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에가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눅 16:14-15, 19-31)

<2025년 3월 30일 사순절 제4주 설교 / 보라색>

●가인의 말: 어리석은 인간, 사악한 인간

성경에 나오는 어떤 인물이 한 말 중에, 타인에 대해 가장 비정하고 잔인한 말을 하나 꼽으라면, 우리는 창세기 3장에서 가인이 하나님을 향해 내뱉은 말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형 가인(Cain)이 동생 아벨(Abel)을 죽여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가인을 찾아가셔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자, 가인은 천연덕스럽게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3:9)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많은 기독교 사상가들의 마음을 후벼 파는 말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해 성찰하고 묵상할 때, 이보다 더 끔찍한 말을 찾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동생을 죽여놓고도 죽이지 않았다는 말로, 하나님을 속이려 드는 ‘어리석은 인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쏘아대는 가인의 말본새는 단순한 어리석음을 넘어 ‘사악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러한 비정한 인간을 만납니다. 본문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긴다”(19절)고 하는 ‘부자’라는 인물입니다. 반면에 이와는 달리 빈곤에 허덕이면서 죽어가고 있는 너무나도 가련한 인물을 봅니다. 그는 바로 그 부자의 집 대문 앞에 버려졌던 ‘나사로’라는 인물입니다.

주님이 들려주신 이러한 비유 말씀을 통해서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제목은 오래전 출간된 안도현 시인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데,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것은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씀 때문입니다(26절). 우리 중에 본문에 나오는 부자처럼 대놓고 비정한 사람이 있을 리는 없겠지만, 주님이 본문을 통해 우리를 비추시고, 어리석은 우리 모습을 지적하실 때, 우리 앞에 놓인 구렁텅이가 더 크고 깊어지기 전에, 이를 속히 건널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은 누구에게?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은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라는 또 다른 비유 말씀을 읽었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1-13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몇 해 전에 이 본문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거기서 이어지는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예수님이 그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그 모든 것을 듣고 비웃었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니, 성경은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기 때문”(눅 16:1)이라고 고발합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15절에서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면서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15절)라고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에서 이어지는 것이 오늘 함께 읽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라면, 이 비유 말씀은 누구를 향한 것입니까? ‘바리새인’을 향한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마치 부자들을 향한 경고처럼‘만’ 들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방금 15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말씀은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옳은 체하는 사람들’, 지난주 말씀과 연결해서 보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마치 비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또 다른 경고장인 것입니다.

●무명의 나사로, 이름을 얻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데, 그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중심으로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부자의 이름은 말씀하시지 않지만, 거지의 이름은 “나사로”라고 분명히 밝혀주신 점입니다. 예수님의 수많은 비유 중에 등장인물의 이름을 말씀하신 적이 있던가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나사로’라는 이름이 유일합니다. 그만큼 주님이 그의 이름을 밝혀주신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일 것인데, 먼저 본문에 나오는 부자의 모습을 보면,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다”고 합니다(19). 당시 자색 옷은 “달팽이로부터 얻은 염료”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매우 값비싼 옷이었습니다<대럴 벅, 『누가복음2』 부흥과개혁사>. 부자는 그 옷을 입고 하루가 멀다고 호사스러운 잔치를 벌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거지 나사로는 그 부자의 집 대문 앞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채 버려졌다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나사로는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했다”(21절)고 하는데, 오늘날로 말하자면 부자의 집에서 먹다 머린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았다는 표현을 보면, 거지 나사로의 신세는 ‘개의 신세’와 다를 바 없는 가장 비참한 신세라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살아있을 때 세상 사람은 부자의 이름을 칭송했을 것이고, 한낱 거지의 이름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은 세상에서 빛나는 명성을 지녔지만, 다른 한 사람은 이름이 있으나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체코에서 태어난 작가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가 쓴 『성』(城)이라는 소설을 보면 이처럼 이름 없는 사람의 비애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에 보면 측량기사로 일하는 주인공이 어떤 성으로부터 일 좀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성이 있는 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마을 관계자들이 이상한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주인공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합니다. 결국, 소설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이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알파벳 ‘K’라고만 불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이 당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토로하면서 “내가 성으로부터 무슨 은총이나 자선 같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나는 다만 내 권리를 주장할 따름입니다.”<프란츠 카프카 『성』 빛소굴>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이름 없는 자의 심정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은 나사로를 무명인으로 취급하며 그를 멸시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에서 이러한 현실이 전복됩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부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무명으로 대하셨지만, 반면에 거지의 이름은 ‘나사로’라고 또렷이 밝혀주십니다. 이는 마치 시인 김춘수 선생님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라고 노래하신 것처럼(“꽃”),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이름이 없던 그 가난한 거지의 이름 ‘나사로’를 소중히 여겨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부자는 땅에서 유명했지만, 하늘에서 무명했고, 거지 나사로는 비록 땅에서는 무명했어도, 하늘에서는 유명하게 된 것입니다.

●나사로=엘리에셀

둘째로, “나사로”(Lazarus)라는 이름의 뜻이 중요합니다. 나사로는 히브리어로 “라자르”(rz"[.l;)라고 하는데, 이것은 “엘르아자르”(rz<[,ylia/, ‘엘리에셀’)라는 이름의 축약형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의미입니다<『누가복음2』>.

구약성경에는 ‘엘리에셀’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옵니다. 그중 세 사람만 꼽으면, 첫째,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을 마쳤을 때, 그 재건 의식을 집례한 제사장 중에 ‘엘리에셀’이 있습니다(느 12:42). 둘째로 출애굽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의 아들로서 이스라엘 제2대 제사장이 된 사람의 이름이 ‘엘리에셀’입니다(출 6:23, 민20:26).

셋째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이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던 종의 이름을 성경은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를 얼마나 신뢰했던지, 그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겼을 뿐만 아니라 그를 상속자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창 24:2, 15:2-3). 훗날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고자 이역만리 떨어진 ‘나홀 성’에 가서 유난히 ‘팔뚝이 굵었던 여인 리브가’를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데려온 인물이기도 합니다(창 24).

이러한 아브라함과 그의 종 엘리에셀의 아름다운 관계를 생각해보면, 본문의 ‘나사로’, 구약식 이름으로 ‘엘리에셀’이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하는 오늘 본문이 왠지 자연스럽고 흐뭇한 풍경으로 보입니다.

●부자의 장례예식, 나사로의 천국입성

이처럼 부자도 죽고, 나사로도 죽습니다. 죽음 앞에서 두 사람은 공평했지만, 그 후에 상황이 역전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세 번째로 예수께서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실 때,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22절)라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말인즉슨, 부자는 죽어서 장례를 치렀지만, 나사로는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자의 시신에는 저 멀리 인도나 아라비아 같은 곳에서 수입해 온 고급 향유를 발랐을 것이고, 대리석으로 잘 만들어진 관에다 넣고 값비싼 장신구로 치장해서 양지바른 곳에 묻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호사스러운 장례식 풍경입니다. 하지만, 나사로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그 비렁뱅이를 위해 장례를 치러줬을 리 만무합니다. 나사로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는데, 시신조차도 제대로 장사되지 못해서, 아마도 시체 태우는 냄새가 진동하는 ‘힌놈의 골짜기’ 같은 곳에 버려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역전이 일어납니다. 장례식을 잘 치른 부자는 음부에 떨어졌지만,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한 나사로는 천사에 이끌려 하늘로 올라갔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이처럼 죽어서 음부에 떨어져 고통당하는 부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자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생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고통은 따로 있습니다. 차라리 음부에 떨어져 앞을 볼 수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본문은 말하기를 그가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아브라함이 있고 나사로가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었습니다(23절). 음부의 뜨거운 불길로 인해 눈을 뜨기도 어려웠겠지만, 뜨고 보니 눈이 뒤집힐 지경입니다. 자기 집 앞에 개처럼 누워있던 녀석이 건방지게도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안식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눈에 거슬리기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음부에서의 상전 노릇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넷째로 부자는 죽어서도 여전히 나사로의 상전 노릇을 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살아있을 때 부자는 거지 나사로의 이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참하게 죽어가던 그의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러준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요청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24절)라고 다급히 요청합니다. 손가락 끝에 묻은 물 한 방울에 궁색할 정도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던 부자는 자기도 모르게 ‘나사로’의 이름을 부릅니다. 부자가 하는 말을 보십시오. 그는 여느 유대인들이 그러하듯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하면서 격식을 갖추어 부릅니다. 그러고는 ‘나를 긍휼히 여기달라’고 하면서, 감히 자기가 넘볼 수 없는 아브라함 앞에서 고분고분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요청하기를 ‘나사로를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뭐라고, 음부에 떨어진 주제에 누굴 보내라-마라 하는 것입니까?

미국 사람들이 하는 말에 KUKD(‘Kiss up, kick down’)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상사에게는 고분고분하지만, 만만한 부하 직원에게는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을 꼬집는 말입니다. 지금 부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는 아직도 나사로를 자기 집 앞에 누워있는 비렁뱅이 취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부자의 요청에 아브라함은 매몰차게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25절) 그리고 덧붙이기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다”(26절)고 하면서, 이제 ‘너희’와 ‘우리’는 상관이 없다는 말로 쐐기를 박아버립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을 거역한 부자

이 말을 들은 부자는 이번에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요청하는데, 나사로를 자기 아버지 집으로 보내서 거기 있는 형들한테 죽음 뒤에 무서운 형벌이 있다는 것을 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또다시 ‘보내라-마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번에도 그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면 될 것 아냐냐!”(29절)고 말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마지막 다섯 번째로 이제 부자는 아브라함을 거역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의 요청을 거절하자 부자는 이렇게 말하는데, 함께 읽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30절) 이 말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얼핏 보면 겸손하게 대답하는 것 같지만, 오늘 본문에서 가장 충격적인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라’라고 말하자, 부자는 ‘그렇지 않다!’라고 쏘아붙입니다. 말인즉슨 ‘그건 아브라함 당신 생각!, 당신이 틀렸고, 내가 옳다’는 말입니다. 내용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말은 누구의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틀렸고, 내가 옳다’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됩니다. 살아있을 때, 얼마나 지독한 아집에 빠져 살았으면, 음부에 내려가서도 자기도 모르게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예수께서 이 비유를 주신 목적이 그러했던 것처럼, 안타깝게도 본문의 부자는 언제나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망가진 영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나 음부에 떨어져서나 자기 자신의 비참함을 보지 못하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더니, 이제는 상대방이 누구든 가릴 것 없이 자기의 옮음만 주장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 것입니다.

●두 개의 영역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비유 속 부자는 음부에 내려갔지만,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의 ‘나사로’, 즉 ‘엘리에셀’은 하나님 나라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인 말씀을 잠깐 드리자면, 전에 이 말씀을 읽을 때는 저는 일단 안심이 됐습니다. 저로서는 본문에 나오는 부자처럼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말씀은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부자냐 가난하냐’를 기준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게만 보면 초점을 놓친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게 여기는 사람이냐 아니냐”가 기준이었습니다(눅 16:15). 그러니까 본문의 주제는 역시 ‘교만한 사람이냐, 겸손한 사람이냐’에 관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지난주 드린 말씀에 따르면, 자신의 비참함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관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부자가 어떤 사람인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는 세상에 살 때 자기 집 앞에서 죽어가는 거지 나사로를 외면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은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마 25:45)는 주님의 엄중한 말씀 앞에 할 말을 잃을 사람이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또한, 그는 강자에게는 약했지만, 약자에게는 무례하게 굴던 전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브라함에게조차 본색을 드러냈고, 더 나아가 하나님에게조차 ‘당신이 틀렸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불쌍하고 가련한 인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승에서도 저럴 정도니 이승에서 타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어떨지, 말은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이승에서의 습관이 저승의 몰골을 빚은 것입니다.

독일의 저명한 설교가인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8-1986) 목사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두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결정이 최종적으로 내려집니다. 이승에서는 우리가 결정을 내리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이 책을 펼치고 결정을 내리실 것입니다.”<헬무트 틸리케 『기다리는 아버지』 복있는사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입을 통해서 최종 판결을 내리셨는데,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ca,sma me,ga)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2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너희’와 ‘우리’라고 칼같이 구분을 지어 말합니다. 그리하여 부자는 건널 수 없는 큰 구렁텅이 앞에 좌절해야 했습니다. 누가 그 구렁텅이를 만든 것입니까? 하나님이 파놓은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자기 무덤 파듯, 자기 구렁텅이를 판 것입니다.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도 구렁텅이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도 참 많이도 파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구렁텅이는 아직 아브라함이 말한 것처럼 ‘건널 수 없을 정도로 크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 앞에 놓인 구렁텅이를 우리는 어떻게 건너야 하겠습니까?

이것을 두고 묵상하다가, 저는 안도현 시인의 “강”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시는 노래합니다.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 보냈고 /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 너에게 가려고”<『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

​

시인은 그리운 사람에게로 건너가려고 깊이 파인 구렁텅이에 물을 채워 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강을 만들자 물소리가 났고, 물소리가 나자 흰 새떼들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어느덧 그 강 위로 눈발이 날리고, 새들의 울음소리가 지천인 강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나는 너에게 간다.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고 노래합니다.

사순절 넷째 주를 맞은 오늘, 이 시는 우리에게 건너오시려고 주님이 친히 감당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나게 합니다. 깊이 파인 구렁텅이 앞에서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며, 망연자실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십자가 아래로 은혜의 강을 만드심으로 성큼 우리에게 건너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건너신 그 강물 위로 새가 날고, 새들의 울음소리가 자비의 눈발로 날립니다. 넘치도록 흐르는 그 강물에 우리의 영혼을 적시고, 우리의 뻣센 마음을 내려놓으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만드신 십자가 은혜의 강물로 인해 ‘너희’와 ‘우리’의 구분은 사라졌으므로, 주께서 땅과 하늘을 진동하시며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그 은혜의 강을 건너오라!”고 선포하실 때,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이 ‘나사로’를 부르셨듯이, 이제 은혜로 용서하시며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실 때, 메마른 영혼이 이전보다 조금 더 거룩해지며, 우리를 붙잡고 주장하기보다는 주님을 높여드리며, 우리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기심과 교만일랑 강가에 벗어 두고, 그 강물을 채우며 흐르는 주님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은혜 안에 온몸과 영혼을 담그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