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농부가 원하시는 제자공동체”

<요한복음 15장1-8절>

1.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

여러분, 오늘 말씀 중에서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강조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 사는지 그 방법을 혹시 아시나요? 아시면 좀 가르쳐 주십시오. 사실 많은 분들이 저한테 와서 “목사님, 어떻게 하면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는가요?”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을 종종 하실 때마다 저도 난감하기만 합니다. 저라고 무슨 수학 공식처럼 여러분들에게 제시해 드릴 정답을 갖고 있지 않고요, 설사 그런 공식이 있다 해도, 그것을 이 거칠고 험한 세상에 함부로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라는 독일의 영성가가 지은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기독교 고전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성경 다음으로 손에 붙들고 읽어야 한다는 명저인데요, 그 책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안다는 것은 위대한 예술입니다.” 오래 전, 저도 예수님 안에 거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영적인 해답을 찾고자 했을 때,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안다는 것은 위대한 예술입니다.” 라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글을 접하고 나서, 커다란 영적인 깨달음과 위로가 몰려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실 여러분, 예술 행위에는 정답이 있을 수가 없지요? 화가에게 “그림은 어떻게 그리는 건가요?”라고 질문을 한다거나,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는 어떻게 쳐야 하나요?”라고 묻는 것은 대단히 실례가 되는 질문일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 안에 어떻게 거할 수 있는가요?” “예수님과 어떻게 동행하나요?” 라는 질문은, 어찌 보면 질문 그 자체가 어리석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만, 예기치 못한 삶의 문제들이 엄습해 올 때에,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여서, 주님께서 우리를 강권적으로 붙잡아 주시기만을 바라며 기도하게 될 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라는 화가는 편지를 많이 쓴 화가로 유명하지요. 자신의 동생 테오에게는 700여 통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편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동생아, 나는 열심히 노력하다가도 갑자기 의기소침해지고, 잘 참다가도 조급해지기도 하고, 희망에 부풀었다가도 이내 쓸쓸해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단다. 그래도 계속 터벅터벅 걸어 나간다면, 언젠가는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수채화가 쉬운 거였다면, 거기서 무슨 기쁨을 얻을 수 있겠니.” 라고 말합니다.

서양 미술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이었던 고흐에게 이런 고백을 듣는다는 것은, 공이라든가 위안을 넘어서 일종의 희열을 맛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편, 고흐가 예술 활동 중에 느꼈다는, “열심히 노력하다가도 갑자기 의기소침해지고, 잘 참다가도 조급해지기도 하고, 희망에 부풀었다가도 이내 쓸쓸해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단다.”는 말은, 우리의 믿음 생활과 어쩌면 그렇게 많이 닮아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정답은 찾기 어렵지만,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과정 속에서 커다란 위안과 힘을 얻고요, 고달픈 현실로 인해 주저앉아 있기는커녕, 오히려 터벅터벅 걸어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그것이 우리 믿음 생활의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이 주님 안에 거하고자 하는 이들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수채화가 쉬운 거였다면, 거기서 무슨 기쁨을 얻을 수 있겠니.” 라고 고흐가 말한 것처럼, 주님을 믿고 그 안에 거하며 사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까닭에, 그 믿음의 모험을 감행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만큼 우리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오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나누기에 앞서서, 먼저 여러분들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믿음생활이 녹록치 않으시지요?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서 주변이 혼탁하고, 어지럽고, 때로는 “내가 주님 안에서 사는 사람이 맞나”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하시지요? 그런 의문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바로, 여러분들이 주님 안에 확실히 거한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은총이, 그 참 포도나무에 잇대어 사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셔서, 주께서 원하시는 풍성한 열매를 맺고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구약성경의 ‘포도나무’ :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여러분, 지난주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요한복음에는요 아주 특별한 예수님의 자기소개가 나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양의 문이다.”(10:7), “나는 선한 목자다”(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포도나무다”(15:5) 이렇게 일곱 번의 자기소개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나는 나다”라고 소개하셨다면, 신약성경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그들의 삶에 친숙한 일곱 개의 단어로 자신을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지난주에 나누었던 “선한목자”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성경을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본문입니다. 구약성경에는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에 빗대어 말하는 본문이 참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편 80편인데요,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가나안 땅에 심으셨다”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포도나무’는 곧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포도나무를 애굽에서부터 가져다가 가나안 땅에 심으시고는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포도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렸고요, 산들이 그 포도나무 그늘에 덮이고, 울창한 백향목 조차도 그 포도나무의 가지로 뒤덮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편 80편은 후반부로 갈수록 시편기자의 어조가 바뀝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를 향해 분노를 쏟아놓으시고요, 그러자 멧돼지들이 포도나무 열매를 먹어 치워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내 그 포도나무는 불타고 꺾여버리게 되었다면서,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 80편은요, 예언자 3인방, 곧 “이사야서 5장과 예레미야서 2장, 그리고 에스겔서 15장”에 나오는 농부 하나님의 비탄한 심정을 고스란히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장은요,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면서 좋은 포도 열매 맺기를 바랐더니 쓰기만 하고 먹을 수도 없는 들 포도를 맺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농부이신 하나님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그냥 평범한 포도나무가 아니었습니다. 매우 특별한 포도나무였어서, 애굽으로부터 손수 가져다가 가나안에 심으실 정도로 “극상품 포도나무”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품종의 나무에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지극정성을 다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자연스레 극상품, 최상품, 특상품 포도나무 열매를 보기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들 포도’를, 그것도 열매라고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2장에서도요, 역시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농부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사야서보다 한 술 더 떠서, 농부가 심은 포도나무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함을 두고 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패역함과 죄악이 저들의 영혼에 시커멓게 물들어버렸기에, 아무리 그 죄악을 깨끗이 씻으려 해봐야 소용없는 짓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농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서 15장을 통해서, 그 포도나무를 ”불 속에 땔감으로 던져 넣겠노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3. 왜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셨는가?

그러면 여러분, 이런 질문은 어떻습니까. 왜 하필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을, 다른 어떤 나무도 아닌, 포도나무에 비유했을까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포도나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사야서 25장6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모든 열방을 초대해서, 가장 위대한 구원의 잔치를 배설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 구원의 날이 이르게 되면,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은 그 포도주를 모든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부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포도나무와 그 열매는 하나님 구원의 위대한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가지만 무성해졌고요, 열매라고 해봐야 먹을 수도 없는 들 포도 따위를 맺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돼 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4. 내가 그 참 포도나무요, 아버지가 그 농부다

이제 오늘 성경 본문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을 두고, 만약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여러분 대부분은 “예수님은 참포도나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라고 대답하시겠지요? 그러고 “이 말씀으로부터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라고 물으면, “그러므로 우리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하고, 예수님 안에 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옳은 대답입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먼저 주님이 1절에서 하시는 말씀을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말씀 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시는데요, 제가 앞에 설명 드렸던 구약의 말씀을 이해하신다면, 예수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 라고 하시는 것은, 이제 “이스라엘이 아닌 내가 그 참 포도나무다” 라는 선언으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포도나무를 재배하셔서 저 위대한 구원의 잔치를 배설하고자 하셨으나, 이제 자신의 외아들이신 예수 포도나무를 통해서 직접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런 눈으로 볼 때에,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표적은요,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께서 행하실 그 풍성한 구원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말씀 2절부터 4절까지를 보시면 그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이 위대한 구원 잔치를 위해 무엇을 하시려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2절 말씀에 보면(함께 읽습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이처럼 농부가 하는 일은 “가지를 치는 일” “깨끗하게 하는 일” 이라고 합니다. 옳은 말씀이지요. 좋은 농부는 사실 ‘가위질’을 잘 하는 농부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농부치고 가지가 무성한 것을 좋아할 농부는 없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던 것처럼, 농부는 열매를 맺지 못할 가지라고 판단이 되면, 설사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다 하더라도, 아니 열매는 없이 그냥 붙어 있기만 하다면, 그 가지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어서, 가차 없이 잘라버립니다. 그러니까 잘 붙어 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말씀은 심지어 ‘열매를 맺고 있는 가지들’에게도 가위를 대겠다 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고 좋은 열매를 맺으려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농부 하나님의 손길 아래에서, 예수님께서는 5절에서 비로서 “내가 그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말씀하십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새로운 구원의 주체가 되시기에,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너희 제자들은 그 구원의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도록 열매를 맺는 가지들이어야 한다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나오는 종들이,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해야 했던 것“처럼, 포도나무가 원하는 대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 안에 거해야 한다” 말씀하시는데요, 4-10절 사이에 “거하라”(메네인)는 동사가 무려 열 번이나 나올 정도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매를 많이 맺으면, 마지막 8절에서 처럼,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곧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제자란 무엇이고 제자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제자 훈육“이었던 것입니다.

5. 제자들의 분위기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런 가르침을 주실 때에, 모여 있던 제자들의 반응과 분위기는 어떠했을까요? 이제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구원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고, 자기들은 그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생각하며 흥분하면서 벅찬 가슴으로 들었던 것일까요? 어떠했을까요? 우리가 그 분위기를 이해하려면, 요한복음 13장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이제 제자들과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아시고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제자들의 발을 깨끗이 씻겨 주시기도 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발조차도 예외를 두지 않으시고 깨끗이 씻겨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속셈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룟 유다로 인해 “예수님의 심령이 괴로워졌다”고 합니다. 분위기가 점차 냉랭해져 갔을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예수님께서는 그 중의 수제자라 했던 베드로, 너조차도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이다” 말씀하셨더니, 베드로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만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제 곧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이별이 다가 올 것이고, 배신을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제자 유다는 자신의 무리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포박하고자 다시 찾아 올 것이었습니다. 거기 앉아있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뿔뿔이 흩어져버릴 것이 불 보듯 뻔한, 또 다른 배신이 임박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3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 시간들이 허무한듯 주마등처럼 흐르면서, 제자들은 모래를 삼키고 있는 듯 말문이 막혔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조차도 불안하고 민망한 그런 자리, 너무나도 어색하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들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동화를 읽듯이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본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6. 제거된 가지, 더 열매 맺을 가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우울함 속에서 제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는 예수님의 선언이 감격스럽기는커녕, 그들에게는 허망한 말로만 들렸을 것입니다. 우리의 배신을 훤히 내다보신 분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 하시면, “도대체 우리 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하며 항변이라고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뻔히 아시는 분이 포도나무 가지가 되어 열매를 맺으라 하시면 어쩌란 말입니까, 하며 우울함은 차마 울분이 되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결국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어찌되었던가요? “열매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신다” 하셨던 것처럼, 결국 농부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 가지에 3년이나 붙어 있었으면서도, 좋은 열매는커녕, 사악한 이방 나라 열매만 맺었던 가지 하나를 잘라냈습니다. 가룟 유다였습니다. 또한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신다.” 말씀하신 것처럼, 비록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두려움에 떨며 뿔뿔이 흩어졌으나, 그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해졌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로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내리셨을 때에, 그들은 영광스럽게도 ‘새 포도주에 취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참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역할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로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 거하며 사는 삶” 이 무엇인지 사도행전을 통해 똑똑히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목숨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세상에 전하는 자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 농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자공동체였던 것입니다.

7. 서강 가지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 서강교회를 향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서강의 성도들아 너희는 가지들이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의 운명은 어찌할 것인가요? 열매 하나 없이 그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 만족할 것인가요? 아니면 풍성한 포도주를 내놓는 가지가 될 것인가요?

예수님 안에 거하며 사는 것이 힘들고 버거운 일이나, 이제는 손 놓고 좀 쉬겠다 하실 것인가요, 아니면, 어렵더라도, 다시금 힘을 내서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나 갈 것인가요?

이제 몇 주가 지나면,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세우신 서강교회가 그 포도나무에 붙어 있은 지 119년이 됩니다. 우리는 예전처럼 그 날을 기념하고 축하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오래 전에 포도나무 가지로 자라왔던 것은 무척이나 감격스러운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농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붙어 있었는가가 아닙니다. 얼마나 좋은 열매를 맺고, 이로써 하나님 구원 역사에 ‘지금 동참하고 있는가’를 그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 8절에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길은 분명합니다. 119년의 굵은 가지가 된 것으로 자만하지 않고, 농부이신 하나님 손에 우리 자신을 내어 놓으며, 그 농부의 손길을 따라 그가 원하시는 제자공동체로 거듭나는 길이어야 합니다.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지된 우리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여정에서, 좋은 열매로 농부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