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의 가치를 상실한 시대의 선교”

<요한복음 14장25-29절>

1. “우리 서강교회가 나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서강교회가 창립 120주년, 그리고 선교 12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저는 이러한 물음으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 서강교회가 나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난 1902년 5월25일에 서울에서 여덟 번째 감리교회를 ‘서강교회’라는 이름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이후 1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한결같은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장엄한 은혜가 넘실대던 지난 120년은 실로 위대하신 하나님 선교의 여정이었습니다.

목자 되신 주님은 눈멀고 아둔하고 뻣센 양과 같은 우리들이 저 세파로 인해 혹여라도 주님의 음성을 잊을까, 우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셨습니다. 때로는 사나운 이리떼와 같은 광풍이 우리 서강교회에 불어 닥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우리 주님은 지팡이와 막대기를 드시고, 제일 앞장서셔서 서강의 성도들을 이리떼로부터 안위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좋은 꼴을 찾아 우리에게 먹여 주시고자 “이리로 오라! 어서 와서 모이라!” 말씀하시며, 손과 발이 다 헐도록 서강인들의 여정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엮어진 성도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빚어진 지난 120년을 돌아보면서, 이제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우리 서강교회가 나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물음은 비단 우리 교회 만을 위한 물음이 아닙니다. 이 물음은 한국의 모든 교회를 향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곧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라고 말입니다.

2. 유럽–미국, 한국?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교회의 미래는 막연하다 못해 암담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에 “누가 한국 교회의 예배당에서 예배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아찔한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이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미 유럽 교회와 미국 교회가 무너지기 수십 년 전부터, 많은 종교 사회학자들과 선교학자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예견한 바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가면 유럽 교회는 곧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을 때, 당시 유럽 교회는 코웃음 쳤고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럽 기독교의 역사는 2천 년입니다. 그동안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다 이겨왔습니다. 교회가 문을 닫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것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그것도 벌써 수십 년이 지난 과거로만 회상될 뿐입니다. 공명과 울림이 좋아서, 찬송 소리가 예배당 구석까지 울릴 수 있도록 설계된 유럽 교회들이 나이트클럽 주인에게 헐값에 팔리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이제 유럽 교회 건물은 예배의 공간이 아니라 세속적 유흥 장소가 되거나, 아니면 골동품처럼 유적지로 남게 된 것입니다.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사역할 때 100년, 200년 이상 오래된 교회들을 찾아가 봤습니다. 과거에는 최소한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이 모여 예배했던 공간이, 이제는 10명도 채 안 되는 성도들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거나, 아예 문을 닫아버린 교회들을 수없이 많이 지켜봐야 했습니다.

선교학자들은 말하기를, 유럽과 미국에 이어서 하나님 성령의 횃불이 타오른 곳은 잠들어 있던 나라, 한국이었습니다. 그 위대한 선교의 수혜자로서 오늘 우리 서강교회는 창립 120주년을 맞아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은 위태롭기만 합니다. 이제 선교학자들은 한국교회가 유럽과 미국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 만을 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횃불이 ‘유럽-미국-한국’의 순으로 타올랐듯이, 그 횃불이 사그라드는 순서도 이제 ‘유럽-미국에 이어 한국의 수순에 접어들었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신성한 질서를 거부한 시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겠으나, 그중에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설교가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미국의 팀 켈러 목사님Timothy Keller은 한 문장으로 이런 위기 상황을 묘사합니다. 곧 목사님은 말하기를,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신성한 질서를 거부한 시대”라고 평가합니다.<팀 켈러 지음, [탈기독교 시대 전도](두란노)> 지금까지 인류는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아니든지, ‘신성한 질서 체계’를 존중하고 믿어왔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물질세계로 설명되지 않는 ‘초월적인 세계와 그 가치’를 최소한 인정은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과 물질문명이 극에 달한 지금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런 초월적 가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이 덧붙이며 말한 것처럼, 실로 오늘의 시대는 “교회가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두고 미국의 다이애나 배스Diana Butler Bass라는 학자도 평가하기를, “이제 신앙을 선택하는 것은 커피숍에서 메뉴 가운데 하나를 주문하는 것과 비슷해졌다”<다이애나 버틀러 배스 지음, [교회의 종말](kmc)>고 합니다. 사람들이 신앙을 선택하는 것이 마치 기호식품을 선택하는 것처럼 돼 버렸다는 가슴 아픈 지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선교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시대에 과연 선교가 가능은 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서강교회가 창립 120주년을 맞는 오늘, 이미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초월의 가치를 상실한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까?

4. 예수의 부재 경험

오늘 우리가 나눈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고별설교의 일부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고별설교를 통해서 이제 곧 세상을 떠나실 것이라 말씀하시며, 제자들과의 이별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면 제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다 버리고 예수를 따라 ‘제자’가 된 것인데, 만약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제자라 불릴 이유와 근거가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제자들이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던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듯이 저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다”(요 20:19)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저들은 ‘예수의 부재’in his Absence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죽은 예수’였던 것입니다. 무언가 궁금해도 예수가 죽었으니 물어볼 대상이 사라진 것입니다. 투정이라도 부려볼 예수님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무덤 속에 누워있다 여겼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의 부재로 인해 허무와 불안을 경험하는 제자들의 모습이야말로 오늘 설교 제목처럼, ‘초월의 가치를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예수를 ‘죽은 예수’ 취급합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예수의 구원을 믿기는커녕 묻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살았던 골동품과 같은 역사 속 인물로 치부될 뿐이지, 그가 여전히 은혜와 사랑을, 그리고 능력을 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것을, 세상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그런 시대, 곧 ‘초월의 가치를 상실한 시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4.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의 [대사들]The Ambassadors

여러분, 화면을 한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이라는 화가가 그린 [대사들]Ambassadors이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시면 여러분들의 눈에 무엇이 먼저 들어옵니까? 화려하게 차려입은 멋진 두 남성의 모습이 먼저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이 두 사람은 실존 인물로서 당시 사람들에게 유명했고 인기도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여러분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여러 가지 물건들일 것입니다. 자세한 설명을 다 드릴 수는 없지만, 하늘의 별자리를 지구본 같은 곳에 그려놓은 천구의, 해시계, 그리고 신대륙 발견을 상징하는 물건 등과 같은 것들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인류의 문명을 상징하는 물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이와같은 물질문명세계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것 말고 여러분들의 눈을 사로잡는 게 또 있습니까? 바닥 쪽을 보시면 뭔가 눕혀져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정면에서 보고 있어서 이게 뭔지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이 그림을 오른쪽에 서서 보면 이런 ‘해골’ 그림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아마도 작가는 인간이란 온갖 물질문명에 사로잡힌 채, 마치 지상에서 천 년을 살 것처럼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면서 살지만, 엄연한 ‘죽음’이란 현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 알려주고자 했을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해골 그림은 다른 물건들보다 크기가 훨씬 큼에도 불구하고, 해골보다는 다른 물건들에 더 관심이 쏠리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우리에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곧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 말고 그림 속에 감춰진 또 다른 비밀이 있습니다. 이 그림 왼쪽 맨 위쪽을 보시면 여러분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저 녹색 커튼 뒤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이 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이런 그림이 됩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그림의 전면에 나오지 못하고, 인간이 발명하고 발견한 문물 뒤에서, 그것도 커튼에 가려진 채로 반쪽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옷을 입은 저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놓인 물질문명에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이 그림을 바라볼 뿐이지,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초월적 가치를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그림 속에서 찾아보는 것조차 어렵기만 합니다. 예수는 있지만, 예수가 없습니다. 곧 예수의 부재가 이 그림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5. 보혜사 성령의 새로운 시대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예수 부재의 시대’ 곧 ‘초월적 가치를 상실한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의 피치 못할 ‘이별’離別을 앞두고서 ‘작별’作別을 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별’과 ‘작별’은 ‘헤어진다’는 점에서 똑같은 뜻이지만, ‘이별’과는 달리 ‘작별’은 ‘헤어짐을 준비하는 적극적인 행위’를 뜻합니다. 헤어지더라도 그냥 헤어지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자들과의 중요한 작별의식에서 예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십니다. 곧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26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의 이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혜사 성령이 이끄는 새로운 사역이 지속될 것을 예고해 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부재로 인해 허무에 빠져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세심하고도 강력한 주님의 약속이 ‘보혜사 성령’이란 이름 안에 담겨 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만나 처음 행하신 일도 “그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 20:22)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부재의 시대는 사실 예수 부재의 시대가 아닙니다. 세상에 죽은 예수가 어디 있습니까? 다만 예수가 죽은 것처럼 능력 없고, 소망없이 사는 기독교인들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 부활의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예수 부재의 시대는 보혜사 성령의 시대’임을 믿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월적 가치를 상실한 이 허망한 시대를 이길 힘은 역설적이게도 오직 초월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회복하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가라 하시면 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추는 순종’을 배우고, 죽은 예수로 살지 말고,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선교하는 것만이 이 허망한 시대를 헤쳐나갈 유일한 능력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이제 다시 우리는 묻습니다. “우리 서강교회가 나가야할 길은 어디인가?” 지난 2천 년 동안 성령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선교는 이제 120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다시금 성령의 불을, 성령이 이끄시는 선교의 횃불을 지펴 높이 들라 촉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서강교회가 나가야 할 길과 방향은 분명합니다. 아니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도 분명합니다. 그 길은 하나님 선교의 최전선으로 향한 길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 세워졌고, 교회는 선교를 통해 부흥했으며, 오직 선교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넉넉한 교회가 선교하는 게 아니라, 선교하는 교회를 하나님은 언제나 넉넉하게 채워주시고 부흥의 길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우리 모두 겸손히 응답함으로, 허락하신 120년에 감사하며, 허락하실 120년을 기대로 맞이하는 우리 모든 서강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