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로 물든 사람들”

(누가복음 2장22-40절) - 성탄후 제1주, 송년주일(2020년 12월27일)

* 설교에 들어가며

할렐루야, 2020년 마지막 주일, 송년주일로 오늘 이 자리에 예배하러 나오신 여러분들과, 또한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식구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틀 전 성탄예배 때도 우리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는데요, 저도 예배를 마치고 나서 우리가 드린 성탄 예배가 어떻게 송출이 됐는지 궁금해서 유튜브에 들어가 모니터링을 해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댓글을 남겨 주셔서 참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이옥련장로님은 앞장 서셔서 우리 교회의 ‘댓글부대’를 자청하셨고요, 어떤 분들은 기술적인 면에서 “이러면 좋겠다”하고 좋은 의견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말씀을 나눌 때마다 “아멘”으로 화답해 주셔서 온라인으로 예배 분위기를 은혜롭게 바꾸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제 설교를 짧은 문장으로 정리해서 댓글로 올리신 것도 봤습니다. 또, 곽혜경장로님은 제가 한 30분 짜리 설교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시는 것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히 그동안 기술적인 면에서 방송 송출이 원활하지 못했었는데요, 지난 주, 그리고 그 전 주에도 서영일권사님이 교회에 나오셔서 참 수고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끊김 현상 없이 아름다운 성가대의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송년예배를 시작하면서 우리 강신자권사님이 남긴 댓글을 잠깐 소개합니다. 이렇게 남기셨습니다. “평생에 가장 슬픈 성탄절이라 생각했는데, 말씀도 칸타타 찬양도 큰 은혜가 되어 위로와 힘이 됩니다.”

권사님의 댓글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지요? 우리 다 그런 마음으로 함께 예배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주님 오신 성탄절에 교회에 가지도 못하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시니, 얼마나 기가 막히셨겠습니까. 정말 슬픈 성탄절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슬픈 마음으로라도, 그 모습 그대로 우리 주님께 나오셨기에, 우리 주님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더욱 큰 은혜를 허락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강화도 살고 있는 함민복 시인의 “흔들린다”라는 시는 이렇습니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여러분, 지난 한 해 참 쉽지 않아 많이 흔들리셨지요? 괜찮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곤혹스런 상황이 생겨 참아내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으셨지요? 괜찮습니다. 2020년 마지막 주일 예배인 오늘, 그동안 많이 흔들렸던 여러분들,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렸을 줄로 압니다. 그렇게 흔들렸기에 덜 흔들렸을 줄로 믿습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이 교회를 지켜나가고 계시기에, 우리의 믿음은 더욱 깊이 뿌리내려서 2021년에도 굳건히 자라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 설 교

운명이냐 사명이냐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두 명의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곧 “시므온과 안나”라는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며,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소개하는데, 특이하게도 26절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란 말이기도 하고요, 같은 말이지만, 이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이 두 말은 결국 같은 말이지만, 차이가 좀 있지요.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이해하면, 어떤 ‘운명’을 뜻하는 말이 될 것이고요,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라고 하면, 일종의 ‘사명’을 뜻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두 말의 차이가 구분이 되시나요?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죽지 못하는 게 내 운명이야”와 (목소리를 깔고)“나는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는 살아 있을 거야” 제가 목소리 톤을 좀 바꾸기도 했습니다만, 확연히 구분이 되시지요?

그렇다면, 오늘 이야기에 나오는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겼을까요, 아니면 ‘사명’이라 여겼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제 눈에 시므온은 그것을 ‘사명’으로 여긴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저 ‘운명’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이내 숙명론에 빠져서, “이게 내 팔자려니”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등등과 같은 말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옭아매곤 하지만, ‘사명’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 기다림 :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그런데 여러분, 시므온이 받은 사명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가 매일매일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 오늘 말씀의 배경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제사장이 아니라 ‘예언자’였습니다. 예언자들은 사실 성전과 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전에 나타나면, 제사장들의 눈총을 받기 딱 좋은 것이었지요. 그러니 성전 부근에 머문다 해도, 쫓겨나지 않으려면, 문제 일으키지 말고 그저 조용히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추측을 해보면, 시므온이 했던 일은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제외하고는, 그냥 성전에 앉아 죽치고 기다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에는, 예를 들어 스가랴 9장9절에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말씀하듯이, 메시아가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귀를 타고 오실 것이라 예언하고 있으니, 아마도 시므온은 예루살렘 성전 문 앞에서 붙박이처럼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기다렸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말이 기다리는 거지, 언제 올지 모르는 그리스도를 그 성전 문가에 앉아서 기다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너였다가 /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정말 그렇지요. 누군가를 기다리다 보면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들이 마치 기다리던 그 사람인 것 같아서, 고개를 쳐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게 됩니다. 문을 통해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무슨 뜻입니까. “이번엔 맞을 거야, 이번에 진짜 니가 왔을 거야, 아니, 이번에 들어오는 사람은 너여야만 해” 하는 완곡한 마음을 하고서, 고개를 들고 문가를 바라본다는 말지요.

오늘 시므온이 그랬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랬던가요? 하루 이틀, 한주 두주,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일이년도 아닌, 일평생을 그렇게 기다려 왔던 시므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시므온의 나이가 몇 살인지 말해 주고 있지 않아서, 그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여러분, 전설에 따르면 시므온은 270살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말도 있고요, 360살에 죽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속으로,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오래 살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여러분, 구약에는 969살까지 살았던 사람도 있으니, 이 정도는 애교 아니겠습니까.

3. 하나님의 시간 : 영원한 현재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드디어 그리스도가 그 문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건장한 성인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거나, 혹은 스가랴의 예언처럼, 나귀를 타고 오실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이제 고작 17살 앳된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긴 아기로 성전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순간 시므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아, 스가랴가 아니라 이사야였어!”하며 마음을 고쳐먹고, 이사야서 7장14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믿음 생활을 하다보면 이처럼 잘못 판단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고집하던 게, 비록 그것이 수 십 년 된 일이라 해도 틀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그가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젊은 부부에게 안긴 아기’의 모습으로 올 것이란 건,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리스도가 자기 눈앞에 왔을 때, 어쨌거나 ‘그를 알아봤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27절은 그 이유를 알려주는데요, 바로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시므온은 이제 생을 마감할 때가 다 되어서, 일평생 기다리던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건’을 비로소 경험한 것입니다.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그 어떤 예상도 다 빗나가버리고, 기다림에 지쳤던 일평생의 지루함과 번민은 오늘 이 본문의 말씀에서 한꺼번에 다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알아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지난 1년 동안, 여러분들 또한 많은 계획을 세워 놓았지만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만’ 벌어졌지요? 계획은 무너지고, 예상은 틀리고,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일이 없는 1년을 살았다 생각하실 분들이 많이 있을 줄로 압니다. 2020년 새해가 시작할 때, 사명자로 살고자 했으나, 내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조차 헷갈릴 만큼, 우리의 상황은 전혀 미동도 없이 달라지지 않았고요,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고 있으니, 조바심으로 옥죄인 우리의 마음이 너무도 답답했던 1년을 보냈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한 현재”만 중요할 뿐입니다. 어제까지 살았던 ‘부실한 과거’는, 아름답게 빚어낼 ‘튼실한 오늘’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오늘 시므온이 성령을 따라 성전에 들어갔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이 송년예배 시간이, 성령이 충만한 시간이 되어서, 서강 예배당인 이곳과, 여러분들이 예배하는 각 처소에서, 한분도 빠짐없이 그리스도를 알아보시고,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4. 아기 그리스도께 물든 시므온

그런데, 그리스도를 만난 시므온은 오늘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28절은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고 합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만왕의 왕, 그리스도가 이제 자신의 품 안에서 빵긋 웃음을 지으며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킹](The Lion King)이 오버랩overlap 되곤 합니다. [라이온킹]에 보면 여러분, 동물의 왕 사자인 ‘무.파.사’가 새끼를 낳습니다. 그러자 극중에 예언자 역할을 하는 개코원숭이 ‘라.피.키’가 그 새끼 사자인 ‘심.바’를 안고, 높은 바위에 올라가 모든 동물 앞에 ‘이렇게’ 번쩍 들어 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사자들은 물론이고, 모든 동물들이 이제 곧 새 왕이 될 심바의 출생을 축하하고 경배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시므온이 그리스도를 경배한 방식은 “그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조심스럽게 안았겠습니까. 아기 안아보셨지요? 우리가 아기를 안을 때는, “세상이 무너져도 내 너만은 꼭 지키리라” 하는 필사의 마음으로 아기를 안게 됩니다. 아기를 안고 있을 때는 조심조심 다닐 수밖에 없고요, 설사 불상사가 일어나 넘어지는 일이 생겨도, 아기를 내팽개쳤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자가 더 크게 다쳤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시므온도 그런 마음으로 아기를 안고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입니다.

여러분, 아기를 안을 때면 누구라도 그 아기에게 흠뻑 빠져들기 마련입니다. 할아버지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안고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그 아기의 눈망울에 젖어들었을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물들어가는 것입니다. 아기를 안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그리고 만왕의 왕 아기 그리스도께 경배의 말을 전했겠지요. 그 경배의 말이 무엇이었을까요. “얼러러, 까꿍”. 설마 목소리를 깔고, “그리스도시여, 경배하나이다” 이러지는 않았겠지요. 사랑스런 아기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언어로 그 아기 예수를 경배하며, 물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안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녹여버립니다. 물들게 합니다. 완악한 마음이 푸근해지고, 고집 센 자아를 바꾸어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게 합니다. 심지어 우리의 언어를 바꾸고, 우리의 목소리조차 바꾸어 버립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아기’로 우리에게 오신 까닭일 것입니다. 시므온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로 하여 그리스도에게로 물들이려는 것입니다.

5. 아셀 지파인 안나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여자 예언자를 만납니다. 결혼 후 7년 뒤 남편과 사별을 했고요, 이후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았으며,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던 사람이라 합니다.

여러분, 짧게 소개되고 있지만, 이 여인이 겪어야 했던 삶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은 이 여인이 아셀 지파 출신이라고 소개하는데요, 아셀 지파는 예루살렘과는 전혀 상관없는 북-이스라엘에 해당하는 지파였습니다. 말하자면, 북한의 함경북도 출신 가문이 남한 서울에 이주해서 살고 있는 격이고요, 안나는 그 후손이었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되어 살아야 했던 것은, 당시 사회를 생각할 때,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 신세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상황은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6.25 전쟁을 겪으면서,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이 참 많았었지요. 그 실향민들 중에 그 모진 풍파를 월등히 견뎌낸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때 ‘실향민 기독교인들’이 그 난국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해답이 오늘 말씀 37절에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라.”고 말입니다.

6. 안나, 하나님의 등을 따라 걷는 사명자

여러분, 이 가련한 여인, 안나가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씀, 어떻게 들리십니까? 이것이 안나의 ‘운명’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명’이었을까요. 제 질문이 어리석었습니다. 분명 안나는 이것을 ‘사명’으로 알고 성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을 것입니다.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 이병률씨가 몇 해 전 여행 산문집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한 사람의 등짝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친구, 아름다운 사람, 닮고 싶은 어떤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등. 그걸 바라보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향입니다.” 참으로 통찰력 있는 글이지요. 더군다나 작가가 여행 중에 쓴 글이었기 때문에, 자기 앞에 먼저 걷고 있는 사람의 등을 따라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방향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안나는 하나님의 등을 바라보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방향을 찾았던 것입니다. 삶이 쉽지 않아서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릴 아픈 일들이 그녀의 삶에 일어났지만, 이후로, 그는 ‘하나님의 등’을 바라보는 ‘사명자’로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삶도 “흔들렸기 때문에, 덜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 깊이 뿌리 내린 한 그루의 나무로 자랄 수 있었던 것입니다.

7. 안나, 그리스도를 알아보다, 그리고 물들다

여러분, 그렇게 기도로 평생을 살아온 안나에게 임한 가장 큰 복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녀 또한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38절에서 성경은,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아와서”라는 말의 희랍어 원뜻은 ‘가까이 다가섰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바이러스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가까이 다가선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너무나도 잘 압니다. Contagion, ‘전염’입니다. 우리가 바이러스라는 재난을 통과하고 있어서, 지금은 적절한 말이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Contagious Christian”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염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되자”는 말을 자주 사용해 왔습니다.

안나는 그 아기 예수께 ‘가까이 다가가’ 그에게 전염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멈출 수 없어서,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본 아기가 너희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라고 증언을 하며 다녔다고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8. 설교를 마치며 : 그리스도로 물들어갑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여러분, 사랑하면 닮게 되지요?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를 팔에 안았던 시므온이나, 아기 예수께 성큼 가까이 다가갔던 안나나, 그리스도로 인해 짙게 물들어갔음을 오늘 우리는 보았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굳이 물들어야 하나고 합니다. 그냥 “페인트칠을 하듯 살면 어떠냐”고 말합니다. 아니 그것도 귀찮으니, 그냥 ‘스티커’를 붙이듯 살면 어떠냐고 우리의 귀를 희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시므온이나 안나처럼, 세월이 흘러 늙었어도 전혀 바래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색상으로 채색되어 물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올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남아 있습니다. 충분합니다. 송년주일로 예배드리는 오늘, 이 말씀의 두 주인공이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들인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일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일로, 이 선지자들의 가슴이 이제 비로소 두근거리는 것을 우리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가슴도 그리스도로 인해 두근거리십니까?

아직 시간이 남았습니다. 충분합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들어가는 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