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에 선 인간들의 운명”

<창세기 11장1-9절>

1. 창조주 앞에 시인으로 예배하는 인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피조물로서, 우리는 두 가지 기본적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믿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믿습니다.(고후 5:17) 이러한 고백은 오늘 함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일말의 주저함 없이 나눌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처럼 가슴 벅찬 고백을 품고 사는 우리가 구약성경을 펼쳐서 창세기 1장 1절을 대면합니다. 이때 저 위대한 창조의 대서사시가 열리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 말씀이 선포될 때, 여러분들은 과연 무엇이 되어 이 말씀을 대면하시렵니까? 창조의 신비를 분석해보고자 섣부른 과학자가 되시렵니까? 아니면 조급한 민속학자라든가, 어설픈 문화-인류학자가 되어서 하나님 창조의 의미를 좁쌀만한 인간의 손바닥 위에 놓으려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이 되고자 한들, 이 숨 막히는 하나님 창조를 헤아리기에는 역부족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캐나다의 영성가 마르바 던Marva Dawn은 이런 말을 합니다. “창조이야기는 우리에게 이유why를 물으라고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 장엄하신 창조주를 우리가 어찌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마르바 던 지음, 김순현 옮김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창세기에서 배웠다](IVP)> 그러므로 우리가 창세기 1장의 선언을 들을 때는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주는 완벽한 연인을 하나 갖는데, 그는 바로 시인이다. 마침내 시인이라 불릴 만한 사람이 오리라. 하나님의 참 자녀가 와서 제 노래를 부르리라”<월트 휘트먼 지음, 허현숙 옮김 [풀잎](열린책들)>

하나님의 창조 앞에서 인간은 오직 작은 시인의 마음으로 가만히 읊조릴 뿐입니다. 그때, 우리 입에서는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처럼 이러한 경탄의 신음이 새어 나올 것입니다. “오 주님, 내 혀로 주님께 드리는 고백의 제물을 받아주소서. 찬양할 때, 우리 영혼은 권태로부터 주님을 향해 일어서게 되고, 거기서 우리 영혼은 새롭게 되어 참다운 힘을 얻게 되옵나이다.”<선한용 엮어옮김, [성 어거스틴의 기도](대한기독교서회)> 그렇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이 위대한 창세기의 선언은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로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앞에서 피조물은 다만 경탄과 놀라움으로 겸손히 응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경탄에서 비탄의 신음으로: 에덴의 동쪽

그러나 안타깝게도 창세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시인의 마음을 오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으로 터져 나온 ‘경탄의 신음’Exclamation of Awe은 이어 3장에 이르자마자 곧바로 ‘비탄의 신음’Volatile Voice of Grief으로 뒤바뀌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으로 된 성경은 장chapter으로 계산하면 전체 1,189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189장 중에 고작 두 장을 넘기자마자 ‘인간의 타락을 향한 고발장’이 이미 접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고발장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타락의 장소가 다름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던 그 장소, 곧 ‘에덴동산 한복판’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류는, 아담과 하와라는 오직 단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작고 미미한 공동체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기에는 완벽한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그 에덴동산의 타락을 우리는 ‘교만’die Arroganz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이 부여한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며 착각하고 교만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 동쪽으로 쫓겨났다”(창 3:23-24)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 첫 번째 타락을 말하던 창세기 3장을 지나서 4장으로 넘어가면 타락은 ‘다음 세대’로 전이 됩니다. 마치 죄의 DNA라도 생겨버린 것만 같습니다. 곧 ‘가인과 아벨 사건’이었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부모 세대보다 한술 더 뜨더니, 급기야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첫째였던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동생의 제물만 받으신 것에 시기하고 분노한 나머지 동생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살인자 가인을 자기 앞에서 물리시고 그의 부모였던 아담과 하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똑같이 “에덴의 동쪽으로”(창 4:16) 쫓아내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 1,900년대 중반, 미국의 남자 배우 중에 ‘가장 잘생긴 반항아’라 불렸던 배우를 혹시 아십니까? 제임스 딘James Dean이라는 배우입니다. 그가 주연한 영화 중에 [에덴의 동쪽]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습니까? 이 영화는 영문학 전공자들의 필독서라 할 수 있는 존 스타인 벡John Steinbeck의 소설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이 소설과 영화의 제목이 ‘에덴의 동쪽’인 것은 방금 말씀드린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처럼, 이 소설도 형제지간에, 그리고 부자지간에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 아론Aron은 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둘째 아들 칼Carl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눈 밖에 벗어난 인물로 나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왜곡되어서 그 집안에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작가는 이처럼 쓰라리고도 비정한 일들로 가득 찬 인간 세상이 마치 인류의 조상이 쫓겨난 에덴의 동쪽과도 같은 삶이 아니겠는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대홍수 이후, 다시 ‘동쪽’으로 간 인간

소설 얘기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고요, 이처럼 가인과 아벨 간에 비극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진 이후로 성경은 인간 죄악이 더 떨어질 곳이 없을 정도로 추락해버렸음을 고발합니다. 그리하여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한탄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창 6:5-7)

여러분,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절규가 들리십니까? 하나님의 절망이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은 차라리 “내가 창조한 사람이란 것들을 다 쓸어버리겠다” 말씀하실 정도로, 인간의 죄악을 바라보시며 고통스러워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창조 행위가 덧없어 보였기에 한없이 후회스럽기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피조물들을 향한 심판, 곧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사건>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대홍수 사건은 지체없이 이행됐습니다. 하나님은 당대 의인이자 ‘완전한 자’라 불리는 ‘노아’를 택하셔서 이 일을 준비시키셨습니다(창 6:9). 사십 주야 비가 땅에 쏟아졌고, 말씀하신 그대로 온 천지에 물이 불어서 지면의 모든 생물을 다 쓸어버리신 그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직 방주에 있던 노아의 가족만 살아남았습니다. 이렇게 대홍수 심판이 모두 끝난 뒤에,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라.”(창 9:7) 축복하셨습니다. 이 축복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축복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축복을 새로이 반복해 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내가 너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창 9:7,11) 하시면서 노아의 후손들을 통해서 내가 새로운 인류를 만들겠다 하시며 꿈에 부풀어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그들의 이름은 무엇인지, 족보는 어떠한지 창세기 10장에서 자세히 알려 준 다음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창세기 11장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웬일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노아의 후손들이 살 곳을 찾아간 곳이 공교롭게도 ‘동쪽’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듭니다. 뭔가 조짐이 좋지가 않습니다. 그의 선조들이었던 아담과 하와도, 가인과 아벨에게 있어서도 ‘동쪽’은 쫓겨난 곳이었습니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의 이야기>에서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 어느 방향으로 갔다던가요? 역시 ‘동쪽’이었습니다(창 13:11). 그 결과는 어찌 되었던가요? 성경은 말하기를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2-13)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스스로 ‘동쪽’을 택해 떠나더니, 살기 좋은 ‘평지’들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죄악의 도시’ 소돔까지 빨려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eastward)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에 거류하더라”(창 11:1-2) 새로운 인류의 주체가 될 노아의 자손들이 자기 발로 결정한 방향이 ‘동쪽’이었고, 저들도 ‘평지’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저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일까요?

4. 동쪽 평지에서의 삶: 죄악

노아의 후손들이 살게 된 시날 평지는 어떤 곳입니까? 지도를 보시면 중앙에 붉은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날평지Plain in Shinar라는 곳입니다. 오늘날의 이라크에 해당합니다. 이곳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하구 쪽에 위치해서 당시 고대사회에 있어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최적화된 장소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바로 이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어마어마한 고대문명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곤 합니다.<아놀드 브랙만 지음, 안경숙 옮김, [니너베발굴기](대원사)>

그러면 오늘 본문은 노아의 후손들이 시날 평지에서 어떻게 살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까? 자기들의 선조인 노아 할아버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롭게 살고 있었을까요?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3절에서 노아의 후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자”고 합니다. 저들은 선조로부터 듣던 얘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조상 노아 할아버지 때에 큰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이 물에 쓸려 내려간 적이 있다는 <대홍수> 이야기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은 일반적인 벽돌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벽돌을 ‘굽자’고 합니다. 그러더니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자”고 합니다. ‘역청’은 땅에서 올라오는 끈적한 기름인데요, 오늘날 아스팔트에 사용되는 원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오늘날 중동의 이라크나 이란에서는 이처럼 튼튼한 벽돌로 지은 ‘지구라트’(Ziggurat)라는 건축물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내구성이 아주 우수한 벽돌로 건축물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가히 신문명과 신문물을 가지고 시날 평지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둘째로 4절을 보면 노아의 후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 이렇게 발달된 문명이 무엇을 목적으로 한 것인지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고대사회에서 ‘하늘’은 거룩하고 신성한 영역입니다. 곧 하나님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건물을 높게 지어서 하늘을 찌르겠다는 것입니다. 알량한 인간의 문명이 벌써부터 하나님을 도전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더니 마지막 셋째로 급기야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합니다. 창조 질서에 따르면 피조물은 스스로 이름을 낼 수 없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과, 그리고 들판의 나무와 꽃들도 오직 창조주가 이름을 지어줄 뿐입니다. 창조주의 호명 앞에 피조물은 다만 두려움과 떨림으로 경탄의 신음을 낼 뿐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후손들은 스스로 이름을 내겠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따위는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집단적인 반란”을 의미했던 것입니다.<스티븐 뎀프스터 지음, 박성창 옮김,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읽는 구약신학](부흥과개혁사)> 더군다나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은 무슨 의도였겠습니까? 이는 노아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축복이자 명령,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라.”는 말씀에 반기를 든 불충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5. 동쪽에 선 인간들의 운명-1: 하나님의 영의 강림으로 인한 심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들의 선조였던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처럼 ‘동쪽’을 찾아간 노아의 후손들은 다시금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일 운명이었습니다. 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저들이 민족이 하나고, 언어도 하나고 말도 같으므로”, 이런 모습을 그냥 내버려 두면 “이후로 되돌릴 수 없을 지경이 될 것”이라 판단하셨던 것입니다(창 11:6).

그런데 여러분, 말이 하나고, 언어가 하나고, 민족이 하나인 것이 뭐가 잘못된 일이겠습니까? 건물을 튼튼하게 높게 지었다는 것을 두고서 그것으로 인해 무슨 죄를 묻겠습니까? 하지만 저들은 뼛속까지 교만한 마음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치밀할 정도로 한데 뭉치고 똘똘 뭉치더니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신성한 영역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침범해 들어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부하고, 자기들만의 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어리석고도 사악한 인간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그리하여 하나님은 마침내 그들을 “온 지면에서 흩어놓으신 것”(창 11:8-9)입니다. 하나님이 ‘작심’하신 것입니다. 기를 쓰고 솟구치려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내려다보시면서 하나님은 오히려 ‘강림’ 하심으로 저들의 악의적인 일치를 흩어놓으신 것입니다.<Tony Evans, [Oneness Embraced](Moody Publishers)> 그것이 하나님의 영이 이 땅에 강림하신 목적이었다고 오늘 본문 창세기 11장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6. 동쪽에 선 인간들의 운명-2 : 하나님의 영의 강림으로 인한 구원이기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또한, 그런 세상에 파묻히고 휩싸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 그래서 아프고도 쓰린 상처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세상은 사랑과 진리와 용서와 화해라는 거룩함의 가치보다는 끊임없는 갈등과 싸움과 분쟁과 증오와 교만과 시기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치 ‘에덴의 동쪽’과 너무나도 닮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처럼 쫓겨나와 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노아의 후손들이나 아브라함의 조카 롯처럼 스스로 풍요를 찾아 선택한 삶인지는 몰라도,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하나님의 거룩함이 아니라 자기만 아는 이기심과 교만 속에서 죄와 타락의 길로 향해 있으니 말입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소설 [에덴의 동쪽]에서, 작가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비극적인 일들을 형제지간에 그리고 부자지간의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마지막에 가서 아주 감동적인 화해의 장면으로 끝마칩니다.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차갑게 내몰기만 했던 아버지 아담Adam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던 아들 칼Carl을 용서합니다. 그 마지막 장면을 소설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애덤은 지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조금 벌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다물어졌다가 다시 움직이려고 했다. 곧이어 그의 가슴이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의 입에서 거친 숨이 뿜어져 나왔다. 입술 사이로 한숨소리도 새어 나왔다. … 이윽고 눈이 감기면서 그는 영원히 잠들었다.”

여러분, 오래전 이 장면을 읽었을 때, 저는 “한 인간이 마지막 순간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아들과 화해하고 세상을 떠났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성령강림절]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오늘 이 소설의 끝부분을 다시 읽게 되니, 이처럼 화해와 용서가 일어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숨이, 힘겹게 내쉬는 그 숨이, 그래서 입술을 조금 벌렸다가도 이내 닫혔지만, 다시금 가슴을 불룩하게 만들고, 끝내 입술 사이에서 거친 숨을 겨우 내쉬게 하는 그 숨! 그 숨이! 어쩌면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부는 하나님의 성령이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도 그렇습니다. 용서하고 싶은데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용서하려고, 사랑하려고 마음을 열었다가도 다시 닫습니다. 들쭉날쭉 부풀어 올랐다가도 다시 쪼그라들곤 합니다. 그럴 때, 그럴 때, 그럴 때, 우리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을 흩어놓으시고자 심판하기 위해서도 내려오시지만, 이처럼 화해와 용서를 위해 다시 하나로 묶기 위해서도 내려오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성령강림절을 지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할렐루야 찬양대가 부른 <주의 명령 따라서>라는 곡을 감상했습니다. 우리 찬양대가 노래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거친 세상 풍파 심하고, 모든 이들 가슴마다 멍이 들었네. 누가 이들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나? 어두운 밤같이 검게 물든 이웃들 모습 모습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무너졌네. 누가 이들을 생명길로 구할 수 있나?” 찬양대가 뭐라고 대답했던가요? “오직 성령이 임하면, 주 성령이 오시면 영화로우신 주 성령이 우리 마음 비추리라!” 이와 같은 성령강림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시고, 그래서 우리가 비록 에덴의 동쪽과도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성령을 따라 생명의 길로, 사랑의 길로만 다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덴의 동쪽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설교를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기도문으로 함께 기도함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가 다같이 이 기도문을 읽을 때, 주의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하늘에 계신 주님,

이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시되 끊임없이 내려 주셔서

우리가 자기 위안에서 벗어나

당신을 향한 소망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우리를 깨우쳐 주소서.

우리에게 용기를 주소서.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돌이켜 당신을 향하게 하소서.

우리를 당신에게서 숨도록 두지 마소서.

당신 없이 무언가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소서.

모든 인간의 잘못과 혼란이 있는 이곳 가운데 밝게 임하여,

그 진리가 궁극적으로 온 인류와 만물을 밝히는 그날까지 비치게 하소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당신을 찬양합니다.

 고백하며 이 고백 위에 서서 당신을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