커녕, 백 달란트라 해도 그는 절대 갚을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용서의 본질: 긍휼히 여기는 마음

그런데 임금이 그 종에게 뭐라 했지요? “네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25b)고 합니다. 여러분, 고작 노예 신분 일가족의 몸값에다가 그들이 가진 냄새나는 소유물을 팔면 만 달란트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은 ‘네가 나에게 빚진 것에 일말의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빚진 자의 도리 아니겠느냐?’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은 낯짝 두껍게도, 그저 철면피 얼굴을 하고서 말하기를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26절)라는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늘어놓으면서, 상황을 모면하려 듭니다. 그 속내를 보아하니, 돈은 못 갚겠고, 최소한의 성의도 보일 수 없고, 다만 ‘갚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소위 말해 ‘배 째라!’는 고약한 심보 아니겠습니까? 제가 왕이었다면, “여봐라! 거기 아무도 없느냐! 당장 이놈을 능지처참하렷다!” 하며 그자를 끌어다가 즉결심판에 처하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왕이 그를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27절)고 합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심정적으로도 왕의 결정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종은 갚을 수 없는 빚을 졌고, 빚진 것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도 이행하지 않습니다. 미안한 마음은커녕, 배 째라는 식으로 왕을 도발했는데, 왕은 왜 그런 구제 불능인 종을 불쌍히 여겼고, 그를 놓아 보냈으며, 그 빚을 탕감해 준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이처럼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그 어떤 것으로도 이해할 수 없이 일방적으로 받아 누리는 혜택을 성경은 “은혜”라고 부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이야기로 하나님의 조건없는 은혜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신 것입니다. 그를 놓아주고, 빚을 탕감해 준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하나님 성품의 본질은 긍휼이요, 그분의 가슴은 애정”<브레넌 매닝 지음, 윤종석 옮김, 『아바의 자녀』 복있는사람>인 것을 예수께서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배은망덕한 탕감받은 종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처럼 어마어마한 빚을 탕감받은 종, 그자는 그저 ‘종놈’이라 불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죄송한 표현이지만, ‘종놈’이 아닌 ‘상놈’이라 불려야 합니다. 그의 ‘신분’이 낮고 천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야박하다 못해 천박합니다. 28절을 보면 만 달란트 탕감받은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했다는 겁니다. 29절이 말하는 것처럼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라고 말했지만, 그자는 “허락지 아니하고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었다”고 합니다.

본문의 “동료”라는 말은 “동료 노예, 같이 노예된 자”(su,ndouloj)를 뜻합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이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su,ndouloj, 골 4:7)”라고 말할 때 사용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나 그나 신분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마치 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는 그 동료의 상전처럼 굴면서 동료에게 함부로 대합니다. 그가 빚진 백 데나리온은 당시 일반 노동자의 4개월 치 월급에 해당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대략 ‘천만 원’ 정도 될 겁니다. 꽤 큰돈이 분명합니다만, 방금 8조 3천억 원을 탕감받고 나온 자가, 나오자마자 자신에게 천만 원 빚진 자에게 돈 갚으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왕은 만 달란트 빚진 자를 “①놓아 보내며 ②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는 탕감받을 만한 그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했고 뻔뻔했지만, 왕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의 빚을 탕감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탕감받은 그자는 동료를 “①붙들어 목을 잡으며 ②빚을 갚으라” 했답니다. 동료가 바짝 엎드려 사정사정 해 봤지만, 그자는 동료를 옥에 가두고 만 것입니다. 왕이 행한 일에 정반대로 행한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존 C. 라일(John Charles Ryle, 1816-1900)이라는 저명한 성공회 주교는 용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용서받은 영혼은 용서합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그대로 행하기 마련입니다.”<존 C. 라일 지음, 박영호 옮김, 『옛길』 CLC> 참으로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용서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용서하지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용서받지 못했다’는 걸 증명한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만 달란트 탕감받은 이의 실체가 그렇습니다. 남이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셈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참다못해 다른 동료들이 그 사실을 왕에게 가서 이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왕은 32-34절에서 다음과 같이 그를 꾸짖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양파 한 뿌리”-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야기 속에 나오는 왕이 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였습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는 것입니다. 일전에도 제가 누차 설교를 통해 말씀드렸던 것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곧 “긍휼의 마음”은 예수님 사역의 핵심이자 본질이었습니다. 예수님 사역에서 긍휼의 마음을 빼버리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습니다. 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의 결정적인 실패는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탕감해 준 왕의 긍휼의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설교를 시작할 때 저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우화 하나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양파 뿌리 하나를 내밀되, 그녀가 성공적으로 그 뿌리를 붙잡고 올라오면 낙원에 가도 좋지만, 만약 양파가 끊어진다면 그녀는 지금 있는 그곳에 남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말을 들은 수호천사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녀에게 양파 뿌리를 내밀었습니다. 천사는 그녀를 아주 조심스럽게 당겨서 거의 다 끌어올렸습니다. 이후의 일을 도스토옙스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죄인들이 아줌마가 저리로 끌려 올라가는 것을 보고서는 다들 그녀와 함께 나가려고 그녀를 붙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줌마는 참 못되고도 못됐기 때문에 그들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나를 끌어올려 주는 거야! 너희들이 아니라! 이건 내 양파지, 너희들 게 아니야!’ 그녀가 이 말을 하기가 무섭게 양파가 툭 끊어져 버렸다. 그후로 아줌마는 불바다 속으로 떨어져 오늘날까지 타고 있다. 천사는 울면서 떠나갔다.”<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2』 민음사>

참으로 안타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파 뿌리 하나를 붙잡고 지옥에서 거의 빠져나오던 찰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갑자기 달려드는 다른 죄인들로 인해 다시 불바다 속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에게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 장면을 두고,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가르치는 석영중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탁월하게 해석합니다. “그녀는 양파 한 뿌리를 물질로 보았다. 그랬기 때문에 양파에 여러 명이 매달리면 끊어질 것이라 파악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양파는 양이 아니고 숫자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다. 그것은 은총이다.”<석영중 지음, 『인간 만세!』 세창출판사>

●용서의 사람, 은혜의 사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은 이 소설에 나오는 여인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그는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목숨으로도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지만, 왕은 그의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빚을 탕감해 준 이유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곧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흘러나와야 할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탕감받은 자로서, 용서받은 자로서의 겸손과 감격, 그리고 감사여야만 했습니다. 은혜받은 자로서 은혜만이 그에게서 흘러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왕의 은혜를 망각한 그는 자신에게 빚진 자를 매몰차게 대하더니 끝내 그를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양파 한 뿌리를 붙잡고 지옥 불을 빠져나오던 그녀는 그 양파 한 뿌리가 하나님의 은총인 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를 끌어올려 주는 거야! 너희들이 아니라! 이건 내 양파지, 너희들 게 아니야!”라고 소리쳤고, 그녀를 붙잡는 사람들을 걷어찼으며, 그 순간 양파 뿌리가 ‘툭~’ 하고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이 말씀은 용서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씀인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내려주신 양파 뿌리를 은혜로 여기지 못하고 자기 것이라 주장하다가 결국 다시 지옥불에 떨어져 버린 여인처럼,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의 용서를 거부하고 자신이 만든 지옥에 갇혀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준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설 속 여인이 여러 명이 매달리면 양파 뿌리가 끊어진다고 생각한 것처럼, 주님의 은혜는 양파 한 뿌리처럼 가냘프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독점하려고 하면 끊어집니다. 그러나 나누면 나눌수록, 수만 명이 붙잡아도 끊어지지 않는 튼튼한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주님께 물었을 때, 주님이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만큼 용서하라”는 뜻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가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라”(히 12:15)고 권면하는 것처럼, 여러분 모두 ‘하나님 은혜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은 마치 양파 뿌리와 같은 주님의 은혜를 겸손히 붙잡고 사는 삶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삶의 모든 순간마다 주님의 긍휼하심을 기억하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