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의를 성취하신 예수의 세례”

(마 3:13-17)

<2023년 1월 8일 주현 후 제1주, 세례주일, 신학대학주일 설교>

●주현절Epiphany과 세례주일Baptism of the Lord

오늘 우리는 [주현 후 제1주]이자 [세례주일]을 맞아 예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현절’(Epiphany, 신의 현현)이라 부르는 이 절기는 ‘주님이 공식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날’을 뜻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주현절을 오래전에 보았던 홍콩영화 [영웅본색]에 빗대서 ‘주님의 영웅본색일’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겸손의 왕으로 오신 주님이 우리의 참된 영웅으로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들은 ‘여러분만의 주현절’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저만의 주현절이 있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살았던 날이 있었지만, 어느 날 주님이 제게 나타나 주셨고, 만나주셔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선포하시며 구원의 감격을 주셨던 그 사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저만의 주현절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날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올 한해 “주의 얼굴빛으로 구원의 감격이 넘치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주님이 우리 삶에 다시금 나타나 주셔서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주의 얼굴빛으로 환하게 비추어 주시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은 ‘세례주일’(Baptism of the Lord)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처럼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는 중에 우리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셔서, 여러분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실 때, 신비로운 주님의 얼굴과 그 말씀을 들으며, 올 한해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다짐하고 결단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들-됨의 포기, 아버지-됨의 포기, 십자가 사랑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가장 위대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1830-1886)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시로 노래했습니다. “사랑은 생명에 앞서고, 죽음보다 나중이며, 창조의 시작이어라. 그리고 사랑은 지상 모든 것의 으뜸이기만 한 것”(임태일 옮김, “Love—is anterior to life—posterior—to death—initial of creation, and the exponent of earth—”)<Emily Dickinson, The Poems of Emily Dickinson, (Harvard University Press)>

시인이 ‘사랑은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것의 으뜸’이라 한 것처럼, 세상의 온갖 추잡한 삶의 문제와 쓴-뿌리를 녹여낼 유일한 해법은 사랑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겪는 모든 문제는 사랑이 없기에, 사랑이 부족하기에, 사랑이 퇴색되어가기에 발생하는 문제이지, 사랑만 있다면, 사랑으로만 충만하다면, ‘허다한 죄를 덮는 그 뜨거운 사랑’(벧전 4:8)에 우리의 손과 마음을 가까이 가져다 댈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 나라로 빠르게 채색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그 사랑을 어디서, 어떻게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까?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한 데 녹아 있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장’과 ‘그의 아들 예수의 심장’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심벌즈처럼 ‘쾅~쾅~ 소리’로 울리며 저 위대한 구원 교향곡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아버지가 보여주신 희생과 아들 예수께서 보여준 희생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자신의 뜻을 꺾고,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을 보여준 것입니다.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마 26:36)하고 기도하시며,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 달려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희생은 무엇입니까? 물론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들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1926-)은 십자가에서 보여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들이 버림받을 때, 아버지 또한 그 자신을 포기한다. 아들이 자신을 내어줄 때, 아버지 또한 그 자신을 내준다. --- 하나님 또한 아들의 죽음 속에서 ‘아버지-됨의 죽음’을 겪는 것이다.”<위르겐 몰트만 지음, 김균진 옮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한국신학연구소)>

그렇습니다. 십자가 사랑은 ‘절대 내어줄 수 없는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에 있습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그리고 아들의 죽음 앞에서 스스로 ‘아버지-됨’을 포기한 하나님 아버지의 희생,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십자가의 사랑인 것입니다. ‘내어줌’ 없이는, ‘희생’이라 할 수도, ‘사랑’이라 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례의 일반적 의미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내어주는 사건’이었고, 이로써 사랑을 완성한 것이라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세례는 무엇이며, 예수께서는 왜 세례를 받으셨던 것일까요?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 대부분은 세례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니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세례의 의미는 간명합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더 간단히 말씀드리면, ‘세례는 죽음이요, 생명’입니다.

세례를 받는 자는 세상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을 갈아입어”(갈 3:27) 물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죽고 예수로만 살겠다!’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죽었으니,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을 입고 살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왜 세례를 받으셨던 것일까요? 죄 없으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굳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로부터 요단강까지’ 곧 100km가 넘는 거리를 몇 날 며칠을 걸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력을 다해 걸어서 요한에게 가신 목적이 있었으니 곧 ‘세례를 받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마태복음 1장과 2장에 나오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었습니까? 우리가 지난주까지 살펴본 예수님은 이제 막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자라신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그 후로 예수님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마태복음은 일언반구도 없다가, 이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으로 등장하십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신 예수께서 처음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100km 행군’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세례’를 받기 위해서 말입니다.

세례가 무엇이길래, 예수님은 이토록 세례를 받고자 굳이 그 멀고도 고된 여행을 감행하셨을까요? 그것도 이어지는 14절에서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며 극구 만류하는데도, 예수님은 왜 세례를 고집하셨던 것일까요?

●“날 좀 내버려 두시지요!”

그 해답을 찾는 실마리가 이어지는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3:15, 개역개정) 같은 본문을 [새한글성경]은 이렇게 옮깁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님이 요한한테 대답하셨다. ‘내 뜻을 받아들이세요, 이제는! 이렇게 하여 의를 다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마땅하니까요.’ 그때 비로소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예수께서 “이제 허락하라!” 그리고 “내 뜻을 받아들이세요, 이제는!” 하시며 다소 강한 어조로 말씀하시는 걸 보니, 세례자 요한이 예수께 세례를 받지 마시라고 이만저만 만류한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예수님과 요한 사이에 심각한 실랑이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처럼 세례자 요한이 예수께 세례 주기를 거부한 이유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얼버무려서는 안 됩니다. 흔히들 말하듯이, 세례자 요한이 ‘주님, 저같은 사람이 어찌 주님께 세례를 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겸손한 마음에서 세례를 사양했다고 이해합니다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우리 서강교회 성도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은 단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요한이 정작 예수님의 세례를 극구 말렸던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생각에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마 3:11)이었습니다. 또한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실 분”(마 3:12a)이며,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려야 할 분”(마 3:12)이었습니다. 요한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의를 성취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기 죄를 자복하고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행위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죄 많은 저 백성들이나 할 일이지, 그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할 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 ‘나는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하고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요한은 요지부동으로 완강하게 거부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요한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 하십니다. 그리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 것입니다. 저도 이 본문을 헬라어에서 우리말로 이렇게 옮겨 봤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이제 그만 날 좀 내버려 두시지요. 내가 세례를 받아야 모든 의가 다 성취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마땅한 일입니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을 내버려 두었다.”

이 말씀에서 ‘모든 의가 다 성취되다(이루다)’고 할 때, ‘성취하다, 이루다’(plhro,w)는 뜻의 헬라어 단어는 마태복음에 16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단어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할 때 사용되고 있음에 주목합니다.<양용의 지음, 『마태복음』(이레서원)> 마태복음 1장과 2장만 보더라도 이 단어가 사용될 때는 어김없이 구약성경이 인용됩니다.

곧 마태복음 1장 22절,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러 하심이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 1:22) 마태복음 2장 15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러 하심이라”(마 2:15) 그리고 마태복음 2장 23절,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 2:23)

●심판은 끝나고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구약의 어떤 말씀을 성취하신 걸까요? 16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다”고 합니다. 비록 오늘 본문에서 구약 성경이 직접 인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짧게 묘사된 세례받는 예수님의 모습은 구약성경 창세기 7장과 8장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사건>을 저절로 떠올리게 합니다.

첫째로 창세기 7장을 보면 하나님이 물로써 세상을 심판했을 때, “물이 불어서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고 …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다”(창 7:19, 21)고 합니다. 물에 잠기면 생명체는 생명을 잃습니다. 곧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물속에 들어가 완전히 잠기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 대신 받으심으로 죽음을 경험한 사건을 뜻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창세기 8장은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끝나고 있는 보여줍니다. 곧 창세기 8장은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 줄어들었다”(창 8:3)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물속에 잠기셨다가 “물에서 올라오실 때”(마 3:16b), 예수님의 몸을 덮었던 물은 어떻게 됐겠습니까? ‘물러가고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했던 물이 물러가고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구원이 가까이 왔음을 예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 이제 심판이 물러가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창세기 8장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심판이 멈춘 뒤에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쳤다”(창 8:2)고 합니다. 이 땅에 심판을 위해 열려있던 하늘이 닫히고, 저주의 비가 그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증언하기를,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 다시 “하늘이 열렸다”(마 3:16c)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심판의 물이 아니라 복을 주시고, 회복시키시는 성령이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것도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마 3:16d)는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여러분,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는 증언은 <노아의 홍수 사건> 중 무엇을 떠오르게 합니까? 창세기 8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할까요? 비둘기는 하나님의 홍수 심판이 완전히 끝났음을 알려준 신호였던 것입니다.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자 노아는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서 내려 육지로 올라와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드리는 제물의 향기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던 것입니다.(창 8:20-21) 바야흐로, 이제 새로운 언약,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둘기 같은 성령이 예수께로 내려왔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이 심판을 거두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새로운 언약,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옛날 이사야가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예언했던 것처럼,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17) 했던 것입니다.

●“내 뜻을 받아들이세요, 이제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거두시고 새로운 구원 역사를 활짝 열어놓으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께서 물속에 잠기신 것은 십자가를 지신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공생애를 마치셨지만, 사실상 주님은 세례와 더불어 죽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와 같이 하여야 모든 의를 이룰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고 세상을 살릴 길이 없음을, 예수께서는 십자가만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하시는 일은 이와 같습니다. ‘자신을 내어주시는 일’ 말입니다. 오직 ‘내어줌’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성취하셨고, 오직 ‘내어줌’으로서 생명을 구원하는 사랑과 희생이 무엇인지 친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리고 세례를 통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구원받은 백성이 된 것을 언제나 잊지 않고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감격으로 날마다 살아나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인 것을 기억하면서, 세상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기 전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요한한테 대답하셨다. ‘내 뜻을 받아들이세요, 이제는! 이렇게 하여 의를 다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마땅하니까요.’ 그때 비로소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15절)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요한’의 이름 대신 제 이름을 넣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번을 소리 내어 읽어보니, 그동안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보지 못했던 일들이 많았고, 주님의 뜻을 오해한 적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은 날도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주님의 뜻을 앞세워서 결국 내 뜻을 교묘히 이루고자 했던 일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제게 물으시기를, “임목사야, 내 뜻을 받아들이거라, 이제는!” 하시며 간곡히 부탁하신다면, 과연 나는 요한처럼 주님의 뜻 앞에 항복할 수 있을지 근심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예수께서는 여러분들에게도 물으실 것입니다. “내 뜻을 받아들이세요, 이제는!”하고 말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물으실 때, 겉으로만이 아니라, 습관적인 대답이 아니라,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다짐하고 결단해서 주께 참으로 응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