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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는 무리에게 주신 말씀 사건의 경위”

(눅 6:46-7:10)

<2025년 1월 26일 주현 후 제3주 설교 / 녹색>

●누가복음 6장의 <평지설교>

지난주 우리는 누가복음 6장에서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지키는 ‘주일’의 주인도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날을 내 맘대로, 내 편리대로 남용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는 유대 사상가인 아브라함 헤셀(Abraham Joshua Heschel, 1907-1972)이 “우리는 한 주에 엿새 동안은 땅에서 이윤을 짜내며 이 세계와 씨름하지만, 안식일에는 영혼 속에 심긴 영원의 씨앗을 각별하게 보살펴야 합니다.”<『안식』 복있는사람>라고 말한 것을 인용했습니다. 미칠 듯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육신을 위해 6일을 살았다면, 최소한 주일 하루라도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우리 영혼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다른 날과 구별하여 지키자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영혼이 병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러한 안식일에 대한 가르침에 이어지는 누가복음 6장 나머지를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택하는 이야기가 나오고(6:12-19), 그 열둘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6:20-49).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열둘’이라는 완전수로 제자 공동체를 만드시고는 그들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주신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평지설교>라고 부르고, 이는 다음의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①복과 화에 관한 가르침(20-26) ②원수 사랑에 대한 가르침(27-38) ③네 눈 속의 들보를 보라는 가르침(39-42) ④나무는 열매로 안다는 가르침(43-45) ⑤들음과 행함에 관한 가르침(46-49)이 그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었지만, 이중 마지막 다섯 번째 가르침에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느냐?”(46)고 말씀하시면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공사 없이 흙더미 위에 집을 짓는 무모한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47-49). 그 결과 비가 억수 같이 내리면 집이 곧바로 무너져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하시는데, 이처럼 누가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 <평지설교>는 “들음과 행함”이라는 엄중한 경고로 마치고 있습니다.

●들음과 행함의 세 가지 모델

이처럼 “들음과 행함”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신 뒤에, 예수께서는 이에 대한 모범이 될만한 사례를 들어주시는데,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을 포함해서 누가복음 7장에 보면 그것에 관한 적합한 사례들이 나옵니다. 그것들을 하나씩 꼽아보면 이런 사람들입니다. 첫째는 “백부장”(7:1-10), 둘째는 “나인 성의 과부”(7:11-17), 그리고 셋째는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입니다(7:36-50). 세 사람의 공통점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셋 다 유대 사회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들”이란 점입니다.

첫째로 ‘백부장’(e`katonta,rchj)은 부하 백 명을 거느린 장수를 뜻하는데, 그는 어디 출신인지 알 수는 없지만, 타지에서 이스라엘에 파견되어 온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웬만해서는 상종하지 않는 존재로서 비주류입니다. 둘째로 나인 성의 과부는 어떻습니까? 고대로부터 이스라엘은 ‘나그네, 고아, 과부’를 오갈 데 없는 신세의 대명사처럼 여깁니다. 그중 하나인 나인 성의 과부는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소외당하던 존재였던 비주류였습니다. 셋째로는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성’이 소개되는데 게다가 성경은 ‘죄인’이라고도 소개합니다. 당시 남성들의 재산 목록 중 하나로 취급받던 ‘여성’ 게다가 ‘죄인인 여성’이 주류가 될 리 만무합니다. 그녀 또한 비주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복음 7장은 이 세 사람을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 가장 모범적인 인물”로 소개하고 있으니,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이방인’ 백부장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9절)라고 말씀하셨으니, 제자들은 물론이고 그 말을 듣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심기가 무척이나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종을 존경한 이방인 백부장

이런 점에서 저는 오늘 이방인 백부장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따르는 무리에게 주신 말씀 사건의 경위”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려 하는데, 백부장은 자신이 부리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예수께 고쳐 달라고 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이 실로 놀랍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직접 오시지 않아도, 그냥 거기서 말씀만 하셔도 내 하인이 낫겠다’(7절)고 믿었던, 성경에 나오는 그 누구보다 월등한 믿음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러한 백부장의 믿음을 일컬어 “텔레파시 치료”(Rudolf Bultmann)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본문을 보면 구절구절 너무나도 놀랍고 아름다운 한 신앙인을 만나게 됩니다. 먼저 그의 모습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방인 백부장은 종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절은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주인과 종의 관계가 명확했습니다. 종은 주인의 재산 목록 중 하나일 뿐이었기에, 종이 아파 죽으면 그냥 죽는 겁니다. 재산상의 손실을 입는 것이 아까울 수는 있어도, 한낱 파리 목숨처럼 여겨지는 ‘종’ ‘노예’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인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본문에서 주인이 종을 “사랑했다”는 말은 어색한 표현입니다. 종이 주인을 사랑하면 했지 주인이 종을 사랑까지 한다니 말입니다.

사실 이 말을 성경 원어로 보면 더 어색한데, ‘사랑한다’는 말은 “존경하다”(e;ntimoj, honor, esteemed, precious)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종을 존경한다니요? 종이 주인을 존경하면 했지, 주인이 종을 존경하는, 그런 정신 나간 주인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방인 백부장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했고, 존경했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어서 백부장은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그를 살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백부장의 모습입니다.

●귀인 중의 귀인 이방인 백부장

둘째로, 이방인 백부장은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었습니다. 3절을 보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했다”(3절)고 말합니다. 백부장이 자신의 종을 살리기 위해서 누구를 보냈다고 하지요?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presbute,rouj tw/n VIoudai,wn)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대인의 장로들”(프레스뷔테루스, presbyterus)이 정확히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학자들은 이들이 성경에 나오는 여느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는 달리 “유대 사회의 존경받는 훌륭한 지도자들”일 것이란 점에서는 이견이 없습니다<대럴 벅, 『누가복음1』 부흥과개혁사>.

‘이방인’ 백부장이 ‘유대인’의 장로들을 보냈다는 것이 놀랍고도 신비롭습니다. 일반적으로 저 고집 센 유대인 장로들이 이방인 백부장이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갈 사람들도 아니지만, 게다가 백부장도 아니라 백부장의 ‘종’을 구하기 위해, 게다가 성전 제사장이나 회당 랍비를 만나는 게 아니라 ‘예수’를 찾아가라는 말을 고분고분 들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고 강제로 물리력을 동원해서 억지로 그들을 보낸 것은 더욱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본문에 나오는 이방인 백부장과 유대인의 장로들 사이에는 상호 존중하는 아름다운 우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셋째로, 이방인 백부장은 훌륭한 인품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방금 살펴본 것처럼 ‘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께 다가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①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②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③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④회당을 지었나이다”(4-5절)

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백부장의 종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는데, 본문은 그들이 “간절히 구했다”고 합니다. 백부장이 부탁하니까 형식적으로 말을 전하는 게 아니라, 저들은 백부장의 간절한 마음을, 비록 간접적으로나마 자신들의 표정과 목소리와 가슴에 담아서 마치 “감정이입”하듯 온전히 예수께 전하려 했던 것입니다. 저들 사이에 따뜻한 우정이 없었다면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처럼 간절히 구함과 동시에, 저들은 예수님이 묻지도 않았는데 백부장에 대해 자랑하며 말하기를, 첫째로 “백부장은 예수님의 도움을 받기에 합당한(a;xioj, 악시오스 worthy)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합당하다”(consider worthy or appropriate)는 말은 보통 성경에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살후 1:5) “그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하다”(눅 20:35)라는 식으로 사용되는 말인데<EDNT, William B. Eerdmans>, 방금 ‘그들은’이라 말씀드린 것처럼, 보통 이 말은 어느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두고 사용되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개인에게 사용될 때는 요한계시록에서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나이다!”(계 4:11)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직 주님께만 사용됩니다. 그런데 매우 이례적이게도 오직 주님에게만 사용되었던 이러한 표현이 이방인 백부장 개인에게 사용된 것입니다.

이어서 유대인의 장로들은 백부장에 관한 칭찬을 계속 이어갑니다. 이방인 백부장이 “우리 민족을 사랑했다”(avgapa/| ga.r to. e;qnoj h`mw/n, 5절)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쟁, 그리고 전쟁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민족이 다르고 혈통이 달라서, 종족과 인종이 다른 이유만으로 참상과 살육이 벌어지곤 합니다. 여기서 ‘민족, 혈통, 인종’ 따위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가 ‘Ethnic’이란 말인데, 본문의 ‘민족’이란 말의 헬라어(e;qnoj)가 그 단어의 어원이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장로들은 백부장이 “우리 민족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랑하다’는 말은 우리가 잘 아는 ‘아가페’로서의 사랑, 곧 ‘무조건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방인으로서 백부장은 유대 민족, 유대 혈통, 유대인 등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참으로 ‘귀인 중의 귀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으로 백부장이 행한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저들이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다”고 증언하는 것처럼, 이방인 백부장은 유대교라는 종교마저도 뛰어넘는 사랑으로 자기와 상관없는 ‘유대 회당’까지 지어줄 만큼 넉넉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현대지성)의 이쉬마엘과 퀴케그

미국의 작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이 쓴 『모비 딕』(현대지성)이라는 소설 있는데, 이 소설은 “에이해브”(Ahab) 라는 이름의 선장이 “피쿼드호”라는 배를 타고, 자신의 한쪽 다리를 빼앗은 거대한 흰고래를 추격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거칠고 집요한 것인지, 반면에 그런 욕망이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유명한데, 작품에 보면, 선원 중에 “이쉬마엘”(Ishmael)과 “퀴케그”(Queequeg)라는 선원이 나옵니다. ‘이쉬마엘’은 엄격한 장로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기독교 신자인데 반해, 퀴케그는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데다가 온몸에 섬뜩한 문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쉬마엘이 보기에는 퀴케그는 완벽한 이교도였는데, 사람들은 그를 ‘야만인’ ‘식인종’이라고 대놓고 놀리며 가까이 상종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소설에 보면, 항해를 하던 중에 돛을 붙잡아 매고 있던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커다란 활대가 갑판 위를 휩쓸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거였습니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활대가 부러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항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뿔싸! 평소 퀴케그를 ‘식인종’이라고 모욕하며 조롱하던 어떤 선원이 그 활대에 맞아서 바다에 빠져 버립니다.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때에, 퀴케그가 용감하게 나서는데,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재빨리 활대를 붙잡아 양쪽을 밧줄로 고정시키면서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합니다.<“모두가 겁먹고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에서 퀴케그는 재빨리 무릎을 꿇고 활대가 오가는 아래쪽으로 기어가 밧줄 하나를 휠 낚아채 한쪽 끝을 뱃전에 고정시키고, 다른 한끝은 활대가 머리 위를 지날 때 올가미 밧줄처럼 던져 활대에 걸고는 힘껏 잡아당겼다. 마침내 사태가 수습되었다.”<『모비 딕』> 이렇게 사태를 수습한 퀴케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웃통을 벗어 바다로 뛰어들어서는 바다에 빠진 선원, 자기를 식인종이라며 그토록 조롱했던 선원을 구합니다. 그리고는 물 한 바가지퍼서 샤워를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쪽 구석에 가 앉습니다.

이 일이 있고나서 그동안 ‘이교도라 손가락질받던 퀴케그’, ‘야만인, 식인종이라 조롱받던 퀴케그’를 향한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쉬마엘도 기독교인인 자기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사람답고, 기독교인인 자기보다 훨씬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준 퀴케그와 이후로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방인 백부장이 보여준 모습이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편협한 인종주의, 선민주의, 유대교 우월주의에 빠져 있었지만, 이방인 백부장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참되게 사랑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본문의 ‘유대인의 장로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이방인 백부장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앞다투어 예수께 칭찬하며 말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겸손한 믿음의 사람 이방인 백부장

마지막 넷째로, 이방인 백부장은 참으로 ‘겸손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6절 이하에 보면, 유대인의 장로들의 간청을 듣고 예수께서는 백부장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집에서 죽어가는 종을 돌보던 백부장은 예수님이 자기 집 가까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황급히 예수님에게 “벗들(fi,loj, 필로스, beloved, loving, friend)을 보냈다”(6절)고 합니다. 먼저는 ‘유대인의 장로들’을 보냈다더니, 이번에는 벗들을 보내는 것인데, 이 벗들이 예수께 전하는 말이 생각할수록 경이롭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6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눅 7:6-8)

지금 이 말을 백부장이 하는 말처럼 우리가 읽었지만, 실상 이 말은 그의 벗들이 백부장의 말을 옮긴 것인데, 백부장의 말이 벗들의 말이요, 벗들의 말이 곧 백부장의 말이 됩니다. 앞서 유대인의 장로들은 백부장의 말을 최선을 다해 ‘간접적으로’ 전했다면, 이 벗들은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이 백부장에게 ‘감정이입’(empathy)하여 전했다면, 벗들은 마치 백부장의 ‘분신’(分身, otherself)인 것처럼 예수께 고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백부장은 친밀한 관계로 주변 사람들과 아름다운 우정을 맺고 살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러한 벗들이 예수께 전한 백부장의 첫 번째 고백은 무엇입니까? “주님!”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으면서도, 그가 자기 집 근처에 오셨다는 말만 들고도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예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겸손한 말, ‘주님!’이라는 고백으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일전에 영국의 기독교 사상가인 존 스토트(John Stott, 1921-2011) 목사님은 “그분이 주님이실 때에만 우리는 온전해진다.”<『존 스토트의 기독교 강요』 비전북>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백부장은 ‘주님’이라는 짧고도 가장 겸손한 고백으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보면, 앞서 “유대인의 장로들”이 백부장에 대해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백부장은 합당한 사람입니다”(He deserves it)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백부장은 예수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I don’t deserve it!)고 말하더니, 예수님을 대면하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두 번씩이나 고백합니다. 이러한 백부장의 모습을 우리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겸손의 사람”인 것입니다.

이로써 백부장은 예수께 간청하기를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7b-8)라고 말합니다. “말씀만 하사!” 드디어 백부장에게 <말씀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말씀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겸손”에 이어 백부장이 보여준 또 하나의 신앙 덕목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곧 “복종”입니다. 겸손히 주의 말씀에 복종한 백부장이 <말씀 사건>의 주체가 된 것입니다.

●따르는 무리에게 주신 말씀 사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들음과 행함”의 좋은 본보기가 되는 이방인 백부장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을 존경하고, 그의 안위와 생명을 진심으로 걱정할 줄 아는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민족이라든가, 혈통, 인종에 상관없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고, 게다가 자신과 상관없는 유대 회당을 지어줬을 정도로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복종은 겸손한 자만이 할 수 있다”<『하나님의 도성』 CH북스>고 말한 것처럼, 백부장은 복종의 사람이기도 했는데, 그의 복종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백부장의 몸에 밴 ‘겸손’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는 위대한 <말씀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는 이러한 백부장의 대답을 놀랍게 여기시면서, 몸을 돌이키시고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9절)고 책망하시는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설교를 마치는 지금, 저는 이 말씀을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백부장이 말씀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 말씀으로 인해 새로운 말씀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만일 주님이 우리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의 성도를 예로 들으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서강 교인 중에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만일 주님이 기독교인이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예로 들으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기독교인 중에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얼마나 수치심을 느껴야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주님의 책망으로 인해 다소 부끄럽고 수치스럽더라도, 때로는 많이 부끄럽고 많이 수치스럽더라도, 그 말씀 앞에 정직하게 응답하여서 우리 안에, 우리 교회에 새로운 <말씀 사건>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이방인 백부장이 보여준 모습처럼, 겸손과 복종이라는 반석 위에 믿음을 세움으로써,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