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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오시면 나는”

(행 2:1-13)

<2025년 7월 6일 성령강림 후 제4주 맥추감사절 설교 / 녹색>

●나그네 길의 동행자

오늘 7월 첫째 주를 맞아 우리는 <맥추감사절>로 예배하러 모였습니다.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여러분의 삶과 신앙은 어떠셨습니까?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여러분 가정이 믿음으로 달려온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서 주께 감사하는 제목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반대로 지난 6개월의 여정 중에 영 시원찮고 답답해서 감사는커녕 불만스럽고 불평만 가득하던 때가 있었다면 그것은 어떤 때입니까? <맥추감사절>인 오늘 지난 6개월간 달려온 신앙 여행에 점수를 준다면 여러분은 몇 점을 자신에게 주시겠습니까?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에 여행은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짜증 나는 일도 생기고,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면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때로는 ‘괜히 여행 왔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행을 계획할 때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공감하시겠지만, 여행을 계획할 때는 예산도 중요하고, 목적지도 중요하고, 기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가는가’,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여행이 아무리 힘들어도 동행하는 사람이 마음이 넉넉하고 지혜로우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면서 훗날 그 순간을 돌아볼 때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동행하는 사람이 속이 좁고, 참을성도 없고, 매사 불평하고 지적만 하면서 여행 내내 대접만 받으려 하고, 아무리 멋진 여행으로 시작했더라도 감정만 상하기 십상입니다. 돌아와서는 ‘내, 그놈하고 다시는 같이 안 간다!’고 이를 가는 일도 왕왕 있습니다.

교회가 처음 생겼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신앙 여행(여정)”(Journey of Faith)으로 여겼습니다.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는 자신의 삶을 일컬어 하나님의 도성을 향해가는 “나그네”라 불렀습니다<“나는 지금 이 세상의 도성에서 나그네로 지낸다” 『하나님의 도성』 CH북스>. 신앙생활은 단숨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조금씩 성장하기 마련인데, 그래서 이러한 나그네로서의 여정에 누구와 함께 길을 가느냐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3대 절기 중 하나인 ‘오순절’(칠칠절, 맥추절)

이것을 잘 아시는 주님은 하늘로 오르실 때 우리의 신앙 여행을 위해 최고의 동행자를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셨는데, 그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이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오실 성령님의 이름을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고 친절히 일러주시면서, 그분이 오시면 ‘상담자’로, ‘돕는 자’로, ‘안내자’로, 그리고 심지어 ‘변호인’으로 너희와 함께할 것이라고 듣기만 해도 눈물 날 것 같은 가슴 뭉클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의 신앙 여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교회의 역사 2천 년이 시작된 것인데, 이 일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신 지 정확히 50일이 지난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우리는 이것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오순절”에 대해 잠시 살펴보면, 유대인들은 “오순절”을 “맥추절”(출 23:16)이라고도 하고, “칠칠절”(레 23:15-21, 신 16:9-12)이라고도 부르는데, 모두 같은 날입니다. “유월절”을 기준으로 50일 지난 날을 이렇게 세 가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칠칠절’(‘샤브오트’)은 말 그대로 유월절로부터 ‘7일의 7주’가 지난 50일이 되는 날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나중에 헬라어 성경으로 옮길 때는 ‘오십’이라는 의미로 “펜테코스테” 즉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이날은 보리와 밀 등의 첫 열매를 거두게 된 것을 감사하는 날이라는 의미로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때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절기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본문 5절이 말하는 것처럼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것입니다. 이 맥추절이 공교롭게도 오늘 우리가 <맥추감사절>을 드리는 기원이 됩니다.

●바벨탑 사건과 오순절 성령 강림

이러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구약에 나오는 아주 중요한 두 개의 사건과 비교할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는데, 첫째로 본문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바벨탑 사건이 성취된 일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교만할 대로 교만하고, 잔인할 대로 잔인해진 니므롯의 후예들(창 10:9-10)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탑을 건설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온 천하에 알리려 했습니다. 이에 창세기 11장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모습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가는 일”(“자, 우리가 내려가서 11:7a”)이고, 둘째는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신 일”(“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11:7b”)이며, 셋째는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일”입니다(“여호와께서 그들을 온 지면에서 흩으셨더라 창 11:7-9”). 정리하면 하나님은 ①하늘에서 땅에 내려오셔서 ②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③교만한 인간을 흩으시며 심판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것과 동일한 패턴으로 성령님이 행하신 세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님이 “하늘로부터 각 사람 위에 임했다”(“홀연히 하늘로부터…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2:2-3”)는 것이고, 둘째는 “그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했지만, 알아들었다”(“그들이…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2:4,8)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5절이 말하는 것처럼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모였다”(“그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2:5”)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앞서 살펴본 바벨탑 사건과 정확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바벨탑 심판 사건을 완벽히 뒤집고 회복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서는 심판을 위해 내려오신 성령님이, 이제 본문에서는 구원과 회복을 위해 친히 강림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순절을 말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사건입니다.

●모세의 율법 수여와 오순절 성령강림-1 오순절의 시내산 율법 수여

둘째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완성한 날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날 애굽에서 탈출했는데(출 12:6-14), 출애굽기 19장 이하에 보면 그들은 시내산에 도착해서 저 유명한 ‘시내산 율법’을 받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때가 유월절에 애굽에서 떠난 지 며칠째 되는 날이라고 믿을까요?

성경에 힌트는 나와 있지만, 성경은 구체적으로 그때가 며칠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유대인의 삶과 종교의 중심인 탈무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한 날짜를 ‘50일째’로 계산하고<“On the sixth day of the month of Sivan, the Ten Commandments were given to the Jewish people”, Shabbat 86b, sefaria.org>,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던 인물 중 하나인 필로(Philo of Alexandria, B.C.30~A.D.45)라는 철학자는 이날을 아예 50일의 의미로 “오순절”(Pentecost)이라고 부르면서, “이날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가장 거룩한 선물인 ‘율법’이 주어진 날이다”라고 명시합니다<“The feast … is called Pentecost, because it is the fiftieth day from the one mentioned above, the day of the sheaf. And on this day the most holy gift of the Law was given to the Hebrews”, Philo of Alexandria, On the Decalogue 160-162, loebclassics.com, Harvard University Press>.

그래서 앞서 ‘칠칠절, 오순절, 맥추절’이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로 같은 날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유대인들은 여기에 한 가지 의미를 더합니다. 곧 “율법 수여일”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은 절대적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과 함께 시작된 것이기에, 이날 “율법 수여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그 어떤 날에 견줄 수 없는 감격스럽고 위대한 날인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 수여와 오순절 성령강림-2 새언약의 성취

그러면 이스라엘은 그 율법에 충실하고 복종하던 백성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마치 율법 없는 자들처럼 오만방자했고, 하나님 말씀을 껍데기 취급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사 29:13)고 꾸짖으셨고, 예레미야를 통해서는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버렸음이라”(렘 6:19)고 최후 통촉까지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예수님 시대까지 여전히 율법을 모독하고 능멸하는 역사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 곧 ‘오순절’에 하나님의 영이 내려와 사람들 위에 임하십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 ‘율법의 시대’는 가고 ‘성령의 시대’가 온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옛 언약 시대’는 가고 ‘새 언약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번 주 새벽 기도회 때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미 ‘새 언약의 시대’가 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1-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1-33)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성령강림 사건은 바로 이 말씀, 곧 그 옛날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이 성취된 날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돌판에 그 율법을 새기지 아니하고, 성령으로 저들의 마음에, 그리고 영혼에 새기시려는 것입니다.

●시내산의 오순절과 예루살렘의 오순절의 차이

여기서 잠시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와 본문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출 19:16)이 산을 둘러싸고,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니”(출 19:18)고 말합니다.

성령이 강림하실 때는 어떤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했다”면서(2:2),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2:3)고 합니다. 시내산의 오순절에서 시간이 대략 1,500년 흐른 예루살렘의 오순절에, 성령께서는 인간의 이성으로 헤아릴 수 없고, 뭐라고 형용조차 할 수 없는 신비롭고도 놀라운 방식으로 강림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시내산의 오순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만’ 나타나셨지만, 이제 예루살렘의 오순절에는 하나님의 영이 거기 모여 사모하는 “각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2:3). 그리하여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2:4)고 본문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성령의 시대, 교회의 시대가 출범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산에 머물며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돌아왔을 때, 산 아래에 있던 백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출애굽기 32장은 고발하기를 저들은 제각각 지니고 있던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출 32:4a)고 합니다. 그 송아지 앞에서 한다는 짓이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b)라고 합니다.

이에 출애굽기 32장은 하나님의 분노를 숨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네 백성이 부패했다!”(7), “이 백성은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9) 하시며 분노하십니다.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모세는 레위 자손을 모아서 이스라엘 진중에 있던 자들 “3,000명”을 죽게 합니다(“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날에 백성 중에서 삼천 명가량이 죽으니라 출 33:28”). 율법 수여와 함께 3천 명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강림의 결과는 어땠습니까?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사도행전 2장 14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저 유명한 “오순절 설교”를 합니다. 베드로는 선지자 요엘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영이 부어졌음을 선언하면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21)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지만,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는데, “우리가 다 이 일의 증인이다!”(32)라고 선포합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담대한 증언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본문 40-41절을 함께 읽습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아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0-41) 1,500년 전, 시내산의 오순절에는 삼천 명이 죽었더니, 이제 예루살렘의 오순절에는 삼천 명이 세례받고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복된 기적 vs 불행한 기적: 성령이 오시면, 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신앙 여정에 있어서 가장 좋은 친구요, 상담가시고, 도와주시는 분이시며, 변호해 주시는 성령님이 오신 사건을 나누었습니다. 방금 살펴본 것처럼, 모세는 시내산에 40일간 머물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왔지만 결국 3,000명이 죽는 비극적인 일을 보았지만, 사도행전의 결과는 판이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 이 땅에 40일간 머무시면서 부활의 증거를 보여주시고, 말씀을 주셨더니, 그 결과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3,000명이 일시에 구원받는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찜찜한 구석이 있습니다. 본문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증언하고 있어서,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성령을 받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성령이 오셨어도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본문 5절을 보면 사도행전이 “경건한 유대인들”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인데, ‘오순절’을 맞아 제사를 드리기 위해 수백 리 길을 걸어서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종교적 전통을 준수하는 마음이 아주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경건한 자들이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본문 7절을 보면, 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7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놀라 신기하게 여겼다”(evxi,stanto de. kai. evqau,mazon)는 말은 성경 원어로 보면 “제자리를 벗어나다”(to put out of place)는 뜻입니다<Marvin Vincent, Word Stuides in the New Testament>. 마가복음에서는 이 단어가 “미쳤다”(막 3:21)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사용한 “갈릴리 사람”이라는 표현은 좋은 뜻에서 한 말이 아닙니다. “교육받지 못하고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사람들”<“uneducated and culturally backward” John Barry, Faithlife Study Bible>이라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이 거룩한 날, 성령이 오셨는데 저들은 성령 받기는커녕, 오히려 성령 받은 사람들을 ‘무식쟁이 갈릴리 촌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깎아내리더니, 12절에서는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12절) 하고, 급기야 13절에서는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13절)고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성령이 오셨는데 이 15개 지역에서 온 사람들만 일부러 피해서 오셨단 말입니까? 그럴 리가요. 사람이 피하면 피했지, 성령님이 누굴 일부러 피하실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경건한 유대인들”이라는 사람들은 마치 퍼붓는 비 사이를 달리면서도 한 방울도 젖지 않는 사람처럼, 기적적으로 성령의 강림을 피해버립니다. 성령강림도 기적이지만, 그 기적을 피하는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성령강림은 죽은 영혼을 살리고, 상처 입은 영혼을 소생시키고, 교회를 세우는 ‘복된 기적’이었지만, 이 사람들은 그 놀라운 성령의 기적을 피해 달리는 ‘불행한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영국의 존 스토트 목사님은 성령강림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백이십 명의 제자들이 기다려야 했던 것처럼 성령이 오시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성령은 오순절에 이미 오셨으며 결코 그의 교회를 떠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책임은 그분의 주권적 권위 앞에 스스로를 낮추고 그분을 소멸시키지 않기로 결심하며, 그분이 자유롭게 행하시도록 하는 것이다.”<존 스토트 『사도행전: 땅끝까지 이르러』 Ivp>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받은 자로 살고 계십니까? 그 복된 기적의 자리로 나아가 겸손한 영혼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고 계십니까? 성령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내 생각을 성령의 뜻에 조율하며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존 스토트 목사님의 말씀처럼, 성령은 이미 오셨고 교회를 떠나신 적이 없으신데,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령의 임재를 기적적으로 피해 사는 불행한 기적의 주인공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까? 성령의 일에 말없이 겸손히 참여하고 묵묵히 헌신하는 게 아니라, 본문의 경건한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하고만 있는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그런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시 눈을 감겠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곳에 오셨습니다.

지금 오셨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나는”

마음을 열고 성령을 받으십시오.

아집을 버리고 성령을 모시십시오.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을 의지하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의 안내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고,

상담자가 되시고, 변호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랑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매번 오셔도 매번 피해 달아나는

불행한 기적의 주인공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아, 지난 6개월에 감사하면서, 우리에게 허락하실 남은 6개월을, 성령의 열매를 맺는 기간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불행한 기적의 주인공이 아니라, 복된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