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마 20:1-16)

<2023년 9월 24일 성령강림 후 제17주 설교 / 녹색>

●초대교회의 가난한 자에의 관심

오늘 저는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대한민국의 ‘가왕’이라 불리는 조용필의 노래 “친구여”의 노랫말에서 따온 것이기도 한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좋은 친구 되신 주님이 우리를 친구라 부르시는 의미를 살피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만약 제가 설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력한 정치인이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 가정한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중에 혹시 제가 잠깐 설교를 멈추어서 그 사람을 환영하면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 계실까요?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대교회 때 아마도 이러한 일이 종종 있었는지는 몰라도, 초대교회의 문헌을 보면 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배가 진행 중이고 설교가 시작되었다면, 설사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설교다. 누구도 설교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사도교훈』(The Didascalia Apostolorum) 중에서>

어찌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 같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가난하고 굶주린 노숙자 한 분이 설교 중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초대교회 당시 이런 일들도 종종 있었는지는 몰라도 다음과 같은 지침이 있습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멈추고, 그 가난한 이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그들에게 성직자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충심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대가 땅바닥에 앉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사도교훈』(The Didascalia Apostolorum) 중에서, 앨런 크라이더 지음, 김광남 옮김,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 IVP에서 재인용>

이처럼 초대교회는 가난한 자, 낮은 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초대교회 신앙인들이 가졌던 묵중한 신앙적 물음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과연 부자이면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다수의 문헌들을 보면 부유한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메시지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 약 100년쯤 뒤에 저술된 『목자』라는 책을 보면 “부자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재산을 헛되이 써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와 과부와 고아를 도우라고 부자에게 재물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관계는 “포도줄기가 느릅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관계”로 설명하면서 둘은 함께 의를 이루고 선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헤르마스 지음, 하성수 역주, 『목자』 분도출판사>

이로부터 200년쯤 더 지나서 암브로시우스(Sanctus Ambrosius, 340~397)라는 초대교회 교부는 이렇게 풍자적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부자들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려고 애쓰기는커녕 오히려 재산이 넘치게 많아 불안해하면서 가난한 사람의 목소리를 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Quid faciam?) 이것은 살아갈 방도가 없는 가난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닙니까?”<암브로시우스 지음, 최원오 역주, 『나봇 이야기』 분도출판사> 재산이 많아 부유하면서도 늘 자족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당시 부자들을 향한 풍자였던 것입니다.

●노동의 기본 원칙과 본문

고대 사회는 사회 안전망이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하고 형편없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교회의 역할은 대단이 컸고, 결정적이도 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 부흥의 가장 큰 원동력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교회의 따뜻한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가 가난한 사람들,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연약한 사람들을 끝까지 돌보려 했던 근거 중 하나가 오늘 우리가 나눈 마태복음 20장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읽는 사람에 따라 누구에게는 감동적인 말씀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본문이 말하는 예수님의 경제 논리는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시대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날 누군가 이런 식의 경제 논리로 사업을 한다면, 금세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노동의 기본 원칙>이라는 게 있지요? 소위 말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Equal Pay for Equal Work)이라 해서 “성별, 연령, 직급에 관계없이 같은 노동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이러한 원칙을 생각해 보면, 본문의 예수님 말씀은 오히려 불합리하게 들리고, 심지어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려 하신 걸까요? 그리고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무엇을 요청하고 있는 것일까요?

●포도원 주인의 행보 1-2-3-4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다”(마 20:1) 하시며 비유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날 인력시장 같은 곳에서 그날-그날 일감을 얻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이 보통이었습니다. 물론 그조차도 쉬운 것은 아니었고, 장터에 나가서 빨리 일감을 얻게 되면 그날은 운수대통한 것으로 여기곤 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일거리를 찾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 아침에 나간 포도원 주인은 그 시간 만난 품꾼들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하고 품꾼을 고용합니다. 아마도 새벽 6시쯤 되었을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이면 많이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박하게 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루 일당으로는 적당한 금액입니다. 이 사람들은 장터에 나오자마자 선택받고 일거리를 찾았으니 분명 횡재한 것입니다. 그래서 품꾼들은 주인에게 연신 꾸벅 인사를 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포도원 주인은 “제삼시”, 그러니까 ‘오전 아홉시’에 다시 장터에 나갑니다. 포도원 주인은 이번에도 직접 장터에 나갔는데 거기서 놀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포도원에 와서 일하겠냐고 물으니, 그들이 마다할 리가 없습니다. 선뜻 ‘일감을 주십시오. 일하겠습니다!’ 대답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들에게 정확한 액수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4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고 대답하는데, 성경원어로 보면, “정직하게, 정당하게”(di,kaioj, I will pay you whatever is right) 주겠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자 품꾼들은 인심 좋게 생긴 포도원 주인이 분명 일당을 잘 챙겨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신이 나서 포도원에 들어갑니다.

본문 5절로 넘어가면, 이 오지랖 넓은 포도원 주인은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서 그와 같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낮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에도 장터에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전 아홉 시에 만난 품꾼들에게 했던 약속과 똑같은 약속을 그들에게도 주면서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해가 중천에 뜬 그 시각에 일감을 얻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하던 때에 포도원 주인이 나와서 일감을 주었으니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들은 “나으리, 감사합니다요!”하면서 포도원 주인을 향해 연신 굽신대며, 오전에 일거리를 찾은 품꾼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감격으로 힘든 줄 모르고 포도원에서 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충격적이게도 6절을 보면 우리의 장하고 장한 포도원 주인은 “제십일시” 곧 ‘오후 다섯 시’에, 그러니까 ‘하루 일과가 끝나기 한 시간 전’에 장터에 또 나간 것입니다. 이번에도 직접 나갑니다. 포도원 주인이 그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o[lhn th.n h`me,ran) 놀고 여기 서 있느냐?(6절)”라고 묻자, 울고 싶은 아이 뺨 맞은 격으로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7절)라고 울먹거리듯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오후 다섯 시에 선택받은 자의 삶

인력 시장에서는 보통 일머리 있어 보이고, 힘깨나 쓸 것 같은 사람들은 제일 먼저 차출됩니다. 마지막까지 일감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나이가 많거나 몸이 불편해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도 이른 아침부터 장터에 나왔지만, 하루가 다 가도록 불러주는 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지옥과도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그 시간까지 거기를 떠나지 못한 것은 ‘혹시나 일감을 얻을까’하는 기대감이 아닙니다. 갈 곳이 없어 막막했던 것입니다.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것을 보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울 듯 말 듯, 그저 멍하니 장터를 서성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무리를 생각하면서 덴마크의 작가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원은주 옮김, 더클래식)가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읽은 동화 대부분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유일하게도 이 동화는 슬프게 끝납니다. 동화 속 소녀는 추운 겨울 맨발로 거리를 다니며 성냥을 팔아 보려 하지만, 아무도 그 소녀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소녀는 인적 드문 어느 골목에 웅크려 앉아 얼어붙은 손을 녹이려고 성냥을 켭니다. 그리고 마지막 성냥불을 켜자 환상 속에서 그리운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그대로 얼어붙어 숨을 거두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오후 다섯 시 장터”는 성냥팔이 소녀가 웅크려 앉은 “인적 드문 골목”과도 같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처럼, 품꾼들은 거기서 무기력함과 열등감 그리고 불안감과 우울함에 휩싸이는 ‘총체적 절망’을 경험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 절망의 시간, “오후 다섯 시”, 그 절망의 장소, “장터”에 포도원 주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7절)고 말입니다. 포도원 주인의 얼굴빛과 그 입술에서 나오는 복된 말로 인해 하루종일 지옥같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이제야 구원의 빛을 받고, 희망의 옷으로 갈아입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포도원 주인은 ‘내가 너에게 얼마를 주겠다’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받은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분명 나머지 시간이 얼마가 됐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일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의 발생: 먼저 온 품꾼들

이윽고 하루가 다 저물어서 품꾼들에게 일당을 줄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포도원 주인이 보여준 은혜로운 이야기로 가득했지만, 이제 문제가 발생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주님의 은혜와 긍휼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지만, 그것을 온전히 받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였을까요?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유에 나오는 품꾼 중에 가장 운 좋은 사람은 누구였고, 제일 가엽고 불쌍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이른 아침에 선택받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행운아였습니다. 그들은 장터에 가자마자 주인으로부터 선택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하루는 종일토록 행복한 하루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선택받은 사람들의 하루는 해가 떠 있어도 어둡고 우울했을 것입니다. 지옥처럼 하루를 산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던 포도원 주인은 기쁨의 순서를 전복시킵니다. 그래서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8절)고 명하면서, 나중 된 자에게 먼저 하루 일당을 지불합니다. 포도원 주인의 따뜻한 마음이 엿보입니다. 게다가 얼마를 주는가 봤더니 그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포도원 주인의 통 큰 배포와 넉넉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다섯 시에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마음, 객관적으로는 말이 안 됩니다. 부당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지급하는 포도원 주인의 마음, 주님은 그것이 천국과 같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훈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먼저 온 자들이 불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0-1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먼저 온 자들(oi` prw/toi, 첫 번째로 온 자들)이 불평했다고 합니다. 중간에 온 사람들은 말도 하지 못하고 관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포도원 주인이 약속을 안 지켜서가 아니라, ‘약속을 곧이곧대로 지킨 것’으로 불평합니다. 먼저 온 자들은 말하기를, 포도원 주인이 한 데나리온씩 똑같이 임금을 주었기 때문에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자기들과 같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일 수고하고 더위를 견뎠다”는 말을 성경 원어로 보면 “하루의 무게와 뜨거운 열기의 무게를 견뎠다”(to. ba,roj th/j h`me,raj kai. to.n kau,swna))는 매우 부정적인 뜻입니다. [새한글성경]은 이 본문을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하고 불볕더위를 견뎠다”(마 20:12b)고 옮기면서 저들의 삐뚤어진 속내를 고스란히 나타내 보여줍니다.

●절대적 은혜를 상대적 은혜로

저들의 말을 누가 들으면, 전후 사정을 다 빼고 이 말만 들으면, 포도원 주인이 저들을 강제노동이라도 시킨 줄 알겠습니다. 저들이 전혀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강제로’ 시켜서, 온종일 죽 노동에 시달리다가 겨우 풀려난 무슨 범죄 사건의 억울한 희생자라도 되는 줄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은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새벽같이 나왔다가 신체 조건도 좋고 운도 따라서 이른 아침 제일 먼저 선택받아 힘든 줄도 모르고 신명 나게 온종일 일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 하루를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산 사람들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중앙에 서 있는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먼저 온 품꾼처럼 보이는데, 그는 포도원 주인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따지고 있습니다. 그 오른편에 빨간 모자를 쓰고 다소 꾸부정한 채로 서 있는 사람이 아마도 오후 다섯 시에 선택받은 사람처럼 보이는데, 작가가 다소 어둡게 그리고 있는 그 얼굴 표정을 자세히 보면 마치 “제가 정말 이걸 받아도 되겠습니까?” 하면서 관리인이 주는 돈을 겸연쩍어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저 기골이 장대한 사람의 손을 보면, 한 손은 ‘손가락 하나’를, 다른 손은 ‘손가락 세 개’를 펴고 있는데, 마치 “어이, 포도원 주인 양반, 나한테 한 데나리온을 준단 말이오? 저런 놈한테 한 데나리온을 줬으면 나한텐 적어도 세 데나리온은 줘야 맞지 않소? 뙤약볕 밑에서 뼈 빠지게 일했더니 저런 시시껄렁한 놈하고 나를 동급으로 취급한단 말이오!” 하며, 몹시 화가 나 있는 듯 보입니다.

이른 아침 한 데나리온을 약속받고 온종일 행복했던 그가 지금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습니까? 온종일 감사한 마음으로 행한 노동이 왜 갑자기 “불볕더위를 견디며 뼈 빠지게 일한 강제노동”으로 돌변한 것입니까?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 자기에게 베푼 포도원 주인의 은혜를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와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비교한 바로 그 순간, 포도원 주인이 베푼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니라 자기가 마땅히 받아‘내야’ 하는 “당당한 보수”라 주장하고,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는 일도 안 하고 받는 “불로소득”으로 보인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간교합니다. 내가 받는 건 당연한 권리지만, 다른 사람이 받는 건 참을 수 없는 혜택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에게 베푼 은혜는 “절대적인 은혜”였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포도원 주인은 저들이 처한 상황에 꼭 맞는 절대적인 은혜를 베풀어준 것입니다. 그 은혜는 누구와 비교하며 너털댈 수 있는 “상대적인 은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두 종류의 친구: 헤타이로스, 필로스

이에 예수께서 13-16절로 말씀하십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예수께서 저들을 향해 “친구여”라고 부르는 것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친구’는 성경 원어로 “헤타이로스”(e`tai/roj)라고 하는데, 마태복음에만 딱 세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곧 마태복음 22장에서 ‘혼인 잔치에 예복을 안 입고 온 사람’을 향해 왕이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마 22:12)고 타박할 때, 그리고 마태복음 26장에서 배신의 아이콘 가룟 유다를 향해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마 26:50) 말씀하실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포도원 주인의 절대적인 은혜를 망각하고 상대적인 은혜로 전락시켜버린 “먼저 온 품꾼들”을 책망하실 때 이 단어가 사용된 것입니다.

친구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좋은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친구를 나타내는 또 다른 단어가 있습니다. “필로스”(fi,loj)라는 단어입니다. 주님이 나사로를 향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요 11:11)라고 친밀하게 부르실 때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요 15:13) 하시며 소중한 존재로서 친구를 언급할 때 주님은 “필로스”(fi,loj)라는 말로 친구를 부르셨습니다.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주님이 우리를 친구라 부르신다면, 나사로를 부르시듯, 애틋하고도 친밀한 음성으로 “친구야!”하고 부르시겠습니까? 아니면 가룟 유다를 책망하시듯 우리에게 “정신 차려, 이 친구야!” 하시며 질책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이 두 개의 친구라는 단어, “헤타이로스와 필로스” 중에 무엇에 합당한 신앙입니까?

이런 물음 속에서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조용필의 노랫말에서 빌려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로 정했습니다. 이 노랫말은 이른 아침 6시, 가장 이른 시간에 먼저 선택받은 품꾼들을 향한 포도원 주인의 질책이었습니다. “친구여, 이른 아침 내가 그대를 불렀을 때, 그 절대적 기쁨, 그 절대적 감격, 그 절대적 감사의 모습은 어딜 갔나?” 하고 말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절대적 은혜를 망각한 본인의 잘못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노랫말은 121년의 역사로, 서울에서 여덟 번째로 세워진 교회로서 한국 선교 초기에 복음의 수혜를 입은 우리 서강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으로 회개하며 듣습니다. “친구여, 서강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 그 순수한 신앙의 모습은 어딜 갔나?” 만약 주님이 이렇게 물으신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친구여, 그대들이 한 손에 성경을 들고 예배당을 찾던 그 감격스러운 신앙의 발걸음은 어딜 갔나?” “친구여, 처음 찬송이 이 예배당에 울려 퍼졌을 때, 처음 하나님을 알고, 신앙의 기쁨으로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그 모습은 어딜 갔나?” 주님이 이렇게 물으신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친구여, 정녕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려는가?” 만약 주님이 오늘 본문 16절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감사가 사라지고, 감격이 가라지고, 그 자리에 불평이 들어와 차지하는 순간, 가장 먼저 왔으면서도 그들은 가장 끝자리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이러한 주님의 뼈 아픈 물음 앞에 정직하게 응답하고, 겸손하게 회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비추시는 주님의 얼굴빛을 향해 우리 모두 고개를 돌리기를 바랍니다. 먼저 왔더라도 오후 다섯 시에 겨우 부름을 받은 ‘오후 다섯시 품군의 영성’으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서, 그 부르심과 이끄심으로만 살아가는 믿음의 서강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