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광야로 부르시는 예수”

(마 4:1-11)

<2023년 2월 26일 사순절 제1주 / 삼일절기념주일 설교 / 보라색>

●삼일절기념주일과 성회수요일예배

우리나라 근대 역사에 있어서 일제강점기는 마치 우리 민족의 사순절과도 같은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갈취당하고, 억압과 압제로 인해 이 나라와 이 민족이 갈기갈기 찢긴 고통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삼일절기념주일>을 맞이하고, 다음 달 초하루인 3월 1일을 ‘삼일절’로 기억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 서강교회는 당시 삼일운동을 위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최성모와 이필주”라는 역사적 인물을 배출한 교회였습니다. 두 분 모두 우리 서강교회를 담임하신 목사님들이셨고, 주님이 걸으신 고난의 길을 따라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또한 한 분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계십니다. ‘어윤희장로님’이십니다. 장로님은 3.1운동으로 수감되었지만, 옥중에서 유관순열사와 함께 ‘옥중 만세 시위’를 벌인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삼일절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서강의 성도들이 “최성모, 이필주, 어윤희” 자랑스러운 우리 교회 믿음의 선진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호명하는 일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다함께 세 분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의 인사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제가 선창하겠습니다. “최성모목사님 감사합니다” “이필주목사님 감사합니다. 어윤희장로님 감사합니다.”

작년과 재작년 저는 삼일절에 관해 설교했데요, 오늘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을 걸으신 위대한 선진들의 신앙을 마음에 품고, 2023년 사순절 첫째 주를 맞아 우리 주님이 광야에서 40일간 시험받으신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수요일 <성회수요일예배>를 시작으로 우리는 벌써 40일의 거룩한 사순절 여정에 들어섰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초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회수요일에는 많은 성도님들이 오셔서 함께 예식에 참여했는데요, 작은 종이에 각자의 죄를 고백하며 적고, 그 종이들을 함께 모아 태웠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재에 올리브 기름을 넣어 한데 섞어서 그 재를 손등에 십자가로 그었습니다. 이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으므로 다시 흙으로 돌아갈 존재’인 것을 되새겼습니다. 또한, 지난주 속회공과 두 번째 물음에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사순절을 맞이하면서 고난의 주님을 닮고자 ‘두 가지’만 마음으로 다짐하며 결단해봅시다.”라는 물음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 중에는 ‘이번 사순절에는 꼭 이렇게 해야지’ 또는 ‘꼭 이건 하지 말아야지’하면서 다짐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짐을 통해서 삶의 작은 변화를 꾀하려 했던 것인데요, 전문가들은 말하기를, 삶의 궁극적인 변화는 작은 변화에서 온다고들 합니다. 커다란 변화를 꾀하려면, 작은 생각과 작은 몸짓 하나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 박노해는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주십시오”라고 노래했습니다. 또한 “작은 일 작은 옮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라고도 했습니다.<“길 읽은 날의 지혜”, 박노해 지음, 『사람만이 희망이다』(해냄)>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작은 변화를 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지난주에 다짐한 것이 벌써 어그러진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지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는 자긍심을 가지려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작은 일에 크게 무너지고, 자잘한 것에 시험을 당하고 마는 우리의 ‘연약함을 발견하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아주 오래전, 성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은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이미 간파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의지가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뒤틀린 의지로부터 정욕이 생겨났고, 계속해서 정욕을 좇다 보니 습성이 만들어졌고, 습성을 대적하지 않았더니, 필연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하나하나의 쇠고리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쇠사슬을 형성하여 나는 이 쇠사슬에 꽁꽁 묶여서 꼼짝없이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박문재 옮김, 『고백록』(CH북스)>

그러므로 사순절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연약하고, 무지하며, 아둔한 우리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이 우리를 광야로 초대하십니다. 그 광야는 사순절 광야입니다. 먼저 시험당하신 주님이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거룩한 사순절 광야 길에서, 친히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는 이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시험받으신 ‘인간’ 예수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시험이었지만, 주님은 단 한 번도 시험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입니다. 하지만 새벽기도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신적인 능력으로 이기신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이기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마치 그런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듯이, 마태복음은 이 짧은 구절에서 인간 예수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여러 번 강조합니다. 첫째로 본문 1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렸다”고 합니다. 또한, 5절과 8절에서 예수께서는 마귀에게 여기저기 두 번이나 끌려다니면서 시험을 받습니다. 성령과 마귀, 모두 강력한 영적인 존재이므로, 이는 연약한 한 인간이 영적인 존재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곧 본문의 예수님은 ‘인간 예수’였던 것입니다.

둘째로 본문 2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을 금식하십니다. 마태는 거기에 “예수께서 주리셨다”(He was hungry)며 첨언합니다. 하루 이틀만 굶어도 사람이 핏기가 없어지고 기력이 쇠할 텐데, 일주일도 아니고 사십일을 굶었으니 예수께서 얼마나 해쓱하고 메말랐을지 상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대로 두면 예수님은 광야에 쓰러져 유명을 달리할지도 모를 응급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11절에서 천사들이 마귀가 떠나가자마자 예수께 황급히 다가가 “수종들었다”는 것은 마치 119 구급대가 출동하는 모습처럼 읽힙니다. 천사들은 다 죽어가는 환자 대하듯이 정성을 다해 조심조심 주님을 섬겼을 것입니다. 낮에는 날개를 펴서 강렬한 햇빛을 가로막는 그늘을 만들고, 밤에는 날개로 차가운 주님의 몸을 덮어 속히 기력이 회복되도록 천사들은 최선을 다해 주님께 수종을 들었을 것입니다. 힘없이 죽어가는 한 인간을 살리고자 말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수종들다”(diakone,w, ‘디아코네오’)는 말은 일차적으로 ‘음식 대접하는 일’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 순간 주님께 가장 필요한 것은 음식이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오늘 본문의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의 육신으로 광야로 가셨고, 거기서 40일간 금식하시며 시험받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오로지 인간으로서, 오직 사람으로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셨던 것입니다.

●세 가지 시험

예수께서 당하신 세 가지 시험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분들도 많은 설교를 들어왔을 것입니다. 작년에 저도 그것을 해설하면서 설교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간단하게만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을 향한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돌로 떡을 만들라”(3절)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이 오랫동안 굶주리면 눈에 보이는 게 다 빵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말에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할 놈 없다” 했다고, 이 시점에 가장 달콤한 유혹은 ‘빵의 유혹’일 것입니다. 이에 마귀는 예수님의 육신을 자극하면서 매우 치사하면서도 원초적인 시험으로 주님을 도발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서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5-6절)며 시험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꼬드깁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 아니더냐? 왜 그 꼴을 하고서 사서 고생을 하고 앉았느냐? 네가 부르면 천사가 응답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면서,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도 마귀는 매우 전략적으로 주님을 공격한 것입니다. 곧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을 되살리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으로 하여금 스스로 의기양양하도록 간교한 꾀를 부린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마귀는 다시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만약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8-9절) 시험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공격하는 마귀의 공략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입니다. 곧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요, 눈에 보이는 것이 진리’라며 예수님을 속이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후서가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나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말한 것처럼, 예수께서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경배하라’(10절)며 단호하게 사탄의 속임수를 궤멸시켜 버렸던 것입니다.

●첫째 아담의 실패와 둘째 아담의 전복, 그리고 사도 요한

이러한 마귀의 시험이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에서 이 세 가지 시험을 한 문장으로 엮어냅니다. 곧 요한일서 2장 16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과 요한일서의 말씀을 비교하면 이럴 것입니다. 첫째, “돌을 떡으로 만들라”, 이는 “육신의 정욕” 아니겠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라”, 이는 곧 “이생의 자랑”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시험인 “내게 경배하면 보이는 모든 것을 주리라”, 이는 “안목의 정욕”을 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보았을 때,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던가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 3:6) 이처럼 하와의 마음도 공교롭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로 “먹음직도 하다”는 것을 사도 요한의 언어로 하면 무엇이라 할까요? ‘육신의 정욕’입니다. 예수께서 당하신 “돌로 떡을 만들라”는 시험과 같습니다. 둘째로 “보암직도 하다”는 것은 사도 요한의 언어로 하면 무엇이겠습니까? “안목의 정욕”입니다. 광야에서 “내게 경배하면, 보이는 모든 것을 주리라”는 마귀의 시험과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는 사도 요한이 말한 “이생의 자랑”을 뜻할 것입니다. 광야에서 예수께서 겪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라!” 했던 마귀의 유혹이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들은 결국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처절하게 실패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들은 에덴에서 추방된 것입니다. 창세기는 인간이 극복하지 못하는 죄가 있으니, 곧 “먹음직하다”는 “육신의 정욕”과, “보암직하다”는 “안목의 정욕” 그리고 “지혜로울 만큼 탐스럽다”는 “이생의 자랑”이 그것이라 말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정복되지 않을 것 같은 사망이 인류 역사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 어거스틴도 이처럼 비참한 인간의 실존에 대해 고백하기를, “인간이란 존재는 죄를 짓지 아니할 수 없는 존재”(non posse non perccare)<『고백록』>라 탄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 사도 바울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말한 것처럼, 로마서 5장 19절에서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처럼, 한 사람의 순종으로 세상에 의가 왔다” 말한 것처럼,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인간 예수께서는 첫 번째 아담이 실패한 모든 시험을 단번에 전복시켜 버리십니다.

첫 번째 아담은 생명나무와 생명수가 흐르는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실패했지만,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께서는 아무것 없는 고독한 광야에서 금식하며 이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오늘 본문의 사건은, 그가 아담과 같은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신호탄을 하늘로 높이 쏘아 올린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위험한 죄의 원인: 교만

그런데 여러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무엇이 저들로 하여 선악과가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했고, 무엇이 저들로 하여 보암직스럽게 만들었으며, 무엇이 저들로 하여 하나님이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창 3:3) 경고하신 그 선악과를 끝내 먹어버림으로 고집스레 지혜롭고자 했던 것입니까?

창세기 3장 5절이 그 연유를 밝혀 줍니다. 곧 에덴동산을 기어 다니던 뱀이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창 3:5)이라며 인간의 ‘교만’을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만은 인간이 지닌 가장 근원적인 죄입니다. 가장 끔찍하고도 추악한 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지혜롭다!’ 할 사람이 있습니까? 교만은 지혜로움이란 것을 뜀틀 삼아 우리를 훌쩍 뛰어넘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의롭다!’ 할 사람이 있습니까? 교만은 그 의로움이란 것을 스피커로 크게 울리면서 사악한 춤판을 벌일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경건하다!’ 할 사람이 있습니까? 교만은 그 경건함이라는 것을 숙주 삼아 편안히 기생할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지성인이라 평가받는 C.S. 루이스(C.S. Lewis, 1898-1963)는 교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이보다 더 싫어하는 악이 없으면서도, 이보다 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악도 없습니다. 이 악이 많이 있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이 악이 나타나면 더 싫어합니다. 이 악이란 바로 교만(pride), 또는 자만(self-conceit)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타인의 허물을 기막히게 잘 캐낸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의롭지 못한 행동을 보면, 쉽게 분노하고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C.S. 루이스는 ‘그가 그런 것은, 그가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교만을 숨기기 위해서’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C.S. 루이스는 이어서 말합니다. “교만에 비하면 음행과 분노와 탐욕과 술 취함 등은 다 새 발의 피입니다. 교만한 한, 당신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늘 사물과 사람을 내려다보는데, 그렇게 내려다보는 한, 당연히 당신보다 위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C.S. 루이스 지음, 장경철, 이종태 옮김, 『순전한 기독교』(홍성사)>

●예수의 승리, 나의 승리: “말씀의 그늘에 앉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는 교만의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창조 이래로, 마귀가 이보다 더 교만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시험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손쉽게 짚어 삼키더니,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는 이스라엘도 성공적으로 농락해왔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이루고자 광야로 나가신 인간 예수님을 흔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무엇으로, 어떻게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일까요? 저는 새벽기도 시간에 예수께서는 ‘하나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다’ 말씀드렸습니다. 마귀의 시험 앞에 세 번 모두 ‘신명기의 말씀으로 응대하셨다’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나치 치하 속에 살았던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8-1986) 목사님의 경험과 해석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는 나치에 저항하다가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눈에 보이는 악마 아돌프 히틀러, 혹은 악마의 하수인인 아돌프 히틀러의 힘이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틸리케 목사님은 좌절하기도 하고, 두려움마저 느낍니다. 그러다가 그는 오늘 우리가 나눈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신 비결을 발견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라고는 그 말씀이 직접 악마와 맞서도록 한 것뿐이다. 예수께서는 전투의 중심에서 물러 나와 하나님 뒤에 서신다. 그 말씀이 악마를 포박하고, 그분은 완벽한 신뢰 가운데 그 말씀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신다.”<헬무트 틸리케 지음, 손성현 옮김, 『신과 악마 사이』(복있는사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광야에서 보여주신 모습은 영적인 광야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이정표를 줍니다. 시험당할 때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깃발처럼 높이 세웠고, 자신은 하나님 뒤로 겸손히 물러섰습니다. 주님이 친히 하신 일은 “하나님을 완벽히 신뢰하는 것” 그리고 겸손히 “말씀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신 것” 이었습니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죄를,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순종으로 녹여버리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의 머리를 짓밟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실패한 그 지점에서, 이스라엘이 농락당하며 넘어졌던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마귀의 주둥이를 뭉개버리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사순절 광야 길에서 마귀의 시험을 마주 대할 때, “힘도 아니요 능도 아니며”(슥 4:6), 우리의 혈기도 아니라, 예수께서 보여주신 모습처럼 오직 겸손히 ‘하나님 말씀의 그늘’ 속에 거하고자 애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마귀에게 이끌려 다니며 시험을 받으신 것처럼, 때로는 우리도 마귀에게 이쪽저쪽으로 흔들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우리를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주님”(야 4:6)으로 새로운 신앙의 도약을 이루어, 그 여정을 마칠 때에 “마귀는 떠나가고”, 우리를 사순절 광야로 인도하신 분은 성령이었음을 고백하며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