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 구원의 결국은 어떠한가?”

(창세기 9장 7-29절)

<2024년 3월 3일 사순절 제3주, 삼일절 기념 주일 설교 / 보라색>

●삼일절 기념주일과 서강교회

오늘은 2024년 사순절 제3주이자 1919년에 일어난 ‘삼일운동’ 105주년을 기념하는 <삼일절 기념주일>입니다.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 자주의 목소리 “대한 독립 만세”를 오늘에 기억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영토와 민족이 강제로 수탈당하며 점령당했을 때, 목숨을 바쳐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외쳤던 위대한 선조들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날을 우리 서강교회가 기념하는 것은 또 다른 뜻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매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게 되지만, 3.1운동을 위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최성모 목사님과 이필주 목사님”은 우리 서강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셨던 분들이십니다. 또한, 우리교회의 “어윤희 장로님”은 3.1운동 당시 개성 일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시다 투옥되신 뒤로도 옥중에서 유관순 열사와 함께 옥중 만세운동을 벌이셨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서강과 마포 지역에 있어서 3.1 운동의 중심지였고, 성도들은 우리 교회 뒤편에 있는 ‘와우산’에 올라가 하나님이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구원해 주시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만세’를 부르며 횃불을 밝혀 시위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운영했던 ‘서강의법여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 또한 3.1 운동에 앞장선 것으로 유명합니다. 여선교회가 태극기를 만들면, 남선교회의 “이계창 권사님, 정호석 권사님, 고두영 권사님, 양정석 권사님, 최석주 권사님” 등의 독립지사들이 가가호호 태극기를 전하며 독립운동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러한 뜻깊은 <삼일절 기념주일>이자 사순절 셋째 주인 오늘, 이 나라와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과거 우리 교회의 역사 속에서 동행하셨고, 이제 우리 교회의 미래를 밝혀주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풍당당에 이은 신세계 교향곡

새해 들어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창세기 1장부터 오늘 9장까지, 그동안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고 인간이 창조되었고, 인간이 타락해서 쫓겨났으며, 그로 인해 대홍수 심판이 일어난 과정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지난주 8장 말씀으로 대홍수 심판은 끝나고 당대 유일한 남은-자로 살았던 노아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가 극적으로 보존된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창세기 9장은 하나님의 대홍수 심판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립니다. 노아의 가족들과 짐승들이 방주에서 하선할 때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s)이 연주되었다면, 오늘 본문 9장 전반부에서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From the New World) 4악장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이 장엄한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하나님은 창세기 9장 1절과 7절에서 두 번씩이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에게 처음으로 주셨던 축복이 노아 방주로 인해 구원받은 신세계에 다시금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에서 이어지는 오늘 본문 9장 9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은 대홍수에서 살아난 피조물과 언약을 맺어주시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내가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창 9:11)는 언약입니다. 이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굳은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13절에서 하나님은 구름 사이에 뜬 ‘무지개’를 보여주시며 그 언약의 증거를 삼으십니다(창 9:13).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과 무지개를 통한 언약의 확증을 주시는 내용에 있어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활과 무지개

첫째로, 하나님은 이 언약을 노아의 가족에게만 주신 게 아니었습니다. 9-10절은 말하기를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온 땅의 모든 짐승에게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만이 아니라 들판의 짐승들과도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은 놀랍다 못해 차마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들의 짐승들에게도 창조주로서의 예를 갖추신 것입니다. 이로써 더욱 분명해진 것은 사람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며,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평화하고 공존해야 하는 ‘하나님 언약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언약을 확증하시며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무지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케쉐트’(qesheth, tv,q,)라 하는데, 이 말은 원래 사냥이나 전쟁 때 사용하는 ‘활’(bow)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고대 전쟁에 있어서 활은 상대방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하고 결정적인 무기였습니다. 고대 바빌론의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엘리쉬>에 보면, ‘마르둑’(Marduk) 신이 ‘티아맛’(Tiamat)이라는 바다의 신을 죽이고 티아맛의 몸으로 천지를 창조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마르둑이 사용한 무기가 ‘활’이었습니다.

마르둑 신은 “활과 활통을 옆에 차고, 그 앞에 번개를 장전하여” 티아맛에게 활을 쏘아서 배를 맞힙니다. 번개로 된 화살은 “티아맛의 내장을 꿰뚫고 심장을 갈랐다”고 합니다.<제임스 프리처드 편집, 강승일 등 옮김 『고대근동 문학선집』 CLC> 이처럼 고대 바빌론 신화에서 ‘활’은 무자비한 전쟁을 상징합니다. 활에는 살기등등한 날카로운 번개가 걸려 있고 활은 언제나 적을 향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무지개는 날카로운 화살이 없습니다. 무지개를 영어로 ‘rainbow’라 하듯이, 그저 ‘비’(rain)가 ‘활’(bow)의 모양만 이룰 뿐입니다. 게다가 무지개의 방향은 땅을 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걸려 있습니다. 언약을 확증하시는 하나님이 스스로 무장해제 하시며 무지개를 통해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평화를 선사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언약의 증거, 언약의 확증으로 주신 ‘무지개’는 땅 위의 피조물만을 위한 게 아니라, 실로 놀랍게도,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본문 15-16절을 보면, 하나님은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그것으로 “내가 나와 너희 사이에 맺은 언약인 것을 기억하겠다(‘자카르’, rk;z")”고 두 번이나 강조하며 말씀하십니다. 누가 기억하겠다는 겁니까? 하나님이 기억하시겠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기억하다’는 말에 대해서 설명드렸는데, 이 말은 ‘내내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피조물에게는 언약의 ‘확증’을 주시는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 자신은 ‘내가 이 언약을 지키리라’ 하시며 스스로 굳게 ‘다짐’하시는 것입니다. 언약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열의와 집념이 엿보입니다.

●신인류가 보여준 모습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과 확증으로 노아의 가족은 신세계의 첫발을 내딛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방주 구원의 결국은 어떠한가?”라고 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제 앞으로 방주로 구원받은 새로운 인류가 보여줄 모습은 어떨지 우리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본문을 대하게 됩니다.

본문 18절은 “셈과 함과 야벳”이라는 노아의 세 아들을 소개하는데, 그중 둘째 아들 ‘함’에 대해서 “가나안의 아버지”라고 마치 낙인찍듯이 부연설명 합니다. 가나안은 어떤 곳입니까?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온갖 잡다한 우상숭배가 곳곳마다 그득그득한 곳이 가나안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물리쳐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노아의 둘째 아들 함에게 ‘가나안의 아버지’가 된다는 꼬리표를 붙이면서 연거푸 반복하며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우려가 앞서고, 기분이 싸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노아는 포도나무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아가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취해서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누웠던 것입니다. 세 아들 중에 ‘가나안의 아버지’ 함은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알립니다. 그러자 첫째인 셈과 막내인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나중에 노아가 술에서 깬 뒤에 함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는 ‘노래인 듯, 노래 아닌 노래’를 합니다. 그 노래는 1절과 2절로 되어 있었는데, 25절을 보면 ‘함’을 향해서는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노래했고, 26-27절에서는 셈과 야벳을 향해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둘째에게는 저주의 노래를, 첫째와 셋째를 위해서는 축복의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이건 또 무슨 의문스러운 노래란 말입니까? 희세의 ‘남은-자’로서, ‘의인이요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 했던 노아’(창 6:9), 그리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구원의 방주를 지었던 노아가 보여준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민망한 일이어서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아담을 닮은 노아

그렇다면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자세히 읽어보면, 본문에 나오는 노아는 두 가지 이유로 아담을 닮았습니다.

첫째로 노아는 아담과 직업이 닮았습니다. 창세기 2장이 말하는 아담의 세 가지 직업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정원사(농부)요, 둘째는 제사장이며, 셋째는 왕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직접 가꾸셨던 에덴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경작하고 가꾸는”(work and take care of it, 창 2:15) ‘정원사(농부)’였고, 에덴 정원은 아담에게 ‘장막이요 성소’와도 같아서 아담은 그 장막에서 꽃의 예전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는 ‘제사장’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 형상을 지닌 자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왕’ 같은 존재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어떻습니까? 그는 신세계의 주역이자 심판 이후 새로운 인류를 대표하는 그야말로 ‘왕’ 같은 존재였습니다. 또한, 본문이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라”(9:20)고 말하는 것처럼 그의 직업은 ‘정원사’(농부)입니다. 게다가 노아가 방주에서 하선했을 때 제일 먼저 행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제사’였습니다. 그는 제사장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아담과 직업이라는 면에서 똑 닮았습니다.

둘째로 본문에서 노아는 아담이 에덴 정원에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고대 사회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할 수 있지만, 오늘 본문은 노아가 고주망태가 되고 인사불성이 되어서 “장막에서 벌거벗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두고 ‘죄를 지었다’고 말할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눈으로 볼 때 이런 모습은 당대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 했던 노아에게 어울리는 모습은 아닙니다. 노아에게 뭔가 전과 같지 않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24절을 보면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때 노아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입니까? 잠시 후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그는 자신이 벌거벗음을 아들이 알게 된 것으로 인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은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7)고 합니다. 벌거벗음으로 인해 ‘부끄러움, 수치심’을 느꼈던 것입니다. 본문의 노아가 느꼈던 감정과 같습니다.

●수치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

그러면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아버지 노아를 아들들은 어떻게 대했습니까?

첫째로 노아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둘째 아들 ‘함’(Ham)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롸-아’)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렸다(‘나가드’)”(창 9:22)고 합니다.

여기서 “보다”(‘롸-아’, ha'r')는 말은 ‘잘잘못을 따지면서 가치판단을 내리는 일’(inspect, consider)을 뜻합니다. 몇 주 전 이 단어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창세기 6장 12절은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창 6:12)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향해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 말씀하실 때도 이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인간의 행위로 인해 잘잘못을 따지고 가치판단을 내리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아들 함은 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감히 가치판단을 합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 아버지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그는 두 형제에게 “알렸다”(‘나가드’, dg;n")고 합니다. ‘알렸다’는 말은 ‘광고하다. 선포하다’(announce, declare)는 뜻입니다. 알릴 사람이 형제 둘밖에 없어서 그렇지, 지금 같았으면 함은 ‘동네 사람들!’ 하면서 이집 저집 다니며 아버지의 수치를 험담하며 다녔을 것만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24절에서 “노아가 술에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았다”는 것은 둘째 아들이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본 것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수치를 형들에게 떠벌린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수치심이 아닙니다. 함이 노아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함부로 떠벌리므로 결국 노아에게 ‘모멸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이런 함의 모습에 반해 셈과 야벳(Shem and Japheth)은 함의 말을 듣고 아주 특별한 모습을 보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아버지에게 행한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엎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창 9:23)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수치를 덮고자 옷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옷을 ‘두 사람의 어깨에 메었다’는 걸 보니 아버지의 수치를 덮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굉장히 큰옷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옷도 컸지만, 그런 옷을 준비한 두 아들의 마음이 더욱 ‘넉넉’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뒷걸음질’로 들어가서 ‘얼굴을 돌려’ 아버지의 수치를 덮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감수합니다. 끝까지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겠다는 두 아들의 갸륵한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곧 아버지를 위해 넉넉한 마음으로 불편함을 감수한 두 아들은 노아로부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수치를 넉넉히 덮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대홍수가 끝난 뒤에 하나님이 언약을 주시고 무지개로 그 언약을 확증해 주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주심으로 인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지만, 안타깝고도 어처구니없게도, 노아의 가족으로 대표되는 인류는 하나님 언약 백성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방주로 구원받은 언약 백성의 결국이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노아는 노아대로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이전에 그를 칭찬하던 ‘의로움’과 ‘완전함’,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모습을 더 이상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둘째 아들 함은 이러한 아버지의 수치를 형들에게 까발림으로 아버지에게 모멸감을 안겨 주었다가 노아로부터 저주를 받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노아는 점점 쇠락해가더니,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이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29절)고 말하면서 그가 에녹처럼 하늘로 들림 받아 올라갈 기회를 놓쳤음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첫째인 셈과 막내인 야벳이 보여준 모습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느낄 수치심과 모멸감을 걱정한 나머지 세심하고도 넉넉한 마음으로 어색함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아버지의 몸을 옷으로 덮어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두 아들이 보여준 모습의 원조는 누구입니까? 에덴 정원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행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부르시자 저들은 수치심에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립니다. 이에 하나님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창 3:11)라고 물으셨고,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죄를 미루는 못난 부창부수의 모습을 보입니다. 정작 수치스러워해야 할 것은 ‘벗은 몸’이 아니라 회개하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삐뚤어진 마음’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위해 하나님은 이제껏 한 번도 해보지 않으신 ‘어색하고도 불편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피를 빼고 정성스럽게 가죽을 말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신 것”(창 3:21)입니다. 오늘 본문의 셈과 야벳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 닮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대홍수 심판 이후 ‘위풍당당 행진곡’과 ‘신세계 교향곡’으로 힘차게 열린 세상에서 우리가 언약 백성의 참다운 인류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셈과 야벳을 통해서 작은 희망의 불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뢰의 공동체를 위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으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수치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은 함을 닮았습니까? 아니면 셈과 야벳을 닮았습니까?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는 타인의 수치를 교묘하게 들춰내는 함의 후손입니까? 아니면 말없이 덮어주는 셈과 야벳의 후손입니까?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많은 오명을 들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가장 흔히 듣는 말이 ‘교회는 말이 많다’ ‘속회에서 비밀 얘기하지 마라. 다음날 전교인이 다 알게 된다’ 등등입니다. 은혜의 말은 더디 퍼지고, 덕스럽지 못한 말들은 전광석화로 퍼지는 곳이 교회라는 겁니다.

말을 옮기는 방법은 다양합니다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걱정해주는 척’하며 옮기는 겁니다. 이렇게 말을 옮기면, 자기는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또 다른 손쉬운 방법은 ‘의분에 차서’ 말을 옮기는 겁니다. 이럴 때면 자기는 꽤 의롭고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결국, 어떤 방식으로 말을 옮겼든, 그렇게 옮겨진 말은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고, 공동체를 불신의 공동체로 만듭니다.

이런 점에서 성공회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김찬호 교수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관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주는 사람들,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내가 못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수치스럽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뒷담화를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는 신뢰의 공동체가 절실하다.”<김찬호 지음, 『모멸감』 문학과지성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는, 속회는, 선교회는 ‘안전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는 신뢰의 공동체입니까? 아니면 불신의 공동체입니까? 오늘 말씀에 비추어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묻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함의 후예입니까? 셈과 야벳의 후예입니까? 이러한 물음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방주로 얻은 구원이 헛되지 않기를 다짐하며,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신뢰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