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유월절을 지난 언약 백성들”

<여호수아 5장1-12절>

1. 땅, 언약과 성취의 두물머리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을 비롯해서 ‘회개’라든가, ‘구원’ 그리고 ‘종말’ 등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신비롭고도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주제 중에 ‘땅’Land이라는 주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실 땅이라는 주제는 어찌보면 성경에서 가장 근본적인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전에 미국의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이라는 구약 학자는 성경은 “땅으로 이끄는 ‘약속’에 관한 이야기가 땅에서 쫓겨나는 ‘포로기’ 이야기로 이어져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에서 절정을 이룬다.”<[성서로 본 땅](나눔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땅에 관한 이야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크게 보면,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이라는 땅 상실한 인간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이란 땅에서 회복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성경의 주요한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땅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땅’을 언급할 때는 언제나 ‘약속과 성취’(Promise and Fulfillment)라는 개념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오랜 마틴 저, 전광규 역, [약속의 땅 성경신학](부흥과개혁사)>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언약의 땅을 ‘약속’하신 뒤에 그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어가느냐 하는 것이 가장 굵직한 성경의 주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휘트니 울라드Whitney Woollard라는 성경 교사는 “땅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을 가늠하는 온도계다”(The Land as a thermometer of Covenantal Faithfulness)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bibleproject.com에 있는 Whitney Woolard의 에세이>, 매우 통찰력 있는 표현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저 나름대로 이렇게 표현해 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에 따른 ‘성취’라는 거대한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다.” 라고 말입니다.

2. 언약의 땅 가나안

그러면 특별히 성경이 말하는 ‘언약의 땅’은 어디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가나안’Canaan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의 역사는 창세기 12장에서 시작됩니다. 곧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시면서, 이후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언약 백성’이 되고, 그들은 ‘언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바통을 이어받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 1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이제 모세를 대신할 여호수아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셔서 지난 40년 광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자 하신 것입니다. 40년 광야생활은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말이 40년이지, 그 생활이 얼마나 고된 나날이었겠습니까. 황량하고 척박한 땅을 목적도 없이 이리저리 돌고 도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이 생활을 청산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3. 정탐꾼, 그리고 요단강 도하

그러다 드디어 때가 된 것입니다. 40년 생활을 다 마치게 되었을 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진을 치고서, 저 요단강 너머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언약의 땅이 저 강 너머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갈 것인지 궁리하다가 여호수아는 일전에 모세가 했던 일을 다시금 재연합니다. 곧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낸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 38년 전에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다가 실패한 적이 있지요? 그 실패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명령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38년을 더 광야에서 지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저들은 아직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조심스레 정탐꾼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나안으로 보내진 두 명의 정탐꾼들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기생 라합Rahab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정탐꾼들은 라합의 입을 통해 뜻하지 않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이 정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매우 중요한 정보였습니다. 그 정보가 어떤 것이었습니까?

지금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여호수아서 2장 9-11절에서 라합은 말하기를, 가나안 사람들은 이미 여호와 하나님이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아모리 사람을 전멸시킨 일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녹아버렸고, 너무나도 두려운 나머지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가운 정보를 얻게 된 정탐꾼들은 곧바로 여호수아에게 득달같이 돌아가서 이렇게 보고합니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수 2:24)라고 말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여호수아는 더 기다리지 않습니다. 곧바로 요단강을 건넙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 3장과 4장을 보시면, 하나님은 그 옛날 홍해 바다를 가르신 것처럼, 요단강을 멈추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밟고 안전하게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요단 강에서 12개의 돌을 들고나와서 ‘길갈’Gilgal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모세의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여호수아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인 것을 자손 대대로 가르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4. 할례를 행하라?

이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길갈Gilgal에 진을 쳤습니다. 이때 요단강을 건넌 백성들은 대략 200만 명쯤 됩니다. 이제 드디어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작전 지휘관이라면 무엇을 명령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적들은 ‘마음이 녹고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라고 하니 이 싸움의 결과는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서 작전을 짜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진입해 들어가면 됩니다. 백전백승이 눈앞에 있으니 서둘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상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오늘 본문 2절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입니까?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고” “쇠는 달구어졌을 때 두드려야 한다” 했습니다. 가나안을 점령할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느닷없이 “할례를 행하라”는 겁니다. 할례를 받으면 보통 1주일 정도 회복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만약 이 사실이 적들에게 알려지면, 가나안 군대는 오히려 사기가 충전되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역공해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천신만고 끝에 잡은 ‘기회’는 오히려 ‘위기’로 바뀌게 되고,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지난 40년 광야생활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할례를 행하라” 말씀하셨습니다.

5. 할례를 행하여 언약의 증표를 회복하라

여러분, 이런 이유로 오늘 본문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 때 주의하고 유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몇 가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행하라’ 하신 것은, 언약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언약의 증표를 먼저 회복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창세기 17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언약이다”(12절) 말씀하심으로, 처음으로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증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할례를 행해왔습니다. 심지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할 때도 할례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할례를 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아브라함과 맺었던 그‘언약의 증표’를 먼저 회복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때는 전쟁할 때지 할례의 때가 아닙니다. 그때 할례를 받는 것은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결정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증표’를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라 판단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에게 어리석어 보였던 바로 그때가, 오히려 ‘하나님의 때’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판단은 옳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예배하는 우리에게도 언약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은 새-언약New Covenant입니다. 누가복음 22장 20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7장 22절은 예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것입니다.

또한 로마서 2장 29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circumcision of the heart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대해 존 웨슬리 목사님은 “마음의 할례는 영혼의 기질이 새로워진 상태”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할례를 받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해볼 수 있는 첫 번째 기준은 ‘겸손’이라 말했습니다.<[그 길](대한기독교서회)> 자신의 뜻을 내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겸손이야말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약의 백성들은 자신의 계획대로 살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살아지지 않습니다. 언약의 백성들은 오직 ‘인도하심’으로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설사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이 주어질지라도, “주의 인도하심이 있겠지!” 이렇게 굳게 믿으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나아갈 뿐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애굽의 수치를 떠나가게 하였다

둘째로 오늘 본문 9절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길갈’Gilgal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 ‘애굽의 수치’Reproach of Egypt를 떠나게 하셨던 점입니다. 언약의 땅에 그런 수치심을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길갈’이란 말은 ‘굴리다’(wheel)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애굽의 수치를 ‘떠나-보내겠다’ 곧 ‘굴려-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애굽의 수치’는 무입니까? 어떤 학자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당했던 고통과 서러움을 뜻할 것”이라 말합니다. 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길을 걸을 때, 애굽 사람들을 비롯해서 주변 국가와 부족들이 “그렇게 애굽으로부터 도망치더니, 대체 꼴이 그게 뭐냐! 도대체 네놈들은 어딜 가려고 그렇게 다람쥐 챗바퀴 돌들이 광야를 뱅글뱅글 돌고만 있는 거냐!”며 조롱하던 것을 뜻할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H. Roesel,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Peeters Press)>

그러면 여러분, 정말 무엇이 ‘애굽의 수치’입니까? 둘 다 애굽의 수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더 심각하고 치명적인 애굽의 수치는 따로 있지 않겠습니까? 곧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부터 탈출한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애굽에 종속된 채로 사는 형편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조금만 불편하면 “차라리 애굽이 더 나았지!” “그때가 좋았지!” “내가 이 고생하려고 출애굽 했나!” “내가 죽을 데가 없어서 이 광야에서 죽어야 한단 말인가!” 하면서 40년 내내 사사건건 영적인 애굽 종살이를 자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영적인 몰골을 하고서는 언약의 땅 가나안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9절)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불행한 과거에 사로잡힌 채로 미래의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애굽의 수치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가정에 여전히 존재하는 애굽의 수치는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 안에 숨어있는 애굽의 수치는 무엇입니까? 언약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저 요단강물에 굴려버려야 할 애굽의 수치는 무엇입니까? 없다고 하지는 마십시오. 볼 수 있지만 외면하거나, 어쩌면 스스로 철저히 숨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세속적 욕망’이라는 애굽의 수치가 우리 안에 쓴-뿌리를 내립니다. 때로는 ‘영적인 무기력감’이라는 애굽의 수치가 우리를 주눅 들게 합니다. 때로는 ‘아집과 교만’이라는 애굽의 수치가 우리 안에 덩어리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그 애굽의 수치를 지닌 채로 우리 앞에 놓인 언약에 땅에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이 시간 특별한 은혜를 내려주셔서,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우리 안의 애굽의 수치를 모두 다 저 요단강물에 굴려 빠뜨려주셔서, 언약의 땅으로 성큼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난 언약 백성들

마지막 세 번째로, 오늘 본문은 10절은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켰고’, 11절은 ‘땅의 소산물을 먹게 되었다’ 말합니다. 그리고 12절은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부터는 만나가 그쳤다’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유월절을 다시금 부활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다시피 ‘여호와의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처음으로 경험한 사건이었습니다. 유월절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됩니다. 유월절 ‘전’과 유월절 ‘후’는 다릅니다. 이것은 단순한 ‘발전’이나 ‘진보’ 따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유월절 전과 후는 ‘차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첫 번째 유월절은 어땠습니까? 애굽 땅을 빠져나오던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내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며 밤을 보냈습니다. 그 여호와의 유월절 밤이 지나자, 전에는 노예였지만, 이제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애굽 바로의 폭정 아래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는 언약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유월절 밤이 언약 백성들에게 주는 신비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제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됩니다. 12절은 말하기를,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다.”고 합니다. ‘만나가 그쳤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쳤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껏 40년 동안 하늘의 만나를 내리신 것은 오직 이때를 위함이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땅에 들어가서 밥 다운 밥을 지어먹을 때까지, ‘그때까지 내가 친히 너희를 거두마!’ 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유월절 밤이 지나면서, 만나가 그치고 그들이 땅의 소산물을 처음 먹었을 때, 그 맛이 어땠겠습니까? 11절을 보면 무교병을 먹고 곡식을 볶아 먹었다는데, 그 맛이 과연 어땠겠습니까? 이는 지금껏 저들이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차마 신비스럽다’ 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을 것입니다. 땅의 소산물이 맛이 되어 온몸에 번져갔을 때, 그들은 알았을 것입니다. ‘이제 떠돌이 생활은 끝났다!’고 말입니다. 부르스 벌치Bruce Birch라는 미국의 학자는 이 구절을 두고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여호와의 유월절 밤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식간에 정착민 공동체가 되었다!”<브르스 버치 외, [신학의 렌즈로 본 구약개관](새물결플러스)> 유월절 밤을 보내고, 땅의 소산물을 먹던 그 순간, 저들은 이제 더이상 40년 광야의 떠돌이가 아니었습니다. 순식간에, 홀연히, 그들은 언약의 땅에서 살아갈 ‘언약 백성’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영적 원리가 됩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본래 ‘하늘에 속한 분’이셨으며,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한몸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육신의 몸을 입고 친히 ‘땅의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주셨으며, 우리로 하여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친히 땅의 소산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한다.”(요 6:56)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사순절은 마치 여호와의 유월절 같은 기회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도 ‘전과 후’가 달라야 합니다. 차원이 다른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 시간을 지나면서 ‘겸손’으로 시작되는 마음의 할례를 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을 지나면서, 여러분 안의 애굽의 수치를 모두 요단강에 굴려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이 시간을 지나면서,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오직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배불리 먹고 마심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