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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벨라 굴, 언약의 땅이 되다”

(창 23:1-20)

<2024년 6월 16일 성령강림 후 제4주 주일 설교 / 녹색>

●『베니스의 상인』의 유대인 ‘샤일록’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문학동네)에 보면, 앤토니오와 바싸니오라는 친구 간의 우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극 중 인물인 바싸니오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청혼을 해야 하는데 가진 돈이 없어서 친구 앤토니오에게 돈을 빌리려 합니다. 앤토니오는 베니스에서 무역선을 운영하던 부유한 상인이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그만한 돈을 빌려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지만, 방금 무역선을 해외로 출항시키느라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수중에 현금이 없습니다. 3개월 뒤 배가 돌아와야 돈을 만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지만,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고 싶었던 앤토니오는 그 지역에서 악명높은 ‘샤일록’이라는 고리대금업자를 찾아가 돈을 빌리려 합니다. 샤일록을 찾아간 앤토니오는 3개월만 쓰고 갚겠으니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자 샤일록은 앤토니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와 같이 공증인에게 가서 증서에 날인하시지요. 장난삼아 거는 조건으로 여차여차한 금액을, 여차여차한 날에, 여차여차한 장소에서 갚지 못한다면 벌금으로 당신의 몸 어느 부분에서든지 제가 원하는 데서 당신의 흰 살을 정확히 1파운드 베어낸다고 명기해주기 바랍니다.”

무슨 조폭도 아니고 ‘돈을 갚지 못하면 살을 1파운드(500g) 베어내겠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샤일록이 이것을 ‘장난삼아 거는 조건’이라고 말하니, 앤토니오는 만족스러워하면서 도장을 찍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 바싸니오는 자기 때문에 친구가 뭔가 찜찜한 조건으로 돈을 빌리는 게 영 신경 쓰여서 “나 때문에 자네가 그와 같은 증서에 날인하게 할 수는 없네.”라고 말하면서 만류합니다.

하지만 이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재차 이렇게 말합니다. “이보세요. 만약에 저분이 기한을 어겼다 해도 그 벌금을 징수해서 제가 무슨 득을 본단 말입니까? 사람 몸에서 취한 1파운드의 살이란, 양고기, 쇠고기 혹은 염소고기만큼의 가치도 없고 소용도 없어요. 저분의 환심을 사려고 저는 이 친절을 베풀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저분이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좋고, 그러지 않는다면 ‘안녕히 계십시오’입니다. 제발 저의 친절을 곡해 마시길.”

여러분이 돈 빌리는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지만, 앤토니오는 증서에 서명하고 돈을 빌립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돈을 빌린 앤토니오가 정해진 기일에 돈을 갚지 못합니다. 그러자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앤토니오를 끌어다가 법정 앞에 세우더니, 계약서에 적혀 있는 대로 그의 몸에서 1파운드를 잘라내겠다고 판사에게 요구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어서 벌어지는 일은 더 흥미진진한데, 결론을 알고 싶은 분들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악명 높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책 맨 앞에 적혀 있는 등장인물 소개란에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을 소개하기를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다른 등장인물을 소개할 때는 ‘누구누구의 아버지, 친구, 구혼자’ 등등의 관계를 중심으로 소개하지만, 샤일록에 대한 설명은 아주 간단합니다. <유-대-인> 유대인이라고 하면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서양에서 유대인은 ‘거래에 능수능란한 장사꾼’으로 통용됩니다. 그들은 어딜 가나 장사했고, 무엇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압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역대 인물 중 40%가 유대인이라고 하니,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와 거래할 때 유대인은 계약서의 서식이나 문장, 심지어 단어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전성수 지음, 『유대인 하브루타 경제교육』 매일경제신문사>

●사라가 단명한 이유와 안전한 매장지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거래의 달인 아브라함’을 만납니다. 비록 그는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유대인들에게 믿음의 조상이라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언약 백성의 시조인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위해 ‘막벨라 굴’(Machpelah)을 구입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부동산 거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본문을 통해서 저는 여러분과 “막벨라 굴, 언약의 땅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데,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원래 막벨라 굴은 당시 이방인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이 땅을 구입하면서 이후로 이곳은 영원한 언약의 땅이 됩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마감하는지, 그 과정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세상을 떠나는 일로 시작합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2절은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니라”(1절)고 말합니다.

사라가 세상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성경은 말하지 않는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175세 때 죽은 것에 비해서 사라가 일찍 죽게 된 원인을 ‘아브라함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이유인즉슨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죽이려 한 것을 사라가 알게 되어서 충격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유대 랍비들의 해석에 따르면(Midrash),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결박당했을 때 이삭이 이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아버지, 내 죽음을 어머니에게 말하지 마세요.”(“어머니가 구덩이 옆에 서 있다가, 어머니가 지붕 위에 올라서 있다가, 충격받으셔서 뛰어내리시기라도 하면 어쩔~”)<safaria.org, Midrash Tanchuma, Vayera 23>

이삭이 이렇게 말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사자가 다급하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무르면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행위를 멈추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흥미로운 해석입니다. 사라에게 이삭은 ‘금쪽같은 내 새끼’가 분명했기 때문에,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고 제물로 바치려던 이야기를 사라가 들었다면, ‘저놈의 영감탱이가 또 언제, 어디서,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근심했을 법합니다. 그것이 화병이 되어서 사라는 127세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랍비들은 해석합니다.

사라의 죽음으로 한참을 통곡하던 아브라함은 잠시 눈물을 멈추고 아내의 장례를 어디서 치러야 할지 실질적인 고민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아무 데나 묻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정적인 곳에 사라를 묻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안정적인 매장지’에 묻어주려 했던 것은 인간적인 생각만은 아닙니다. 사라는 누구입니까? 그녀는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 백성의 ‘시조’가 된 여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로서 그녀는 제2대 언약 백성인 이삭을 낳은 여인입니다. 그런 사라의 시신을 어찌 아무 곳에나 묻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아브라함은 아내를 매장할 특별한 장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매장할 소유지를 달라

본문 2절을 다시 보면, 성경은 사라가 어디서 죽었는지 그 장소를 특정합니다.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니라”(2절) 사라가 죽은 곳은 예전에 ‘기럇아르바’라 불렀던 곳인데, 성경이 쓰일 당시에는 ‘헤브론’이라는 이름으로 이름이 바뀐 것입니다. 그 땅 헤브론은 ‘가나안 땅’에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땅, 약속의 땅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사라는 하나님 약속의 땅에서 죽은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죽은 사라’를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매장’하고자 합니다. 매우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4절에서처럼 당시 그 땅에 살던 헷 족속 사람들에게 요청하기를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23:4)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땅에 대한 소유권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그가 본문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매장할 소유지’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를 위해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게르 웨토솨브’, bv'Atw>-rGE)라고 합니다.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란 ‘어느 특정 지역에 해당 부족의 허락을 받아 임시로 머물고 있는 나그네’를 뜻합니다. 한마디로 당신은 ‘갑’이요 나는 ‘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아브라함의 탁월한 거래가 시작합니다. 경제학자들은 누군가와 협상할 때 유념해야 할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상대방을 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기도록 도와주어야 한다”(원칙화된 협상, principled negotiation)<다니엘 핑크 지음, 『파는 것이 인간이다』 청림출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존재를 헷 족속에 비해 한없이 낮은 존재로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의 입지를 세워줍니다.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부터가 아브라함이 얼마나 탁월한 거래자요 협상가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막벨라 굴의 거래 시작

이에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아브라함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6절을 보면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 말하기를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지도자’(‘네시’, ayfin>)라는 말은 “추장, 대장, 왕자, 통치자”(chief, captain, prince, ruler)<eliyah.com>라는 뜻입니다. 헷 족속이 생각하는 아브라함은 비록 이방인이긴 하지만, 자기들의 ‘추장’이나 ‘통치자’가 되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아브라함을 신뢰하고 존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6b) 역시나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통 크게 마음을 엽니다. 저들의 묘지 중에 아브라함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사라를 묻으라고 호의를 베풉니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들의 뜻을 받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아브라함과 헷 족속 사이에 고도의 협상과 심리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집니다.

헷 족속의 호의를 듣고 아브라함은 기뻤습니다만, 그는 저들에게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 본문 8절과 특별히 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헷 족속의 유력한 인물 중 하나인 소할의 아들 ‘에브론’(Ephron son of Zohar)을 찾아 청하기를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나탄’)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으라”(9절)고 합니다. 이런 요구를 위해 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세는 겸손하다 못해 다소 굴욕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공짜로 묘지를 쓰라는 헷 족속의 배려에 대해, 아브라함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막벨라 굴을 사려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이자, 언약 백성의 시조인 사라를 위한 ‘안정적인 매장지’를 구하려 했습니다. 만약 헷 족속의 호의를 받아서 사라를 그 땅 어딘가에 묻었다고 해도, 세월이 수십 수백 년 흐르면 사라의 묘지가 흐지부지될 공산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 땅은 아브라함의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충분한 대가를 받으라”고 요청하면서 ‘막벨라 굴을 팔라’는 것입니다. 정당한 값을 지불하여 훗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소유권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나탄’ 핑퐁게임

이러한 아브라함의 요구를 당사자인 ‘에브론’이 듣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응답하는데, 본문 10절은 말하기를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에브론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을 사람에게 듣게 해서 ‘증인’으로 삼고자 했던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많은 증인 앞에서 에브론은 말하기를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나탄’)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나탄’)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나탄’)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고 합니다. “드리다”(주다)는 말이 몇 번 강조되지요? 세 번입니다. 에브론은 막벨라 굴을 그냥 주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드리다’(주다)는 말의 히브리어 ‘나탄’(!t;n")은 아주 독특한 말입니다. 이 말은 방금 사용된 것처럼 “주다”라는 기본적인 의미가 있지만, “팔다”라는 정반대의 뜻도 있습니다. 앞서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내게 주어(‘나탄’, !t;n) 충분한 대가를 받으라”(9절)고 할 때, ‘내게 주라’는 말이 바로 ‘나탄’인데, 그냥 달라는 게 아니라 ‘나한테 팔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브론은 같은 단어를 ‘주다’는 의미로 되받아 사용한 것입니다. 신경전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12절에서 다시 한번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힙니다”(12절) 그리고 앞서 에브론이 ‘성문에 들어온 모든 사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13절에 보면 이에 질세라 아브라함도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13a) 에브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나탄’, !t;n)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이번에도 또 ‘나탄’이 사용됩니다.

히브리어 ‘나탄’이라는 말이 어떤 뜻이 있다고 했지요? “주다, 팔다”라는 의미입니다. 앞서 아브라함이 이 단어를 ‘내게 팔라!’는 의미로 사용하자, 에브론은 아니다, ‘너에게 주겠다!’면서 되받아쳤습니다. 그런데 여기 13절을 보니 아브라함은 다시 한 번 히브리어 ‘나탄’을 사용하면서 ‘너는 내게 아무 것도 주지 말라. 내가 너에게 밭 값을 주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좀 헷갈리시지요? 설명하는 저도 복잡해집니다. 앞서 제가 “유대인은 누군가와 거래할 때 ‘계약서’의 서식이나 문장, 심지어 단어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인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지금 아브라함과 에브론 사이에서 ‘나탄’이라는 단어 하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극렬한 신경전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양쪽 누구도 한 치의 물러설 의도가 없습니다.

●은 사백 세겔

에브론은 이쯤에서 그만 포기할 만도 한데, 그는 오히려 뭔가를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아마도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브라함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결국 내가 이득을 볼 것’이라 생각하면서 에브론은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같이 읽습니다.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에브론의 말인즉슨, ‘아브라함이여, 우리가 남입니까?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우리 관계를 생각해서 더는 문제가 되지 않도록 은 사백 세겔에 막벨라 굴을 팔겠습니다.’ 하면서 양보하듯 말합니다. 웬일인지 에브론이 아브라함의 요구대로 땅을 팔고자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 에브론도 정말이지 거래의 귀재였습니다. 거래가 어려워지자 에브론은 아브라함이 이겼다고 생각하도록 아브라함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지만, 은근슬쩍 아브라함이 거부할 수도 없고, 승인하기에는 더욱 어려운 조건을 내겁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땅값’입니다. 막벨라 굴의 땅값으로 “은 사백 세겔”을 제시한 것입니다. 은 사백 세겔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다만 여러 근거를 놓고 따져 봤을 때, 은 사백 세겔은 막벨라 굴을 구입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입니다. 다윗이 성전 부지를 위해 지불한 값은 50세겔이었습니다.(삼하 24:24) 예레미야는 아나돗의 밭을 사기 위해 은 17세겔을 지불했습니다.(렘 32:9)<빅터 해밀턴 지음, 『창세기Ⅱ』 부흥과개혁사> 이것에 비하면, 매장지 하나에 은 사백 세겔을 요구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사위는 던져졌고, 공은 아브라함 앞에 놓였습니다. 이제 자기 앞에 놓인 공을 아브라함은 어떻게 받고 있습니까? 다같이 읽겠습니다.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창 23:16-20)

이러한 성경의 증언은 마치 판사의 ‘판결문’처럼 완벽합니다. 아브라함과 에브론 사이의 모든 거래가 ‘사실 적시’하여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제시한 ‘은 사백 세겔’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시세에 맞게 정확히 달아 건네주었습니다. 그의 행동을 보아하니, 은 사백 세겔이 아니라 사천 세겔을 달라 해도 내줄 기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그 땅 막벨라 굴을 살 것처럼 보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백 세겔을 에브론에게 지불하는 모습을 성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증인’으로 지켜봅니다. 이로써 막벨라 굴은 무상으로가 아닌 합법적 절차에 따라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여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 것입니다. 이로써 되돌릴 수 없는 거래가 성사됨으로 이후 막벨라 굴은 그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로 삼은 곳”(창 49:30, 50:13)이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구입한 뒤에 그는 죽은 아내 사라를 그곳에 장사하였고, 훗날 자신도 죽어 그곳에 묻힙니다.(창 25:9-10)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죽어 이곳에 묻혔고,(창 35:29, 49:31) 야곱과 그의 아내 레아도 죽어 막벨라 굴에 묻힙니다.(창 49:31-33)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진 삼대 언약 백성의 시조들이 이곳 막벨라 굴에 묻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깊은 영적 의미를 줍니다. 훗날 하나님이 애굽에서 신음하던 자신의 백성을 구원코자 나타나실 때,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노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막벨라 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출 2:24-25)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출 3:6)고 자신을 소개하신 것도 막벨라 굴에 묻힌 언약 백성의 시조들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은 사백 세겔을 주고서라도 기를 쓰고 사려 했던 막벨라 굴은 하나님 언약 백성들의 영적인 고향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막벨라 굴은 언약 백성의 시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어서 매장된 무덤이지만, 예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마 22:32)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곳은 ‘죽음의 길을 향한 닫힌 무덤’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향한 열린 무덤’입니다. 이로써 당신의 언약 백성을 지키시며 돌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죽음으로 생명을 얻는 언약의 신비’가 이곳 막벨라 굴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산 것은 자신의 소유나 늘리자고 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소유하고 기억해야 할 영적인 고향을 구축하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막벨라 굴은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반드시 사야 할 ‘생명의 밭’이었습니다. 그 밭엔 당신의 백성들을 반드시 지키시고, 항상 돌보시며, 가장 완전한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감추인 보화로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그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막벨라 굴을 사려 했던 것처럼, 여러분 삶에 생명의 막벨라 굴을 소유하여 간직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내 삶의 사백 세겔을 기꺼이 내어주고 닫힌 무덤에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열린 무덤을 소유하는 언약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이제 여러분의 하나님도 되셔서,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의 하나님으로 인해 튼실한 언약 백성으로 사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