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엘리사벳, 가장 복된 여인들”

<누가복음 1장39-45절>

1. 고통, 그리고 불행

여러분, 인간이 살면서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 중의 하나가 ‘고통’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없애려 노력한다 해도 마치 거머리처럼 시시각각 달라붙는 게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여러분들도 이미 잘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일전에 프랑스의 시몬 베유Simone Weil라는 철학자는 “인생의 거대한 불가사의는 ‘고통’이 아니라 ‘불행’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시몬 베유,[신을 기다리며](이제이북스)> 고통은 인간이 겪는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뭉뚱그려서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라면, 그런 고통 중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을 우리는 ‘불행’이라 부릅니다.

어려운 철학자를 인용했지만, 이미 여러분들도 지금까지 사시면서 불행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묻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여러분, 이런 물음에는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유를 알지 못할 때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운전하고 가는데 갑자기 맞은 편에서 차가 달려들어 큰 사고가 난다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봐도 정답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미궁에 빠집니다. 이런 물음에 과도하게 골똘하다 보면 스트레스로 인해 육신도 그렇지만 급기야 영혼도 피폐해지기 일쑤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물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황당한 일을 당해서 이런 물음을 던져야 했던 사람, 바로 15살된 소녀 마리아가 오늘 본문의 주인공입니다.

2. 믿을 수 없는 일이 내게

오늘 본문은 소녀 마리아가 그의 친척인 엘리사벳을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한테 달려갔던 이유는 오늘 본문 바로 직전에 설명되고 있는데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이제 네가 잉태할 것이고 아들을 낳을 것인데(1:31), 그는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될 것이라는 고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1:33).

그 말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겠습니까?”(1:34)하고 의문스러워했습니다. 두려웠던 것입니다. 천사의 말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그 말이 무슨 말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만 했습니다. 이에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을 것”(1:35)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증거를 하나 덧붙여 주는데요, “네 친족 엘리사벳도 본래 임신하지 못할 만큼 늙었지만 이미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1:36)고 알려줍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38절에서 저 아름다운 순종의 고백,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응답합니다.

3. 더 깊은 ‘예’를 찾아 떠난 여행

여러분, 비록 마리아가 순종하듯 응답하긴 했지만, 그게 어디 쉽게 믿어질 말이었던가요? 오히려 속으로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납니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친척 엘리사벳은 아기를 가질 나이기는커녕, 이미 태가 닫힌 지 오래된 몸인데, 가브리엘이 분명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고 말했으니, 그 말도 안 되는 일부터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자기가 살고 있던 나사렛을 떠나 유대 땅으로 향했습니다. 나사렛에서 유대 땅은 150km 정도가 됩니다. 서울에서 대전이 140km입니다. 마리아는 자기에게 일어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그 먼 거리를 몇 날 며칠을 걷고 뛰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찾기 위한 멀고도 험한 여행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의 여행이 어땠는지 몇 가지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 39절은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갔다.”고 합니다. 표현이 아주 역동적으로 느껴집니다. 여기서 ‘빨리’라는 말은 성경 원어로 ‘spoudh,’라고 하는데요, ‘스푸데’, 영어로 빠른 속도를 의미하는 ‘스피드’speed가 이 말에서 온 것입니다. ‘빠른 속도, 서두름’ 이란 뜻입니다. 성경은 한시라도 빨리 엘리사벳을 만나고 싶었던 마리아의 그 간절한 심정을 이 단어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리아가 유대 근처의 ‘산골’로 갔다고 성경은 부연설명을 해줍니다. 성경 원어로 ‘산골’(ovreino,j)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딱 두 번 사용된 아주 희귀한 단어입니다. 당시만 해도 도처에 사나운 짐승들은 물론이고요, 산골짜기마다 산적들이 출몰해서 해코지를 당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마리아의 여정은 거리가 멀기도 멀었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은 험난한 길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사람 이름이 딱 세 명만 나옵니다. 누군가요? “예수, 마리아,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즉 예수님과, 예수님께 ‘네!’라고 대답했던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께 ‘아니오!’라고 말했던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영국 성공회의 대주교를 역임했던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라는 저명한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서 ‘예’와 ‘아니오’ 사이를 오갑니다. 때로 더 깊은 ‘예’를 향해 나아가는가 하면, 더 깊은 ‘아니오’를 향해 떠나기도 합니다.”<로완 윌리엄스, [신뢰하는 삶](비아)>

여러분, 우리 삶의 방향성은 ‘예’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께 “네 알겠습니다.”로 응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까?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더 깊은 ‘예!’를 찾아 험난한 여행을 떠났던 것입니다. ‘단순한 예!’로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험이었고, 박수 받아 마땅한 용기였던 것입니다.

4. 마리아, 문안하다

그런 험난한 여정을 거쳐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 도착합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잠깐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긴 여행에 지친 마리아가 문을 두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이 나와서 마리아를 맞이합니다. 마리아의 모습이 어땠겠습니까? 제대로 먹기를 했을까요, 씻기를 했을까요. 그 몰골을 하고서 문을 두드렸을 것입니다. 추레하기 짝이 없는 마리아를 알아본 엘리사벳은 깜짝 놀라서 얼른 그녀를 집으로 들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서 ‘마리아가 ► 엘리사벳에게’ 문안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문안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안부를 묻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누가 누구에게 먼저 안부를 물었어야 합니까? 당연히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상태가 어떤지를 묻는 게 맞지요. “마리아야, 나사렛에서 여기까지 어쩌자고 왔느냐?” “혼자 왔느냐?” “오는 길에 별일은 없었느냐?”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먼저 물었어야 합니다. 물론 엘리사벳이 그러려고 했겠지요. 저는 믿습니다. 엘리사벳은 그럴만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40절과 41절에서는 문안한 사람이 ‘마리아’였다고 굳이 두 번이나 강조합니다. 성경은 어찌했건 안부를 먼저 물은 사람은 마리아였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실, 마리아가 이 멀고도 험한 여행을 감행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벳에게 ‘안부를 묻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거면 되는 거였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엘리사벳의 배가 불렀는지 아닌지 그것만 확인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러면 이 여행은 완벽해지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후로 자신이 세웠던 목적, 그 이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엘리사벳과의 대화에서 마리아는 전혀 다른 영적인 차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의 임재를 충만히 경험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형식적으로 ‘예’라 대답하는 것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더 깊은 예’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여행을 감행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성령의 임재와 충만한 은혜로 응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5. 성령의 임재와 은혜

여러분,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아주 뛰어난 지각력을 소유한 두 사람을 만납니다. 첫째는 요한이었습니다. 41절은 말하기를,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놀았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음성은 엘리사벳이 들었는데, 이에 먼저 응답한 사람은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던 요한이었다는 겁니다.

태중에 있던 요한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직접 들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리스도를 잉태한 어머니 마리아의 음성만으로 그리스도를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자기 어머니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마치 트램폴린 위에서 방방 뛰면서 좋아하듯 했다는 얘깁니다. 세례자 요한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영적으로 위대한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엘리사벳이었습니다. 41절과 4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아멘.

여러분, 마리아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엘리사벳에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안부만 물었을 뿐이지, 임신 사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안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엘리사벳이 스스로 알게 된 게 아니라 본문이 말하듯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곧 성령이 알려준 것입니다.

여러분, 이때 마리아의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탄성이 벅차올랐을 것입니다. 이 여행을 시작할 처음에, 마리아는 의문스러웠고요, 혼란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수치스러웠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물음을 안고 시작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깊은 ‘예’를 향했던 그 여행의 끝에서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6. 큰 소리로 부르다

여러분, 42절을 다시 한 번 보시면, 그리스도를 알아본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이렇게 말했을까요? 아닙니다. 엘리사벳은 절대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엘리사벳이 “큰 소리로 불렀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느 정도나 큰 목소리였을까요?

여기서 “큰 소리로 불렀다.”는 말을 성경 원어에서 그대로 옮기면(avnefw,nhsen kraugh/| mega,lh|) “메가톤급 목소리로 부르짖었다.”는 뜻입니다. “폭풍(천둥,번개)같은 목소리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부르실 때, 마치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겠다!”(사 42:14)고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서 성령 충만해서 외치고 있는 엘리사벳의 목소리는 얼마나 컸겠습니까? 해산하는 여인이 소리치는 것처럼, 엘리사벳은 온 힘을 다해 큰소리로 마리아에게 외쳤던 것입니다.

또한 에스겔서 43장2절은 하나님의 음성을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은 그만큼 크고도 웅장한 소리라는 뜻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나이아가라 폭포에 한번 가봤습니다. 떨어지는 폭포 소리가 너무 커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한테도 고래고래 소리질러야 겨우 의사소통이 됐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오직 떨어지는 폭포 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런 게 에스겔서가 말하는 ‘많은 물소리’입니다. 주변의 모든 잡소리와 소음을 잠재우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만이 들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이 저 세상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잠식되는 그런 삶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그 모든 소리를 잠재우고, 엘리사벳처럼 오직 성령의 소리만 듣고, 성령으로만 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 마리아와 엘리사벳, 가장 복된 사람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성령 충만했던 엘리사벳은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42절에서 엘리사벳은 마리아와 예수님을 함께 축복합니다. “네가 복(euvloge,w)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euvloge,w)이 있도다.” 합니다. 45절에서는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maka,rioj)이 있도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이미 ‘믿었음’을 확증하면서 축복했던 것입니다.

또한 43절에서 엘리사벳은 자기 자신도 축복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Why am I so favored),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왔단 말인가!”하는 뜻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와 그 태중의 아기이신 예수님을 축복했을 때, 자기 자신이 얼마나 복된 사람인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집에 들어오셨으며, 그를 축복할 수 있었으니 그 감격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두 명의 여인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임신한 여인들이었습니다. 하나는 15살 소녀 마리아였고, 다른 하나는 나이 많은 엘리사벳이었습니다. 하나는 절대로 임신하면 안 되는 처녀 마리아였고, 다른 하나는 절대로 임신이 불가능한 나이 많은 엘리사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였으며, 다른 하나는 성령으로 충만한 엘리사벳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인해서 이 두 여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복된 여인의 반열에 오릅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예수를 잉태한 여인이었기에 그러하며, 엘리사벳은 지구상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축복한 여인이었기에 그러합니다.

성령으로 인한 저들의 기쁨은 46절 이하에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합니다!”, 저 유명한 “마리아의 찬가”가 되어 큰 기쁨으로 세상을 수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문제로 인해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하는 불행의 그림자가 우리 삶을 엄습해 오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그런 문제로 인해 답답함과 두려움으로 갈등하고 계시다면, 이 강림절기가 다 가기 전에, 마리아가 보여준 더 깊은 “예!”를 향한 모험을 감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단순한 예’로, ‘습관적인 예’로 만족하는 믿음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 위대한 여행의 끝에서, 오늘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불안한 마음은 벅찬 감격이 되고, 어둠은 빛으로 타오를 것이며, 슬픔은 변하여 기쁨의 찬미로 여러분들의 삶에 큰 소리로 울려 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