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행 8:8-21, 26-31)

<2025년 8월 17일 성령강림 후 제10주 설교 / 녹색>

●큰 소리 => 큰 박해 => 큰 기쁨

지난 1월 5일 신년예배 때, 저는 올해를 준비하면서 “흩어져 복음의 말씀으로 선교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설교 제목은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이기도 한데, 그때 저는 여러분과 세 가지 키워드를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큰 소리”(fwnh/| mega,lh|, 7:57)고, 둘째는 “큰 박해”(diwgmo.j me,gaj, 8:1)이며, 마지막 셋째는 “큰 기쁨”(pollh. cara., 8:8)이었습니다.

지난주 나누었던 것처럼 산헤드린 공회 앞에 끌려간 스데반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란 듯이 거절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신랄하게 설교했습니다. 설교를 듣던 이스라엘의 자유민들은 부득부득 이를 갈면서 일제히 “큰 소리”(fwnh/| mega,lh|, 7:57)를 지르며 스데반에게 달려들었고, 이로 인해 스데반은 성 바깥으로 끌려가서 돌에 맞아 죽는 끔찍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것이 발화점이 되어서 이후로 예루살렘 교회에는 “큰 박해”(diwgmo.j me,gaj, 8:1)가 일어나서 사도들만 예루살렘에 남고, 나머지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박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선교는 위축되기는커녕 사도행전 8장 4절이 증언하기를 “그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는데”(4),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지도자 중 하나였던 ‘빌립’은 사마리아로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했는데”(8:5), 그 결과 놀랍게도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pollh. cara., 8:8)이 가득 차게 되었다고 본문은 증언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행전 7장이 스데반의 선교 이야기였다면, 사도행전 8장은 빌립의 선교 이야기를 전합니다. 스데반이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고 박해받아 순교의 피를 흘렸다면, 빌립은 그 순교의 피를 바탕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수백 년간 원수처럼 지내던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된 것인데, 결과적으로 이방인 선교가 가능했던 것은 ‘박해’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초대교회 선교의 동력은 ‘박해’였던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쿠쉬 왕조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에는 빌립이 보여주는 두 가지 선교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는 사마리아에 있던 <마술사 시몬>과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빌립의 선교 이야기를 바탕으로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신앙의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데,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신앙의 빛으로 나오는 신앙’과 그렇지 않고 ‘신앙의 그림자에 머무는 신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빌립이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만난 이야기를 잠시 나누겠습니다.

에디오피아라는 나라를 아시지요? 사도행전 당시 에디오피아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에디오피아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수단’(남수단, 에디오피아 포함)에 해당하는 나라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나라가 ‘구스 땅’으로 알려져 있는데, 역사학이나 고고학에서는 이 나라를 ‘쿠쉬왕조’(Kush Dynasty)라 하고, “최초의 흑인 제국”으로 유명합니다. 군사력이 아주 막강했고, 황금을 비롯한 보석이 풍부해서 당시 북쪽으로 인접한 이집트와는 오래전부터 라이벌 관계에 있던 나라였던 것입니다<한때는 이집트를 정복해서 “이집트의 제25왕조”를 이루기도 했다. Núria Castellano, Rival to Egypt, the Nubian Kingdom of Kush exuded power and gold, nationalgeographic.com>.

이 나라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냐면, 신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로마 제국조차도 에디오피아 만큼은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에디오피아는 로마 제국과 상호조약(사모스 조약Treaty of Samos)을 맺어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조약을 맺을 때도 로마 제국이 주도한 게 아니라 에디오피아가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조약을 맺었을 정도로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 제국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던 거의 유일한 나라가 바로 에디오피아였던 것입니다<Stanley M. Burstein, Rome and Kush: A New Interpretation. Nubian Studies 1998 edited by Timothy Kendall>.

●에디오피아의 내시의 변화

오늘 본문에서 빌립이 만난 <에디오피아의 내시>라는 사람은 이처럼 막강한 힘을 지닌 에디오피아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으로 소개되는데(8:27), 말하자면 애굽의 총리대신이었던 요셉이 가졌던 지위와 맞먹는 위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위치에 있던 이방인이 성경을 읽은 것입니다.

당시 구약성경은 이미 오래전에 헬라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그가 성경을 접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본문이 말하듯이 그는 예루살렘까지 예배하러 왔을 정도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신앙이 남달랐는데(8:27), 그래서 어느 학자는 이 사람이 “유대교로 개종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William H. Baker, Evengelical Commentary on the Bible>.

하지만 그 먼 거리를 찾아와 예배하고 돌아가는 에디오피아 내시의 마음에는 공허함이 가득 차 있습니다. 유대교의 제사를 지켜보는 것도 별로 감동이 없어서 ‘내가 이러려고 이 먼 거리를 왔나’ 싶어 마음이 부루퉁하던 차에, 더군다나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32절 이하를 보면 그가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는 수레 안에서 이사야서를 읽는데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떨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는 말씀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행 8:32-33).

이에 내시는 광야 길에서 만난 빌립에게 ‘내게 성경을 알려주는 이가 없어서 당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8:31)고 하면서 빌립을 자신의 수레에 태우고는 성경을 풀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빌립은 ‘이사야가 가리키는 그’는 다름 아닌 도살장에 끌려간 어린 양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에 내시는 곧바로 세례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복음을 전한 빌립도 놀랍지만, 성경을 읽고 풀리지 않는 구절을 빌립에게 물었을 정도로, 그 에디오피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읽었던 인물이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그가 세례받는 장면을 사도행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행 8:38-39)

빌립이 내시와 함께 물에 들어가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표현을 보니 아주 진지하고 엄숙한 가운데 세례가 이루어졌다는 말로 들리고, 두 사람이 물에서 올라올 때 주님의 영이 임하셨다는 것을 보면, 거룩한 세례가 성령으로 인해 완성되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로써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러 떠나고, 필경 내시는 성령이 주시는 세례의 감격으로 마음이 충만해져서 기쁨을 간직한 채로 에디오피아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부푼 꿈을 안고 예루살렘을 찾아왔다가 자칫 공허함을 안고 돌아갈 뻔했던 여행이었는데, 빌립을 만나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음으로 참 기쁨을 안고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Simon says “나는 뭔가 위대한 사람이다!”

이제 빌립이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을 만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8). 실로 놀라운 복음 전도였는데, 그러던 중에 빌립은 ‘마술사 시몬’이라는 인물을 만나는데, 본문이 말하기를 그는 “전부터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사람을 놀라게 했던 사람”이고, 스스로 “나는 큰 자다”(le,gwn ei=nai, tina e`auto.n me,gan)라고 떠벌리고 있었다고 소개합니다(9). 이 구절을 <새한글성경>은 다음과 같이 원문을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합니다. “그는 마술을 부려 사마리아 민족을 홀리고 있었다. 또 자기가 뭔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떠벌렸다”(9절, 새한글성경)

마지막 구절이 상당히 재밌기도 하고, 시몬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결정적인 말이기도 한데, 시몬은 “나는 위대한 사람이다”(I am great man)라고 말한 게 아니라 “나는 뭔가 위대한 사람이다”(I am someone great)라고 했다는 겁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하면서도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일까요?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하다가, 문득 예전에 우리나라 원로배우이신 신구 선생님이 찍었던 롯데리아의 ‘크랩버거’ 광고가 생각났습니다. 광고를 보면 헤밍웨이의 명작인 『노인과 바다』를 패러디해서 신구 선생님이 바다에 나가서 사투 끝에 거대한 게 한 마리를 잡아 옵니다. 그때 그 게를 보면서 다른 뱃사람들이 ‘우와, 게다!’하면서 환호하자 신구 선생님이 그들을 바라보며 뭐라고 외쳤는지 기억나십니까? 신구 선생님은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이렇게 말합니다.

‘롯데리아 크랩버거가 제일 맛있다’라고 광고하는 것과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고 광고하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광고 효과가 클까요? 시간이 거의 20년이 지났음에도 여러분이 이 광고 문구를 기억하고 계신 것만 보더라도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 불 보듯 뻔합니다. 본문의 시몬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약 ‘나는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했다면, 일방적인 자기주장이지만, ‘나는 뭔가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 위대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바로 그다!’라고 아주 강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어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몬은 자기를 과시하고 드러내는 욕망이 극에 달했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욕망했던 것만큼 그의 말이 사람들에게 먹혔던 것인데, 본문은 말하기를 사마리아 사람들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시몬을 향해 “이 사람은 저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10절)라며 칭송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몬은 얼마나 기고만장했겠습니까?

●성령과 시몬의 문제

그러던 그가 빌립을 만난 뒤에는 어땠습니까? 12절 이하를 보면,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며 전도할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에게 나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마술사 시몬도 빌립의 말을 믿고, 그에게 나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시몬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면서 빌립이 보이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면서 놀랐다”(행 8:13)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에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게 분명합니다. 그는 이제껏 자기가 행하던 한낱 마술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한 힘을 빌립에게서 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시몬은 빌립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놀라고 또 놀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로 문제가 생깁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는데(14절), 이 두 사람을 보낸 것은 이유가 있었는데,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지만, 16절이 말하는 것처럼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이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16절)는 이유였습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고, 세례까지 받았는데, 한 사람도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본문에 대해서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사도행전에서 “가장 예외적인 구절”이라고 말하면서 당황스러워 하는데<하워드 마샬 『사도행전』 CLC>,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피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고, 다만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좀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빌립이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음에도,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이 내려온 일이 없자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이 성령을 받게 하려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득달같이 내려왔습니다. 두 사람이 안수하자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받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 사달이 납니다. 18-19절은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로 인해 사람들이 성령받는 것을 지켜본 시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18-19)

이 구절을 잘 보시면, 시몬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사도들이 안수하여 사람들에게 성령을 받게 하는 권능을 돈을 주고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영어 단어에 성직을 돈을 주고 사는 ‘성직 매매’라는 뜻인 “Simony”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가 바로 이 장면에 나오는 저 마술사 ‘시몬’(Simon)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권능을 돈으로 사려고 한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무지했고, 불경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본질적이고도 치명적인 문제가 시몬에게 있었습니다. 돈을 주고 사도들의 권능을 사서 시몬이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그는 돈을 주고라도 <성령을 받고 싶다>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해달라”고 말했듯이, 그는 돈으로 <성령을 부리는 권력>을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에디오피아의 내시와 사마리아의 시몬에 대한 상반된 평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빌립이 전도한 두 사람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에디오피아의 내시였고, 둘째는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입니다. 이 두 사람은 빌립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털 깎이러 끌려간 양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세례를 받고 성령이 주시는 큰 기쁨으로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사마리아의 시몬>은 예수를 믿는 것처럼 보이긴 했어도, 끝내 성령을 받지도 못했으면서도 성령을 부리는 권력만을 탐했던 자였기에 베드로에게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행 8:21)는 저주의 선언을 듣고 말았습니다.

4세기에 살았던 교회 역사학자인 유세비우스(Eusebius, ?~339)는 에디오피아의 내시에 대해 “이방인 중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 말씀의 신비를 받아들여 세례를 받았고, 전 세계 신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동족에게 돌아가 온 우주의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성육신(sojourn)하신 주님의 복음을 전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난 사순절에 <성 에프렘의 기도>를 나누었는데, 기억하십니까? 성 에프렘(Ephrem the Syrian, ?~373)도 본문의 에디오피아 내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노래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진주들이 섬광처럼 빛나네! 이방인에게 빛을 주신 이가 에티오피아인들에게도 그 밝은 광채를 비추셨노라! 병거에 앉은 에티오피아 내시는 빌립을 보았고, 빛의 어린양께서 물에서 올라온 그 흑인을 만나셨다네! 성경을 읽던 그 순간, 에디오피아인은 세례를 받고 환희로 빛나는 길을 갔다네!”

(Very glistening are the pearls of Ethiopia! He that gave light to the Gentiles, to the Ethiopians did His bright beams reach. The eunuch of Ethiopia upon his chariot saw Philip: the Lamb of Light met the dark man from out of the water. While he was reading, the Ethiopian was baptised and shone with joy, and journeyed on!)<St. Ephrem the Syrian, The Pearl: Seven Hymns on the Faith, Wyatt North Publishing>

오늘날 동방 정교회는 본문의 에디오피아인을 ‘聖人’으로 기념하고 있을 정도인데, 전승에 따르면 그는 훗날 순교자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에 비추어 보면, 그는 정말이지 “신앙의 빛”으로 성큼 걸어 들어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마술사 시몬에 대해서는 악평이 즐비한데, 초대교부인 요한 크리소스톰은 첫째, 시몬은 성령 받는 것에는 관심 없고 성령을 주는 권능만 탐했고, 둘째, 자기를 극도로 과시하려는 인물이었으며, 셋째로는 세례를 받은 뒤에 빌립을 따라다닌 것도 주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 때문이었다고 지적합니다<John Chrysostom, Homily 18 on Acts.(New Advent/Schaff ed)>.

최초의 성경 신학자로 불리는 초대교부 이레네우스((Irenaeus)도 마술사 시몬을 “거짓으로 믿음을 가장한 인물”(feigned faith)이라고 하면서 “모든 이단의 시조”(All sorts of heresies derive their origin)라고 평가했습니다<Iraenius, Against Heresies(Book 1, Chapter 23)>. 오늘 설교 제목에 비추어 보면, 그는 신앙이 있기는 있었으나, “신앙의 그림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 사람에 대한 이와 같은 상반된 평가를 듣고 보니, 우리 중 시몬처럼 짙은 어둠에 사로잡혀 사는 분은 한 사람도 없을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중 에디오피아의 내시처럼, 주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빛을 향해 사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은 의구심이 듭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신앙의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하며 살고 있는지를 묻게 됩니다.

사실 오늘 설교 제목은 영국의 저명한 기독교 사상가로서, 제가 종종 인용하는 C.S. 루이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G.K. 체스터턴(G. K. Chesterton, 1874-1936)이라는 분의 글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그는 성도들이 신앙의 밝은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신앙의 어두운 그림자에 안주하는 모습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 되지 못하고, 반(反)기독교인도 되지 못한다. 전반적 분위기가 반항적이라서 부루퉁해 있고 외고집을 부리거나 사소한 것을 비판하기 일쑤이다. 여전히 신앙의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으나 신앙의 빛을 잃어버렸다”<G.K. 체스터턴 『영원한 사람』 아바서원>

본문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성령을 받지 ‘못한’ 게 아니라 받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자아를 몰아내야 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니들이 게 맛을 알아!”는 식으로 “나는 뭔가 위대한 사람이다!”라는 아집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어두운 내면에 성령의 빛이 비치고, 성령이 들어오는 것은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실수는 악명높은 마술사 시몬만 저지르는 게 아닙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신앙인도 종종 이런 실수와 오류에 빠집니다. 우리도 신앙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을 해왔기에 신앙이 없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신앙이 없는 것은 싫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빛’으로는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신앙의 빛에 우리의 못난 자아가 노출되는 것을 꺼립니다. 그리하여 다만 ‘나는 신앙이 있다’는 ‘나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편안한 신앙의 ‘그림자’에만 머물러 있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본래 주님을 원천적으로 거부한 사람을 향한 말씀이지만, 오늘 말씀 속의 에디오피아 내시와 사마리아의 시몬을 기억하며 “과연 우리는 신앙의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어느 쪽에 서서 걷고 있는지 묵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빛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이제껏 익숙했던 신앙의 그림자를 떨쳐버리고, 광명한 주님의 빛을 마음에 받아, 그 빛으로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길 되시고, 밝은 빛 되시는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섬광처럼 떠오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