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기다림이 현실이 되는 신비

<누가복음 1장 26-38절>

1. 설교에 들어가며 : 마종기 시인의 시

강림절 네 번 째 주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하는 여러분들도, 계신 곳에서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동일한 은총으로 함께 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지난 주 많이 추우셨지요? 날이 추워서 몸도 마음도 움츠려들기 쉬운 때인데요, 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욱 기승을 부려서, 무엇을 해도, 누군가를 만나도, 잠시 잠깐 걱정이 우리 생각을 스치고 지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마종기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1939년 생으로,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평생을 의사이자 시인으로 활동하고 계신 분입니다. 제가 그분의 시집을 모두 갖고 있을 정도로 참 좋아하는데요, 지난 9월에 5년 만에 새 시집이 나와서 얼른 사서 읽었습니다. 역시나 마종기 시인도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미국의 상황을 애타는 마음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기댈 곳이 정말 없네. 창궐하는 역병은 세상을 찌르고 사람들은 수없이 죽어서 쌓이고 매장할 곳도 화장할 곳도 없다는데 60년 전 시인이 되겠다고 한 건방진 약속, 늦었지만 이제 취소합니다. 숨 쉴 곳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60년 동안 시인으로 살았으면서도, “시인이 되려고 했던 것을 취소”하겠다고 합니다. 또한 평생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고 돌보던 의사로 살아왔으면서도, 이제 “숨 쉴 곳 찾는 것이 우선”이랍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상황이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렵다는 것을 여든이 넘은 한 지성도 하릴없이 고백하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없고, 서로 그리워하는 것조차 이젠 익숙해져버린 이런 때를 사는 동안에라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언약의 말씀을 주시며, 또한 우리가 구원의 신비를 가슴에 품고 살 수 있도록 동행해 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되새기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드리는 예배로 인해, 지난 한 주간 웅크려져 있던 여러분들의 영혼이, 한껏 기지개를 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설교

2-1. 존 클레이풀 목사님 이야기

미국에 존 클레이풀John Claypool이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설교가이자 저술가로 명성이 자자한 분이십니다. 그분의 글 중에,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딸에 대한 일을 회상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느낄 수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 목사님은 하나님이 인간의 삶 속에 어떤 방식으로 들어오시고, 간섭하시는지 세 가지로 정리해서 설명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강권적인 개입”입니다. 소위 말하는 ‘기적’같은 일로 인간의 삶 속에 개입하신다는 얘깁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으시지요? 여러분들도 주변에서 이런 기적적인 간증들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의사가 사망 선고를 내렸으나 기적적으로 치료가 되어 살아났다는 이야기, 끔찍한 사고를 당했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고 살아났다는 이야기 등등,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경우를 두고 우리는 ‘기적’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기적을 가리켜 “하나님이 천천히 행하실 일을 서둘러 행하기로 결정하신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이 ‘타이밍’timing을 아주 절묘하게 맞추어 행하시든지, 아니면 그 ‘타이밍’을 앞당기거나, 뒤로 늦추어 행하시는 경우를 바로 기적이라 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두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너 없으면 안 된다. 나좀 도와다오”라고 애걸하시는 거지요. 그래서 심지어 설득하시려고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모세는 애굽의 바로왕에게 가지 않으려고 했었지요. 그러자 야웨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모세를 겨우 설득해서 히브리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요나는 어떻습니까? 니느웨로 가지 않기 위해 도망까지 쳤다가, 하나님이 친히 물고기까지 준비하는 꼼꼼함을 보이셔서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머물러 있게도 하셨습니다. 설득하시기 위해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함에 있어서, 하나님도 행하시지만, 우리에게 참여하라고 요청하실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일하는 방법, 그러기 위해 인간을 설득하시는 방법, 이것에 존 클레이풀 목사님이 제시하는 두 번째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우리들의 삶에 개입하신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는 세 번째 방법은요, 우리에게 고통과 고난이 찾아 올 때 그것을 견디고 버텨낼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삶은 달리지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과는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상황이 더 열악해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느끼고, 그 믿음이 더 공고해지는 사람들을 여러분들도 많이 보아왔을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 일을 해결해 주시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겨낼 힘을 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온갖 고난을 다 겪고도 끝까지 하나님을 찬미했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성경의 인물들 중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요셉이 그랬고요, 욥이 그랬습니다. 자기가 처한 까닭모를 불행과 고통을 앞에 두고, 그들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려고 부단히 애를 썼던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왜 그렇게 위대한 사도로 우리가 그를 추앙하는 것입니까? 거기에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무엇보다도 3차에 걸친 전도여행으로 삶을 바쳐 교회를 세우고 전도를 했던 그의 이력을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었으나, 그리스도를 만난 후로는 목숨을 바쳐 주님께만 충성을 바쳤던 사도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골로새서 1장24절, 이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이 사람 바울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어집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바울은 고난이 기쁘답니다. 그 고난의 결국이 자신에게 이득이 있는 게 아닌데도, 그리스도를 위하고 남을 위한 고난인데도 기쁘답니다. 그리고 자신의 육신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나가겠답니다. 때리려면 더 때려보라는 겁니다,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냐는 베짱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처럼 배짱 두둑이 고난을 견뎌냈던, 그 ‘튼실한 영적 근육’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디모데후서 1장8절에서 말하듯,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런 능력은 우리 자신 안에서 제 아무리 찾으려 해봐야 찾을 수 없고, 오직 내 삶을 구체적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만이 우리가 고난을 이겨낼 유일한 근거가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2-2.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의 개입이란

여러분, 방금 소개한 1번부터 3번까지 이 세 가지 중에,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 삶에 개입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1번, 하나님이 내게 직접 기적을 행해주신다.

2번, 하나님이 나를 설득해서 나를 통해 일하시려 한다.

3번, 하나님이 해결해 주지는 않고, 내게 잘 견뎌내 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신다.

1번이면, 그냥 마음이 편하겠고요, 2번이면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에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2번은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고요, 이것을 다른 말로 일컬어 ‘선교의 영역’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3번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해결은 안 해주시면서, 내게 잘 견뎌내 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시는 방법” 말입니다. 여러분, 이 방법이 아마도 달갑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면, 똑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치료주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치료해 주시지만, 아픈 당사자의 강한 의지가 동반 돼야 비로소 치료가 되는 경우를 왕왕 듣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가 그랬지요. 바울은 자신의 질병을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며 치료해 주실 것을 구했지만, 돌아온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네 은혜가 족하다”는 겁니다. 바울은 낫고 싶었지만,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낫고-낫지-않고’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어쩌면 이 1번, 2번 3번을 넘나들면서, 지금이 1번인가, 2번인가, 혹은 3번인가를 분별해 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3. 1번, 2번 그리고 3번의 마리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1번, 2번, 그리고 3번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어떻게 그런 것인지 한번 살펴볼까요.

첫째로, 마리아는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그것도 즉흥적으로 행하신 일이 아니라, ‘철저한 구원 계획’ 하에서 행하신 기적의 당사자가 됩니다. 우리가 아는 한, 인류 역사상 단 한 번의 기적, 세상을 창조하신 태초 이후로 오직 한 번의 기적, 우리가 ‘동정녀’라고 부르는, 바로 그 기적이 마리아에게 임한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 마리아를 설득하십니다. 당신의 위대한 구원 사역을 행하기 위해서 마리아의 이해와 동의, 그리고 참여가 필요했던가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필이면 이미 한 남자와 정혼한 16살짜리 처녀인 마리아를 택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면면히 살펴보니 천사 가브리엘의 임무 완수가 그렇게 쉬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셋째로, 마리아는 주님의 뜻이 자신에게 이루어질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동정녀’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그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이란, 멸시와 오해와 조롱과 의심의 눈초리뿐이었고,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전대미문의 상황에 놓여 질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마리아는 끝내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2-4. 당돌한 16세 소녀, 마리아

여러분, 오늘 말씀에 나오는 천사 가브리엘과 소녀 마리아의 대화가 자연스러우시던가요? 저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이 소녀 마리아가 참으로 영민하고도 당돌한 아이였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돌한 아이가 천사 가브리엘과 옥신각신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이유는 이런 것들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천사 가브리엘은 성경에 오직 세 사람에게만 나타납니다. 첫째로는 구약 성경의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났을 때, 여러분, 다니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성경은 그가 “무서워 엎드렸다”(단 8:17)고 말합니다.

둘째로, 가브리엘 천사는, 오늘 마리아에게 나타나기 6개월 전에,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났습니다. (훗날 세례 요한의 아버지가 되지요.) 천사가 나타났을 때 제사장 사가랴는 어땠을까요? 누가복음 1장12절은 말하기를, “그는 천사를 보고 놀라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천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상상 속에 커다란 하얀 날개를 펄럭이는 존재로 그리고 있지만, 여하튼 우리와 전혀 다른 천상의 존재를 맞닥뜨렸으니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겠습니까.

여러분, 다니엘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다니엘이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자 무서워 엎드렸다는 겁니다.

사가랴는 또 어떤 사람입니까? 경건한 제사장으로서, 성경은 사가랴와 그의 부인 엘리사벳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다고 까지 말합니다. 그런데 의인인 사가랴 조차 가브리엘 천사 앞에 ‘놀라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가브리엘을 만난 마리아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기뻐하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고 말하자, 성경은 마리아가 그 말을 듣고 “몹시 놀라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29절에 보면, 그 놀란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빨리 한번 찾아보십시오. 마리아가 놀란 까닭은 가브리엘 천사를 봤기 때문이 아니라, 가브리엘이 한 인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면서 놀라며 궁금히 여겼다는 겁니다.

2-5. 다윗의 왕위를 주리라

이런 당돌한 꼬마를 봤습니까. 여러분. 놀랄 곳에서 안 놀라고, 갑자기 뜬금없는 것에 놀라면서, 그것에 호기심을 보입니다.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도 여유가 있고 당당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가브리엘 천사가 자신이 왜 마리아에게 왔는지 본론을 꺼내 놓습니다. 여러분, 이 메시지는 너무도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한번 잘 새겨 들으시길 바랍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말합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1-33) 아멘.

여러분, 이 말씀에는 참 많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만, 저는 오늘 그중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오늘 가브리엘은요, 마리아에게 천명하기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네가 낳을 아기에게 주겠다는 언약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꼭 전해주어야 할 말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패역했을 때, 그 모습을 보다보다, 참다못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벌하시려다가, 멈출 때가 있습니다. 멈추시고는 다시 회복시키겠다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러는 줄 아느냐” 하시면서 그 이유를 동시에 말씀해 주시는데요, 그게 바로, “내 종 다윗을 위해” 내가 그러마 하시는 겁니다.

이사야서 37장35절이 대표적입니다.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한 왕이었습니다. 허물이 많았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인류 역사상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했던’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패역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마음을 푸시고, 자신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구원을 뿔을 세워주시려 했던 단 하나의 근거가 있다면, 바로 ‘다윗’ 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다윗을 봐서 참는다” 이런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가브리엘은 이러한 구약의 예언과는 차원이 다른 언약을 마리아에게 주고 있습니다. 뭐라고 했지요? “다윗을 위하여”가 아니가 아예 “다윗의 왕위를 예수께 넘겨주겠다”는 것입니다. 조금 과장되이 말하자면, 이제 다윗은 볼 것 없다는 말입니다. 왜 그런가요? 사가랴가 노래한대로, 이제 예수께서 구원의 뿔로 드높여질 것이며, 그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새롭고,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재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구원은 예수로 말미암아 시작되고 완성될 것이며, 이제 그가 이스라엘에 한정된 것이 아닌, 온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란 말입니다. 아멘.

그러면, 이 언약을 받았으면, 저 같았으면 이제는 무릎을 꿇을 법도 합니다. 이제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압도되어 “내 주 가브리엘이여, 소녀가 미처 몰라봤나이다.” 하며 철퍼덕 자리에 주저앉을 법도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 참 쉽지 않은 마리아입니다.

2-6. 언약과 우리의 신앙생활

여러분, 그것이 가당키나 한 말이냐고 되묻고 있는 마리아가 보이십니까. 다윗의 왕위를 넘겨받을 만왕의 왕이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나에게서 태어난다니요, 내가 그 언약을 받을 사람이 되느냐고 항변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영민했고, 당돌했으며, 논리적이까지 했던 마리아가 자신의 입장을 내려놓지 못하고, 끝까지 고수하고만 있습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1902년에 우리 교회를 세우시면서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어쩌면 이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도, 그리고 우리 교회에게도 언약을 세워 주셨는데, 혹 우리는 내 입장을 앞세워 주님의 언약을 가리고 있지는 않는지요?

다시 한 번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세우신 언약은 무엇입니까? 혹 그 언약이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거절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하나님의 언약은, 부르심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을 받은 사람들은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부르심에 순종하며 멈추지 않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그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어떤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성과를 주시기도 합니다. 또한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라고 채근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묵묵히 있는 그대로 감내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 같지만, 그 언약의 주도권은 오직 하나님이 갖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설교를 접으며 :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이런 하나님의 주도권에 의문을 던지는 마리아에게, 이제 가브리엘은 33-37절로 쐐기를 박고, 명토를 박아 말해줍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5-37) 아멘.

하나님이 주신 언약은 결국 하나님 자신이 성취하실 것이며, 네가 무엇을 생각하든 하나님은 그것을 넘어서 계신 분이란 말입니다. 네가 된다고 하면 되고, 안 된다고 하면 안 될 일이 아니며, 네가 이해하면 일어나고, 이해할 수 없으면 성취되지 않을 그런 시시한 언약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 가까운 증거로 네 친족 엘리사벳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 보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리아는 그 언약의 말씀 앞에 숨죽여 응답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여러분, 말씀대로 마리아에게 이루어지면, 이제 그녀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요. 성령께서 직접 행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동정녀’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그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이란 무엇을 의미했었던가요. 이제 앞으로 마리아에게 남은 일은 멸시와 오해와 조롱과 의심의 눈초리뿐이었습니다.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전대미문의 ‘동정녀’가 된 것입니다. 태초로, 이제껏, 동정녀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에, 그 수모와 수치를 홀로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드디어 입을 엽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마리아’ 한 개인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것은 마리아 한 사람의 일처럼 보였으나, 이는,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의 ‘기다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마리아의 고백,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가 그 입에서 터져 나올 때, 그 기다림은 신비 속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와 말구유 위에 뉘여진 것입니다. 한 개인의 고백이 인류 구원의 역사를 푸르게 물들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간이 흘러 우리는 2020년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언약은 여전하며, 또한 오실 주님을 고대하는 우리의 마음도 여전합니다. 그분이 오셔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 오셨던 예수께서, 이제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인지 아닌지, 어쩌면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중 누구 한 개인의 결단과 헌신으로 인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아찔한 일이겠습니다. 이 강림의 때에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언약을 굳게 믿으며, 입을 열어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로 응답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