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그 영예의 무게에 순복하는 삶

- 서평 / 설교자의 일주일(김영봉, 복있는 사람, 2017)

<임태일목사/서강교회>

1. 설교자들이 이 책 <설교자의 일주일>을 찾아 읽는 것은 아마도 이 책을 읽게 되면 설교를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망이 있었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욕망이 있었던 것이라면 제대로 된 책을 찾았다. 이 책은 가히 설교자들에게 있어서 고전으로 남게 될 것을 확신한다. 저자는 설교에 필요한 적합한 기술에 관한 내용 뿐 아니라 설교자의 소양과 자질은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일이 열거해 주고 있다. 그 세세한 서술은 읽어 본 독자라면 동의하겠지만 하나도 놓칠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해 보자. 만약 이미 책을 읽은 독자들 중에 위의 내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겠는 독자라면 내 말의 옳고 그름이나 과장됨을 가리기 전에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라고.

이 책에 대한 나의 확신은 분명하다. 이 책은 설교학자가 쓴 책이 아니기에 내게 더욱 매력있었다. 성서신학자였다가 현장으로 건너와 다양한 회중을 대상으로 설교해왔던 목사가 쓴 책이어서만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이 책이 탄생하게 된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여러 다른 설교가들에게 적극 권하고자 하는 것은 저자도 말하는 바 “설교문보다 설교자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아울러 “삶이 설교의 주석”이란 점에서 하등 주저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2.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을 읽었다 해도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그 향방을 추적해 가며 설교하려할 사람은 몇이나 될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말하자면 저자가 말하는 에토스에 대해서는 공감으로 그치고 파토스와 로고스에 열광하며 설교 준비에 매진하지는 않을까 해서다. 아니 어쩌면 파토스와 로고스마저 이미 다 아는 것인 마냥 쉽게 훑고 뭉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컨대 이 책의 제목은 <설교자 작성법>이 아니고 <설교자의 서재>도 아니며 <설교자의 일주일>이다. 곧 설교자들에게 설교를 잘 하는 설교자가 되라 주문하기 전에 먼저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가를 준엄히 묻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설교자인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잡다한 생각에 혼탁해져 있으며 혹 그게 아니라면 반대로 얼마나 혹독하게 기계적으로 목회란 것을 하고 있는가를 되묻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책에는 이러한 물음들이 갖는 그 준엄함에 비해 신랄한 채근은 거의 없다. 그것이 저자의 성정이다. 칼날 같은 표현이 더 효과적일 법도 한데 저자는 그런 점에서 끝까지 신중하다. 우리말 “늑줄주다”는 뜻 그대로다. 대신에 저자는 마치 강단에 선 설교자가 회중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이 책을 준비했고 또한 활자로 말을 건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순히 설교에 관한 서적이 아니다. 기승전결에 분명한 한편의 방대한 설교로서 영성 서적 코너에 꽂혀 있어야 한다.

3. 이런 점에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책의 내용이 아니다. “김영봉”이란 한 인간이 저자인 것이, 그리고 그가 “목사”인 것이 거대한 돌덩이의 무게감으로 독자들에게 온다. 말하자면 설사 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했고 그 실제적 적용을 감행했다 하더라도 그의 목회적 이상은 플라톤에 훨씬 가깝다. 종말론적 신학이 저변에 깔린 저자로서는 결코 현실에 편승하는 설명이나 현실을 분석하는 기술로 만족할 리 없다.

오히려 저자는 저마다에게 주어진 현실은 목회적 성찰과 진지한 모험의 대상이 될 뿐이지 자신의 상황에 대한 변명으로 꺼낼 카드는 아니며 그 혹독한 현실 속에서라도 반드시 우리에게 신비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숨죽여 대하고 그것을 정교하게 제련하여 회중들에게 전달할 임무를 설교자들은 포기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것은 서문에서 “그러면 됐다. 평생 떨리는 마음만 지키면 된다”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강단에 올라선다는 김영봉목사의 한마디로 이미 공고하다. 이를 다른 말로 저자는 이렇게 갈음한다. “매일 지속적인 영성 생활을 통해 ‘거룩한 에토스’를 형성해 나가지 않으면 여러분의 에토스는 더욱 나빠집니다.”

4-1. 나로서는 한국에서 시골 할머님들이 주요한 청중들이었던 충북 괴산의 산골 마을에서 8년을 설교해 왔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북미 원주민 부족 중 하나인 호피 원주민들에게 지난 10년 간 영어로 설교를 해 오고 있다. 이에 덤으로 주어진 설교의 자리라면 선교 보고를 위해 찾아가 만났던 미국인 교회와 한국인 교회들이 나의 설교 회중들이었다. 그러니까 18년 동안 설교를 하고 있는 셈인데 내가 만난 회중들은 모든 면에서 서로 달랐다. 그러니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연속성을 찾기 어려웠고 새로운 청중들을 대할 때마다 답답하고 급급했던 기억이 많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다른 사람들의 설교라든가 혹은 설교학에 관한 책을 제대로 접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저자가 빈번하게 인용하는 저 유명한 마틴 로이드 존스의 책조차 내겐 그렇게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으니. 그것은 설교학 서적이라든가 설교학 전공이 좋은 설교를 보증하지 않는다는 과한 고집 같은 것이었는데 그래서 훗날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내 스스로 그것들을 정리해 보고 그런 때에라야 설교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학문에 기대 비교 분석해 보고자 했던 생각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 나의 설교는 부족함이 많다. 그래서 저자의 책을 읽는 동안 지금껏 뭉뚱그렸던 부족함들이 적색불로 점멸되었고 그런 까닭에 책에 밑줄을 긋는 횟수가 참 많았다. 아울러 내가 생각한 바를 덧붙인 글로 까맣게 적기도 많이 적었다. 밑줄을 그을 때마다 나는 무릎을 쳤지만 때론 비참했다. 글을 덧붙일 때마다 나는 희열을 느꼈지만 때론 저자를 원망하는 마음까지도 들었다. 2장 “에토스”(설교자와 말씀사이)를 읽을 때 적었던 글 중 하나가 “도대체 얼마나 더 철저해야 한단 말인가?”였으니 말이다. 언제까지일지 알 수는 없으나 얼마간 더 설교를 해야 할 소임을 맡은 자로서 저자가 일러준 길을 따라가는 것은 참으로 고단하고도 갑갑한 길로 보였기 때문이다.

4-2. 호피 원주민 교회에서 10년째 설교하고 있는 것은 여러 면에서 낯선 경험인데 그중에 하나가 긴 예배시간이다.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시간이 길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설교 시간을 길게 쓰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보통 2시간30분 정도 예배 한다. 내가 선호하는 설교 스타일은 저자가 소개한 “해설설교”다. 자연히 설교가 길어진다. 주로 영어로 설교하지만 이따금씩 우리말로 설교해야 하는 자리가 주어지기도 하는데 준비하는 과정은 두 설교가 비슷하면서도 강단에 올라섰을 때는 다르다. 둘 다 완성된 설교문을 쓰지만 영어로 설교할 때는 그 완성된 설교문을 읽어 내려가며 그때그때 마다 디아트리베 형식을 빌려 응답하는 방식으로 설교를 하고 우리말로 설교할 때는 원고를 가급적 충분히 숙지하고 원고 없는 설교를 한다. 이때도 역시 디아트리베는 필수. 영어로 설교할 때 원고를 읽어가며 커멘트를 하는 것은 생생한 표현을 글로 적는 게 미숙한 탓도 있고 글과 말이 통합적으로 발화되는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설교할 때 원고를 보지 않고 설교하는 것은 생생한 선교 현장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목회했을 때는 완성된 원고를 정갈한 언어로 작성하려 애썼고 그것을 강단에 서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읽도록 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도 내가 준비한 말이 아니었으니 발화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이런 방식으로 전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환 속에서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해설설교”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저자도 책에서 말했던 바 성경을 대면할 때는 의당 ‘성경으로부터의 의미’(Exegesis)에 천착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전환된 방식으로 설교할 때 준비한 원고를 숙지하였으나 강단에 올라서면 새로이 말씀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듣게 된다. 나는 그것을 ‘제3의 언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설교에 있어서 제1의 언어는 ‘성경’이요, 제2의 언어는 ‘준비된 원고’이며 그것으로 온축된 상태로 강단에 올랐을 때 또다시 분별하여 생생히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제3의 언어라 부르고 있다.

나는 그 언어를 추구하고 갈구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설교에 관한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식의 방식이 갖고 있는 장점이나 혹은 문제점에 대해서 홀로 한계를 느끼곤 했던 게 전부였다. 저자가 책에서 이런 방식의 설교를 격려한 것이 반가웠으나 짧은 평가로 그친 것은 내게 큰 아쉬움이었다. 유진 피터슨의 설교 유형이 그렇다는 힌트를 얻게 된 걸로 일단 만족해야 하겠다. 유진 피터슨은 자랑스럽게도 원주민의 피가 흐르는 신학자 아니던가.

5. 마지막으로 저자의 강조점이 설교자의 ‘에토스’에 있으면서도 정작 책의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은 ‘로고스’라는 점에 주목한다. 기실 에토스에는 많은 말이 필요 없을 수 있으나 로고스엔 정교한 서술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남긴 다음의 지적은 오늘날 설교에 있어 가장 큰 화두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싶다.

a. “교인들은 성경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또한 성경 말씀에 권위를 부여합니다. 성경 말씀을 제대로 담아낸 설교에는 교인들이 마음을 담아 응답합니다. 문제는 설교자가 성경의 세계 안으로 회중을 안내해 들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설교자가 본문에 대한 연구와 깊은 묵상으로 말씀 안으로 회중을 인도해 들을 때, 그들은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며 또한 응답할 것입니다.”

b. “회중이 설교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완벽한 정답이 아닙니다.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향한 거룩한 존경심과 그 진리를 이해하려는 진지한 탐구심을 기대합니다.”

회중들을 성경의 깊은 세계로 안내하는 것처럼 흥분되는 일도 없을 뿐더라 그것에서 실패하는 일처럼 비참한 일도 없을 것이다. 설교에 있어서 제1의 언어인 성경이 침묵당하고 설교자에 의해 잠식당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이런 점에서 저자인 김영봉목사에게 한 가지 부탁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설교자는 “회중을 성경의 세계로 안내하는 직무”라고 할 때에 아직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 이해를 위한 학문적 소양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잘라 말하면 설교자들도 성경을 대할 때 막막할 때가 많다. 설교자로서 깊은 연구와 묵상이 가능하려면 그에 따른 성서해석학적인 소양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저자는 지난 몇 년 동안 목회 멘토링 사역을 해오고 있고 그로 인해 많은 목회자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데 개인적 바람으로는 이런 사역 기간 동안에 성서해석학에 대한 심화된 강의를 열어주면 좋겠다. 초대교회의 유비적-알레고리적 해석으로부터 역사비평까지를 훑고 이후 문학비평의 세계가 열림으로 해서 달라진 성서 해석의 양상과 그 위상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강의가 설교자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라 믿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 만나는 제1의 독자, 제1의 저자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제2의 독자들과 제2의 저자들, 아울러 오늘에 다시 읽는 제3의 독자로서의 설교자가 제4의 독자들인 회중들을 풍부한 성서의 세계로 안내하는데는 이러한 해석학적 도구가 필요하다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내 가장 가까운 곳에 두겠다.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음미해야 할 구절들이 많아서다. 설교자로서 나태해질 때마다 내게 주어진 값진 그 영예의 무게감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저자가 끝내 설교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열매”가 아니라 “나무”인 것을 강조하며 에토스로 이 책을 마감하듯이 나 또한 그 영예의 무게감을 결코 외면하거나 덜어내려 하지 않겠다. 김영봉목사님께 마음 깊은 감사를 전한다.