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離別 앞에 작별作別을 준비하는 삶

- 서평,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김영봉/IVP/2016

서평이란 걸 쓸 때에는 책의 내용을 주섬주섬 찾아 이런 저런 구절이 내게 큰 의미가 있었노라고 말하는 것이 의당 해야 할 일이지만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펼쳐 내가 밑줄을 그었거나 커멘트를 달았던 것들을 찾지 않기로 했다. 세세하고 적합한 인용이 주는 장점을 잘 알며 그런 과정을 통할 때에 책에 대한 소회를 크게 엇나감 없이 드러낼 수 있을 것이지만 한편 나는 책을 읽고 난 후의 이 충만한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 다소 어긋난 독서에의 소회라 할지라도, 책의 내용보다는 내 머릿속을 맴도는 이 충만한 기분에 대해서만 글로 남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교우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느꼈을 저자의 복잡한 심경에 내 자신을 투영해 보려 했다. 친절하게도 각각의 설교문 앞에 고인과 그 가정이 처한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소개해 주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 소개를 읽고 곧바로 이어서 설교문을 읽었지만 몇 편의 설교를 읽고 나니, 아니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은 촉촉해지고 손은 얼얼했으며 가슴이 저미어 오는 경험을 했다. 그 다음부터는 저자가 짧게 소개해 준 고인의 상황을 읽은 후에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장례 설교를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자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준비했을 법한 설교의 내용과 저자가 자신의 교우를 보내며 써 내려간 마지막 설교의 가장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은 줄곧 설교를 해왔던 목사인 내게 또 하나의 충격이 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저자는 죽음 앞에 솔직했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고인과 가족들에게 천국에의 소망이라는 것으로 에둘러 얼버무리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으로 비통해 하고 있는 가족들 앞에서 목사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노라고 무모하리만큼 솔직하다. 그리고 시편의 기자들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기분을 토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저자가 이런 복잡한 심경을 골방에 들어가 독백으로 홀로 기도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유가족들 앞에서 버젓이 장례 설교 안에 담고 있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이런 것은 설교로 담아내기에 금기시 되어 왔던 것이 아닌가. 자신의 복잡한 심경은 감추고 설교자는 담대히 전해야 한다 하지 않았던가. 강단에 선 목사는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기를 기도하는 가운데 회중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위로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한 인간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예배요 설교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무모해 보이리만큼 솔직했던 저자의 장례 설교가 유가족들의 심금을 울리고 그들의 영혼을 촉촉이 적셨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떤 설교 기법에 앞선 설교자의 절절한 공감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해 슬퍼하는 회중 옆에 함께 앉기를 주저하지 않는 설교자이기에 가능하리라 싶었다. 그러니까 설교자는 강단에 서기 전 회중석을 지나야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만약 설교를 문학 장르에 빗댈 수 있고 빗대야 한다면 설교는 선동을 위한 연설문이 아니요, 논리로 무장해야 하는 논문도 아니며 오히려 ‘시’이리라 했다. 너무 짧거나 과도한 함축을 담아서는 안 되겠기에 ‘산문시’의 언어를 닮아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아울러 이 책은 나의 죽음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가정해 보거나 혹은 떠올리기도 했다. 그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사나 죽으나 하나님과 함께’ 이것을 겸손히 결단하고 공히 드러내는 의식이 세례요 그것을 살아내는 훈련이 곧 신앙생활이라 믿고 있는 나이지만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그 어떤 훗날의 영화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별은 언제라도 온다. 소리 없이 뜻하지 않는 때에 불쑥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이별은 연대기적 시간으로 주어지는 게 아닌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죽음을 향해 떠난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누구나 맞게 될 이별離別의 때에 앞서 작별作別을 준비하는 삶, 그것이 삶과 죽음에의 영성일 것이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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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세월이 가면”(박인환 시/박인희 노래)

우리의 인생은 거대한 하나님의 숲에 떨어지는 한 장의 나뭇잎과 같이 사라질 것이다. 세상에서 부여받은 우리의 이름은 언젠가 잊혀 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고자 분투했던 흔적들은 삶의 궤적으로 그분 가슴에서 산화할 것이다. 때로 설교자는 이파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피어나는 환희를 노래한다. 때로 설교자는 그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려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또한 설교자는 그 이파리 하나하나가 낙엽으로 하강할 때의 그 아찔한 비정형적 그림자들로 인해 눈이 시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눈가가 촉촉했던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