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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종하는 어린이의 세상”

(삼상 3:19-21, 눅 20:1-3)

<2025년 5월 4일 부활절 제3주 어린이주일 설교 / 흰색>

●“로저스 아저시네 이웃들”

미국의 방송인이자 음악가, 작가이자 안수받은 장로교 목사님이셨던 프레드 로저스(Fred Rogers, 1928-2003)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1968년부터 돌아가시기 2년 전인 2001년까지 장장 33년간 장수했던 “로저스 아저씨네 이웃들”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이끄신 분인데, 젊어서는 인심 좋은 아저씨처럼, 나이가 들어서는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많은 어린이에게 꿈과 용기를 주었고, 좋은 삶이 무엇인지 다정다감하게 시청자들을 안내하던 분입니다. 물론 프로그램에서만 아니라 이분은 실제로도 워낙 성품이 좋고 순수한 분이셔서 훗날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아버지는 TV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셨어요”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My Dad Was Just Like What You Saw on TV’ ‘Fred Rogers’ Sons, James Byrd & John Rogers: 5 Fast Facts You Need to Know’ https://entertainmentnow.com>.

프레드 로저스목사님은 자기 서재에 액자 하나를 걸어놓고, 거기에 적인 문구를 늘 마음에 담아 살았다고 하는데, 액자에는 저 유명한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열린책들)에 나오는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봐야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김미정의 간접 인용 번역(『어린왕자』 더스토리)보다는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황현산 선생님의 직접 인용이 적합하다>라는 말입니다.

문구가 의미하는 것처럼, 프레드 로저스 목사님은 어린이들이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심어주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말 소중한 것들을 꿈꾸고 지키며 사는 어린이가 되도록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앞서 박정은 목사님이 전하신 설교는 어린이날인 오늘, 어린이들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박정은 목사님이 설교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위험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특별히 불러 세우신 사무엘 선지자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보이지 않는 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자랐고, 이로써 이스라엘을 구한 것만 아니라, 사울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왕조의 든든한 그루터기가 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실로(Shiloh)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면, 사무엘은 누구고, 그는 어떤 시대를 살았던가요? 사무엘은 어머니였던 한나의 간절한 기도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어머니가 서원한 대로 ‘실로’(Shiloh)라는 곳에 있던 성소에 살면서 엘리(Eli) 제사장에게 제사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던 어린이였습니다.

그러면, 사무엘이 살던 ‘실로’(Shiloh)는 어떤 곳입니까? 이곳은 출애굽과 40년 광야 생활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최초로 ‘성막’을 세운 곳입니다. 여호수아가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준 곳도 이곳 ‘실로’였는데, 이후로 명실상부 이스라엘의 군사와 정치, 그리고 종교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곳이었습니다. 본문 사무엘상 3장은 이러한 ‘실로’에 있던 성막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의문이 듭니다. 방금 소개하기를, ‘실로는 가나안 최초의 성막이 세워진 곳으로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실로’는 날마다 하나님 말씀 잔치가 일어나고, 예배와 찬양으로 기쁨이 가득한 곳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무엘상 3장 1절은 사무엘이 살던 시대에 대해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던 시대”(삼상 3:1)였다고 차갑게 말합니다. 말씀을 새겨보면,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듣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게 들립니다. ‘실로’에 성막을 세운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세상”이 되었단 말입니까? 아니나 다를까, 당시 ‘실로 성막’을 담당하던 엘리 제사장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Hophni and Phinehas)라는 악명 높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급기야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워 객기 부리며 전쟁하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언약궤를 빼앗기고 죽게 된 인물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메말라버렸더니, 하나님 언약궤도 강탈당한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가 사무엘을 부르시다

그렇습니다. ‘실로’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소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닫은 것입니다. 언약의 하나님, 출애굽의 하나님,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이야기는 이미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백성들은 ‘실로’의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긴 했지만, 이는 감사를 상실한 형식적인 종교, 참회하지 않는 굳어버린 종교, 그래서 아무런 감동도 없는, 초코파이 먹으러 가는 습관적인 종교 행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실로’의 예배는 이처럼 박물관처럼 되어 버린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작고 연약한 ‘어린이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어린이 사무엘은 하나님이 그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시는 것을 생생하게, 그리고 또렷한 음성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을 때, 사무엘이 들은 여호와의 음성은 동굴이나 첩첩산중에서 메아리치듯 울리는 그런 초자연적이고 으스스한 소리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어린 사무엘은 그 소리에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썼든가, 소리를 쳤든가 했을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엘리 제사장을 찾아갔다고 하는데, 그렇더라도 ‘저를 부르셨어요?’라고 말할 게 아니라, ‘엘리 제사장님, 제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요! 성소에 귀신이 있어요! 무서워요 제사장님!’ 하면서 새파랗게 질려 와들와들 떨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에게 또박또박 말합니다. “부르셨어요? 제사장님, 제가 여기 왔습니다.”(“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5,6,8절”) 한 두 번도 아니고 사무엘은 그 소리를 세 번, 아니 네 번이나 듣습니다(5,6,8,10절). 하나님은 사무엘을 사람이 사람을 부르듯 또렷한 음성으로 부르셨고, 사무엘은 그 음성을 선명하게 들을 귀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이의 심리와 영성을 연구하는 소피아 카발레티(Sophia Cavalletti, 1917~2011)라는 학자는 “하나님과 어린이 사이에는 깊은 유대감이 존재한다”(“there exists a deep relationship between the child and God”)고 말한 바 있습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깊은 관심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존재라는 뜻인데, 이 학자는 여기에 철학적 의미를 덧붙여 말하기를 “어린이는 하나님과의 접촉을 즐거워하는 형이상학적 존재”(a metaphysical being, who delights in contact with God”)라고도 했습니다<Sophia Cavalletti, The Religious Potential of the Child>. 말하자면, 하나님 형상대로 태어난 세상 모든 어린이는 초월적인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억지로 주입 시켜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는 원래 그렇게 태어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자라자 실로가 회복된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선명하게 듣고 반응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본문 19절을 보면, 이처럼 어려서 하나님과 깊은 유대감이 있던 사무엘, 하나님과의 접촉을 즐거워했던 어린이 사무엘이, 이제 자라고 자라 성인이 되어 선지자가 된 일에 대해서 본문은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19절 “He let none of Samuel’s words fall to the ground”)라고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청종하는 어린이의 세상”이라고 정했는데, “청종”(聽從)이란 말은 무엇입니까? “듣고 따르다, 듣고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의 인생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의 삶은 “하나님께 청종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복종한 사무엘은 이제 자라고 자라서 선지자가 될 때까지 하나님 말씀을 허투루 듣지 않고, 그 말씀을 받아먹고 전하는 ‘청종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이 하는 말을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린이 사무엘이 청종의 선지자가 된 결과가 어떠한지 본문 21절은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말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21절)

‘실로’를 몇 번 말하지요? 두 번입니다. ‘실로’는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였다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곳입니다. 그런 시대에, 그런 곳에 사무엘서는 우리에게 청종의 사람 사무엘을 소개하더니 이제 ‘실로의 회복’에 대해서 말합니다. ‘실로’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다고 말입니다.

●사무엘처럼,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사무엘 시대의 문제는 예수님 시대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사무엘 시대에 ‘실로’가 있었다면, 예수님 시대에는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둘 다 유명무실합니다. 사무엘 시대에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어 타락한 것은 양반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안 그런 제사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사무엘 시대에는 하나님이 희귀하여 찾기 어려웠던 시대라면, 예수님 시대에는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희롱하는 시대, 그 말씀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시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엄혹한 시대에 우리 주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20장에서 서기관들과 장로들, 당시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0:2)며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며 도발했지만, 예수께서는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20:3)고 하시면서, 말씀으로 오신 분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무엘과 예수님 시대를 생각하면서, 우리 시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시대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져 희귀하여 듣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보다 유튜브 영상 소리가 커진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음성이 아닌 인간의 생각과 목소리만 핏대 세우며 주장하는 시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쥐락펴락하면서, 새로운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기의 때를 사는 우리에게 본문은 다음 두 가지를 엄히 말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를 갈음하며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두 가지 권면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 시대에도 청종의 사람, 청종의 신앙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희귀해진 시대에 하나님은 청종의 사람 사무엘을 통해 무너진 ‘실로’를 회복하신 것처럼,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 앞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내 생각을 잠재우고,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지 않는 청종의 사람을 지금 오늘 우리 가운데에서도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에 청종의 신앙으로 응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청종의 어린이는 청종의 어른으로 자라야 합니다. 사무엘은 어린이였을 때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던 청종의 어린이였지만, 그는 피터팬 증후군에 걸린 사람이 아닙니다. 어린이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어린이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랐습니다”(19절). 나이가 들면서 몸만 자란 게 아니라 청종도 함께 자란 것입니다. 그만큼 성축한 ‘청종의 사람’, 즉 ‘청종의 어른’이 된 것입니다.

사무엘도 사무엘이지만, 어린이였던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도 “자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눅 2:40). 예수님도 자라셨으니, 우리는 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나이는 먹었지만, 그래서 몸은 자랐지만, 배우기도 많이 배웠지만, 혹 청종의 어린이는 아직도 7살, 8살, 9살, 10살에 머물러 있어서, 마음에 들면 기분이 좋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토라지고 화를 내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신앙은 아닙니까? 우리 내면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청종하는 주님의 어린이인 줄로 믿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Carl Jung, 1875-1961)은 어린이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린이는 성인이 될 사람을 의미한다.”<『원형과 무의식』 솔> 말인즉슨, 어린이가 어린이인 것은 성인이 될 존재이기 때문에 어린이라는 뜻입니다. 어린이는 ‘자라야 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청종하는 주님의 어린이로서, 우리 신앙에 아직 자라지 못한 부분을 찾아서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자라는 청종하는 어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어린이주일]을 맞아 예배하는 이 시간, 우리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사무엘처럼 청종의 어린이에서 청종의 어른으로 잘 자랄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이 희귀한 이 시대에, 우리 어린이들 안에 하나님 말씀이 충만하도록 정성을 다해 양육해야겠습니다. ‘실로’의 대안이 사무엘이었던 것처럼, 암울한 우리 시대의 대안도 청종하는 어린이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여,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 칭찬받는 청종하는 주의 어린이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