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은 자들의 자유와 복종”

(마 25:14-30)

<2023년 11월 19일 성령강림후 제25주 추수감사주일 설교 / 녹색>

●“우리에게 감사만 있다면 말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저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신앙인이 쓴 하나님의 향한 감사 기도를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연악한 인간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는 까닭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을 반성하게 됩니다. ---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에게 감사만 있다면 말입니다.”<김우종,이재길 엮음, 『살다보면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정신세계사>

마지막 부분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에게 감사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 기도는 성경이 말하는 참된 감사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참 아름다운 기도이자 한 편의 시입니다. 그래서 지난 한 해를 결산하며 맞이하는 추수감사절인 오늘,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기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곧 “그리스도인이 소유해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감사”라는 고백입니다. 이 시간 함께 예배하고, 이후로 함께 공동식사를 나누고, 오후에 예정된 <추수감사 찬양대회>를 통해서 이러한 감사로 무장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신앙인의 두 번째 자세

오늘 우리는 “달란트의 비유”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또 다른 비유 말씀을 읽었습니다. 본문 19절에서 주님이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settled accounts)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훗날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날을 뜻할 것이겠지만, 추수감사절인 오늘, 이 말씀은 지난 1년을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고자 하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으로 듣게 됩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서 저는 “은혜받은 자들의 자유와 복종”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 나누었던 “열처녀의 비유”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 본문도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신앙인의 자세”에 대해 선명한 가르침을 줍니다. 지난주 “열처녀의 비유”로서는 다소 부족하다 싶으셨는지, 예수께서는 동일한 주제로 또 다른 비유를 연이어 말씀하십니다. 본문 말씀은 여느 다른 비유에 비해서 쉽고 직설적입니다. 알쏭달쏭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것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주 비유 말씀은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마 25:1)고 시작하심으로, 기회가 있을 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면, 오늘 본문 14절에서 예수께서는 천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다”고 말씀하심으로, 주인이 떠나면서 맡긴 소유를 “종들이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포인트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비유 속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시고, 종들은 우리를 포함한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을 뜻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주인이 “자기 소유를 맡겼다”(A man entrusted his wealth to them)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종들에게 무상으로 “준 것”이 아니라, 그래서 소유권이 종들에게 넘어간 것이 아니라, 주인 소유의 것을 종에게 “맡긴 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제가 봉헌 시간마다 “주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내 것인 양 여기며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행치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맡겨진 것임을 고백하는 것에서 이 비유 말씀이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판단을 신뢰: “각각 그 재능대로”

15절 말씀을 읽어보면 주인이 무엇을, 어떻게 맡겨주셨는지를 알려줍니다. 곧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라고 말합니다. 주인이 자기 소유를 “각각 그 재능대로”(according to his ability) 맡겼다고 하는데, 성경 원어로 보면, “능력에 따라”((kata. th.n ivdi,an du,namin) 맡겼다는 뜻입니다. 무턱대로 달란트를 내맡긴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 교훈은 “주님의 판단은 나의 판단보다 앞선다”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받은 다섯 달란트가 너무 많습니다. 저에게는 한 달란트만 맡겨주세요” 이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 왜 저는 한 달란트고, 저 사람은 다섯 달란트입니까? 저도 다섯 달란트 주세요.” 이러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약 1:17)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금 내가 받은 달란트는 저 위로부터 주인이 적합하게 판단해서 “능력에 따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은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교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판단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또한,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집니다. 비교를 통해서 남들보다 “우월감”을 느끼는 것처럼 우스운 일도 없고, 비교를 통해 “열등감”을 느끼는 것처럼 비참한 일도 없습니다. 둘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비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4장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충성”(고전 4:2)일 뿐입니다. 종들은 주인의 소유를 관리하는 청지기로서, 주인이 올 때까지 충성을 다해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관리해야 합니다. 자격 없는 내게 달란트를 주신 주인의 사려 깊은 판단에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무엇으로 주인을 기쁘게 할까 고민하며 충성을 다 하는 것만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입니다.

●복종과 자유-1 한용운과 루터

그러면 달란트를 받은 세 명의 종들은 그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16절과 17절을 보면,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합니다. 저들이 열심히 장사해서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것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저들이 장사를 잘못해서 달란트를 남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주인이 그것으로 인해 책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인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바로 가서”(euvqe,wj)라는 표현에 시선이 멈춥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 표현이 문장 중간에 나오지만, 성경 원어로 보면 맨 앞에 있습니다. 즉 주인이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바로 가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으로 장사했다” 이렇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그 종들이 주인의 말을 듣고 즉각적으로 이행한 것을 강조하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종들이 주인의 말을 듣고 곧바로 이행하는 일”, 이런 행동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이 말하는 두 번째 교훈은 “주신 이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어서, 오늘은 “복종하라”는 말로 바꿔 사용하겠습니다. 누구에게 복종합니까? “주신 이에게만 복종”해야 합니다. 주인이 시킨 일을 거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말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고, 주인이 명령한 것에 복종하며, 나를 향한 주인의 평가와 계획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복종에 관한 시” 중에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 만한 게 없습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한용운 지음,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님의 침묵』 열린책들>

오늘날 우리는 “복종”이 아니라 “자유”를 강조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복종”을 말하는 것은 구식이고, 시대착오적으로 여겨집니다. 비판적이고, 삐딱하게 생각하며 사는 것만이 자유인 줄 착각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같은 초월적 존재, 절대적 존재를 말하고, 믿고, 그 앞에 복종하는 것을 마치 미신처럼 여기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끝없는 자유를 주장하고만 있습니다.

과거 기독교가 “맹신이라는 오류”를 범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절대 진리처럼 여기는 오늘날 세상이 전보다 자유롭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가고 있습니까?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자유를 표방하는 인간 세상은 어느 나라건 할 것 없이 오히려 길을 잃고 있습니다. 안전하게 산으로 오르는 길인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길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그저 “내 갈 길 가려니 상관하지 말라” “상관하지 말고 갈 길 가시라”는 것을 자유라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무책임한 자유 방임”에 불과합니다. 간섭하지 않고, 간섭당하지 않는 것을 두고 자유라 말하는 것은 매우 미성숙하고 위험한 발상입니다. 한용운 시인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합니다. 복종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그런 뜻일 것입니다.

얼마 전 <종교개혁주일>을 지냈지만,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참된 자유와 복종이 무엇인지 언급한 바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대해서 자유로운 주인이며, 만물을 섬기는 종이다.”<마틴 루터 지음, 전경미 옮김, 『그리스도인의 자유』 키아츠>라고 말했습니다. 자칫 모순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간단히 말하자면,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복종할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은 진정 자유롭기에, 세상을 위해 기꺼이 종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복종이 먼저고 자유가 나중이란 뜻입니다. 먼저 복종을 철저하게 배운 사람만이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성숙하게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복종과 자유-2 “제멋대로의 해석”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 복종을 배우지 못한 전형적인 한 인물을 만납니다. 곧 세 번째 종입니다. 앞서 두 종은 “바로 가서” 주인이 명한 대로 복종했지만, 세 번째 종은 주인의 말에 “복종”하지 않고 “해석”합니다. 아니 그것은 “해석”이 아니라 “곡해”이자 “왜곡”이었습니다. 그가 뭐라 말하던가요? 24절 이후로 그가 하는 변명을 들어보면 가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새한글성경> 버전으로 읽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은 지독한 분이신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e;gnwn). 주인님은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흩뿌리지 않은 것에서 모아들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나가서 주인님의 돈을 땅속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돈이 여기 있습니다.”

세 번째 종도 “주인님!”(Ku,rie)하고 부르는 것을 보니, 그가 자신의 주인인 것을 표면적으로는 압니다. 그러나 이후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주인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복종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뜨끔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주님이라 의심 없이 부르고는 있지만, “우리는 과연 주님을 주님이라 부르는 것에 합당한 복종을 행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오늘 본문으로부터 배워야 할 세 번째 교훈을 얻습니다. 곧 “주님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인식에서 바른 행동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종은 주인을 향해 “굳은 사람”(sklhro.j, 지독한 사람)이라 했는데, 이 단어는 “딱딱하다, 고집세다, 거칠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을 향해 종종 “저들 마음의 완악함(sklhrokardi,a)을 탄식”(막 3:12)하실 때 사용된 단어가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Horst Balz and Gerhard Schneider, EDNT vol-3, William B. Eerdmans>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세 번째 종은 자기 주인이 “바리새인 같은 주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퀴리에!”(주인님!)라고 부르긴 했지만, 잘못 알아도 한참을 잘못 안 것입니다. 아니, 이는 차라리 모르느니만 못한 것이며, 사실상 그는 주인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달란트”(ta,lanton)라는 화폐는 당시 고대사회에서 화폐 단위로서는 가장 큰 단위입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데, 1 데나리온은 당시 평범한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니까 “한 달란트”는 6,000일을 꼬박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 오늘날로 치면 대략 20년 연봉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양용의 지음, 『마태복음』 이레서원>

종의 말대로, 주인이 만일 바리새인처럼 마음이 완악하고, 거칠고, 지독한 인물이었다면, 먼 여행을 떠나면서 누구에게는 다섯 달란트, 곧 100년 치 연봉을 맡기고, 누구에게는 두 달란트, 40년 치 연봉을 맡기며, 누구에게는 한 달란트, 20년 치 연봉을 맡기고 떠날, 마음이 완악하고, 거칠고, 지독한 인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주인이 정녕 그런 인물이었다면, 27절이 말하는 것처럼, 주인은 “차라리 돈을 취리하는 자들(이자놀이 하는 자들)에게 맡겼다가 원금과 이자를 받으려”하는 것이 훨씬 잘 어울립니다.

●비유의 결론

오늘 비유 말씀의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과, 두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말하기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 23)라고 축복합니다. 100년 치, 40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맡겼으면서도, 주인은 그것을 “적은 일에 충성했다”며 칭찬하십니다. 결국, 이들이 칭찬받은 것은, 주인이 자기들을 믿고 어마어마한 달란트를 맡겨 준 것으로 인해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맡겨준 일로 인해 감격해서 충성되게, 성실하게, 겸손하게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일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세 번째 종은 입으로는 “주님!”이라 불렀지만, 정작 주인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주인의 말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주인의 뜻을 헤아리기는커녕, 자기 마음대로 주인의 뜻을 너덜너덜하게 왜곡합니다. 26절을 보면 이러한 세 번째 종에게 주인은 서슴없이 말하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가 나를 알기를 씨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흩뿌리지 않은 것에서 모아들이는 자로 알았던 것이냐!”고 꾸짖으십니다.

결국, 주인은 저들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면서,(28) 혹독한 말로 이르시기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9-30)고 말씀하십니다. 기회는 지났고, 혼인잔치의 문은 닫힌 것입니다. 밤이 온 것입니다.

●재능대로 & 오랜후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리해보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권면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주님의 판단이 나의 판단보다 앞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판단이 옳으므로, 타인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달란트를 주신 이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주인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을 똑바로 알지 못하는 것은 결국, 주인을 모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교훈과 더불어, 비유에 나오는 주인이 15절에서 “각각 그 재능대로”(according to his ability) 달란트를 주었다는 것과 19절에서 “오랜 후에(after a long time) 돌아와 결산했다”는 것에 마지막으로 주목하게 됩니다.

“각각 그 능력대로”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잘 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주님이 우리를 더 잘 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허물, 그리고 연약함조차도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더 잘 헤아려 아시지만, 그래도 주님은 우리의 강점을 보시고, 우리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보시기에 달란트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저는 잘못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마냥 겸손한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약 습관처럼 그렇게 말하면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쓰임 받고 헌신하는 것을 못내 거절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는 행위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는 결코, 겸손과 거리가 멉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교만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주인이 “오랜 후에” 돌아왔다는 것은 다소 ‘의도적’인 말씀으로 들립니다. 좀 더 일찍 돌아와도 됐지만,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즉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활용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저는 잘못합니다.”라는 말만 우리 입에 맴돌고, 달란트를 사용하는데 힘과 지혜를 쏟는 게 아니라, 땅에 파묻느라 힘을 쏟으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면, 그것은 달란트를 받은 자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복종을 교묘하게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모습도 또 다른 의미의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은혜받은 자들의 자유와 복종

고대사회는 왕이라든가 부유한 집 주인이 먼 여행을 떠나게 되면, 한두 달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리는 일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주인이 아무에게나 재산을 맡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간혹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 나오는 못된 품꾼들처럼, 주인이 집을 비운 틈을 타서 주인의 등에 칼을 꽂는 자들도 왕왕 있었을 것이니, 자신의 재물을 맡길 만한 종을 선택하는 일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인이 신임한 사람들이요, 주인에게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달란트를 줄 일이 없습니다. 주인이 아무에게나 무작위로 달란트를 준 게 아니라, “누구에게 맡겨야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한 달란트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까?” 해서 고르고 또 고른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이 바로 이와 같이 선택받은 사람이요,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영광스러운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독일의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오직 행위에만 자유가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본회퍼 지음, 손규태,정지련 옮김, 『저항과 복종』 대한기독교서회> 본회퍼 목사님이 말한 “행위”란 주님을 향한 “복종의 행위”를 뜻합니다. 곧 앞서 마르틴 루터가 말한 것과 같이 본회퍼 목사님도 “오직 주를 위해 복종을 행할 때 비로소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함께 예배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추수감사절인 오늘 주님께 드릴 감사 열매를 충분히 맺지 못했다 하는 분이 계십니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혹여 여러분의 모습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여기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날짜가 2023년 11월 19일 12시 07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주일로 예배하는 이 시간, 아직 주님이 오시지 않은 걸 보니, 주님이 우리에게 시간을 좀 더 주시려나 봅니다. 혹여 지난 11개월의 삶이 주님이 주신 기회에 힘써 충성하며 복종하는 삶이 아니라, 받은 달란트를 땅속에 묻느라 시간을 허비한 삶이었다면, 속히 달란트가 묻혀 있는 곳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서둘러 달란트를 파내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부지런히 그 달란트로 인해 주의 명령에 복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은혜에 합당한 자로 살며, 복종과 자유 속에 주어지는 큰 기쁨의 감사로 주께 칭찬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