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후손, 뱀의 머리를 치다”

<요한복음 3장14-21절>

Ⅰ. 설교에 들어가며

사순절 넷째 주일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주의 이름으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여러분, 아침저녁으로 아직 쌀쌀하지만, 봄이 왔지요? 봄이 되면 여러 노래들이 생각나지만, 저는, 요 며칠 입에서 이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 이 마음도 함께 따 가주” 김동환작사/김동진작곡의 ‘봄이 오면’ 이었습니다. 시인 이성부는 봄이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봄을 일컬어,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 온 사람아”라고 환영하며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고 이내 꽃을 피우듯이, 노랫말처럼 그 꽃이 피는 곳에 우리들의 마음도 활짝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1년간 움츠려 있던 여러분들의 신앙에도 주님의 은총과 따스한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서, 감격과 감사가 넘치는 새날들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여러분, 한국 젊은이들이 미국에 가면 꼭 맛보고 싶어하는 햄버거 리스트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인앤아웃 버거’라고 해서요, 뉴욕이나 보스턴 같은 미국 동부 쪽에는 없고요, 캘리포니아나 네바다, 애리조나 등의 서부 쪽에만 있는 프렌차이즈 햄버거입니다. 1948년에 Harry Snyder라는 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소규모로 시작된 이 햄버거 회사는요, 값도 아주 싼데다가 맛도 일품이어서, 늘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저도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할 때면, 그 햄버거 가게를 거점으로 해서 잠시 차를 세우고 허기를 달래곤 했었습니다. 참 맛있습니다. 언제 미국 서부 여행을 하실 기회가 있으시면, 꼭 한번 맛보시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인앳아웃버거’라는 이 프렌차이즈 식당은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요, 햄버거 포장지 구석에, 그리고 음료수 컵 뚜껑의 안쪽에 성경의 ‘장과 절’이 아주 작게 적혀 있습니다.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게 인쇄 돼 있는지 조차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글자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본문’이 적혀 있는 게 아니라, “요한복음 3:16, 잠언 3:5, 나훔 1:7” 이런 식으로만 적혀 있다보니,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중에, 그걸 발견한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씀이지 하면서, 전화기를 꺼내서 검색을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요한복음 3:16, 잠언 3:5, 나훔 1:7” 이중에 다른 건 몰라도 우리가 다 아는 성경 말씀이 있지요? 요한복음 3장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요한복음 3장16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많이 들었고 익숙한 말씀일 것입니다. 주일학교와 여름성경학교에서 가장 많이 읽고 설교하고 암송하는 본문이기도 하고요, 미국에서 운전하다 보면, 대형 트럭에 그 말씀을 크게 붙인 채로 다니는 운전자들도 왕왕 만나곤 했습니다. 가장 대중적인 성경 말씀이란 얘기겠지요.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은요,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말씀임과 동시에, 기독교의 진리를 간결하면서도 완벽하게 표현해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유명해졌겠지요. 그것은 우리가 믿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한 매우 특별한 계획을 세우셨는데, 이는 자신의 독생하신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주셨다는 것이며, 그를 믿는 자들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Ⅱ. 설 교

1. “이와 같은 사랑” 그리고 원망과 불평

그런데 요한복음 3장16절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는데요, 이 말을 영어성경들은 거의 “God loved the world so much”라고 해서요, “하나님이 세상을 아주 많이 사랑하셨다”는 것을 강조해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번역도 맞긴 합니다만, 성경 원어를 우리말로 거칠게 옮기면, “이처럼, 이와 같이”가 앞에 붙어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이와 같이”라고 했으니까, 이것은 바로 그 직전에 말한 것을 뜻하겠지요. 즉 요한복음 3장14절이 말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리게 하실 만큼”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는 바로 14절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만들어 들어 올린 행위는 오늘 구약성경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민수기 21장은 광야 생활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일어난 일이었는데요, 에돔 땅을 가로질러 가면 가나안에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에돔 사람들이 자기들의 땅을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쪽으로 돌아서 가야했던 일이었습니다. 광야에 머무는 기간이 그만큼 더 길이지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 제가 지난 주 설교에서 ‘에돔족’ 출신인 한 인물을 언급했었는데요, 누군지 기억이 나시나요? ‘헤롯대왕’이 바로 이 땅 에돔족 출신이었습니다. 제가 에돔족과 이스라엘이 서로 사이가 안 좋았다는 말씀을 드렸었지요? 그렇습니다. 민수기 21장만 보더라도,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족 사람들은 야곱의 후예들인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결과가 그렇게 돼 버리자, 민수기 21장4절은 말하기를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그 놈의 몹쓸 병이 도집니다. 그 병인즉슨, ‘원망과 불평’이란 병이었습니다. 민수기 21장5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2. 하나님의 즉자적인 진노와 심판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어이없는 반응이 나타나자, 이에 따른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임합니다. 민수기 본문에는요, 그렇게 원망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거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다’거나 혹은 ‘하나님이 심판하기로 작심을 하셨다’거나 하는 말도 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곧바로 서둘러 임합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말이겠지요. 더 이상 두고 볼 여지가 없다는 것이지요. 봐줄 만큼 봐줬다는 뜻일 겁니다. 그리고는 이내 그 심판이 어떠한지를 말해줍니다. 곧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민수기 2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의 막바지에 접어든 때였습니다. 그러면, 이때가 광야생활 몇 년 쯤이나 됐을지는 정확히 계산하긴 어렵지만, 지난 몇 십 년 동안, 적어도 30년 이상 광야 길을 걸으며 그들이 비록 고통스러웠고, 그 세월들이 고난의 행군이었던 것은 맞지만, 그 가운데에 일어난 놀라운 하나님의 표적과 기적을,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누차 경험해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고질병, ‘원망과 불평’은 광야생활의 초창기보다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병이 더 깊어지고, 심화되고, 마치 ‘바이러스 변이’가 생긴 것마냥, 변이되어서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원망과 불평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들어 보십시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구해 내신 것이 정말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했던 것인가요? 먼저 신음하며 구해 달라 한 것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 신음소리를 듣고 긍휼이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구해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대놓고 면전에서 왜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먹을 것도 물도 없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던가요? 아니었습니다. 먹을 것도 있었고, 물도 있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셨고,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꿔주셨습니다. 기적도 그런 기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마지막 구절에 그 해답이 나와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말하기를,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오랜 광야생활을 거치면서, 보다 더 성숙하고 의연한 믿음과 감사가 자랄 줄 알았으나, 그들의 광야생활은 이제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혜조차 너무나도 식상해져버린 나머지,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만 것입니다.

3. 하나님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의 두 가지 특징

그런데 여러분, 오늘 히브리 백성들을 불평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들이 무슨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요? 예전처럼 우상을 숭배했다거나 한 것도 아닙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심각할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원망과 불평이 ‘습관’처럼 다시 도져 나왔을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 절절이 받고 사는지, 아닌지는 이 지점에서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거는 우리의 작고 작은 ‘일상’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은 증거는 돌로 빵을 만들거나, 저 높은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는 타인을 향한 우리의 작은 말과, 따뜻한 시선과, 그리고 겸손한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우리 앞에 서 있는 존재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하찮게 여긴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하찮아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작은 일에도 ‘감격’과 ‘감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제가 일부러 두 단어를 말했습니다. ‘감격’ 그리고 ‘감사’입니다. 저는 언제나 ‘감격’과 ‘감사’가 이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감사는요, 기름이나 어떤 엑기스를 만들 듯이 억지로 쥐어 짜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감사는 언제나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가에 호젓이 피어있는 “꽃한송이를 보고 감격하는 사람”에게서 참된 감사를 들을 수 있고요, 해거름의 때에 무심코, “붉어진 노을을 바라보며 ‘아~’하는 감격의 탄성을 지를 수 있는 사람”이, 그리고 어느 시인처럼(고진하) “숲길을 홀로 걷다가 영롱한 새소리에 가던 길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감격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은 것’이라 여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감격과 감사의 삶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그들이 ‘감격과 감사의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하찮아지는 것은, 역시, 시간문제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4.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물어 상하게 한 뱀

그런데, 민수기는요, 우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패역한 백성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합니다. 형편없고, 죽어 마땅한 패역한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마치도 모든 재산을 주었으나 다 탕진하고 돌아 온 둘째 아들에게 또 다시 좋은 옷을 입히고, 살진 짐승을 잡아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들어 볼 가치도 없는 그 패역한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사랑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모세로 하여, ‘뱀을 만들어--들라’ 했던 것입니다. ‘그 뱀을 보는 자들은 살리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놋뱀이 무엇이기에 놋뱀을 보면 산다는 말일가요? ‘뱀’은 성경에서 그다지 좋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뱀에 대해서 부정적 이미지를 일관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놋뱀 자체가 선하거나, 어떤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게 아님에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뱀을 만들어 들라“ 하신 것은, 너희들의 “발꿈치를 물어 죽게 한 그 존재”가 무엇인지, 모두가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똑똑히 보라는 것입니다. 곧 놋뱀은 1차적으로 하나님 진노와 심판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진노를 똑똑히 바라봐야 했습니다.

여러분, 뱀이란 존재는 언제나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다가와서, 우리의 발꿈치를 재빨리 공격하고, 발꿈치에 상처를 내고, 그 상처에 독을 주입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에, 뱀한테 당할 때는 대부분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합니다. 그야말로 ‘악소리’도 못 내고, 물린 뒤에야 물렸음을 인지합니다.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 속에서 이와 같이 소리 없이 다가와서는, 우리로 하여금, 스멀스멀 죄에 물들게 하는 존재는 무엇입니까? ‘악마’입니다. 여러분, 악마는 우리에게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악마는 우리가 가장 편안하고, 익숙하다 느끼는 그 무엇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지난 주 목요일 새벽기도 시간에 드렸던,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에 나오는 악마가 “나는 너희들의 일부분이다.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왔는지도 모르게 우리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 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가 ‘뱀’을 들어 올린 것과 같이, 비록 부끄럽고 수치스럽더라도, 우리의 죄를 주님 앞에 높이 들어--올려, 낱낱이 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길이 됨을 믿고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말씀 하십니다. 아무리 패역한 백성이었더라도 놋뱀을 높이 들어-올리고-보는 이들에게 다시금 구원을 베풀어 주셨던 것처럼, 이제 높이 들리신 인자이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생을 주신다 하십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놋뱀이 “하나님 진노의 상징“이었다면, 오늘 요한복음 3장17절이 “이는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는 것처럼, 높이 들리신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 구원의 상징”이 되었던 것입니다.

5. 찢기신 하나님의 마음, 찢기신 예수님의 몸

그런데 여러분, 광야생활 내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모독을 당하고, 원망과 조롱과 불평이나 듣고 있었던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우리 하나님은 그들의 패역한 모습 앞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으셨을까요? 40년 광야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의 행군을 했다고는 하지만, 40년 동안 정작 더욱 고통스러웠고, 수치스러웠으며, 심장이 쪼그라질 것 같은 모욕을 감수하신 분은 오히려 하나님이셨습니다. 모세조차도 지도자로 세워놨더니, 그도 하나님께 한다는 소리가,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민 11:12)하며 하나님을 비꼬며 대들기 까지 했습니다. 그 못나고 패역한 백성들에게 40년 동안 베풀어 주신 사랑에 돌아온 것이라곤 배신뿐이었기에, 하나님의 심장에 구멍이 나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장은 송곳에 찔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십자가에 달려-들리신 예수님의 모습은 또한 어떤가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세운 것은 그분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기 위함이었고요, 그에게 로마제국의 가장 끔찍한 형벌을 가함으로 그의 죽음조차 철저히 짓밟아 모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전에, 이미 그분의 몸은 날카로운 쇠붙이가 달린 채찍에 의해 난도질을 당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몸은 이미 갈기갈기 찢겨 너덜너덜해진 육체였을 것이, 고통스런 상상으로나마 그려지게 됩니다.

이처럼,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해 피멍이든 하나님의 가슴이, 어쩌면 그리 똑같이 측은하게만 느껴지는가요. 그렇게 피투성이로 들렸어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사랑이요-사랑이요-사랑이었듯이, 40년 동안 피멍든 가슴이었어도, 다시금 진노를 거두시고, 사랑과 긍휼을 보여주신 하나님이, 어쩌면 그리 똑같기만 한가요. 얕고 좁은 우리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측량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에베소서 2장3-5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전에는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창세기 3장15절이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리라” 말하고 있듯이, 앞서 민수기에서는 뱀이 여자의 후손들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다면, 그래서 그 상하게 한 존재인 ‘뱀’을 들어 올렸다면, 이제는 여자의 후손이, 곧 ‘인자’가 뱀의 머리를 박살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인자도 들려야 했던’ 것인 줄로 믿습니다.

Ⅲ. 설교를 마치며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높이 들리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강타하여,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우리는 그 위대한 사랑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단순히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어떤 교리적 진술을 믿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는 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면, 이제는 주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처럼,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네 개의 복음서 중에 요한복음은 ‘믿는다’는 희랍어 동사 ‘피스튜오’(pisteu,w)가 제일 많이 나오는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이 ‘믿는다’는 말이 단 한 번도 명사로 나오지 않습니다. 언제나 동사로만 나옵니다. 믿음이 동사로 살아있지 않고, 명사로 굳어 있다면, ‘맛을 잃어버린 소금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말로 받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믿는 것’의 반대말은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70인을 세우셔서 모든 고을과 모든 마을로 보내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70명의 제자들이 성공적으로 그들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우리 주님은 그들을 축복하며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셨습니다. 이제 사순절을 맞아 주님은 우리를 보내고자 하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높이 들리심으로 뱀의 머리를 후려치셨고, 이미 치명상을 입혀 놓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내일부터 우리는 세이레 특별 새벽기도회로 모입니다. 20여일의 여정을 다 마치고,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는 날이 이를 때에, 우리 주님이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시는, 그 신비롭고, 감격스러운 축복을 우리에게도 선포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