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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으로 놓은 사랑의 출렁다리”

(창 24:1-15, 57-67)

<2024년 6월 23일 성령강림후 제5주, 순교자기념주일 설교 / 녹색>

●언약백성 1대에서 2대에로

창세기 12장 이후로, 지난 12주 동안 만나왔던 아브라함을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란 땅에서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위대한 신앙의 모험을 떠난 인물입니다. 비록 그의 삶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해 보이기도 했고, 나약한 마음에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많았습니다만,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하는 믿음과 복종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모리아 산의 복종은 아브라함만의 복종이 아니라 이삭의 복종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결박하는 복종’을 보여줬다면, 이삭은 아버지에게 ‘결박당하는 복종’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하나님 언약 백성의 제1대 시조인 아브라함의 권위와 위엄은 제2대 이삭에게로 이양될 완벽한 채비를 갖추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라는 위대한 해가 지고, 저 멀리 이삭이라는 해가 솟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위해서 아브라함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려 하는데, 그것은 자기 아들이자 언약 백성의 제2대 시조인 이삭을 위해 신부를 데려오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본문은 아주 세밀하고도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어서 창세기 24장은 창세기 중에 가장 길기도 한데, 그만큼 중요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도 아니요, 그렇다고 이삭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종’이라 불리는 그가 오늘 본문의 주인공입니다. 그가 보여준 놀라운 복종의 모습은 언약 백성 1대에서 2대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는 일이었고, 그 일로 인해 이삭과 리브가의 ‘사랑’으로 출렁이며 결말을 맺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복종으로 놓은 사랑의 출렁다리”라 정했는데, 아브라함의 종이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 앞에 복종을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늙은 종, 엘리에셀?

본문을 보면 이제 나이 140세가 된 아브라함은 불혹의 나이 40세가 된 아들 이삭을 위해 신부를 구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서 아브라함은 그가 평생 데리고 있었고, 모든 일에 완전히 신뢰했던 종을 부르는데, 본문에는 종의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우리는 그가 창세기 15장에 나왔던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일 것이라 추정합니다.(15:2) 엘리에셀은 과거 아브라함이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을 만큼 신임이 두터운 인물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오늘 본문에서 그는 “아브라함의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24:2)이라고 소개될 정도니, 그의 인품은 물론이고 그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이었을지 가늠이 됩니다. 미국의 투자가 워렌 버핏(Warren Buffett, 1930~)이 이런 말을 했다지요? “정직은 아주 비싼 재능이다. 싸구려 인간들에게 기대하지 마라”(Honesty is a very expensive gift. Don't expect it from cheap people.)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비록 사회적 신분이 ‘종’이긴 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품격으로만 보자면, 성경에 나오는 누구에 비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막중한 일을 그에게 맡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종에게 말하기를, 여인을 데려오되 가나안 족속의 딸이 아니라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4절)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일을 맡아 수행할 종에게 말하기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 것이니,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7절)고 말합니다. 이 일은 인간적인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고, 이를 위해 하나님의 사자가 먼저 가서 준비할 것이니 너는 가서 네 할 일을 준행하기만 될 것이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 나홀 성 우물 곁에서 기도하다

사명을 받은 아브라함의 종은 드디어 아브라함이 말한 고향 땅 메소포타미아(아람-나하라임)의 나홀 성에 도착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니까 아브라함은 종에게 “낙타 중 열 필과 모든 좋은 것”을 딸려 보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신부의 부모에게 주는 결혼 지참금일 텐데, 낙타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가장 값비싼 운송 수단입니다. ‘낙타 중 열 필’이라고 하는 걸 보니, 아브라함이 얼마나 큰 부자였는지를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종은 ‘우물가’에 낙타들을 꿇렸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었으니 이제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올 것입니다.(10-11절) 이때 여인들이 오기 전에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하는데, 1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야카흐’, xky, appointed, convinced)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14절)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가 기도하기를 ‘하나님, 성 안의 딸들이 물 길으러 오면, 저는 그중 한 소녀에게 물 좀 달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때 그 소녀가 내 말을 듣고 나한테도 물을 주고 낙타에게도 물을 준다면, 그는 이삭을 위해 주님이 정하신 사람인 줄로 알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 여인을 만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것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 일은 하나님이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신’ 일인 것을 알겠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참으로 충직하고 신실한 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1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15절)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말처럼, 하나님이 이미 사자를 보내셔서 모든 것을 ‘준비’하셨고, 이로써 아브라함의 종이 목적지에 도착하여 기도할 때, 그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 ‘준비한’ 여인 리브가가 종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15절이 소개하는 것을 들어보니, 리브가는 그 옛날 아브라함이 하란 땅을 떠날 때, 같이 떠나지 않고 남았던 동생 나홀의 손녀딸입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이 그의 종을 이 머나먼 하란 땅으로 보낸 목적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낙타에게 물을 주는 리브가

이어지는 장면은 너무나도 흥미롭습니다. 리브가가 다가오자,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이 기도한 대로 물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그에게 물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종이 ‘요구하기도 전에’ 낙타 10마리에게도 물을 주어서 “배불리 마시게 하겠다”(19)고 말하더니, 그대로 합니다. 본문은 리브가가 낙타들에게 물 주는 모습에 대해 말하기를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는지라”(20절)고 하는데, 왜 이렇게 리브가가 뛰어다녔을까요? 미국의 웨스트 텍사스 A&M 대학교의 어느 교수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낙타는 200리터의 물을 3분 안에 마신다”고 합니다.<‘A typical camel can drink 200 liters of water in three minutes.’ ‘How much water can a camel store in its hump?’ by Christopher S. Baird. wtamu.edu> 그러니 한 마리도 아니고 10마리나 되는 낙타에게 물을 주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리브가는 낙타들에게 물을 먹이고 있고, 아브라함의 종은 그 앞에 앉아 리브가를 관찰하듯 유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설교를 위해서 리브가가 나오는 화가들의 그림을 꽤 많이 찾아봤는데,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화가들이 리브가의 팔뚝을 굵게 그립니다. 잠시 뒤에도 다른 그림을 보시겠지만, 시대에 따라, 관점에 따라, 리브가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리곤 하는데, 유독 팔뚝만큼은 굵게 그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낙타에게 물 주는 리브가의 모습이 실로 ‘듬직’합니다. 리브가는 절대 가냘픈 여인이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리브가가 나그네에게 물을 주고, 짐승들에게도 물을 먹이는 이런 일이 어디 오늘만이겠습니까?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우물에 올 때마다 이처럼 나그네를 돌봤고, 짐승까지도 돌봤을 것입니다. 팔뚝이 굵어서 짐승을 잘 돌본 게 아니라, 짐승을 잘 돌봤기 때문에 팔뚝이 굵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마음도 너그럽고 선합니다.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짐승에게도 그랬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21절을 보면, 앞서 그림으로 본 것처럼 아브라함의 종은 그녀가 낙타에게 바삐 물을 주는 모습을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라”(21절)고 합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삭의 아내로 알아본 것은 그녀의 유난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낙타에게 물 주는 일상적인 모습’ 때문이었다고 말입니다.

●다시 기도하는 아브라함의 종

리브가가 낙타들에게 물 주기를 마치자 아브라함의 종은 그녀에게 값비싼 금으로된 코걸이와 손목 고리를 줍니다.(22절)(리브가는 팔뚝이 굵습니다.) 그후 종은 그 자리에 머리 숙여 여호와 하나님께 애틋한 감사기도를 올리는데,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헤세드)과 성실(에메트)을 그치지 아니하셨나이다”(26-27절)라고 합니다. 앞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만나기 전에 기도하더니, 만난 뒤에도 기도합니다. 사명이 이루어지기 전에도 기도하더니, 사명이 이루어지자마자 다시금 머리 숙여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사자가 앞서 행할 것을 굳게 믿었고, 이루어진 일로 인해 감사기도를 올리는 탁월한 기도자의 본을 보인 것입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안 믿었습니까? 당연히 믿었습니다. 종이 하는 기도를 잘 살펴보면,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을 부를 때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릅니다.(12,27,42,48절) ‘내 하나님 여호와’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합니다. 게다가 앞서 리브가를 만나기 전에도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14절)라고 기도하더니, 지금도 기도하기를 “내 주인에게 주의 사랑(헷세드)과 성실(에메트)을 그치지 아니하셨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렇게 기도한 것은 ‘신분제도’ 때문이었을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하갈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16:13)이 아니라, ‘나를 살피시는 내 주인 사라의 하나님’이라 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종이 이렇게 기도한 것은 신분 때문이 아니라, 그가 뼛속부터 겸손과 복종이 몸에 밴 사람인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명을 받았을 때도, 사명을 완수했을 때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도, 실오라기 하나의 영광조차도 자기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창세기 24장에 그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안 나오겠습니까? 그는 실로 겸손과 복종을 겸비한 탁월한 기도자였던 것입니다.

●여성 아브라함, 리브가

이런 과정을 통해 이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집으로 갑니다. 가서 리브가를 이삭의 신부로 데려가도록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가족들에게 설명합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가족들은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50절)고 대답하면서, 허락하게 됩니다. 다만 가족들은 ‘열흘 정도만이라도 머물렀다가 가면 어떻겠느냐’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종은 지금 바로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거꾸로 요청합니다. 이제, ‘당장 떠날 것이냐’, 아니면 ‘열흘 뒤에 떠날 것이냐’를 누가 결정할 수 있습니까? ‘리브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8절에서 가족들은 리브가에게 묻습니다.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할라크’)?” 이에 리브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합니다. “가겠나이다.”(‘할라크’) 리브가는 지금 당장 떠날 것을 선택합니다. 그녀의 선택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 길을 떠나면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처럼?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그녀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가나안’입니다. 누구처럼? 아브라함처럼.

그러므로 이 장면은 우리로 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던 창세기 12장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런 이유로 학자들은 리브가를 “제2의 아브라함” 또는 “여성 아브라함”이라 부릅니다.<케네스 매튜스 지름, 『창세기2』 부흥과개혁사> 그녀는 굵은 팔뚝으로 민첩하게 낙타에게 물을 먹인 것만큼이나, 판단도 과감했던 것입니다. 훗날 그녀의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 모든 명분을 물리치고 야곱을 택한 것도 이러한 내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서로 눈을 들어 바라보다

이제 이런 과정을 지나 아브라함의 종은 드디어 리브가를 데리고 아브라함이 있는 가나안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과 리브가 일행을 맞이하는 사람이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 성경에서 사라졌습니다. 이후로 아브라함이 성경에 나오는 것은 25장에서 “향년 백칠십오 세로 죽어 막발라 굴에 장사했다”(25:5-11)는 기록뿐입니다. 본문에는 아브라함 대신에 이삭이 등장해서 리브가를 맞이합니다. 이로써 제1대 아브라함에게서 제2대 이삭에게로 하나님 언약 백성의 권위가 자연스럽게 이양되고 있습니다.

63절 이하에 나오는 장면은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로맨틱합니다. 63절은 말하기를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63)고 말합니다. 이삭은 저 멀리서 낙타 무리가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드디어 기다리던 나의 신부가 오는가!’ 하면서 가슴이 뜁니다. 이 구절을 읽다가 저는 <아가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해 노래합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아가 6:13)

그래서 그런지 어느 화가(엔리코 싸비니, Enrico Savini, 1832-1869)는 저들의 만남을 마치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만남처럼 매우 우아하게 그립니다.(그래도 리브가의 팔뚝은 굵습니다.)

64절을 보면, 이삭만 아니라 리브가도 저 멀리 누군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24:64-65a) 리브가의 심장 박동이 가빠집니다. 멀리 보이는 저 사내, 고개를 숙인 채 들판 이쪽저쪽을 바람처럼 거닐다가, 이제 고개를 들고 자기에게로 서서히 걸어오는 사내, 그는 바로 자기가 이곳엔 온 유일한 이유인 남자, 이삭인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리브가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역시 <아가서>에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가 떠오릅니다. “내가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내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아가 3:1,3)

●눈을 들어, 여호와 이레!

19세기의 독일의 어느 목판화 작가는 이 장면을 원근법을 사용해서 이렇게 그립니다. 중심에 있는 리브가와 그 옆에 서 있는 종을 아주 자세하게 그립니다. 낙타에 앉은 리브가의 모습은 위풍당당해 보입니다. 리브가와 종은 저 멀리 있는 이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팔뚝이 굵습니다.)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이삭은 지금 어떤 동작을 취하고 있습니까? 손을 이마에 올리고, ‘눈을 들어’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삭도 리브가도 ‘눈을 들어’(“바이샤 에나우 와야르”, ar>Y:w: wyn"y[e aF'YIw:)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앞서 14절에서 우물가에서 종이 했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님, 제가 우물가에서 한 소녀에게 물 좀 달라고 요청했을 때, 소녀가 저에게도 물을 주고 낙타에게도 물을 주면, 저는 그 소녀를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24:14)로 알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정하신 자’는 ‘하나님의 사자’가 먼저 가서 ‘준비(예비)한 자’입니다. “여호와 이레”입니다. 이삭과 리브가, 리브가와 이삭은 각자 ‘눈을 들어 바라봄’으로 하나님이 저들에게 ‘정하신 존재’ 곧 ‘준비하신 존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창세기를 생각하면, ‘눈을 들어 바라보아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존재를 발견한 인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하나님의 사자는 ‘그에게 손대지 말라’ 하면서 막았습니다.(22:12) 그러자 성경은 아브라함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바이샤 에나우 와야르”, ar>Y:w: wyn"y[e aF'YIw:) 한 숫양이 뒤에 있어 …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더라”(22:13-14a) 오늘 본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자가 숫양을 ‘준비’한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그것은 아무에게나 쏟아지는 축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 명령에 복종함으로 ‘눈을 들어 살펴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삭과 리브가는 서로 눈을 들어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정하시고 예비하신 짝으로 만납니다. 이로써 하나님 언약 백성 제2대 시조가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복종, 기도, 겸손의 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제1대 언약 백성의 시조인 아브라함에게서 제2대 이삭으로 그 권위와 위엄이 이양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공헌한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아브라함의 종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에셀’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복종의 사람’이었고,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마다 기도한 ‘탁월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겸손의 사람’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겸손했습니다. 기도의 모든 응답도 자신이 아니라 자기의 주인인 아브라함에게 돌렸습니다. 티끌만큼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 주인 아브라함을 성실하게 섬기는 “아브라함의 종”(2, 34)으로 남았고, 누굴 만나든지 ‘아브라함이 내 주인이십니다’(12, 27, 35-37, 48절)라고 말하며 끝까지 신의를 지킨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빠뜨린 게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가리키며 아브라함의 종에게 묻기를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라고 했을 때, 엘리에셀은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내 주인이니이다.”(65절) 지금껏 신의를 다해 주인 아브라함을 섬겼던 엘리에셀은, 이제 새로운 주인으로 이삭을 섬기기로 서약한 것입니다.

이로써 창세기 24장은 이렇게 마감합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창 24:67) 아브라함의 종이었다가 이삭의 종이 된 엘리에셀이 복종과 기도, 그리고 겸손으로 놓은 다리가 이제 사랑으로 출렁이면서 언약 백성 제2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에셀이 보여준 모습처럼, 복종의 사람, 기도의 사람, 겸손의 사람으로 사는 것, 그것이 언약 백성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모든 일에 복종과 기도와 겸손으로 매사 준행했던 엘리에셀의 삶이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