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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가문의 어둠과 빛”

(창 29:31-30:9)

<2024년 8월 11일 성령강림후 제12주 주일 설교 / 녹색>

●“거룩한 주의 산에는”

오늘 복된 주일을 맞이해서 할렐루야 찬양대가 “거룩한 주의 산에는”이라는 제목으로 찬양했습니다. 이 노래는 “그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 것이다.”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는 말씀으로 마치는 이사야 11장 6-9절 말씀을 바탕으로 작곡된 곡입니다. 노랫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세상 모든 피조물이 주님의 거룩한 산에 모여서 전쟁이 없고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올 것을 간절히 바라는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 [북한선교주일] 그리고 [광복기념주일]로 예배하는 오늘, 이러한 이사야의 말씀을 곡조에 담아 노래하는 것은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감격이 됨과 동시에, 이 땅 한반도에 전쟁이 종식되고 속히 평화를 이루어서, 남한만 아니라 북녘땅에도, 한반도만이 아니라 우리가 정서적으로 그토록 미워하는 일본 땅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구신 평화의 복음이 뿌리내릴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평화롭게 예배하는 오늘, 프랑스 파리에서는 올림픽이 한창이지만, 동시에 지구촌 다른 곳에는 많은 사람이 전쟁의 공포로 신음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사람이 제 입맛에 따라 주장하고, 조작하는 억지스러운 평화가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샬롬’의 평화를 간구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시기와 조롱, 증오와 갈등’이라는 무거운 개념들을 숙고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이 제조하는 ‘어두움’으로서,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서 반드시 종식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야곱 가문에 깃든 어두움의 실체를 찾고, 그 어둠에 빛이 내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어두운 우리 마음에 환한 빛이 깃들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샬롬의 길로 다니고자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Baby Naming

몇 달 전부터 우리는 하나님 언약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세 사람 모두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복종했던 참으로 위대한 신앙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가정을 보면 늘 분열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특별히 아브라함과 이삭의 집에서 일어난 갈등을 떠올려 보면, 거기에는 가족 간의 조롱이 있었고, 학대가 있었습니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 같은 심각한 경쟁으로 인해, 피차 속고 속는 안타까운 일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인데, 야곱의 여인이었던 ‘레아와 라헬’ 그리고 ‘실바와 빌하’라는 여종이 열(한)두 명의 아들을 낳는 이야기입니다. 이 열두 명은 훗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뿌리가 되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모판이 되는 존재라서,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들인데, 본문에 보면 아들이 태어날 때마다 엄마 레아와 라헬이 이름을 지어줍니다.

제가 섬겼던 호피 원주민은 모계 사회였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 중 ‘여성 어른들’이 이름을 지어줍니다. 사진을 하나 보시면, 우리 막내 도훈이가 2016년에 태어났을 때, 왼쪽에는 저의 호피 어머니셨던 엘시 나손호야, 그리고 오른쪽에는 제 호피 누님이신 루엘라 나손호야가 막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옥수수로 축복해주는 모습입니다. “오쾅”(Okwang)이라는 이름으로, “땅에 우뚝 선 존재”라는 뜻입니다. Baby Naming을 할 때, 남자들은 거의 얼씬하지 못하고 친척 중 할머니들이 각자 이름을 지어와서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이때 남자들이 하는 일은 밖에 나와서 ‘이 집에 아기가 태어났어요! 와서 밥 먹어요!’라고 한 5분간 소리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은 아버지 야곱이 아니라 모두 어머니 레아와 라헬이 짓습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 어머니 모두 아이에게 이름 지어 줄 권한이 있었는데(“Both the father and mother have the right to name their child.”)<Zushe Wilheim, “Who has the right to name a child”, chabad.org>, 당시 고대 사회에서 어머니가 아기의 이름을 짓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그것은 ‘이스라엘과 이집트’로 손에 꼽을 정도고, 보통은 아버지가 이름을 짓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경우는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의 다트머스 대학교의 수잔 액커맨(Susan Ackerman)이라는 교수에 따르면, 고대 유대 사회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서 마을 사람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데(Baby Naming), 여기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아기의 이름과 그 의미를 알리는 목적입니다.

둘째로 아기의 이름을 통해 어머니의 존재(identity)도 어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향한 어머니의 종교성(religious sensibility)이 얼마나 강한지 나타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Susan Ackerman, “Mothers and Rituals of Child-Naming in Ancient Israel”, Cornell.edu>)

그러니까 아기의 이름에는 아기의 이름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삶이 담겨 있고, 하나님을 향한 어머니의 신앙까지도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본문에서 레아는 첫째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32)고 말합니다. 레아가 르우벤을 낳을 때 그녀의 삶이 어땠다는 겁니까? 서럽고 외로웠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름 ‘르우벤’에는 남편 야곱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괴로운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런 상태에 있던 자신에게 하나님이 아이를 주셨으므로, 그녀는 ‘하나님이 나의 괴로움을 돌보신다!’는 신앙고백을 담아 아기의 이름을 지어 사람들 앞에서 공표한 것입니다.

●레아의 태를 열어주신 하나님: 보신 하나님

이런 이해를 가지고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본문이 시작되는 29장 31절은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은 의역이고, 원문을 그대로 하면 “레아가 (야곱에게) 미움을 받았다. 레아가 (야곱에게) 적으로 여겨졌다”(‘사네’, anEf')는 뜻입니다. 레아가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 아니면 어디가 그렇게 못났는지는 몰라도, 남편 야곱이 레아를 적으로 간주할 정도로 싫어했다고 하니 레아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동생 라헬을 향해서는 무한한 애정을 표하는 걸 볼 때마다 레아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보셨으니 그녀가 얼마나 애처롭게 보였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은 “하나님이 레아를 보셨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창세기를 장악하고 있는 두 개의 동사는 무엇입니까? ‘보다’와 ‘듣다’입니다. 하나님이 무얼 보시고, 무얼 들으시는가? 인간은 무얼 보고 듣는가? 창세기를 읽을 때 이 동사가 나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고 들으실 때는 역사가 일어나지만, 인간이 보고 들을 때는 불평과 불화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나눠드린 표를 참고하시면서 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을 보겠습니다. 레아가 낳은 아이들의 이름을 보면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입니다. 그 뜻을 간단히 보면, “아들을 주셨다!” “하나님이 들으신다!” “연합하리라!” “여호와를 찬송하라!” 이름마다 뜻이 아주 감동적입니다. 야곱에게 미움받으며 고통당하는 레아에게 하나님이 그녀의 태를 열어주셨으니 레아가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셋째와 넷째 아들의 이름을 보면 다소 불편합니다. 레아는 이 아이들의 이름으로 라헬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아는 셋째 아들을 “레위”라고 지었는데, 이름이 “(이제부터는 내 남편이 나와)연합하리라”는 뜻입니다. 레아는 동생 라헬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의 아이를 낳고는 ‘이제부터 야곱은 내 남편이야! 야곱과 함께 살 사람은 바로 나라구!’ 이런 뜻으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집안에서 셋째 아들 레위가 아장아장 걸을 때면 레아는 라헬 들으라는 듯이 ‘레위야, 레위야!’(야곱은 내 남편!)하고 불렀을 것이고, 그 이름을 듣는 라헬의 얼굴은 흙빛이 돼 버립니다. 불임의 고통을 받던 라헬은 레위의 이름으로부터 모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아들의 이름을 레위라고 지은 레아의 목적은 라헬의 약점을 후벼 파서, 그녀에게 고통을 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넷째 아들 이름은 이보다 더합니다. 이름하여 “유다”라 했고, 그 뜻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입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처럼 고상하고 신실한 신앙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위장이었을 뿐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레아는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이 거룩한 말로 동생 라헬에게 모욕을 주려 했던 것입니다. 모멸감에 부들부들 떠는 라헬 앞에서 여호와를 찬송하라니요?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이름입니다.

이름을 ‘유다’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시는 게 아닙니다. 잠언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잠언 24:17-18) 하나님이 레아를 긍휼히 여겨 그에게 아이를 넷씩이나 얻는 복을 주셨지만, 레아는 하나님께 받은 복으로 자신이 얼마나 오만하고 불손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만 것입니다. 그녀의 영혼에 시커먼 먹구름이 끼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요? 유다를 낳은 직후 성경은 레아에 대해 뭐라고 말합니까?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35)고 합니다. 하나님은 레아를 향한 복을 멈추신 것입니다.

●내면의 힘을 상실한 라헬

이처럼 레아로부터 온갖 모욕을 당한 라헬은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30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30:1) 앞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들으실 때는 역사가 일어나지만, 인간이 보고 들을 때는 불평과 불화만 일어난다.” 레아의 고통은 ‘하나님’이 보셨지만, 라헬은 자기의 고통 앞에 눈이 멀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이 기막힙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30:1)

정여울이라는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모욕을 줄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욕을 인정하지 않는 내면의 힘이다”<『감수성 수업』 김영사> 이런 점에서 라헬의 내면은 너무도 어둡습니다. 내면의 힘이 무기력하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것입니다. 사실 그럴 만도 합니다. 아들을 넷씩이나 낳은 레아가 그렇게 조롱하는데 허허실실 웃고만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비록 라헬의 마음에 공감하더라도, 그녀의 처방은 완전히 틀려먹었습니다. 남편을 윽박지르면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안 그러면 죽어버리겠다!’며 협박하는 것 아닙니까? 라헬은 이미 사리 분별력을 상실할 만큼 피폐해졌습니다.

이에 2절에서 야곱은 라헬에게 일침을 날립니다.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30:2) 라헬의 어리석은 요청에 야곱이 현명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 인간이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으면 알아들었을 만도 한데, 라헬의 히스테리와 시기심은 제어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가속화됩니다. 라헬은 야곱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3절에서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3)고 명령했고, 이에 야곱은 라헬의 여종 빌하와 동침하여 두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아마’와 ‘쉬프하’

여기서 라헬은 아주 중대한 실수를 범하게 되는데, 3-4절을 함께 읽습니다. “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아마’, hm'a')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 그의 시녀(‘쉬프하’, hx'p.vi)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3-4) 히브리어로 ‘여종’을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쉬프하’고, 다른 하나는 ‘아마’입니다. 3절에서 라헬은 여종에게 ‘아마’라고 부르더니 4절에서는 ‘쉬프하’라고 합니다. 종도 종 나름인데, 들에 나가서 고되게 노동하는 여종이 있는 반면에 집안에서 살림살이를 도맡아서 마치 가족처럼 함께 지내는 여종도 있습니다. 전자는 주로 ‘이방인 노예’였는데 그들을 ‘쉬프하’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집안에서 가족처럼 사는 여종은 ‘유대인 노예’였고 그들을 ‘아마’라고 부릅니다.<“What’s in a Word?”, Ohr Somayach, ohr.edu>

이미지를 보시면, 왼편 여종은 바깥에서 농사를 짓고 있고, 오른편의 여종은 여주인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편해 보입니까? 오른쪽입니다. 말하자면, 왼편 그림의 여종을 ‘쉬프하’라 할 수 있고, 오른편 그림의 여종은 ‘아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에 그런 예가 있습니다. 애굽 여종 ‘하갈’입니다. 처음에 성경은 하갈을 이방인 여종을 뜻하는 ‘쉬프하’라고 소개합니다.(“그에게 한 여종(‘쉬프하’)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창 16:1) 그런데 놀랍게도 나중에 성경은 하갈을 ‘아마’라고 지칭합니다.(“이 여종(‘아마’)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창 21:10) 하갈의 ‘신분’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 ‘대우’는 달라진 것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살면서 미우나 고우나 가족 아닌 가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반대입니다. 처음에 라헬은 빌하를 ‘아마’라고 부르더니, 나중에는 ‘쉬프하’라고 부릅니다. 그동안 ‘아마’로서 성실하게 섬겼던 여종을 이제 ‘쉬프하’라 부르면서 ‘이방인 노예’ 취급하는 것 아닙니까? 어느 시인이 “슬픔은 때때로 눈물이 아니라 칼이 된다”고 했듯이<정호승,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김영사>, 라헬은 자신의 슬픔과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서 충성된 여종에게 칼을 겨누며 천대합니다. 하나님이 이를 기쁘게 보실 리가 없습니다.

●단과 납달리

이런 과정으로 여종 빌하가 낳은 야곱의 다섯째 아들 이름은 “단”입니다.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6) 안타깝지만,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라헬의 억울함을 푸시려고 아들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라헬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려고 작당한 일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라헬은 아들의 이름을 “단”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판결’이라고 주장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라헬의 손을 들어 판결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 판결은 ‘라헬의, 라헬에 의한, 라헬을 위한 판결’일 뿐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빌하가 낳은 둘째 아들의 이름 ‘납달리’는 더합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8) 이 말을 들으면 중국의 작가 루쉰이 쓴 소설 『아Q정전』(창비)의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동네 건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습니다. 그러자 주인공은 건달들에게 얻어맞은 것을 풀기 위해서 제 손으로 자기 뺨을 때립니다. 그 장면을 소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리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았으므로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드러누웠다. 그는 금새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놓았다.”

여기서 나온 말이 요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정신승리”라는 말입니다. 본문의 라헬이야말로 ‘인류 최초의 정신승리자’가 아닐까요? 라헬의 히스테리는 이 지경까지 이른 것입니다. 혼자 경쟁하더니 혼자 이겼다고 하면서 아들 이름을 그런 의미로 ‘납달리’라고 짓습니다.(정말 납득 안 되는 남다른 여인입니다.) 그녀가 집에서 ‘납달리야!’ 하고 부르면서 속으로 ‘내가 이겼어!’ 하면서 좋아했을 것을 생각하니, 안 됐다는 생각과 함께 섬뜩한 생각마저 듭니다.

●갓, 아셀, 잇사갈, 스블론 그리고 요셉

이처럼 라헬이 자신의 여종을 통해 아들을 낳고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자 오늘 본문 마지막 9절에서 레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9) 레아가 출산을 멈춘 것은 수년 전이었고,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종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아는 라헬이 여종을 통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빼앗아 자기 아이로 삼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표를 보시면 그래서 레아도 라헬처럼 딱 두 명의 아들을 더 낳고, 그들의 이름을 각각 “오, 행운이로다!” “오, 기쁘도다!”라고 짓습니다. 이것을 참된 행복이요, 기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레아는 다시 라헬을 겨냥해서 ‘행운은 너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고 말한 것이고, ‘오, 기쁘도다’는 마치 ‘메롱, 메롱’ 하면서 라헬을 다시금 조롱하는 말로 들립니다. 독일어에 “Schaden-freude”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해’라는 말과 ‘기쁨’이라는 말이 합쳐서 된 단어인데,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심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 레아의 정신 상태를 꼬집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어둠과 빛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간 관계상 나머지 네 명의 아들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하겠지만, 나눠드린 표를 보시면, 레아는 “잇사갈과 스블론”을 낳고 이름을 짓더니 그 이름으로 다시 집요하게 라헬을 조롱합니다. 끝까지 야곱 가문에 어둠이 떠나질 않습니다.

이에 라헬은 깊은 실의에 빠졌을 것입니다. 불임의 고통과 그에 따른 조롱과 멸시가 더해지면서, 라헬은 이제 더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자 성경은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기억)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다”(창 30:22)고 말합니다. 불임으로 고통받던 라헬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었고, 이에 라헬은 하나님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없애시고자 아들을 주셨다!’고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그 이름을 ‘요셉’이라 지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의 이름은 다른 형제들의 이름과 무엇이 다르던가요? 이름만 놓고 보면 요셉이란 이름은 그다지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형제의 이름이 훨씬 고급지고 그럴싸합니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의 이름은 사람을 조롱하고 공격하기 위해 만든 어둡고 침울한 이름이었지만, 그리고 자기만족을 위한 회색빛 이름이었지만, 요셉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름 요셉은 모든 슬픔을 거두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라헬의 신실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라헬의 고백으로 인해, 이때껏 어둠으로 점철된 야곱의 가문에 비로소 빛이 들었고, 이후로 든든한 열두 지파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항상 요셉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곱 가문을 환하게 밝힌 요셉이란 등불이 여러분 영혼과 가정에 환하게 켜져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을 마음에 새긴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요셉을 마음에 새긴 사람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없애시고자 당신의 외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에 감격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요셉을 마음에 새긴 사람들은 타인을 조롱하거나 멸시하지 않으며, 타인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오직 격려와 위로의 말로 피차 권면하는 사람입니다. 이로써 어둠에 빛을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훗날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 축복을 받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 요셉의 이름이 “그가 더하시리라”는 뜻이었던 것처럼, 오늘 예배하는 우리도 담장을 넘어 하나님의 구원과 화평을 전하는 샘 곁의 무성한 가지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