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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 자유, 사랑의 선언문”

(행 15:1-2, 22-31)

<2025년 10월 12일 성령강림 후 제18주, 농촌선교, 사회복지주일 설교 / 녹색>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by 몰트만

작년 98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독일의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2024)이라는 금세기 최고의 신학자가 있습니다. 이분은 어린 시절 신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수학과 물리학에만 몰두하던 총명한 학생이었는데, 히틀러가 벌인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면서 그는 어느 미군 군목이 전해준 성경을 통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신학의 길에 들어서서 전 세계 신학자들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끼쳐왔습니다<『몰트만 자서전』 대한기독교서회>.

처음에 몰트만은 당시 무신론에 빠져 있던 유럽 사회를 향해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아들을 주신 ‘성부 하나님’의 구원과 희망을 증거했는데<『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서회, 1972>, 이후 분열과 갈등으로 점점 힘을 잃어가는 교회를 바라보면서 그는 ‘성령님’에게로 관심을 옮깁니다<『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서회 1975>. 이로써 신학자 몰트만은 ‘하나님의 영은 살아 계시고 지금도 교회를 통해 역사하심’을 죽어가는 세상에 설파하려 했던 것입니다<『생명의 영』, 서회, 1992>

몰트만은 “교회가 하나되어 일치하려면” 성령의 능력 안에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별의별 사람들이 모여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지만,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참으로 신뢰할 때, 교회는 “서로를 심판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변호하는 친구가 된다”고 말합니다<『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몰트만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성령의 교회만이 교회의 미래입니다”라는 것입니다<『몰트만 자서전』 서회>.

●성령의 일, 인간의 일

하지만, 교회의 문제는 몰트만이 살았던 시대만의 문제라든가, 우리가 사는 21세기에 들어 갑자기 생겨난 문제는 아닙니다. 교회의 문제는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2천 년 동안 끊이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은 막강하십니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의 죄악성’이 성령의 능력을 가로막습니다.

성령께서는 머리털 하나라도 훤히 비치고자 어둠을 밝히려 하시지만, 인간은 성령의 스위치를 꺼버립니다. 성령께서는 메마른 영혼에 생명수를 넘치도록 부어 주시려 하지만, 사람은 성령의 밸브를 꽁꽁 걸어 잠급니다. 인간의 죄악성은 하도 교묘해서, 성령이 오시면 꼼짝 못 할 것을 잘 알기에, 성령이 오시는 길목에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 사도행전 15장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시험대 위에 올라섭니다. 겉으로는 ‘이방인이 구원받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에 관한 협소한 문제로 드러났지만, 사실 이 문제는 ‘교회가 서로를 정죄하면서 분열할 것이냐, 아니면 성숙한 믿음으로 화합과 일치를 이룰 것이냐’를 결정하는 위중한 사건입니다.

이 본문을 바탕으로 저는 “일치, 자유, 사랑의 선언문”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 이 제목은 몇 해 전에 본당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벽에 설치한 문구에서 따온 것입니다. (함께 읽기)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러나 모든 것에 사랑을”(In essentials unity; in non-essentials liberty; in all things charity)

이러한 제목으로 본문을 살펴보면서, 우리 서강교회와 한국 교회에 주는 주님의 교훈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사도행전 15장의 전체 내용을 요약하면 이런 것입니다.

●헬례와 구원의 문제

1. <1-2절a> 함께 읽은 1-2절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어떤 사람들이 수리아 안디옥교회를 방문해서 말하기를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할례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주장인지 알지만, 당시 신앙적으로 초보에 불과했던 안디옥교회 성도는 심히 흔들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주장이 열두 사도가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사람이 한 말이라서, 그 말을 들은 안디옥 성도들은 ‘우리가 뭘 잘 못 믿고 있나 보다’ 싶어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동요하자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에게 응대하는데, 본문이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15:2)라고 말하는 걸 보면, 이 문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2. <2절b>을 보면, 이에 혼란스러운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이 주장하는 게 맞는 건지 어떤 건지,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에 보내서,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의 생각을 확인하기로 결정합니다.

3. <3-4절>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이런 사명을 안고 떠난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 도착하는데,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은 그들을 환대하면서 맞이합니다. 저들의 눈에 바울과 바나바는 둘 다 호감이 가는 인물입니다. ‘바울’은 자기들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선교 여행을 통해 소아시아 지역 곳곳에 교회를 세운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바나바’는 원래 예루살렘 교회 리더 중 한 사람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던 그를 베드로와 장로들이 안디옥으로 파송해 보냈다가 돌아왔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래서 잠시나마 이 두 사람으로 인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앉았을 것입니다.

●바리새파적 신앙인과 유다와 실라

5. <5절>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과거에 ‘바리새파’였다가 예수님을 믿고 예루살렘 교회 성도가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생각해보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게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지만, 바리새파가 예수 믿는 건 그 이상일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복음서에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들 중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니고데모’가 유일했겠습니까? 사도행전에서도 지금껏 ‘바리새파’ 출신으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바울’이 유일할 정도였으니, 이렇게 생각해보면, 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나 어려운 결단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인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을 곰곰이 생각하면 너무 안 됐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기껏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저들은 바리새파 특유의 쓴-뿌리를 버리지 못합니다. 이에 그들 중 몇몇이 벌떡 일어서서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15:5)라고 말합니다. 사실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 온 것은 바로 이 문제를 묻기 위해서인데, 그들이 묻기도 전에 바리새파 성도들이 먼저 이렇게 도발했다는 건, 분명 저들은 평소에도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에게 ‘함-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앞서 안디옥교회에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한 사람이 누군지, 물증은 없지만, 그 정체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6. <6절> 이처럼 바리새파 출신의 성도들이 나서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질문으로 공세하자 환대의 분위기가 갑자기 차갑게 변하면서 사도와 장로들은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여서 변론을 하는데(7), 평온했던 예루살렘 교회에 전에 없던 논쟁이 생겨난 것입니다.

7. <7-9절> 많은 변론 뒤에 그들 중 두 사람이 일어나 차례로 말하는데, 하나는 베드로고, 다른 하나는 야고보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요, 야고보는 마리아가 낳은 예수님의 동생이었으니, 명실공히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권위자들이 나선 것입니다.

먼저 말문을 연 베드로는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시고 이방인과 유대인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구약성경 <아모스서>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은 원래부터 이방인들로 하여 주를 찾게 하셨다’라며 한술 더 떠서 말합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바울과 바나바를 옹호한 것이라면, 야고보는 ‘성경’으로 바울과 바나바의 입장을 공고히 했던 것입니다. 둘 다 탁월한 변증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이 문제에 쐐기를 박으며 말하기를,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라”(15:19-20)고 말합니다.

야고보의 말인즉슨, ①이방인에게 애써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말자는 것이고, ②대신에 그들이 선교할 때 주의해야 할 것들을 편지에 적어 보내서 거룩한 복음이 훼손되지 않게 하자는 탁월한 제안이었던 것입니다. 역시 마리아와 요셉의 가정에서 자란 예수님의 동생은 야고보는 달라도 뭔가 달랐던 것입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는 “유다와 실라”(Judah and Silas)라는 두 명의 교회 지도자에게 편지를 들려서 안디옥으로 보내게 됩니다.

●일치의 편지, 자유의 편지

오늘 읽은 본문이 그 편지의 내용인데, 이 편지는 초대교회에서 열린 최초의 공의회, 즉 <예루살렘 공의회>(Jerusalem Council)의 결정문을 담은 소중한 문서인데, 편지 내용을 보니 베드로의 말보다는 야고보의 말이 담긴 걸 보면, 편지의 초안을 야고보가 작성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영국의 존 스토트 목사님은 이것을 일컬어 “재치와 세련미의 걸작품”(a masterpiece of tact and delicacy)이라고 불렀을 만큼 아주 탁월한 문서입니다<John Stott, The Message of Acts(BST), IVP Academic>.

저는 이 편지를 설교 제목으로 정한 것처럼 <일치, 자유, 사랑의 선언문>이라 이름을 붙여보았는데, 이 편지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자유’와, 그리고 모든 것을 감싸는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로 ‘일치의 편지’입니다. 본문 22-23절을 함께 읽습니다.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이 …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행 15:22-23, 26)

이 결정은 비록 베드로와 야고보라는 걸출한 두 사람의 사도가 주도한 것이긴 하지만, 본문이 말하듯이 “온 교회”가 만장일치로 결정한 일입니다. 게다가 편지는 말하기를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교회의 관계를 “형제”(avdelfo,j)라고 설정하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편지를 야고보가 쓴 거라면, 두 교회의 관계를 ‘형제’라고 설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 곧 형제입니다. 야고보는 한낱 죄인에 불과하지만 영광스럽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이지 않습니까? 이런 점에서 평소 야고보는 다른 누구보다 ‘형제’라는 말에 감격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보여주는 호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교회를 형제라고 부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의 호칭입니다. 이로써 훗날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느니라”(엡 2:14)라고 편지한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복음의 진리는 그 어떤 장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힘이 있음을 형제라는 말 속에 고스란히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유의 편지’입니다. 본문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15:28)

예루살렘 공의회는 안디옥교회 신자들에게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지우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요긴한 것’(tw/n evpa,nagkej)이란 말은 성경에 딱 한 번만 사용되는 희귀한 단어인데, ‘강제로라도 꼭 해야 하는 것’(out of compulsion)을 뜻합니다<EDNT Vol-2.>. 이것에 대한 여러 주석이 있지만(29절의 ‘예루살렘의 사변형’), 오늘 설교 제목에 비추어 생각하면, 이것은 본질적인 것을 뜻합니까? 아니면 비-본질적인 뜻합니까? ‘본질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일치’를 이루어야 하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것 외에는 안디옥의 형제들에게 일절 그 어떤 ‘짐’(ba,roj: ‘짐, 무게, 권위’)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비본질적인 것들’은 피차 ‘자유롭게’ 선택하자고 탁월한 제안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편지

마지막 셋째로 ‘사랑의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내용상’으로는 심각할 정도로 첨예화된 논쟁을 담고 있는데, ‘어조’는 따뜻하기만 합니다. 편지에 그 어떤 딱딱함이라든가, 권위주의적인 압박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곤경에 처한 형제에게 주는 친밀한 사랑과 위로의 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특징을 몇 가지로 찾아볼 수 있는데, ⓵먼저 본문 24절을 보면,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15:24)고 말하는 것처럼, 예루살렘 형제들은 안디옥 형제들이 괴로워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울까봐 걱정합니다. ⓶25-26절을 보면, 예루살렘 공의회는 ‘바나바와 바울’에 대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예루살렘 출신이 ‘바나바’를 ‘바울’보다 앞에 쓴 것 외에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③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에 보내고 노심초사하고 있던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보낸 사랑의 편지를 읽고 한층 마음이 밝아졌는데, 30-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행 15:30-31)

갈등과 분열의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교회 사이에 켜졌던 빨간불이 꺼지고 이제 파란불이 켜집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듯이, 예루살렘 공의회가 보낸 사랑과 위로의 편지로 인해 <본질적인 것에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러나 모든 것 위에 사랑>으로 출렁이는 그리스도 안의 참된 교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판단 vs 성령의 판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 위대한 예루살렘 공의회 선언문이 사랑으로 출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 외에는 없습니다. 앞서 읽었던 28절을 강조점을 달리해서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행 15:28)

마지막 구절이 “옳은 줄 알았다”고 말하듯이, 그들도 전에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무지했던 자기들을 깨닫게 해서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준 존재가 있으니, 그분이 누구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들을 사랑의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초대교회 교부 존 크리소스톰도 이 구절을 해석하기를 “공의회가 ‘성령과 우리는’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결정이 인간의 판단이 아니라 성령의 판단임을 확인시켜주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St. John Chrysostom, Homilies on the Acts of the Apostles. 33>.

●오소서 성령이여, 사랑의 길로 인도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면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를 두고 곰곰이 묵상하다가 “본질적인 것은 주님과 관련된 일이고, 비본질적인 것은 내 자존심이 걸린 일이겠구나” 싶어서 뜨끔했습니다. 혹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해치는 일은 잘도 넘어가면서도, 내 자존심 건드리는 일은 참지 못하는 어리석은 신앙이지는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매일 곱씹고 되새겨야 하는 주님과 관련된 본질적인 것에는 별 관심도 없고, 슬쩍 넘어가고, 잘 모르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자존심과 관련된 비본질적인 것에는 한 치의 물러섬이 없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짝꿍한테 넘어오지 말라면서 책상에 연필로 금을 그으며 툴툴대는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얼마나 유치하고 가련하실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걸 알면서도 고칠 줄을 모르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독일의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아주 엄중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공동체가 아니라 자기가 옳다 여기는 공동체에 집착하는 사람은, 비록 그가 아무리 진실하고, 진지하며, 헌신적인 의도로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Dietrich Bonhoeffer, Gemeinsames Leben, Gutersloher Verlagshaus에서 우리말 옮김>(이 구절의 번역 완성도는 ①문익환 목사님의 번역, ②John Doberstein의 영문 번역, ③정지련-손규태의 번역, ④정현숙의 번역 순이다. 오래된 게 더 낫다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일치도 있고, 자유도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일에도 사랑의 마음으로 출렁이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 안에 사랑이 소진할 때가 있습니다. 따뜻한 애정의 말이 모래알 씹는 것처럼 목에 걸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랑의 신에게, 사랑의 영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사랑의 길로 인도하소서” 설교 처음에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성령의 교회만이 교회의 미래입니다.” 성령께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께서만 우리를 사랑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덮으시는 우리의 하나님 성령님께 기도하는 성도, 성령께 기도하는 가정, 성령께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출렁대는 성령의 길을 따라 걷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