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이키시며 하신 말씀”

(마 16:21-25)

<2023년 9월 3일 성령강림 후 제14주 교역자보건주일 설교 / 녹색>

●우상의 도시 ‘빌립보 가이사랴’

지난주 우리는 헤롯 빌립이 통치하던 빌립보 가이사랴 지역에 대해서 나누었는데, 이 지역은 구약으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우상숭배의 본거지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도시 이름을 되새겨 보면, 첫째로 구약성경에서 이곳은 “바알-갓”(Baal-gad)이라 불렸습니다. 여호수아서 11-13장을 보면 이 도시는 저 악명 높은 바알 신을 숭배하던 곳으로 소개됩니다. 둘째로 주후 320년 경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356-323BC)이 이곳을 정복한 뒤에 이 도시는 “파니아스”(Pan-eas)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god Pan)이라는 염소 신에게 풍요를 구하는 도시가 된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이 도시의 세 번째 이름은 “빌립보 가이사랴”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신화에 나오는 존재를 신격화해서 우상으로 숭배한 것이라면, 어처구니없게도 이제는 로마 황제라는 ‘인간’을 숭배하는 도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도시는 성경에서 우상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바꾼 유일한 도시로 낙인찍힙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우상의 도시’였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신 예수님의 물음 앞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고 대답한 것은 단순한 고백이 아닙니다. 육신은 물론이고 영혼까지도 집어삼킬 것 같은 무시무시한 우상 앞에서 베드로는 유일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놀라운 사랑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아름다운 고백을 묵상하다가, 저는 문득 이해인 수녀님이 쓰신 “황홀한 고백”이란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말하기를, “사랑한다는 말...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이해인 지음 『이해인 시전집1』 문학사상사>이라 했습니다. 주님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 고백은 그 자신 뿐만 아니라, 이후 기독교 역사 2천 년 동안 어둡고 무서운 터널을 지나야 했던 수많은 신앙인의 앞길을 환하게 비춰 주었던 등불이었고, 그들의 영혼이 다시 기지개를 펴고 훌쩍 키가 자라게 해주었던 위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러한 베드로의 고백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그에게 든든한 “반석”이라는 이름을 주셨고, “천국 열쇠”까지도 성큼 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고난당하고, 죽임당하고, 살아나야 하리라

오늘 본문은 이러한 지난주 본문에서 이어지는데,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예수님 일행은 아직 빌립보 가이사랴에 머물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속한 마태복음 16장을 지나 17장으로 넘어가면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오르셔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다”(17:1)고 하는데, 학자들에 따라 다소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이 산이 모르긴 몰라도 지난주에 나누었던 “헐몬산”(Mount Hermon)일 것이고, 우리가 아는 변화산을 의미할 것입니다. 변화산에 오르시기 전에 “엿새 동안” 머무셨다는 걸 보면, 예수께서는 아직 우상의 도시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뭔가 더 하실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오늘 본문으로 예수님의 사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즉 21절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다”고 하는데, 본문이 “이때로부터”라고 말하듯이 이제는 ‘전과 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성경원어로 보면 “이때로부터 예수께서 보여주셨다!”(VApo. to,te h;rxato o` VIhsou/j deiknu,ein)라는 말이 앞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안 보여주신 것을 이제부터는 보여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이제부터 보여주실 것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고난을 당하고, 둘째, 죽임을 당하며, 그리고 셋째는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멘붕’이 왔습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부족한 것을 깨달은 적은 많지만,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병자를 도시 곳곳에서 고쳐주셨고, 귀신을 내쫓기도 하셨고, 5천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4천 명이 넘는 이방인들까지도 먹이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풍랑을 만나 위태할 때면 말씀으로 바람과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서 갈릴리 구석구석을 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따라다니기 잘했다!’ 싶었을 것입니다. 특별이 그들은 난생처음 이방인 지역으로 국경을 넘어 ‘두로와 시돈’에도 다녀왔습니다. 말하자면 국내 선교 뿐만 아니라 해외 선교도 수료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력이 붙을 만큼 붙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제는 베테랑 제자가 된 것입니다. 군대로 치면 병장 계급에 공수훈련까지 받아 가슴에 공수 마크를 달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돌아온 말씀은 청천벽력이었습니다. ‘고난’이라니요? ‘죽음’이라니요?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입니까? 목숨 걸고 싸우려고 특수 훈련까지 받았더니, 싸움을 앞두고 지휘관이 항복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비록 주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덧붙이셨지만, 그 말씀이 흥분한 제자들 귀에 들릴 리 만무합니다.

●앞에 나서는 베드로

이처럼 이해하지 못할 말을 듣고서 베드로가 앞에 나섭니다. 함부로 나설 일이 아니란 것쯤은 압니다. 한번 잘못 나섰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적도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금 베드로는 그때와는 다릅니다. 그는 지금 의기양양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으로 주님을 감동시키지 않았습니까? 그 말로 인해 “반석”이라는 이름도 얻고, “천국 열쇠”도 주신다고 하셨으니, 제자 중 나설 사람은 의당 자기밖에 없습니다. 이에 ‘할 말은 해야겠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나?’ 싶은 의협심이 그의 등을 떠밉니다. 그리하여 그는 ‘내밀어서는 안 될 발’을 주님께 내딛더니,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을 하고 맙니다.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기서 “항변하다”는 번역은 너무 베드로의 입장을 과하게 대변하는 의역입니다. 성경 원어로 보면 이 말은 “꾸짖다”(evpitima,w, rebuke)는 뜻으로 예수님이 “마귀의 힘을 제어하실 때”(“When Jesus breaks the power of the unclean spirit”) 사용되는 표현입니다.<Horst Balz and Gerhard Schneider, EDNT, William B. Eerdmans> 지금 베드로는 단순히 예수님 말씀에 반항하듯 따지고 있는 게 아니라 물리력을 동원해서 예수님을 윽박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이 말씀을 성경 원어에서 직접 옮겨봤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더니(또는 ‘붙잡더니’) 그를 말로 꾸짖기 시작했다. 결단코 그럴 수 없소! 주님, 이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kai. proslabo,menoj auvto.n o` Pe,troj h;rxato evpitima/n auvtw/| le,gwn( {Ilew,j soi( ku,rie\ ouv mh. e;stai soi tou/to))

그는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라 분노하고 있습니다. 비록 여전히 ‘주님’이라 부르며 예의를 갖추는 듯 보이기는 하지만, 베드로의 우악스러운 손에 힘이 들어가고, 그의 눈에서는 불꽃을 쏟아낼 것처럼 예수님을 몰아세웁니다.

●단호하게 돌이키신 예수

그런데 베드로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의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결단코 그럴 수 없습니다. 주님, 이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베드로라면, 우리 중에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냥 ‘주님, 그러십시오. 잘 생각하셨습니다. 어서 고난받으시고, 어서 가서 죽으십시오’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 앞에 닥칠 화를 피하시라’고, ‘이렇게 쉽게 죽을 수는 없는 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베드로는 ‘실수’했습니다. 아니, 베드로는 제자로서 ‘실격’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베드로에 대해 리처드 보캄(Richard J. Bauckham, 1946-)이라는 영국의 신학자는 “베드로는 제자가 된다는 게 뭔지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기에, 그의 실패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습니다.<리처드 보컴 지음, 김동규 옮김 『십자가에서』 터치북스>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베드로는 분명 주님의 제자였지만, 그의 제자도는 주-뜻대로 제자도가 아니라 내-맘대로 제자도였다”고 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언제나 따를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주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위해 무엇이든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 욕망을 채워주시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위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목숨을 버릴 그럴싸한 명분을 유지해준다면 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자기 생각(뜻)에서 벗어나는 예수’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우악스럽게 붙들고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단호하십니다. 23절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돌이키셨다”고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돌이키실 때’는 뭔가 단호히 결단하실 때였습니다. 누가복음 7장을 보면 예수께서는 백부장의 놀라운 믿음을 보시고 “돌이키셔서”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눅 7:9)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9장에서는 혈루증 앓던 여인을 향해 “돌이키시며”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 9:22)고 선포하셨습니다. 둘 다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시기 위해 “돌이키셔서”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정반대 이유로 단호히 돌이키십니다. 예수께서는 벌써 여러 번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작은 자!”라고 꾸짖으신 적이 있지만(마 8:26, 14:31), 이번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뭔가 싸한 분위기가 이 장면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갑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우악스럽게 붙잡고 있는 베드로의 손을 뿌리치시듯 “돌이키셔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a절)라고 말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말씀을 하십니다.

●돌이키시며 하신 말씀: 지옥 열쇠, 걸림돌

예수께서 “돌이키셔서” 하신 말씀은 세 가지 이유로 너무나도 충격적입니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Satana/j)이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아셔야합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 ‘같다’고 하신 게 아닙니다. ‘네가 사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수께서 “천국 열쇠”를 준다고 하실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베드로가 이제는 열쇠를 바꿔 쥐게 생겼습니다. 사탄이 천국 열쇠를 쥐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졸지에 사탄이 된 베드로가 가질 수 있는 열쇠라면 무엇입니까? 말하기도 무시무시하지만 ‘지옥 열쇠’입니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ska,ndalon)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걸림돌’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실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 말씀하셨습니다. ‘반석’이었던 베드로가 졸지에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무려, 심지어, 예수님을 걸려 넘어지게 할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너무 절망적이라서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베드로의 추락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향한 위대한 고백으로 순식간에 태양을 향해 높이 날아올랐지만, 그의 날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Icarus)처럼 밀랍으로 만들어졌는지, 이내 너무나도 빠르게 녹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제 발로 걷어 차버리는 ‘속도’가 너무도 빨랐습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말씀과 더불어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뒤로 물러가라”({Upage ovpi,sw mou, 23a절)고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원어의 의미를 살려 짧게 말하면 “내 뒤로!”입니다. 왜 ‘뒤로 가라’고 하십니까? 베드로가 주님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 있으니 주님이 가는 길을 막는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뒤로 가라’ 말씀하신 것은 새삼스러운 게 아닙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주님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라”(Deu/te ovpi,sw mou)(마 4:19) 하신 말씀도 역시 성경 원어의 의미를 살려 짧게 말하면 “내 뒤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사탄아, 내 뒤로!”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뒤에 서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주님의 ‘제자요 사도’지만, 주님 앞에 서면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는 ‘사탄’입니다. 베드로도 그럴진대, 우리라고 예외가 있겠습니까? 주님 뒤에 겸손히 따르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지만, 주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는 일은 주님의 길을 가로막는 “사람의 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걸림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 서두에서 확인했듯이 예수님과 제자 일행은 아직 저 악명높은 우상의 도시 빌립보 가이사랴에 머무는 중입니다. 그곳이 우상의 도시인 것은 바알 신, 판신 그리고 로마 황제를 숭배하던 도시의 내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들어보니, 정말 무서운 우상은 그 도시에 있는 바일 신도 아니요, 판 신도 아니며, 로마 황제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허접스러운 것들은 예수님의 길을 막지 못합니다. 주님은 그 불온한 도시와 추잡한 신전을 향해 ‘앞길을 막아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며 호통 한번 치실만도 한데, 그런 것 따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에만 골똘하는 베드로를 향해, 돌이키시며 “사탄아, 내 뒤로! 너는 걸림돌이다!”라고 서릿발 같은 말씀으로 꾸짖으셨습니다. 흉악한 우상은 빌립보 가이사랴 신전에 있는 게 아니라, 베드로 ‘안에’ 있는 걸 보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속히 “내-맘대로 제자도”를 버리고 “주-뜻대로 제자도”를 회복해야 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성가인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 of Hippo, 354-430)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처절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기가 싫어서 내 등 뒤로 던져 놓았는데, 주님은 등 뒤에 있던 나 자신을 들어다가 나의 코앞에 들이미시면서, 내가 얼마나 추악한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뒤틀려 있고 더러우며, 얼마나 많은 흠집과 종기로 뒤덮여 있는지를 보지 않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역겹고 끔찍했지만,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박문재 옮김, 『고백록』 CH북스>

어거스틴의 고백은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적나라해서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게 어디 어거스틴 만의 일입니까? 베드로의 고백이며,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광대하신 주님의 뜻을 좁다란 자기 생각에 구겨 넣는 “내-맘대로 제자도”를 고집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국 열쇠도 빌립보 가이사랴의 길 위에서 잃어버리고 주님의 앞길을 막는 흉물스러운 걸림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십자가 그늘 아래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에게 해법을 주셨습니다. 2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절)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라” 말씀하십니다. 곧 “내-맘대로 제자도”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곧 “주-뜻대로 제자도”를 살라는 것입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는 모든 것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앨리스터 맥그러스 지음, 정득실 옮김, 『십자가로 돌아가라』 생명의말씀사>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 무엇을 올려놓습니까? 우리는 십자가 그늘에 거할 때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십니까? 우리는 보통 내가 자신 있는 것,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 남에게 보이고 싶은 것만 잔뜩 십자가 위에 올려놓습니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는 ‘모든 것을 십자가에 올려야 한다’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서 있고자 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가려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 위에 올려놓습니다. 내 말과 내 행동과 내 생각까지도 십자가 그늘 아래 내려놓습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그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정원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내-맘대로’가 아니라 ‘주-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포하심으로 “사람의 일”을 완전히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베드로에게 “돌이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a절)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큰 찔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말씀으로 인하여 때때로 천국 열쇠를 분실하고 우왕좌왕했던 우리의 신앙을 비추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반석이 아니라 주님의 걸림돌이 되는 삶을 산 것으로 인해 주님 앞에 회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는 “사람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녹이고 변화시키는 유일한 제련소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내-맘대로 제자도”가 “주-뜻대로 제자도”로 변하는 유일한 훈련소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것을 뒤엎고, 진리를 판단하는 완전히 새로운 판단 기준”<데렉 티드볼 지음, 정옥배 옮김, 『십자가』 IVP>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훈련소에서 한 명도 낙오하지 않고, 여러분 마음의 기준으로 세워진 우뚝 선 십자가로만 살아가는, 그 십자가 그늘 아래서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