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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어린양 도살과 네 번째 잔”

(눅 22:1-23)

<2025년 05월 18일 부활절 제5주 청년주일 설교 / 흰색>

●가룟 유다의 죽음

성경에는 많은 악인이 등장하는데, 신구약을 통틀어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악인의 이름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여러분도 주저하지 않고 이 사람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가 되는 영예를 얻었지만, 결국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은 파렴치한 배신자가 된 “가룟 유다”라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가룟 유다를 너무 동정한 나머지 그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 사용된 도구였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라는 작가가 쓴 “유다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라는 글을 보면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주장이 나오는데, 먼저 작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칭송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면서, 무소부재 하신 분이 특정 공간으로 오신다. 영원하신 분이 역사 속으로 오신다. 끝없는 행복이 덧없는 변화와 죽음이 되었다.”<보르헤스의 “유다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中에서>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은 원래 ‘무소부재’ 하셔서 어느 한 곳에 메여 있는 분이 아니신데,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신 그분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장소’에 머무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본래 영원하신 분이 인간의 유한한 역사 속에 들어오셨고, 그로 인해 안 겪으셔도 될 십자가 죽음을 무참히 당하셨다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설명 후에 보르헤스는 가룟 유대에 대해 이런 얘기를 덧붙입니다. “그런 희생에 보답하려면,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한 인간이 똑같이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가룟 유다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보르헤스의 “유다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中에서>라고 말합니다. 보르헤스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 계획을 위해서는 ‘배신자 역할을 할 인간’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에 도구로 사용된 자가 바로 가룟 유다였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정말 가룟 유다는 그런 존재일까요? 가룟 유다는 주님이 이루실 구원을 위해 희생된 인물이기만 할까요? 이런 주장은 많은 점에서 의문이 들고, 실제로 성경이 말하는 것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의 의미

오늘 함께 읽은 누가복음 22장 본문은 기독교 역사 2천 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기억되는 성경 이야기이고, 예수님의 고난을 예표하는 숭고한 이야기며, 교회가 성만찬을 행할할 때마다 어김없이 재현되는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나누는 이야기, 곧 ‘최후의 만찬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거룩하고 신비로운 이야기 한 가운데 가룟 유다도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내용이 가득 차 있는데, 이를 위해 먼저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유월절(Pesach)은 어떤 절기입니까? 유월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인데, 유월절이란 말은 “지나가다, 넘어가다”(pesach, pascha, passover)는 뜻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하시기 위해서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적이 될 것’이며, 하나님이 그 ‘피를 볼 때 재앙이 넘어갈 것’(12:13)이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이스라엘은 ‘재앙이 지나간 절기’ ‘재앙이 넘어간 절기’라는 뜻으로 ‘유월절’을 경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유월절을 기준으로 다음날부터 7일 동안을 ‘무교절’이라는 이름으로 지키는데, 이때는 애굽에서 서둘러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발효되지 않은 무교병을 먹으며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7일의 기간입니다. 이처럼 유월절과 무교절은 엄밀히 말하면 다른 것이지만,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를 겪은 뒤로 시간이 흐르면서 이 둘의 이름을 거의 구분하지 않고 같은 것으로 여겨왔는데,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서는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22:1)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이 되면 출애굽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세 가지 음식을 먹었습니다. “어린 양고기, 무교병, 그리고 쓴나물”입니다. 그런데 유월절 문헌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출애굽 당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네 가지 약속(출 6:6-7)을 상징하는 “포도주 네 잔”을 더합니다<Mishnah Pesachim 10>. 그래서 네 잔의 포도주는 각각 “내가 너희를 이끌어 내리라”(구원) “내가 너희를 건지리라”(해방) “내가 너희를 구속하리라”(구속) “내가 저희를 내 백성으로 삼으리라”(택함)는 뜻의 잔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에 섭취하는 음식은 총 네 가지로 “어린 양고기, 무교병, 쓴나물, 그리고 네 잔의 포도주”입니다. 유월절 만찬은 ‘첫 번째 포도주잔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포도주잔’으로 마치게 됩니다.

●유월절 하루 살기

이런 유월절 음식과 관련해서 먼저 두 가지를 알 필요가 있는데, 첫째는 “실제로 유대인들은 유월절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이고, 둘째는 “실제로 유대인들은 유월절 만찬을 어떤 순서로 진행했는가?”입니다. 유월절 규정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랍비들의 문서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유월절 당일을 보낼 때 다음의 세 가지를 행합니다<Mishnah Pesachim 5:1-5에서 우리말 옮겨 참조>.

첫째로 유월절 어린양을 도살합니다(오후 2:30~3:30). 시간이 “오후 2:30~3:30”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런 경우 유대인들은 보통 앞의 30분과 뒤의 30분을 여유 시간으로 잡는 거라서 실제로는 ‘오후 세 시’에 도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시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어린 양을 도살한 뒤에, 둘째로 유대인들은 서둘러 무교병, 쓴나물, 그리고 포도주와 같은 나머지 유월절 음식을 준비를 하는데,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린양을 도살하는 시간을 잘 맞춰서 차질이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해가 지면 유월절 만찬을 갖는데, 규정에 보면 “밤이 되기 전까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무교병을 식욕 왕성하게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Mishnah Pesachim 10>라고 말합니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집어먹거나 하지 말고 공복을 유지했다가, 식욕을 가득 채워서 유월절 만찬으로 기쁘게 배를 채우며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초대교회 전통 중에 성만찬을 받을 때 공복 상태로 오라고 권면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세 가지 구분 <어린양, 만찬준비, 유월절 만찬>

이 세 가지를 정리해보면 <①어린양 도살—②만찬 준비—③유월절 만찬>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유월절을 보낸 것인데, 공교롭게도 오늘 본문이 딱 그렇게 세 단락으로 정리가 됩니다<1-6절, 7-13절, 14-23절>.

첫 번째 단락이 시작되는 1절을 보면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near)”(1)라고 하면서 이제 거의 유월절에 ‘가까이’ 온 것을 알려주는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2절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고 있다”(2)고 말하듯이, 저들은 예수님을 죽일 것을 기정사실로 합니다. 이는 앞서 살펴본 첫 번째 주제인 <어린양 도살>에 해당하는 본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락이 시작되는 7절을 보면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이 이른지라(the day)”(7)라고 하듯이 유월절 당일(the day)이 된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성내로 보내시면서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게 하시는데(8)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해지기 전에 준비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이는 앞서 살펴본 두 번째 주제인 <만찬 준비>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 단락이 시작되는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때(the hour)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14-15) 14절은 이제 시간이 되어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자리에 둘러앉아 <유월절 만찬>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앞서 살펴본 세 번째 주제에 해당합니다. 이 식탁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나눌 “마지막 만찬”(the Last Supper)이 됩니다.

●유월절 만찬의 진행

이처럼 당시 유대인들이 유월절 하루를 이러한 세 가지 주제로 보냈다면, 유월절 만찬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유대인들은 <15개 순서>로 된 유월절 만찬을 지켰는데<Mishnah Pesachim 10>, 간단히 보면 유월절 만찬은 다음과 같은 필수적인 요소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포도주잔

∎무교병과 쓴나물

∎막내아들의 질문과 출애굽기 낭독

“왜 오늘 밤이 다른 밤과 다릅니까? 왜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까?”

∎두 번째, 세 번째 포도주잔

∎어린 양고기 식사

∎시편 노래(시 113–118)와 마지막 포도주잔

보시는 것처럼 유월절 만찬은 첫 번째 포도주잔으로 시작합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식탁에 앉아 자녀들과 출애굽 사건을 이야기 형식으로, 문답 형식으로 나누면서 신앙 교육을 하고, 어린 양의 피로 재앙이 벗어난 것에 감사하면서 어린 양을 잡아 준비한 양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스라엘의 신앙교육은 밥상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문답 교육이 끝난 다음에는 마지막 네 번째 포도주잔을 마시고,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만찬을 마칩니다.

이처럼 본래 유대인들의 유월절 만찬에서 꼭 필요한 음식 하나만 꼽으라면 어린양을 잡아 준비한 ‘양고기’입니다.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유월절 만찬 순서이고, 그것이 핵심 요소가 되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예수님의 만찬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마지막 식탁에는 양고기가 아예 언급도 되지 않습니다.

앞서 유월절 만찬은 첫 번째 포도주잔에서 시작해서 네 번째 포도주잔으로 마무리된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 18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마치 네 번째 포도주잔을 거부하시듯이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18)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조금 더 분명해지는데, 마가복음 14장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막 14:25)라고 말씀하시고, 거기에 이어서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26)고 말하는 것처럼, 시편으로 찬양만 하시고 포도주는 보류하시고 곧바로 감람산으로 떠나신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 예수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유월절 어린양 도살과 네 번째 잔”이라고 정했는데, 이런 의문 속에서 저는 오늘 본문과 설교 제목을 바탕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주목하게 됩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친히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본문에 유월절 만찬의 필수요소인 어린양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실수로 준비를 안 했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면서 유월절을 철저히 준비시키신 것을 생각하면, 그럴 리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날 유월절 어린 양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앞서 유월절 어린 양을 몇 시에 도살했다고 했지요? 3시쯤입니다.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건에 대해서 증언하기를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오후 3시)까지 계속하며 … 예수께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4, 46)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제구시, 곧 오후 세시에 십자가에 죽으신 유월절의 어린 양이신 것입니다.

신학자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1900-1979)는 이러한 주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못 박아 말합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유월절의 창시자이시기에 그의 성찬은 유월절 어린 양을 대신한다”<‘Jesus is the founder of the new passover, in which the Eucharist replaces the paschal lamb’, The Eucharistic words of Jesus, SCM>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께서는 스스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 것입니다. 이로써 완벽한 유월절을 새로이 창시하셨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잔을 마신 예수

둘째로 예수께서는 마지막 네 번째 잔을 끝내 마셨습니다. 앞서 마가복음 본문으로도 살펴보았지만, 예수께서는 유월절 만찬에서 네 번째 포도주잔을 들지 않으셨고, “마시지 않겠다”고도 하셨습니다. 그저 시편으로 찬송하시고 감람산으로 가셨다고 마가복음이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마신 네 번째 잔은 무엇입니까?

그 결정적인 힌트는 그렇게 감람산으로 떠나신 주님이 거기서 무엇을 하셨는지에 있습니다. 주님은 감람산에 있는 겟세마네 정원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주님이 말씀하신 ‘이 잔’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거두어달라고 기도하실 정도로 네 번째 잔을 피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 끝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드셨는데, 요한복음 19장에 드디어 예수께서 네 번째 잔을 마시는 장엄한 장면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29-30)

주님이 십자가에서 네 번째 포도주잔을 받으셨습니다. 스콧 한이라는 신학자는 이러한 네 번째 포도주잔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네 번째 잔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새롭게 하시는 예식의 마침표 역할을 했다.”<스콧 한, 『네 번째 잔의 비밀』 가톨릭출판사>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 절기에 따라 드리는 유월절 만찬에서가 아니라, 그리하여 옛 이스라엘과 맺으신 옛 언약이 아니라, 유월절 만찬에서 보류하신 네 번째 포도주잔을 십자가에서 마심으로 어린 양으로 인한 새 언약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 한가운데의 가룟 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마지막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러한 거룩한 최후의 만찬 한가운데 가룟 유다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 초반에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주장을 소개했지만, 가룟 유다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거룩한 도구가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사탄에게 종노릇한 자에 불과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의 개혁주의 설교가인 존 맥아더(John MacArthur, 1939-) 목사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는 공생애 내내 유다를 사랑으로, 호소로, 때로는 책망하시면서 그를 돌이키려 애쓰셨습니다. 유다의 배신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들어왔지만, 하나님이 유다를 배신자로 만드신(design) 것은 아닙니다. 유다는 자기의 선택으로 배신자가 되었고, 하나님은 그 악행마저 당신의 거룩한 계획에 포함시키셨을 뿐입니다.”<John MacArthur의 설교 “Unmasking the Betrayer” 中 우리말 옮김>

그렇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선택으로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사랑도 그 앞에서는 무기력했습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호소도 가룟 유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기만 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가르침도 그에게는 ‘평가’의 대상일 뿐, 그 말씀에 ‘복종’이란 걸 할 줄 모르던 자였습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도 그에게는 실패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룟 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오랫동안 항상 예수님과 가까이 동행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열두 제자 중에 돈궤를 맡았을 정도로 제법 지위도 높았고 발언권도 있었기에, 예수님 발에 비싼 향유를 붓는 여인을 자기 맘대로 나서서 비난하는 되바라진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오늘 본문에 보듯이 이 거룩한 마지막 만찬 중에 있었고, 그는 예수님과 함께 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던 자였습니다(눅 22:21). 무엇보다 가룟 유다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예수께 입맞춤을 한 자이기도 했습니다(눅 22:48). 가장 친밀한 행동으로, 예수를 배신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법 앞에서’

이러한 비참한 가룟 유다를 생각하다가 저는 체코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가 쓴 『법 앞에서』(Vor dem Gesetz)라는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의 신세가 마치 가룟 유다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법이라는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문지기’가 그 앞을 지키고 있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문은 이미 열려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주인공은 문지기 앞에서, 그리고 문 앞에 서서 시간만 허송하다가 결국 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에 문지기는 그 어리석은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아버립니다. “여기서는 다른 누구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네. 이 입구는 오직 자네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제 가서 입구를 닫겠네”<『프란츠 카프카』, 현대문학> 결국 그는 항상 법 ‘앞에’ 있었지만, 법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 있었지만, 예수 안에 거하지 못한 가룟 유다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께서 배설하신 저 위대한 거룩한 만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도살되셔서 새로운 유월절을 창시하셨고, 십자가의 신 포도주를 네 번째 잔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의 쓴 잔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유월절 어린 양의 구원 이야기 한가운데 가룟 유다가 있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에게 배신의 길, 불복종의 길을 강요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나눕니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눅 22:22-23) 이 말씀을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음성으로 받아먹고, 참 마음으로 회개함으로, 유월절 어린 양이 초대하신 잔치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