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라! 너, 하나님 앞의 단독자여!”

(마 25:1-13)

<2023년 11월 12일 성령강림 후 제24주 설교 / 녹색>

●감리회 신앙고백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감리교회는 “감리회 신앙고백”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는 거룩하시고 자비하시며 오직 한 분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이처럼 감리교회의 첫 번째 신앙고백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것이고, 이어서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셋째로는 “성령”에 대한 고백, 그리고 넷째로 “성경”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으로 이어져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우리 몸의 부활과 영생 그리고 의의 최후 승리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아멘”이라는 여덟째 고백으로 마칩니다.

이처럼 감리교회는 태초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완성된다는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신앙고백은 감리교회만의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목소리로 고백하는 성경적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신앙”, 곧 “재림 신앙”을 갖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의 근거는 성경이고, 성경 중에서도 복음서, 복음서 중에서도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즉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3절)라고 묻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물음에 차근차근 대답해 알려주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가르침은 두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첫째는 마태복음 24장 42절이 말하는 것처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42절) 그리고 둘째는 44절이 말하는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는 것입니다. 요약해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첫째는 “깨어 있으라”는 것이요, 둘째는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끝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러한 24장의 가르침을 주신 뒤에,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 1-13절은 “열 처녀의 비유”, 14절부터는 “달란트의 비유”, 그리고 31절 이하로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연이어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 준비하라”는 교훈을 재차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또한,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신앙’을 촉구하시면서, 그러한 신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그런 신앙을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유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씀하실 것입니다.

●“혼인 계약”으로서의 고대 이스라엘의 결혼

오늘 본문 1절에서 예수께서는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시면서, 주님의 재림을 혼인 예식에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먼저 신랑 가족이 신부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을 찾아 결혼하기로 ‘약속’합니다. 곧 ‘약혼’입니다. 그 후에 적당한 결혼 날짜를 잡으면 신랑은 신부의 집으로 가서 신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성대한 혼인 잔치를 벌이며 결혼 예식을 치릅니다.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결혼 절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약혼은 오늘날의 약혼과 다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신랑과 신부가 약혼하면, 결혼식은 물론이고 아직 서로 얼굴조차 못 봤다 하더라도, 두 사람은 이미 혼인을 맺은 거나 진배없습니다. 그래서 만약 신랑이 마음을 바꿔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은 “파혼”(breaking the engagement)이 아니라 “이혼”(’divorce)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친이었던 요셉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요셉은 자신과 약혼한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알고 어떻게 했던가요? 성경은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마 1:18-19, “He had in mind to divorce her quietly”)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법적 분쟁을 걸지 않는다는 뜻인데, “가만히 끊는다”는 것은 “파혼이 아니라 “이혼”(avpolu,w)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결혼하기로 약속만 했을 뿐인데, 왜 이혼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결혼에 있어서, 신랑은 신부를 얻기 위해서 “케투바”(Ketubah)라는 합당한 비용을 신부 아버지에게 지불하고, 신부를 데려옵니다.<Art of the Ketubah: Decorated Jewish Marriage Contracts, 예일대학교 전자도서관, https://beinecke.library.yale.edu/>

그러니까 “혼인 계약”(contract of marriage)을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거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식을 위한 주례자가 없어도 되고, 그저 친지 중 하나가 혼인 예식을 주관하면서 ‘거래가 성사되었음’을 확인할 뿐입니다. 이미지를 보시면, 오늘에도 이런 전통이 남아서 손으로 만든 값비싼 ‘혼인 계약서’($4,800)를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일도 왕왕 벌어집니다.

창세기를 보면,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쎄빠지게 일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야곱입니다. 야곱은 신부 라헬을 얻기 위해서 7년을 일했다가, 삼촌 라반에게 속아 레아를 얻었고, 다시 7년을 일해서 드디어 라헬을 신부로 맞이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동력으로 아내를 얻기 위해 삼촌과 거래, 곧 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케투바”가 아닌 “혼인 서약”

한 가지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약혼하면, 혼인 예식을 위해 적당한 날짜를 잡습니다. 당시 신랑 측에서 혼인 예식을 위해 가장 적합하게 여겼던 요일은 무슨 요일일까요? “넷째 날”(the fourth day of the week), 즉 “수요일”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가 너무 참담합니다. 유대 문헌에 따르면, 당시 신랑 측에서 결혼식을 넷째 날, 수요일로 고집하곤 했던 이유는, 다음 날 목요일에 회당에서 ‘법정’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신부와 첫날밤을 치렀는데, 신부가 처녀가 아니면 이른 아침 법정에 가서 법적 다툼을 벌입니다.(a claim as to the virginity of the bride) 이로써 신부에게 지불해야 하는 지참금, 곧 “케투바”(ketubah)를 주지 않던가, 혹여 먼저 주었다면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Mishnah Ketubot 1:1:2, sefaria.org>

제가 “이혼”과 “케투바” 이렇게 두 가지 예로 말씀드렸는데, 이것만 봐도 당시 이스라엘의 결혼은 여성을 단순한 물건 취급하던 풍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혼인 예식은 여성에게 상당히 불리해 보입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몸을 이루는 것을 어찌 “계약”이나 “거래”으로 여길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유대교적 결혼관에 대해 예수께서는 창세기의 말씀으로 결혼에 대한 종지부를 찍으신 적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께서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막 10:6-9)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혼인 예식에서는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혼인 계약”(contract of marriage)이 아니라 “혼인 서약”(vow of marriage)을 합니다. 신랑과 신부는 혼인 서약을 ‘사람 앞에서’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선언하면서, 두 사람은 동등한 관계로 한 몸을 이루어 살아가게 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결혼에 대한 가장 커다란 인식 차이가 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 있는 다섯 처녀

본문으로 돌아와 다시 1절을 읽겠습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약속한 혼인 잔치 날이 되면 신랑과 신부는 모든 채비를 갖춥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등을 들고 나갔다” 말씀하시는 것처럼 날이 어두운 것입니다. 창세기 29장을 보면, 야곱이 신부를 얻는 장면을 “라반이 그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밤(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창 29:22-23)고 묘사하는 것처럼, 고대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낮’이 아니라 ‘밤’에 행해졌습니다.

낮 시간 동안 신랑과 신부는 혼인 예식을 위해 각자의 집에서 준비했다가, 밤이 되면 신랑이 많은 들러리와 함께 행렬을 지어 신부의 집으로 향합니다. 신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혼인 잔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2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2절)라고 합니다. 내용으로 보니, 이들은 신부가 아니라, 신부와 함께 신랑 집에 따라나서는 ‘신부 들러리’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미련한 자(mwro,j)고, 어떤 사람이 슬기 있는 자(fro,nimoj)인가?’하고 봤더니, 예수께서는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3-4절)고 말씀하십니다. 곧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것과 준비하지 않은 것으로 “미련함/슬기로움”이 갈라집니다.

여기서 “등(불)”이라고 번역된 것을 성경 원어로 보면 “람파스”(lampa,j)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에서 우리가 아는 영어 단어 “램프”(Lamp)가 나온 것인데, 성경 원어로 보면 이 단어는 “등불, 횃불”(Lamp, Torch)을 둘 다 의미합니다.<EDNT vol-2, William B. Eerdmans> 그래서 어떤 이는 본문의 처녀들이 들고 있는 불을 ‘등불’로 이해하고, 어떤 이는 ‘횃불’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게 등불인지 횃불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그림 속의 여인들 손에 들고 있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느냐/아니냐”만 중요할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것이 “미련함/슬기로움”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더디 오는 신랑, 졸다 잠든 열 처녀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신랑이 예정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늦어도 보통 늦는 게 아니라 더는 기다릴 수 없을 지경에 이를 만큼 신랑이 신부의 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예수께서는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They all became drowsy and fell asleep)라고 말합니다. 미련한 처녀들만 잠든 게 아니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조차도 잠들고 만 것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들이 기다리다 지쳐 잠든 것이 잘못한 일인가요? 이 사람들이 잠든 것은 훗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기도하실 때 세 명의 제자들이 졸았던 것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저는 예수께서 열 명의 처녀 모두 졸다가 잠들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왠지 싫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이 다 졸았다는 말씀이 심지어 위안이 됩니다. “졸음 앞에 장사 없다”고, 만약 제가 그 상황에 있었더라도, 저 역시 기다리다 지쳐 졸고, 졸다가 지쳐서 잠들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혼인 예식을 위해 온종일 허드렛일을 하느라 피곤해 지쳤으니,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신랑으로 인해 졸게 된 것을 탓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들었던 제자들에게는 “너희가 나와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마 26:40) 하시며 꾸짖으셨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처녀들을 꾸짖지는 않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늘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의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자 하면서도 때로는 실패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육신이 연약하고, 병약해서, 그리고 아직 잘 다듬어지지 않아서 우리의 신앙을 뒷받침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미련한 자나 슬기 있는 자라 모두 졸다 잠이 들었다는 것은 그러한 ‘인간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한 인간의 한계를 잘 아시는 주님은 오히려 그런 모습조차도 넉넉히 헤아려 주실 것이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정작 문제는 그들이 졸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드러난 일이었습니다.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6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밤중에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밖에 무슨 소동인가 하고 처녀들이 화들짝 깨어 귀를 기울이니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밖으로부터 들립니다. 아마도 동구 밖으로 신랑을 마중 나간 전령이 저 멀리로부터 횃불을 환하게 밝혀 다가오는 신랑 행렬을 보고는 급히 뛰어와 소리쳤을 것입니다. 구약성경 <아가서>에 보면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신부의 집으로 가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묘사합니다.

“거친 들을 헤치며, 연기 치솟듯 올라오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 몰약과 유향 냄새 풍기며, 장사꾼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향수 냄새 풍기며 오는구나. 아, 솔로몬이 탄 가마로구나. 이스라엘 장사 가운데서도 빼어난 용사 예순 명이 그를 호위하는구나. 모두들 칼로 무장했구나. 솔로몬 왕은 그 가마를 레바논의 나무로 만들었구나. 기둥은 은으로 입히고, 닫집은 금으로 꾸미고, 자리에는 보랏빛 털을 깔았구나. 그 안은 사랑으로 가득 찼구나.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보아라. 솔로몬 왕이다.”(아 3:6-11a, 새번역)

신부를 향한 솔로몬 왕의 행렬이 너무나도 근사하게 그려집니다. 한낱 일개 왕도 이러니,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행렬은 얼마나 놀랍고 위대하겠습니까? 솔로몬은 거칠고 먼지 나는 광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신부를 찾아갑니다. 신부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60명의 호위무사를 거느리고 갑니다. 왕의 결혼식답게 매우 화려한 모습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당시 신부의 집으로 향하는 신랑의 행렬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신랑의 행렬이 다가올 때, 이를 기다리던 신부와 들러리들의 마음이 어떨지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본문입니다.

밖에서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나자, 이에 허겁지겁 일어난 처녀들은 신랑을 맞으러 나가려고 하는데, 그제야 어리석은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염치 불구하고 등불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8절)고 말합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대답하기를,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9절)고 매몰차게 대답입니다. 한밤중에 어디 가서 기름을 산단 말입니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슬기로운 처녀들의 말이 야박하고 냉정한 대답으로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냉정한 처녀들의 말에 동조라도 하듯이, 이어지는 10-12절에서 주님은 더욱 차갑게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유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예수께서는 최종적으로 마지막 13절에서 선언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기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주님과의 관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혼인 잔치에 빗대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곧 “깨어 있으라, 준비하라”입니다. 마지막 13절 말씀을 보니, ‘깨어있는 신앙’은 문자적으로 일분일초도 졸지 않는 게 아니라, 결국 주님이 오실 것을 잘 대비해서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미련한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는 거기서 판가름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 비유 말씀은 다소 불합리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릅니다. “등불을 굳이 한 사람에 하나씩 들어야 합니까?”라고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중 몇 사람만 등불을 들어도 밤길을 나서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 말씀은 그러한 헛똑똑한 물음을 허락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기름은 신랑을 맞이하는 열 처녀 각 사람의 마음가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기름은 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매몰차게 들려도 그것이 현실입니다. 해가 저물어 밤이 되면, 어디 가서 구할 수도 없습니다. 기름은 낮에 구해놔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혼인 예식은 밤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낮에 구한 기름은 낮에는 필요 없다가, 밤이 되어야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말하는 ‘기름’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 각자의 삶”을 상징합니다. 어느 시인이 “나는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외로움 하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나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노래한 것처럼,<“나는” 중에서, 조병화 지음, 『꿈-떠나는 자의 노래』 동문선> 살다 보면 결단코 남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치료해주거나 위로해줄 수는 있어도, 대신 아플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가 신앙생활을 게을리하면, 가서 권면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줄 수는 있어도, 그 사람 몫의 신앙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기름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곧 기름이란,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 맺어줄 수 없는 주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준비하라, 너 하나님 앞의 단독자여!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는 이러한 신앙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개별자)”로서 풀이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두려움과 떨림 속에 ‘홀로’ 모리아 산을 올라야 했던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하나님을 대면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입니다.<쇠얀 키에르케고르 지음, 임춘갑 옮김, 『공포와 전율』 치우>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하나님과의 사랑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하나님의 샅바를 잡고 벌이는 거룩한 씨름판 위에, 누가 대신 출전해주지도 않습니다. 신랑을 맞이하는 기름은 누가 대신 준비해 주는 것도 아니고, 있는 사람에게 빌려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처럼, 신앙의 문제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 달린 문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리아 산에 오르는 아브라함을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만들어가기에 주저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단독자로서, 신랑을 맞이할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지난달 출간된 이해인 수녀님의 “작은 결심”이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시인이 말하는 ‘작은 결심’이야말로, 밤이 이르러 늦기 전에, 아직 기회가 있어 날이 밝은 동안, 부지런히 기름을 준비하는, 작지만 위대한 신앙의 결단이리라 믿습니다.

작은 결심

이해인 詩

세상에 머물 생의 길이가

조금씩 더 짧아질수록

나는 마음의 날씨를 밝게 가꾸고

변덕을 피해야겠다

사랑의 폭을 관대함으로 넓혀가야겠다

새롭게 만나는 시간의 결을

조심조심 맑고 곱게 가꾸어가야겠다

그리고 기도의 지향을 단순하게 정해야겠다

오늘은 이 결심만으로도 충분하고 충분하다

<이해인 지음, 『이해인의 햇빛 읽기』 열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