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 예수가 되시다”

<누가복음 2장41-52절>

1. 인사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2021년 송년예배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는 오늘, 여러분들은 감회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지난 일 년 동안 서강교회를 섬길 수 있었던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한 한해였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이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하루하루 살아왔던 기억인데요, 지난 1월 신년예배를 드렸던 제 모습을 떠올리면서, “과연 나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 나은 목사는 둘째 치더라도, 더 나은 신앙인이 되었는가?” 하는 물음을 가지고 오늘 송년예배를 맞이했습니다.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이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싱클레어라는 주인공이 지난날 자신의 삶을 회상하면서, 자기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반추한 책입니다. 저도 사춘기 때, 이 책과 씨름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책에 나오는 유명한 글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헤르만 헤세,[데미안](민음사)>

아마 이 글귀를 읽어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알 속에 들어있는 새끼가 온전한 새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자신이 고집하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송년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도 한 번 스스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깨뜨려야 할 모습은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에베소서 4장13-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라야 하는 존재’라 일러줍니다.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갓난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어른이 될 때까지 장성해지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집사든, 평신도든지, 누구라도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일신우일신 해야 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스스로 물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깨뜨려야 할 모습은 무엇인가?” “과연 나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고 있는가?” 오늘 예배를 통해서 이 물음에 해답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 갓난아기 예수, 아기로 자라다

여러분, 어제 성탄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갓난아기로 오신 것을 축하했습니다. 영어 성경은 ‘갓난아기 예수님’을 “The Newborn Baby Jesus”라고 씁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시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존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갓난아기 예수님은 자라야 했습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갓난아기 예수께서는 엄마 마리아의 젖을 먹고, 울고, 웃고, 자고, 싸고 하면서 점점 자랐던 것입니다.

이후로 40일 정도가 지나서, 첫째 아들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라 하나님께 바쳐지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누가복음 2장 25절을 보시면, 이날 예루살렘의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그 아기 예수를 안고서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장40절은 이 아기 예수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고 말입니다. 영어 성경은 이 ‘아기 예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The child Jesus” 이제 더 이상 예수님에게 갓난아기라는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그저 ‘아기’라고 성경은 부릅니다.

3. 아이 예수

오늘 본문은 그 아기 예수가 자라서 12살이 되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43절에 보시면 이제 성경은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고 있지요? 12살된 예수님을 ‘아이 예수’라고 부릅니다. 영어 성경은 이를 일컬어서 ‘The Boy Jesus’라고 부릅니다. 갓난아기가, 아기가 되었고요, 이제는 어엿한 소년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자녀 교육이 얼마나 유별난지 아시지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남자 아이는 13살, 여자 아이는 12살에 성년식을 행합니다. 성년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의식 중에 하나가 ‘자유 발표’와 ‘자유 토론’ 인데요, 이를 위해서 일 년 전부터 아이들은 성년식 때 자기가 발표할 주제를 연구합니다. 이미 어린 나이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글을 쓰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대인 교육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입다.

이런 점에 미루어 보면, 오늘 본문에서 여러 선생들과 함께 토론하는 소년 예수의 모습은 낯선 모습이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12살이었을 때 일어난 해프닝을 하나 소개합니다. 유월절이 되어서 온 가족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절기를 지켰습니다. 갈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절기를 지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예수님의 부모가 아들 예수가 없어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이해가 잘 되시나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들이 없어진 걸 하루가 다 지나서 알게 됐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럴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당시에 사람들이 여행할 때는 가능하면 수십 혹은 수백 명이 떼로 여행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야 길에서 도적 떼를 만나도 안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무리를 지어서 다녔기 때문에, 철부지 아이들을 맨 앞의 선두 그룹에도 갔다가, 맨 뒤의 후미 그룹에도 갔다가, 왔다 갔다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산에 등산하러 가시면 먼저 올라가는 사람 있고, 늦게 따라 올라가는 사람이 있지요? 그러다가 종종 길이 엇갈려서 서로 찾고 헤매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이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아들 예수가 다른 그룹들과 함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전혀 걱정하지 않고 하룻길을 걸어 도착하고 보니 예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찾고 찾으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 했던 것입니다.

4. “그가 선생들 중에 앉았다.”

여러분, 이렇게 헤매던 요셉과 마리아가 드디어 아들 예수를 찾게 되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요셉과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어디서 찾고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44절에 보면 그들은 ‘동행 중에 있는 줄 알고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46절은 예수님이 ‘선생들 중에 앉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들 예수가 동행 중에 있을거라 생각해서 친족들과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찾았다는 것, 이게 잘못한 건가요? 그렇지 않지요. 아이를 찾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저라도 그렇게 찾아가며 물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그들이 찾던 곳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경은 “그가 선생들 중에 앉았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어디서 찾고 있습니까? 우리는 보통 나와 가장 익숙한 곳에서,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예수를 찾습니다. 내가 아는 대로, 내 생각대로, 내 경험대로 예수를 찾습니다. 심지어 내가 편한 대로 예수를 찾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게 전부인 양, 때로는 오만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는 예수님을 찾지 못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을 알아야 했던 것이고요, 그것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영적인 눈을 뜰 때에 비로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5. 두 가지 서로 다른 ‘놀람’

둘째로 오늘 본문 46-4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여러분, 이 장면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굳이 예수님이 아니어도, 한 아이를 중심으로 어른들이 둘러앉아서 그 아이의 말에 경청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년 예수 주변에 앉았던 선생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 ‘놀랍게 여기다’는 말은 성경원어로 보면 ‘미치다, 혼절하다’(evxisthmi, 엑시스테미)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12살짜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몸이 부르르 떨리듯 놀랐다는 뜻입니다. 그 소년 예수의 말에 선생들이 도리어 요즘 말로 큰 은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48절을 보시면, 이 모습을 지켜본 마리아와 요셉도 놀랐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4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성경 원어로 보면 이 부모가 놀란 것은 “어리둥절 해지다”(evkplh,ssomai, 에크플레쏘마이)는 뜻입니다. 앞에 예수 주변의 선생들은 예수의 지혜와 대답에 놀랐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그렇게 찾던 아들이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선생들과 성경에 대해 얘기나 하고 앉아있는 모습에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혼내기까지 합니다.

여러분, 마리아와 요셉은 12년 전에 천사의 고지를 받아서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한 부부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특별하고도 놀라운 선택을 받은 부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기 예수를 12년 동안이나 키우면서 그를 제일 가까이서 봐왔던 부모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들 예수를 전혀 영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습에 따라 정결 예법 지키는 건 잘도 하면서도, 영적인 감각이 거기 앉아있던 선생들만도 못했던 것입니다.

6. 67번째 성서 ‘말-예-기’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무엇으로 놀라십니까? 여러분들은 과연 하나님 말씀이 너무 깊고 위대해서, 오늘 본문의 선생들처럼 혼절할 정도로 놀라보신 적 있으신가요?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너무 귀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젖어드는 그런 예배자, 그런 기도자로 살고 있으신가요?

지금 제가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말씀, 예배, 기도’입니다. 저는 이것을 구약성경 ‘말라기’를 본떠서 ‘말-예-기’라고 부릅니다. 신학교 시절 함께 공부하던 몇몇 친구들하고 앞으로 우리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목회하더라도,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지키면서 살자고 약속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66권이지만, 우리는 ‘말-예-기’ 하나를 더 넣어서 67권으로 살아보자 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목사로서 이 세 가지를 지키는 건 너무 어렵습니다. 목사가 성경 읽고 은혜받기 정말 어렵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렇습니다. 목사가 참된 예배자로 나오는 것은 더더군다나 어렵습니다. 예배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성도들이 기도할까?”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궁리하다 보면, 정작 자신은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는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말씀 앞에 감격이 없습니다. 충실한 예배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기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7. 내 아버지! 소년예수, 자라다!

여러분, 방금 마리아가 예수께 한 말에서 우리는 마지막 세 번째로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마리아는 정색을 하고서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다!”(48절) 했습니다. 다시 읽고 보니 그녀의 말에 짜증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아들 예수는 49절에서 이렇게 응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마리아는 자신의 남편인 요셉을 가리키면서 “네 아버지와 나를 근심하게 만들었다!”고 꾸짖었지만, 아들 예수는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아니라, 영의 아버지이신 “내 아버지의 집”, 곧 하나님 아버지(patro,j mou, 파트로스 무)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이제 더 이상 요셉과 마리아의 그늘 아래서 자라던 소년 예수가 아닌 것입니다. 소년 예수는 이 말로 인해 이제 부쩍 성장한 것입니다.

8. ’아기 예수‘께서 ’예수‘가 되신 것처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갓난아기’(the Newborn Baby Jesus)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40일 뒤, 그는 ‘아기 예수’(The Child Jesus)라 불리며 시므온의 팔에 안겨 정결 예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 ‘아이 예수’(The Boy Jesus)라 불리는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인 52절은 드디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Jesus)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갓난아기로 오신 예수님이 그의 육체는 물론이고 영혼까지 점점 더욱 자라서 이제 더 이상 아기도 아니요, 아이도 아닌 ‘예수’로 성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혹시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처럼 익숙한 곳에서만 예수를 찾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관습에 따라 정결예법을 행하고는 있지만, 정작 12년 동안 함께 살았던 예수가 누군지 몰라봤던 요셉과 마리아처럼, 우리의 믿음은 아직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채로 주님에 대해 무지한 것은 아닌가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말-예-기’, 말씀에도 깨달음이 없고, 참된 예배자도 되지 못했고, 기도 생활도 게을리 한 채로 2021년을 살아온 것은 아닌가 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 서두에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깨뜨려야 할 모습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나가야 하는 존재라고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줍니다. “아기 예수께서, 예수로 성장하셨다!”고 말입니다. 2021년 송년예배를 드리는 오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아직 자라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영혼으로 인해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제 맞이할 2022년에는, 예수께서도 그러하셨듯이, 우리의 영혼도 자라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